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목련, 생육신 김시습이 절창(絕唱)한 까닭

순박·순결 희생정신 담은 '대구 시화'…한라산 토종 목련 '코부시 목련' 명명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열흘 못 넘겨 아쉬워
연꽃 닮은 꽃 뒷모습 아름다웠으면

대구 동산의 선교사 스윗즈주택 앞의 백목련 꽃이 활짝 피었다. 백목련은 원산지가 중국으로 흔히 토종 목련과 구분 없이 목련이라고 부른다. 근대문화골목투어 핫플레이스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대구 동산의 선교사 스윗즈주택 앞의 백목련 꽃이 활짝 피었다. 백목련은 원산지가 중국으로 흔히 토종 목련과 구분 없이 목련이라고 부른다. 근대문화골목투어 핫플레이스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박목월의 시에 김순애가 곡을 붙인 「4월의 노래」가 심심찮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온갖 꽃들이 아름다움을 겨루는 계절인 봄꽃 잔치가 바야흐로 무르익는 계절에 목련이 빠지면 서운할 것 같다. 목련(木蓮)이라는 이름은 '나무에서 피는 꽃의 모양이 연꽃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

따스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나뭇잎이 나오기 전에 겨우내 회색 잔털로 뒤덮인 꽃눈이 온도에 민감해지면서 껍질이 부풀어 올라 벌어지면서 꽃봉오리를 슬며시 내민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가지에서부터 한 송이씩 피기 시작한 꽃은 하룻밤 새 나뭇가지 끝에 울멍줄멍 탐스럽게 매달려 시선을 빼앗는다. 유백색 꽃잎이 활짝 펼쳐지면 코도 호강한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기에 콧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목련꽃은 풋풋한 청춘들에게 연애소설의 고전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게 만들 만큼 매력이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목련은 대구시화다. 순박하고 순결하며 희생정신의 시민 기질을 보여준다고 대구시청 누리집에 설명돼 있다. 목련하면 '하얀' 목련을 떠올리기 쉽다. 꽃말은 순수함과 우아함, 성숙함, 아름다움, 존경, 사랑 등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많은 학교에서는 환한 꽃처럼 큰 꿈을 가지라는 뜻에서 교화나 교목으로 지정했다.

자목련은 꽃잎의 안팎이 한결 같은 자주색이다.
자목련은 꽃잎의 안팎이 한결 같은 자주색이다.

◆목련 다양한 색상과 모양

목련의 종류는 다양하다. 세계 최대 목련 컬렉션을 자랑하는 충청남도 태안군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은 400여 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8년 말 국립수목원에서 발간한 『아름다운 꽃 목련』 도록에는 기본종 34종, 재배품종 252가지 등 총 286개를 소개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하얀 목련은 대부분 자생식물(自生植物)이 아니라 중국의 백목련을 개량한 재배식물(栽培植物)이다. 아파트나 공원에서 백목련 외에도 자목련, 자주목련, 후박나무로 잘못 알려진 일본목련 등의 품종을 흔히 본다. 꽃잎이 노란 '황목련'도 종종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토종 '목련'이나 산에서 볼 수 있는 함박꽃나무는 널리 보급되지 않아서 정작 보기 힘들다.

한국 토종 목련은 제주도 한라산이 고향으로 작은 가지가 연한 녹색을 띤다. 꽃잎은 백목련보더 너비가 좁지만 뒤로 완전히 젖혀질 정도로 활짝 피며 향기가 진하다. 백목련은 6장의 꽃잎에 색과 크기가 비슷한 3장의 꽃받침이 있어 꽃잎이 아홉 장인 것처럼 보이는 반면에 토종 목련은 6장의 꽃잎이 3개의 작은 갈색 꽃받침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묘목시장에서 목련을 달라고 하면 대부분 백목련을 준다. 우리 토종 목련을 사려면 '코부시 목련'이라고 주문해야 한다. 일본말 코부시(こぶし·辛夷·拳)는 주먹이라는 뜻이다. 목련 꽃봉오리가 마치 주먹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코부시 목련'은 일본에도 자생하데 아예 우리 토종 목련의 학명(Magnolia kobus DC.)으로 굳어버렸다.

자주목련은 꽃잎 안쪽은 희고 바깥이 자주색으로 흔히 '자목련'으로 부르고 있다.
자주목련은 꽃잎 안쪽은 희고 바깥이 자주색으로 흔히 '자목련'으로 부르고 있다.

