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상대의 건축인문기행] 홀로코스트 건축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유대인 학살의 상처를 격정적 언어로 말하는 철학적 건축
유대인 학살의 상처를 격정적 언어로 말하는 철학적 건축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20세기의 가장 큰 비극을 제2차 세계 대전 중 히틀러 나치 군의 600만 유대인 학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신전 제례에서 동물(holos)을 태워(kaustos) 신에게 제물로 바친다는 '홀로코스트(Holocaust)'라는 용어가 이로 인하여 유대인 대량학살의 표현이 되었다.

전쟁의 범죄를 저지른 일본과 비교해 볼 때 독일은 잘못된 역사에 대한 반성 사죄와 함께 유대인 학살 메모리얼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해 이스라엘,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곳곳에 유대인 기념관, 박물관이 세워지고 있다.

베를린의 상징 부란덴부르그 문 광장에는 2,700개 콘크리트 관 조형이 누워있는 '유럽유대인학살기념시설'(설계, 피터 아이젠만)이 있으며, 이곳 '베를린유대인박물관'(설계, 다니엘 리베스킨트)은 철학적 건축언어로 말하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대표하는 건축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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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스케치.이스라엘의 상징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스케치.이스라엘의 상징 '다윗의 별'이 해체되어 날카롭고 불규칙의 선들의 배치, 홀로코스트의 절망 공포 죽음을 표현한다.

◆해체된 '다윗의 별'

밀폐된 감옥을 연상케 하는 티타늄 아연 합금 금속의 외형, 찢긴 상처처럼 날카로운 선들이 그어진 입면의 박물관은 유대민족의 상처와 고통을 말하고 있다. 18C (1735년)의 옛 바로크 건축과 21C (2001년)의 해체주의 새 건축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공존하는 유럽에서 가장 큰 유대인 박물관이다.

티타늄, 아연, 합금 금속의 외형, 찢긴 상처처럼 날카로운 선들이 그어진 벽면. 유대민족의 상처와 고통을 말하는 건축이다,
티타늄, 아연, 합금 금속의 외형, 찢긴 상처처럼 날카로운 선들이 그어진 벽면. 유대민족의 상처와 고통을 말하는 건축이다,

배치 평면 콘셉트는 고대 이스라엘 다윗왕의 국가권력 상징 '다윗의 별(Star of David)'이 해체된 선이다. 전광석화 번개처럼 날카로운 불규칙 선(線)들은 2차 대전 당시 베를린에 살았다가 사라진 유명 유대인들의 거주지 방향의 매트릭스이다. 프로젝트 'Between the Lines' 공개 당시에는 독창적 실험성이 너무나 강렬해 건축이 실제 지어지는 것을 염려했을 정도였다. 건축이 완성되고서 '건물 자체가 곧 전시물로서 역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축적 서사극' 이라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

18C 바로크 건축(본관)과 21C 해체주의 건축(신관)이 서로 다른 건축표정으로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18C 바로크 건축(본관)과 21C 해체주의 건축(신관)이 서로 다른 건축표정으로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운명의 길- 죽음, 탈출, 지속,

정면을 향해 나란히 서있는 옆 건물(과거 프로이센 법원)로 입장하면 밝은 아트리움 '유리정원'이다. 그러나 곧바로 지하계단으로 내려가 지하에서 부터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동선은 유대인 운명을 상징하는 3개의 축(Axis)으로서 죽음의 길, 탈출의 길, 지속의 길로 나누어진다.

죽음의 길은 '홀로코스트의 탑'으로, 탈출의 길은 외부 공간 '탈출의 정원'으로, 지속의 길은 지상의 전시실로 오르는 일직선 계단으로 이어진다. 마치 시공간을 거슬러가서 거기서부터 조금씩, 지그재그 모양의 전시실을 따라 천천히 지상으로 올라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홀로코스트 수용소 죽음의 공포와 절망을 기억케 하는 콘크리트 공간
홀로코스트 수용소 죽음의 공포와 절망을 기억케 하는 콘크리트 공간 '홀로코스트의 탑'

◆죽음, 홀로코스트의 탑

'죽음의 길'의 막다른 끝, 무거운 철문을 열다. 좁고도 높은(27m) 난방이 없는 춥고 습한 텅 빈 콘크리트 방, 어둠속 예리한 모서리 높은 틈새의 빛,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방문객들은 폐쇄공포에서 서둘러 빠져 나오지만 유대인들은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공간이었으리라. 전쟁과 수용소를 경험할 리 없는 현대인들에게 아우슈비츠의 절망을 경험케 한다. 박물관 옆 마당에 서 있었던 침묵의 콘크리트는 절망·공포·학살·죽음을 말하는 '홀로코스트의 탑'이었다.

지하
지하 '망명'의 길에 이어진 동편 뒷마당 '망명의 정원'. 49개 콘크리트 기둥이 수직 수평 12도 각도로 비스듬히 서있다.

◆탈출의 정원(Garden of Exile)

'탈출의 길' 벽면에는 세계 도시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파리, 런던, 취리히, 상하이, 뉴욕,,, 유대인들이 생존을 위해 탈출(엑스더스)하는 도시들이었다. 길은 지상 외부 '탈출의 정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학살의 암흑에서 벗어나 밝은 나라로 탈출하지만 관람객들은 다시 지하로 돌아와야 한다.

