매일신문

[사설] ‘킬러 문항’ 없앤다더니 역대급 ‘불수능’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표를 받은 수험생들이 충격에 빠졌다. 수험생들은 지난 6월 정부의 '킬러 문항' 배제 발표를 듣고, 쉬운 수능을 기대했다. 지난 9월 모의고사에서 수학 만점자가 지난해 수능 대비 2.7배로 증가해, 올 수능이 쉬울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올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이었다.

국어·영어·수학 모두 어려웠다. 국어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150점, 수학은 148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16점, 3점씩 올랐다. 시험이 어려워 평균이 낮아지면 표준점수의 최고점은 상승한다. 영어 1등급 비율은 지난해 7.8%에서 4.71%로 크게 줄었다. 정부는 킬러 문항 배제와 변별력 확보를 모두 충족했다고 자평했다. 이는 '난이도 조절 실패'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 출제 당국은 킬러 문항 배제에 따른 변별력 논란을 의식해 새로운 유형의 고난도 문제를 만들었다. 그 결과, 이번 수능의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은 현 수능 체제 이후 가장 높았던 2019학년도 수능 때와 같다. 당시 교육과정평가원장은 난이도 조절 실패에 대해 사과했다.

정부 발표와 달리, 킬러 문항에 대한 이견도 있다. 한 시민 단체는 수능 수학 46개 문항 중 6개가 교과 범위를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수험생들이 힘들어하면 킬러 문항"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애초에 킬러 문항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과도하게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개념이 한 문제에 들어간 경우를 킬러 문항의 예시로 꼽았다. 하지만 수험생들에겐 고난도 문항은 모두 킬러 문항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킬러 문항 배제를 지시한 목적은 사교육 경감이다. 대학 서열화와 점수 중심의 수능 체계에서 사교육 경감은 쉽지 않다. 다만 수능 영향력과 난도를 낮추면 사교육을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다. 그런데 킬러 문항을 없애면서, 변별력을 확보하려다 보니 역대급 불수능을 초래했다. 불수능은 사교육 수요를 부추긴다. 수능이 어려울수록 '학교 공부로는 부족하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올해처럼 갑작스러운 출제 경향 변화는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준다. 교육 당국은 '수능의 출제 기준과 난이도는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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