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연금개혁, 급하지만 신중하게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 3대 개혁 공약 중 연금 개혁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국민연금 개혁은 더 이상 미뤄서도 안 되지만, 백년대계를 생각할 때 성급하게 졸속으로 밀어붙여서도 곤란하다. 연금은 일회성이 아니라 단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손봐야 할 개혁 대상이기도 하다. 딜레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산하 연금개혁공론화위원회가 최근 도출한 개혁안은 시민 약 500명이 숙고한 결과라는 점에서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재정 안정'이란 측면에서 100% 수용하기엔 미흡하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여야 합의를 통한 21대 국회 입법이 최선이다. 하지만 여야 입장 차가 큰 만큼 폭넓은 의견 수렴과 촘촘한 개혁안을 위해선 22대 국회로 넘기는 경우까지 상정한 논의가 필요하다.

연금개혁공론화위는 지난 22일 시민대표단 492명이 응답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6명가량이 보험료를 '더 내고 그대로 받는 것'보다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안을 선호했다고 밝혔다. 연금 고갈을 고려한 '재정안정론'보다 노후 '소득보장론'을 택한 셈이다. 현행 국민연금은 보험료율(내는 돈) 9%, 소득대체율(평균 소득 대비 받을 연금액) 42.5%(2028년까지 40%로 조정 예정)다. 공론화위는 보험료율을 기존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올리는 것을 1안으로 제시했다. 2안은 보험료율을 9%에서 12%로 올리되, 소득대체율은 40%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보건복지부가 예측한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2055년, 1안으로 하면 2062년으로 7년 늦춰지고 2안은 2063년으로 8년 미뤄진다. 1안과 2안의 연금 고갈 시점 차는 1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득대체율 차이로 인한 미래 연금 적자 폭은 상당하다. 1안대로 하면 2093년까지 누적 적자는 기존 대비 702조원 증가하지만, 2안대로 할 경우 누적 적자는 1천970조원 더 감소한다. 시민 대표단은 당초 2안을 선호하다 4차례의 숙의 토론을 거친 뒤 2안(42.6%)보다 1안(56.0%)을 더 많이 선택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대부분 1안을 선호했지만, 30대만 유일하게 2안을 더 많이 택했다. 특이한 것은 보험료를 더 많이 내고 적자도 더 많이 쌓일 것으로 예상되는 20대 이하가 1안을 선호했다는 점이다. 미래 세대가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또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80%가 현재 만 59세인 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64세로 높이는 방안을 택했다. 이와 별도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2월 '내가 낸 돈을 내가 돌려받는 기대수익비 1'을 보장하는 완전 적립식 연금제(안)를 내놓았다.

국민연금 개혁은 ▷소득 보장 ▷재정 안정 ▷정년 연장과 연동한 의무가입 상한 연령 ▷공무원연금 등 다른 연금과의 형평성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여야는 정쟁을 떠나 고령화사회 적정 수준의 노후 소득 보장, 미래 세대의 재정 안정 등을 적절하게 고려한 묘안을 내놓아야 한다. 기업의 부담과 노동자의 노후 소득을 두루 살펴야 한다. 국민연금이 현 세대와 미래 세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사회적 연대와 통합의 정신을 대변한다는 점을 통찰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회는 KDI가 제시한 '신·구세대 연금 분리안'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개혁안을 두루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98년 9% 올린 이후 그대로다. 26년 만에 손을 보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을 새길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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