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마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 한 권의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 2002년'이다. 이 책은 서구 선진국들이 어떤 전략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는가를 역사적 시각에서 설명한다. 당시 그는 주류 경제학인 소위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문제점을 꼬집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의 핵심 논리는 바로 책 제목과 같이 한발 앞서 발전한 국가들이 뒤쫓는 국가들을 따돌리기 위해 자신들이 사용한 사다리를 걷어차는 전략을 폈다는 것이다. 즉, 선진국들은 경제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던 보호무역과 같은 정책 및 제도를 가로막고, 개발도상국들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그들에게 유리한 자유무역 등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과의 격차를 공고히 하는 신자유주의를 버리고 자국에 알맞은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 계획에 의한 산업 정책을 지지하면서 국가 발전을 위한 사유 재산 침해를 인정하는 등 사회주의적인 성격의 정부 시장 개입을 옹호하고 있다.
이렇듯 좌파적 입장은 사다리 걷어차기의 부도덕성과 불공정을 강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좌파 고위층에게서 그들의 주장과 비판이 앞뒤가 맞지 않는 자기모순(自己矛盾)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중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슈 중 하나가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와 관련된다. 특목고 제도는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쉽게 해결하기 까다로운 문제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과 다양성의 대립, 교육 자원과 기회의 공정성 등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다만, 현재 특목고는 일반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고 대학입시에서도 월등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서울특별시교육감을 지낸 조희연은 임기 내내 특목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폐지를 주장했지만 막상 그의 자녀들은 모두 특목고 출신으로 사다리 걷어차기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온 국민의 공분을 샀던 조국 전 장관은 자녀의 입시 비리 사건에 대해 불공정한 '아빠 찬스'로 자식에게 인턴 특혜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말 한마디로 넘어갔다.
최근 10·15 부동산 대책을 주도한 대통령실과 정부 고위 인사들이 수도권 일대에 수십억원대 아파트를 보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민심이 들끓고 있다. 자신들은 규제 대상 지역에 대출이나 전세를 끼고 집을 구매하고는 정작 집을 사려는 서민들의 대출을 막는 꼴이 된 것이다.
돈을 모아 집값이 안정되면 구매하라고 말했던 이상경 국토교통부 차관은, 어이없게도 배우자를 통해 일명 '갭 투자' 수법을 써서 수억원의 시세 차익을 본 사실이 드러나 결국 물러났다. 이 외에도 정부가 추진하겠다는 정책과는 반대로 부동산에 투기하여 막대한 금액을 거머쥔 고위 정치인과 관료들의 사례는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사다리 걷어차기의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고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면 그 부당함을 내세우는 이들이 남보다 솔선수범하여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과 관료는 사회 구성원들을 인도하여 국가의 앞날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회 지도층이다. 그렇기에 보통의 국민보다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후진국에 대한 선진국의 파렴치한 행동이었다면,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는 사다리 걷어차기는 국민 분열을 조장하고 상처받은 민심을 더욱 덧내는 일이다. 지도층의 말과 행동이 다르고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어 국민 정서와 괴리가 깊어진다면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특별한 대우와 혜택을 박탈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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