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김준혁의 ‘보바리슴’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1992년은 한 편의 소설이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선 해였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쓴 '즐거운 사라'가 부른 외설 논란이었다. 논문과 책으로 연구 결과물을 입증하는 학자로서 품위도 문제 삼았다. 음란 문서 여부 판단은 법원의 몫이었다. 노이즈 마케팅은 최고조에 올랐다. 하지만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성적(性的) 판타지보다 성적 수치심을 자극했다. 문체도 거칠었다.

1856년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내놓은 '마담 보바리'는 고전의 반열에 있다. 이 작품도 19세기 중엽 외설 논란에 휩싸여 작가가 법정에 서야 했다. 내면의 기아에 허덕인 유부녀 에마 보바리가 주변 남성들과 대범하게 애정 행각을 이어가다 파멸에 이르는 내용이다. 작품에서 배태된 개념이 '보바리슴(bovarysme)'이다. 자신이 꿈꾸는 모습을 실제 자아로 여기는 심리 상태로 풀이한다.

작가는 기록을 중심에 둔 역사서라 주장하지만 소설로 보이는 책이 있다. 22대 총선 당선인 한신대 김준혁 교수의 '김준혁 교수가 들려주는 변방의 역사'다. 총선 과정에서 책 내용 일부와 유튜브에서 한 여러 발언들이 문제시됐다. 이대생 성 상납, 박정희 성 추문, 친일의 역사에서 시작된 유치원, 퇴계의 성생활까지 폭도 넓었다. 역사학자라는 이가 감당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주목할 부분은 '저자의 말'에서 보인 비장함이다. 그는 "분명히 이야기하건데 나는 기록에 없는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는다. 그러니 야사처럼 들렸더라도 단연코 정확한 그 시대의 역사이고, 그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라고 했다. 또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를 단재 신채호의 말이라 인용하며 "온갖 권력을 누리는 악인들에게 반드시 하늘이 응징할 것이라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주고 싶었다"고 했다. '마담 보바리'가 겹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약 500년 전 퇴계는 조정으로 나와 달라는 임금의 요청을 여러 차례 사양했다. 후학 양성에 진심이었다. 교수 김준혁에게 후학 양성은 어떤 의미였을까. 다음 달 30일이면 법을 만들고 국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국민의 이름으로 부여받는 그다. 악인으로 분류한 이들을 어찌 응징할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기록을 가장한 상상이 진영 논리 앞에서 면책될 수 있음을 이참에 확실히 알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천을 유지한 책임을 부디 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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