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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부자 감세 논란에 노후 대책 위협받는다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주식시장 저평가,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내놓은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안이 나왔다. 주주 환원 증가액의 일정 부분에 대한 세액공제를 통해 법인세 과표 구간을 낮추고, 배당소득세에 분리과세를 도입해 저율 과세하는 내용이다. 분리과세를 도입하면 2천만원 이상 배당소득에 대해 금융소득종합과세(지방세 포함 49.5%)에 합산하지 않고 원천 세율(15.4%)만 적용한다. 원래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되면 금융소득과 근로·사업소득을 합산해 세율을 정하는데,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이렇게 합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1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방문한 자리에서 밝힌 내용이다. 지난 3월 19일 자본시장 선진화 전문가 간담회에서 기본 방침을 밝힌 후 구체적 방식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세금을 줄여주는 것이 핵심인데, 정확한 세율은 세법 개정안에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최 부총리는 민감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도 언급했다. 금투세 폐지 등 밸류업 정책의 지속 추진을 거론하면서 "(상속세는) 국민 공감대를 전제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여소야대를 염두에 둔 조심스러운 발언으로 읽힌다. 금투세는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얻는 투자소득에 전면 과세하는 제도로, 금융소득이 5천만원을 넘기면 20%, 3억원 초과 시 25% 세금을 부과한다. 배당·연금 등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금투세는 적잖은 걸림돌이다. 지난해 시행 예정이었지만, 금융투자업계 반발이 일면서 시행 일정을 2025년으로 2년 유예한 바 있다. 2022년 기획재정부 분석에 따르면 금투세를 도입할 경우 상장주 거래 관련 과세 대상이 기존 1만5천 명에서 15만 명으로 10배 증가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초 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했지만,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금투세가 예정대로 2025년에 시행될 것이란 투자자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금투세 폐지 촉구 국회 국민 동의 청원은 지난 9일 시작된 지 1주일 만에 5만 명을 넘어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5일 금투세 유예 방안과 관련, "비겁한 결정이 아닌가 싶다"고 입장을 밝혔다. 유예가 아니라 애초 방침대로 폐지로 밀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부자 감세라면서 여전히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예정대로 2025년부터 금투세가 차질 없이 시행되게 할 것"이라면서 "부자들의 곳간만 지키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밸류업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1분기 주식 결제 대금이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의미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더 내고 더 받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실제 도입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더 내기는 쉽지 않고, 더 받는다고 해도 여전히 소득대체율 50%다. 노후 대비에 공적연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건강보험도 지뢰밭이다. 쥐꼬리만 한 투자 수익과 연금을 받아 봐야 세금과 보험료를 내고 나면 손가락 빨아야 할 판이다. 국민들이 장기 투자와 사적 연금에 매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밸류업 도입과 금투세 폐지는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 정부 여당은 약속을 지키려면 세수 부족을 해결하고, 부자 감세를 걸고 넘어지는 야당도 설득해야 한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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