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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외국인 포용력이 지역 소멸을 막는다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2019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가 쓴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2020년 출간)은 이민자 문제에 주목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이 내세우는 '이민자 위협론', 즉 이민자가 일자리를 뺏고 임금 수준을 낮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1980년 쿠바에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난민 12만5천 명이 몰렸지만 근로자 임금과 고용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뒤플로 매사추세츠공과대 교수는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세금 낼 사람도 줄어 노인 부양은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인구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민과 출산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과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교수 마이클 만텔바움의 '미국 쇠망론'(2011년 출간)은 초강대국 중국에 대한 미국 대응을 다룬 책이다. 저자들은 미국 '번영의 비결' 5개 기둥 중 하나인 '이민자에 대한 문호 개방'을 살리기 위해 2001년 9·11 테러 이후 엄격해진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민자는 미국 전체 인구에서 불과 12%를 차지하지만 실리콘밸리 IT 산업의 52%에 해당하는 기업을 창업했다. 미국 창업가 센터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포천 500대 기업의 43%는 설립자 또는 공동 설립자가 이민자 또는 이민자 자녀다. 일론 머스크(남아프리카), 스티브 잡스(시리아),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쿠바)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가운데 뉴욕타임스의 2일(현지시간) 기사는 뼈아프다. 뉴욕타임스는 "저개발국 출신 근로자 수십만 명이 한국의 소규모 공장, 외딴 농장, 어선에서 일한다. 고용주를 선택하거나 바꿀 권한이 거의 없는 이들은 약탈적 고용주와 비인간적인 주거, 차별, 학대를 견뎌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벌목 작업에 투입됐다가 두개골 골절상을 입었는데 고용주가 산업재해 보상 서류에 '경미한 부상'으로만 신고했다는 방글라데시 근로자 이야기나 고용 계약 당시 약속했던 '숙소'가 실은 시커먼 비닐하우스 안 낡은 컨테이너였다는 네팔 근로자의 이야기는 낯 뜨거울 정도로 부끄럽다.

우리나라는 노동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가 맞물리면서 외국인 유입이 가속화하고 있다. 경북도교육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도 입국(374명)과 외국인 가정(1천250명)의 다문화 학생은 1천624명으로 10년 전인 2013년(중도 입국 119명, 외국인 가정 64명)에 비해 10배가량 급증했다. 지난해 경북 초·중·고교생은 24만9천95명으로 10년 새 7만288명이 줄었지만 다문화 초·중·고교생은 지난 2011년 2천34명에서 지난해 1만2천240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말 기준 경북 906개 초·중·고교 중 다문화 학생 비율이 30%가 넘는 다문화 밀집 학교는 132곳에 이른다.

언어는 가장 쉽고 빠르게 동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전국 33개 시·군·구부터 '지역 거점 한국어 예비 과정(3개월~1년)' 선정 방침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인공지능(AI) 기반 온라인 한국어 학습장도 운영한다. 경북교육청은 지난해 2월 경주한국어교육센터를 전국 최초로 열었다. 아직 부족하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해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민자를 적극 포용한 국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번영을 누렸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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