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전 중앙로역 인근 빌딩 앞. '흡연금지'라는 표지판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성이 꽁초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와 함께 걷던 여성은 이 남성을 멀찍이 피해 걸음을 재촉했다.
이 남성은 "금연구역이라하지만 담배꽁초가 수북한 깡통을 둔 건 흡연을 용인한다는 뜻 아니냐"라며 "건물 주변이나 인도에서 담배를 피우지만 제지당한 적은 없다"고 했다.
대구시내 전역에 지정된 '금연구역'이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장에서 적발되지 않는 이상 과태료 부과가 사실상 어렵고, 인력 부족으로 해마다 단속도 느슨하게 이뤄지는 탓이다.
◆4년 만에 3분의 1로 줄어든 금연구역 단속
10일 대구시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금연구역 위반으로 적발돼 과태료가 부과된 건수는 58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9년 1천572건에 달했던 과태료 부과 건수가 4년 만에 3분의 1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과태료 부과 건수는 코로나19 대응 업무로 사실상 단속이 멈춰섰던 2020년(472건)을 제외하면 2021년 1천45건, 지난해 933건 등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줄고 있다.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중구 동성로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한 시민은 "주로 주차장 입구 등에서 하루에 10개비 정도 피우는데 단속에 적발된 적은 없다. 주변에서도 흡연으로 과태료 냈거나 제지 당했다는 얘기도 못들어봤다"고 했다.
상인들은 가게 앞 흡연과 꽁초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신매역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최모(30) 씨는 "금연구역 스티커를 나눠주러 온 구청 직원에게 '가게 앞 흡연이 너무 심각한데 조치해달라'고 했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간접 흡연에 따른 피해 호소도 잇따른다. 중구 동성로 한 카페에서 일하는 최모(32) 씨는 "동성로 전역이 금연구역인데도 흡연자가 많다. 처음에는 만류했지만 하루에도 수십명씩 가게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통에 그마저도 포기했다"면서 "바람을 타고 담배 연기가 가게로 들어와서 문을 닫아 놓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중앙로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68) 씨는 "단속을 나와도 잠깐 둘러보고 가는게 전부이고, 식당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으니 손님들도 불쾌해한다"면서 "흡연부스 설치가 어려우면 단속이라도 제대로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시내 금연구역 8만1천곳…단속인력은 20여명 그쳐
금연구역 위반 단속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은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위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도 꽁초를 버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거나 자리를 피하면 뒤따라가 과태료를 부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구시내 구청 담당자는 "매일 단속을 나가지만 현장에 가보면 사라지고 없거나 자리를 피해버리기 일쑤"라며 "과태료를 부과하려다가 현장에서 몸싸움까지 벌일 정도로 거부감이 심해 단속이 쉽지 않다"고 했다.
방대한 금연구역을 감시할만큼 단속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대구시내 금연구역은 국민건강증진법 상 금연구역 7만6천340곳과 조례로 정한 금연구역 5천224곳 등 8만1천564곳에 이른다. 그러나 실제 단속 인력은 각 구·군별로 2, 3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단속원으로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지자체 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는 탓에 인력 확충이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단속반 한 관계자는 "단속원은 '정해진 시간 내에 단속 실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선택제로 운영된다. 이들은 구‧군 자체 예산으로 운영되는데, 세수 부족이 심각한데 무작정 단속원 수를 늘리기 쉽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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