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대 정부, 공공기관 이전과 무산의 역사[TK, 공공기관 2차이전 대비를]〈상〉

노무현 정부, 혁신도시 신호탄 쐈지만…성장 정체 등 한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무관심·정치적 부담 속 표류
尹 정부 '골든타임' 놓쳐…연구 용역도 연기

대구 신서혁신도시 전경. 매일신문 DB
대구 신서혁신도시 전경. 매일신문 DB

새 정부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대통령실 세종 이전 등 '제2 균형발전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면서 '공공기관 2차 이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1차 이전' 이후 역대 정부가 결행하지 못한 '2차 이전'을 이재명 정부가 밀어붙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구시와 경북도 등 대구경북(TK)에서도 새 정부의 공공기관 2차 이전 공식화에 대비해 옥석 가리기를 통한 지역 맞춤형 기관 유치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정된 공공기관을 TK에 유치하기 위해선 타 지역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만큼 효과적인 유치 전략을 미리 구상해 정부 동향에 맞춘 총력적이 필요한 여건이다.

매일신문은 역대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추진의 역사, 새 정부의 부처·기관 이전 동향, 대구시와 경북도 등 TK의 전략을 시리즈로 살펴본다.

▶시리즈 순서

〈상〉역대 정부, 공공기관 이전과 무산의 역사

〈중〉새 정부 공공기관 2차 이전 전면화 나서나

〈하〉TK, 공공기관 2차 이전 대비 전략은?

경북 김천혁신도시 전경. 매일신문 DB
경북 김천혁신도시 전경. 매일신문 DB

◆노무현 정부, 혁신도시 신호탄 쐈지만…성장 정체 등 한계도

노무현 정부에서 중점 추진된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당시 수도권 인구 집중을 완화하고 자립형 지방화를 이끌기 위한 핵심 과제로 추진됐다. 자율과 분권의 지방화시대를 강조하며 제1순위로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지역별로 공공기관을 적극적으로 지방 이전할 것을 제시했다.

참여정부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실행력과 지속성 확보를 위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한 뒤 국가균형발전위원회(균발위) 등 실무 조직을 통해 과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

다양한 의견 수렴과 관계 기관 협조를 거친 정부는 2005년 6월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을 확정했다. 이것이 이른바 '1차 공공기관' 이전이다.

당시 균발위는 345개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심의한 뒤 175개 기관을 지방이전 대상으로 선정했고, 이전지역은 수도권과 대전을 제외한 12개 광역 시·도로 했다.

이전대상 공공기관의 기능별 분류, 지역별 낙후도, 유치 선호도, 발전 전망 등을 종합해 시·도별 분산 배치하기로 한 뒤 입지는 혁신도시 내로 한정했다.

이로써 전국에는 ▷신도시형(광주·전남, 강원, 충북, 전북, 경북) ▷신시가지형(대구, 울산, 경남, 제주) ▷재개발형(부산) 등 총 10곳의 혁신도시가 각각 10개 내외 공공기관을 품으며 조성됐다.

2019년 조성이 마무리된 혁신도시에는 현재 총 150개 공공기관이 이전돼 일자리 창출 등으로 지역별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구에는 한국가스공사, 신용보증기금 등 12개, 경북에는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기술 등 13개 기관이 이전해 지역산업육성, 지역인재채용, 주민지원·지역공헌, 유관기관 협력, 재화서비스 지역우선구매 등으로 지역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다만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들이 기대만큼 효과를 내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일시적 인구 증가에는 기여했으나 낮은 가족동반 이주율, 교육·문화·의료 등 질적 정주여건을 갖추지 못해 지역발전의 거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기존 지방도시와 융합하지 못하고 차별화도 이루지 못한 채 '강남의 짝퉁', '복제품'이나 다름없는 신도시·신시가지 중심의 혁신도시 개발, 공공기관 이전으로 '정착하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를 만드는데 실패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8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무위원과 국회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도권 소재 122개 공공기관 이전을 약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8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무위원과 국회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도권 소재 122개 공공기관 이전을 약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무관심·정치적 부담 속 표류

참여정부가 힘차게 쏘아 올린 공공기관 이전의 신호탄은 이후 정부에서는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하며 표류했다. 수도권·공공기관의 반발, 지역 간 갈등 우려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정부여당의 정치적 의지 부족과 맞물려 빚어진 결과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진 보수 정부 10년의 집권기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논의가 사실상 중단된 시기다.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1차 이전 공공기관 외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을 단계적으로 이전'하도록 했음에도 더 이상의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배경이다.