함박꽃나무는 우리나라 높은 산 중턱 골짜기에 분포하며 영주 소백산, 영천 보현산 등지에서도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 소백산 정상의 철쭉꽃을 보려고 희방사 코스로 등산하다가 곳곳에 활짝 핀 함박꽃의 장관을 모처럼 즐길 수 있었다. 함박꽃은 북한 국화다.

백목련과 자목련의 자생지는 중국이다. 백목련은 꽃잎이 유백색이고 자목련은 꽃잎 안팎이 같은 자주색이다. 자주목련은 백목련과 자목련을 교배시켜 만든 원예종이다. 꽃잎 바깥은 자주색이고 안쪽은 흰색이 특징이다. 우리가 흔히 '자목련'으로 불러왔던 꽃을 자세히 보면 자주목련일 가능성이 크다. 자목련은 꽃피는 시기가 백목련보다 2주일가량 늦다.

별목련은 꽃잎의 수가 10개 이상으로 별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목련은 5월 중순 잎이 무성해진 후에 꽃을 피운다. 경북의 한 사찰에 있는 일본목련 팻말에 후박나무로 적혔다.
일본목련은 5월 중순 잎이 무성해진 후에 꽃을 피운다. 경북의 한 사찰에 있는 일본목련 팻말에 후박나무로 적혔다.

큰 절에 있는 '후박나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무는 십중팔구 일본목련이다. 무소유를 실천하고 열반한 법정 스님도 머물렀던 불일암 뜰에 심은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로 알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호노오키(朴の木)로 부르며 일본의 한자로 厚朴(후박)으로 쓴다.

우리나라에서 이를 그대로 부르는 바람에 울릉도나 남해안 지역에 자생하는 진짜 후박나무와 헷갈리게 됐다. 울릉도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의 상록활엽교목으로 낙엽수인 일본목련과는 엄연히 다르다. 일본목련은 목련 종류 가운데 꽃이 가장 크고 향기가 진해서 향목련이라는 별칭이 있다. 꽃은 자목련 꽃이 지고 한참 뒤인 5월쯤에 핀다.

우리나라 토종 목련은 6장의 하얀 꽃잎과 꽃받침이 뚜렷이 구분되며 꽃잎의 너비가 백목련보다 좁고 활짝 젖혀져 있다.
우리나라 토종 목련은 6장의 하얀 꽃잎과 꽃받침이 뚜렷이 구분되며 꽃잎의 너비가 백목련보다 좁고 활짝 젖혀져 있다.

◆목련의 다른 이름

목련이 언제부터 역사에 등장했는지 알 수 없으나 『삼국유사』 「기이」편 '가락국기'(駕洛國記)조에 가락국을 세운 김수로왕이 아내가 될 허황옥(許黃玉)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는데 '목련(木蓮)으로 만든 키를 갖추고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가서 그들을 맞이하여(整蘭橈揚桂楫而迎之)…'라고 처음 나온다. 이때가 서기 48년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목련을 꽃에서 진한 향기가 난다는 이유로 목란(木蘭), 하얀 꽃이 옥과 같아 옥란(玉蘭), 꽃봉오리가 붓을 연상시킨다는 뜻으로 목필화(木筆花)이라고 불렀다.

목련 꽃봉오리는 약간 매운맛이 있으며 한방에서는 약재를 신이(辛夷)라 부른다. 코가 막히거나 콧물이 흐르는 것을 낫게 하고, 얼굴이 부은 걸 가라앉히고, 치통을 멎게 하고, 눈을 밝게 하는 데 효능이 있다. 선인들은 집이나 정원에 목련을 심어두고 꽃도 보고 약재로도 즐겨 썼다.

목련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북향화(北向花), 충신화(忠臣花), 향불화(向佛花) 등이 있다.

"선암사에 나무가 있는데, 그것을 북향화(北向花)라고 한다. 그 꽃은 자줏빛으로 피기만 하면 반드시 북쪽을 향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광해군 재위 때 이수광(李睟光)이 펴낸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에 나오는 북향화의 유래다.

