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고 화사한 그림이다. 풀이 보드라운 소박한 뜰에서 새끼 고양이가 호랑나비와 눈을 맞춘다. 듬성듬성 돌이 놓였고 패랭이꽃이 폈으며 수그린 꽃대의 제비꽃도 보인다. 세필로 자세히 묘사하면서도 돌은 문인화풍으로 대충 그렸고 바닥과 배경엔 여백이 여유롭다. 색채는 담채풍이다. 공필(工筆) 화풍을 느슨하게 활용하고 사의(寫意) 화풍을 살짝 절충해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결합했다. 당시의 감상안을 십분 고려한 김홍도다운 실력이다.
일상의 풍경인 듯하지만 '황묘농접'은 뜻 그림인 길상화다. 옛 그림에서 고양이와 나비가 함께 나오면 '모질도(耄耋圖)'로 읽는다. 고양이 묘(猫)자와 나비 접(蝶)자가 70~80의 나이를 뜻하는 늙은이 모(耄)자, 늙은이 질(耋)자와 중국어 발음이 비슷해 장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른 소재들도 마찬가지다. 패랭이꽃은 한자로 석죽화(石竹花)인데 석(石)은 곧 장수의 수(壽)이고, 죽(竹)은 축하의 축(祝)자와 발음이 비슷해 패랭이꽃은 축수화(祝壽花)가 된다. 돌은 당연히 석수만년(石壽萬年)의 장수를 상징하고, 제비꽃은 생긴 모양이 여의(如意)와 닮아 만사여의의 뜻이다. 고양이가 황색인 것도 누를 황(黃)자가 기쁠 환(歡)자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림 감상을 보기가 아니라 읽기인 독화(讀畵)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미지를 문자로 바꿔 읽어야하는 그림도 많다.
'황묘농접'은 어느 분의 생일을 축하하며(요새 말로 '생축') "칠순, 팔순까지 장수하시며 석수만년을 누리시길 기원 드립니다. 만사여의하시고, 기쁨이 가득하소서"라는 덕담을 그림으로 그린 축수도(祝壽圖)다. 지금은 대부분 현금봉투지만 예전엔 경조사에 동참하는 마음을 물품으로 전하는 일이 많았고 그림은 그 중에서도 격조 높은 선물이었다.
제화는 "관(官) 현감(縣監) 자호(自號) 단원(檀園) 일호(一號) 취화사(醉畵士)", 인장은 '홍도'와 자를 새긴 '사능'이다. 지금 현감인지, 현감을 지냈다는 뜻인지 알 수 없지만 1791년 47세 이후의 필치다. 김홍도의 충청도 연풍현감 제수는 이해 있었던 정조의 어진 도사(圖寫)에 참여한 공에 대한 포상이었다.
정조의 복식은 왕, 왕세자가 국가 의례 때 입는 예복인 원유관(遠遊冠)에 강사포(絳紗袍) 차림인 원유관복이었다. 어진 도사에 선발된 화원은 왕의 얼굴인 용안을 그리는 주관화사, 용체(龍體) 등을 담당하는 동참화사, 이들의 작업을 돕는 수종화사 등 세 부류다. 주관화사는 이명기였고 김홍도는 동참화사였다. 수종화사는 김득신, 변광복, 신한평, 이종현, 한종일, 허감 등이다. 모두 쟁쟁한 정조시대 화원화가다. 이 어진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쉽다.
'황묘농접'은 축수의 뜻을 담은 길상화이자 정다운 우리 꽃, 사랑스런 고양이와 훨훨 나는 나비가 있는 영모화훼화인 일거양득의 그림이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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