이명박 정부는 균형발전보다 수도권 경쟁력 강화 및 이를 통한 경제 성장에 주력했다. 이 시기 정부는 공공기관의 경영효율화, 구조조정 민영화 등에 초점을 맞추며 지방 이전의 정책 동력이 약화되는 시기였다. 추가 이전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이 사실상 없었고, 당시 중앙부처에서는 효율성과 비용 대비 지역효과가 크지 않다는 취지로 2차 이전을 '검토 대상' 정도로만 언급했다.

이어진 박근혜 정부 역시 공공기관 추가 이전을 적극 추진하거나 공약화하지 않았으며 1차 이전 결과를 바탕으로 한 이전의 실익과 기준 등에 대한 점검이 강조됐을 따름이었다.

공공기관 2차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2017년 들어선 문재인 정부 역시 성과라 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정권 실세이던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18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수도권 공공기관 중 122개 기관을 옮기겠다"고 약속하는가 하면 21대 총선을 앞두고선 "총선 직후 공공기관 이전 시즌2를 조속히 확정하겠다"고 공언했으나 공염불에 그쳤다.

우선 국토연구원의 관련 연구용역에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후 코로나19 대응을 비롯해 정부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사실상 뒷전으로 밀렸다. 그 기저에는 이전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반발, 유치 경쟁 과열로 인한 부작용 등 정치적 우려 역시 자리잡고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정권 임기를 반년 가량 앞둔 2021년 말에는 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임기 내 추진이 어려워 보인다"는 발언을 하며 사실상 추가 이전에 대한 논의가 중단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나온 성과는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켜 신규 공공기관 설립 시 비수도권 입지를 우선 고려하도록 한 정도다.

◆尹 정부 '골든타임' 놓쳐…연구 용역도 연기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갈등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 이전은 국정지지율이 높은 정권 초반에 밀어붙여야 하는데, 적기를 흘려보냈다는 것이다. 정권 초반엔 지방시대를 앞세우며 강력한 추진 의지를 드러냈지만 총선 이후로 미뤄졌고 결국 기본계획조차 세우지 못했다.

윤 정부 인수위원회 산하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는 지난 2022년 4월 공공기관 이전을 15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해 의욕적인 추진을 예고했다. 비수도권은 일제히 반색했으나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할 지방시대위원회가 가동된 이후에도 로드맵은 나오지 않았다.

구체적인 가닥이 잡히지 않는 동안 지방자치단체의 기대감만 한껏 부풀려졌다. 정부도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며 군불을 지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2023년 업무계획에 상반기 중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하며 추진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같은 해 4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복환 전 국토부 혁신도시발전추진단 부단장도 "이전 대상 관련 기관이 500개가 넘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판을 키웠다.

의욕적이었던 정부는 총선이 가까워지자 속도 조절에 나섰다. 2023년 7월 국토부와 지방시대위는 '지역 간 갈등'을 이유로 22대 총선 이후로 사업 추진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11월 발표한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에도 2차 공공기관 이전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국토부는 '혁신도시 성과 평가 및 정책방향 연구' 용역을 2023년 11월부터 1년간 진행하기로 했다. 1차 공공기관 이전의 성과를 평가해 2차 이전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해당 연구 용역 기간은 올해 10월 말까지로 연장됐다. 추진 시기가 총선 이후로 미뤄진 데 이어 한 차례 더 연기된 것이다. 이전 기본계획 수립에 필요한 연구 용역 기간이 늘어나면서 이전 논의 자체가 표류하게 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보니 연구 용역 기간이 연장됐다"고 밝혔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기회를 놓쳤다. 공공기관 이전은 저항이나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정권 초반에 추진력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재명 정부도 초반 국정지지도가 높을 때 밀어붙여야 성공할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추진 시점을 연기하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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