박물관 옆 마당 정원에는 규칙적으로 배열된 49개 콘크리트 기둥들이 정사각형의 바로크 정원을 이루고 있다. 비석같은 기둥들은 12도 기울기로 비스듬히 서 있다. 그 착시의 공간 안 방향감각 상실을 '디아스포라의 절망', '역사에서의 조난'이라 말한다.

낯선 땅, 절망의 디아스포라, 기울어져 불안한
낯선 땅, 절망의 디아스포라, 기울어져 불안한 '망명의 정원' 속에서 희망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기울어진 기둥 위 나무들 사이로 희망의 하늘을 올려다보는 잊혀진 희망을 일깨우는 정원이다. 추방당한 낯선 땅에서의 디아스포라, 비로소 12도 기울어진 불안한 세상에서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그들의 나라 이스라엘을 건국(1947년)했으나 지금도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유대인의 고통을 기억하는 공간. 1만 개 고통의 얼굴 쇳조각이 부딪히고 짓밟혀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유대인의 고통을 기억하는 공간. 1만 개 고통의 얼굴 쇳조각이 부딪히고 짓밟혀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유대인의 고통을 기억하는 공간. 1만 개 고통의 얼굴 쇳조각이 부딪히고 짓밟혀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유대인의 고통을 기억하는 공간. 1만 개 고통의 얼굴 쇳조각이 부딪히고 짓밟혀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공백의 기억(Memory of Void)

바닥에 쌓인 1만 개의 얼굴 형상 철제 조각들을 밟고 지나가는 길이다. 고통으로 일그러져 각기 다른 표정의 철제 조각은 이스라엘 조각가의 설치 작품 '낙엽(Fallen Leaves)'이다. 생명이 없는 겨울 낙엽처럼 쇳조각을 밟고 지나가면 바스락 소리가 절규의 울부짖음이 되어서 불안 공포 절망의 소리에 휩싸이게 한다.

그 소리가 죄스러워 방문객들은 조심히 사뿐히 걷게 된다. '밟아주세요'라는 작은 글씨가 안내판에 적혀있다. 짓밟혀서 크게 울리는 절규가 곧 그들의 고통을 확실히 기억하는 방법인 것이다.

지하에서 지상 전시실로 이어지는
지하에서 지상 전시실로 이어지는 '연속'의 길.사선의 기둥은 상처,고통, 분노의 부서지고 해체된 '다윗의 별'의 파편이다.

◆지속의 길

공백의 기억을 지나 지상1,2,3층의 전시실로 오르는 일직선 계단의 길은 용서·화해·평화로 향하는 미래의 길이다. 지하공간의 죽음과 탈출은 대체로 검은색이고, 지상으로 향하는 지속은 흰색 디자인이다. 상부에는 불규칙 구조물들이 얽혀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박물관은 2개의 선(線)과 6개의 Void(공간)이 내재한다. 구 건물과 평행하는 직선의 축 안의 6개, 아무것 없는 빈 Void는 유대민족의 부재와 소멸을 상징한다. 좁은 미로, 틈새의 빛, 사선으로 찢어진 유리창, 흐트러진 구조, 직선 조명의 불안정은 비극적 상황을 암시하는 건축적 요소들로서 미니멀리즘 건축미학을 보여준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스케치.지하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스케치.지하 '탈출의 길' 벽에 새겨진 세계 도시 이름들은 유대인들이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곳이었다.

◆이름의 벽

전시실에는 예술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 전시가 많다.'이름의 벽'은 기록된 250만 유럽 유태인 희생자의 이름이 20초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지고가 반복된다. 중국 '난징대학살기념관'의 12초 간격 물방울 소리는 12초에 한 명이 일본군에 희생된 자를 의미한다.

유대민족으로 세계를 움직인 저명인사들의 얼굴이 전시되어 있다.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자본론의 '칼 마르크스', 정신분석학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철학자 '스피노자' 등이다.

나치정권의 바우하우스 정치적 탄압과 폐쇄로 미국으로 망명했던 근대 건축가들이 있었다. 바우하우스 설립자 '월터 그로피우스'는 하버드대학교 학장이 되었고 바우하우스 마지막 교장 '미스 반 데 로에' 는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학장이 되었다. 최근 아카데미 수상영화 '브루탈리스트'의 실재 인물로 조명된 '마르셀 브로이어'는 바우하우스 1기생이었다.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

폴란드 태생의 미국계 유대인 건축가인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친인척 100여명이 학살된 희생자 가족이다. 따라서 유대인의 고통과 분노, 영혼의 슬픔을 설계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건축가였다. 무명이었던 그가 처음으로 당선한 현상설계였고 처음으로 완성된 건축이었다.

뉴욕에서 베를린으로 설계회사를 옮겨 10년 동안 작품 완성에 집중했다. 기공식에서 그는 말한다. '우리는 과거를 기념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박물관은 2001년 9월 9일 개관했으나 이틀 뒤 발생한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로 10년 동안 폐쇄되었다. 또한 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현상설계(그라운드 제로)에도 당선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음악가 가정에서 자란 그는 음악을 포기하고 건축을 선택한 '낙천적인 건축가(저서)'이다.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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