북향화는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하기 때문이요, 충신화는 임금이 사는 서울이 남부지방의 북쪽인 까닭이요, 향불화는 절집 남쪽 마당에 심으면 꽃송이가 대웅전이나 불상을 모신 북쪽을 향하는데 기인한다. 결국 목련 꽃봉오리의 방향 때문에 다양한 이름이 붙여진 셈인데 목련은 왜 북쪽으로 향할까? 꽃봉오리의 아래 남쪽 부분에 따뜻한 햇볕이 먼저 닿으면서 세포분열이 반대편보다 더 빨리 이뤄져 자연스럽게 꽃이 북쪽으로 기울게 된다.

변덕스런 날씨에도 대릉원의 '목련 포토존'에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변덕스런 날씨에도 대릉원의 '목련 포토존'에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생육신 김시습의 목련 사랑

조선시대 선비들도 목련을 어지간히 좋아했던 모양이다. 유박이 쓴 『화암수록』의 「화목구등품제」에는 "속명은 목부용(木芙蓉)이다, 담우(淡友) 즉 담박한 벗으로 백련과 흡사한데 향기가 몹시 진하다"고 평하고 배나무, 앵두나무, 정향과 함께 7등으로 분류했다.

너를 연꽃이라 여기면 잎이 감잎 같고 以爾爲蓮葉如柹·이이위련엽여시

너를 감나무라 여기면 꽃이 연꽃 같네 以爾爲杮花如蓮·이이위시화여련

(중략)

옥황이 너를 깊은 산중에 귀양 보냈으니 玉皇謫汝深山中·옥황적여심산중

수운의 도포를 벗지 못한 게 몇 년이냐 不脫水雲袍幾年·불탈수운포기년

산바람이 땅을 몰아칠 때 창자가 끊어져 腸斷山風捲地時·단장산풍권지시

흰 비단 수건 맑은 개울가에 떨어져있구나 縞巾零落淸溪邊·호건영락청계변

내가 거둬 모아 의상을 지어서 我欲收拾作衣裳·아욕수습작의상

경치 좋은 산사에서 입으려 했더니 服之洞天雲水鄕·복지동천운수향

옥정이 태화산 꼭대기에 아직 머뭇거린다고 夷猶玉井太華巓·이유옥종태화전

때로는 초평이 치는 양을 타고 내려오네 有時騎下初平羊·유시기하초평양

<『매월당시집』 권5, 시/화초>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에 속세를 떠났던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이 지은 「목련」은 그 꽃을 소재의 한시 중에서 압권이다. 꽃과 잎의 생김새에서 시작해서 낙화에 이르기까지 고사와 전설을 떠올린 절창(絕唱)이다. 달나라 선녀 항아, 옥황상제가 천상에서 땅으로 귀양 보내 절에 머무는 승려, 삼수의 별자리 옥정, 바위를 양으로 만드는 도술을 가진 초평 등의 전설을 망라했다.

어쩌면 운수납자와 같은 고행을 걸었던 매월당이 목련을 귀양살이하는 지상의 행각승(行脚僧)으로 여기는 건 숭유(崇儒)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거처 없이 떠도는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스스로 단 주석에 "산중에 나무가 있는데 잎은 감잎 같고 꽃은 하얀 연꽃 같고 씨방은 도꼬마리 같았는데 열매는 붉다. 승려들이 목련이라 부른다(山中有樹 葉如柹 花如白蓮 而房如蒼耳子而實紅 僧呼爲木蓮)"고 적어 꽃뿐만 아니라 간과하기 쉬운 열매도 자세히 살폈다.

가을에 목련의 붉은 열매에서 하얀 실 같은 줄에 붉은 씨앗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가을에 목련의 붉은 열매에서 하얀 실 같은 줄에 붉은 씨앗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화사한 꽃 비루한 낙화

「4월의 노래」가 희망을 담았다면 가수 양희은의 「하얀 목련」은 추억을 소환하는 노래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 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략)

목련꽃이 한창 필 때는 화사하지만 질 때는 갈변한 꽃잎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지저분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운명인 자목련이나 백목련은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낙화(落花)한다. 개화 땐 좋았으나 목련 꽃이 시들면 시커멓게 타들어간 듯 꽃잎이 마당이나 뜰을 어지럽힌다. 시절이 바뀌어 떠날 때 뒷모습이 깨끗하면 더 정겹고 애틋할 것이다. 시대를 풍미하던 선량(選良)이나 '가붕개'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칼럼니스트chunghama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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