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K팝과 멀티 레이블 시스템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가수 출신이 아닌 경영자로서 연예(K팝) 기획사에 미국식 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도입한 방시혁 하이브(HYBE) 이사회 의장. K팝 최고 히트 브랜드 방탄소년단(BTS)을 탄생시켰다. 스타 크리에이터 민희진 어도어(ADOR) 대표. 엑소(EXO)와 소녀시대를 키웠고, 걸그룹 뉴진스를 세계적 반열에 올렸다. 하이브는 국내외 11개 레이블(자회사)을 가진 현 연예기획사 중 최대 회사. 어도어는 이 11개 레이블 중 하나. 한 지붕 아래 모회사와 자회사를 이끄는 이들이 소송전을 벌이며 대립하는 본질적 이유는 무엇일까.

하이브는 지난달 26일 어도어 지분 18%를 보유한 민 대표가 풋옵션(지분을 팔 권리)을 이용해 경영권 탈취를 시도했다며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뒤 해임 절차를 밟고 있다. 민 대표가 어도어 지분 80%를 보유한 대주주(하이브)를 배제한 채 뉴진스를 데리고 모회사로부터 독립해 나갈 계획을 꾸몄다는 주장이다. 민 대표는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빌리프랩)이 내놓은 걸그룹 아일릿이 자신이 만든 뉴진스를 카피하는 바람에 내부 고발을 한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사태에서 멀티 레이블 시스템의 지배(지분)구조와 성과주의 등 2가지 갈등 요소가 엿보인다. 민 대표가 받은 어도어 지분 18% 중 13%는 올해 말부터 하이브에 팔 수 있고, 그 금액은 1천억원대로 추정된다. 나머지 5%는 하이브의 동의하에 매각할 수 있고, 퇴사 뒤 5년 동안 어도어에서 일해야 하는 경업(경쟁 업종 근무) 금지 의무를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팝 업계에선 지난해 인센티브 20억원, 연봉, 지분 등을 감안할 때 민 대표에 대한 대우를 동종 업계 역대급으로 보고 있다. 하이브와 민 대표 간 갈등이 기존 계약의 변경을 두고 빚어졌다는 시각이 있다.

양측의 공방 과정에서 성과주의에 따른 과잉 경쟁 부작용도 노출됐다. 비슷한 장르와 콘셉트를 통한 비슷한 방식의 홍보에다 음반 밀어내기와 포토카드 사고팔기 등 팬덤의 과잉 소비가 맞물리면서 특정 레이블 밀어주기나 카피 논란이 불거졌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각 레이블이 독자 경영을 하되 창의적이고 건전한 경쟁을 통해 K팝의 전체 수준을 높이는 방향의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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