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과 바다가 맞닿은 찬란한 칼루타라
스리랑카를 여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도를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켜가 쌓인 영혼의 울림을 듣는 과정이었다. 중부의 녹색 홍차 밭과 고대 도시의 유적을 지나 도달한 여정의 종착지는 서남부의 해안 도시 칼루타라(Kalutara)였다.
인구 5만 명의 이 아담한 도시는 스리랑카의 4대 강 중 하나인 칼루(Kalu)강이 장엄한 여정을 마치고 인도양의 품에 안기는 경계에 서 있다. 콜롬보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이곳은 과거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 지배를 거치며 서구의 색채와 불교적 전통이 묘하게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물이 바다로 스며들 듯, 칼루타라는 이방인의 긴장감을 부드럽게 녹여내는 마법 같은 도시였다.
칼루타라의 지형은 신비롭다. 칼루 강과 인도양 사이에는 칼리도 해변(Calido Beach)이라 불리는 좁고 긴 모래톱이 존재한다. 한쪽으로는 잔잔한 강물이 흐르고, 다른 한쪽으로는 거친 인도양의 파도가 몰아치는 이 이색적인 풍경은 칼루타라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칼루 강가가 바다와 만나는 곳, 강물과 파도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섞이는 이 도시에서 스리랑카 여행도 조용히 끝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부드러운 금빛 모래가 펼쳐진 해변에는 야자수들이 고개를 숙여 여행자에게 그늘을 내어준다. 해 질 녘,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여행자의 심장을 두드린다. 강변을 따라 들어선 리조트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편안함을 제공하고, 여행자는 그곳에서 한 달간의 피로를 씻어내며 인도양의 바람에 몸을 맡긴다.
◆ 하늘을 향해 열린 순백의 성소와 삶의 활기가 넘치는 어시장
칼루타라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랜드마크는 단연 칼루타라 보디야(Kalutara Bodhiya) 사원의 하얀 다고바(Dagoba, 불탑)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하얀 색의 웅장한 다고바는 이 도시의 정신적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원은 단순히 크고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속이 비어 있는 부처탑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탑 내부로 발을 들이면 거대한 외부 돔 안에 또 하나의 작은 다고바가 모셔져 있는 경이로운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벽면을 가득 채운 부처의 생애 자타카(Jataka) 이야기 벽화들은 정교한 필치로 불교의 지혜를 전한다. 사원 마당에 자리한 거대한 보리수 아래서 기도를 올리는 현지인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여행자는 비로소 이 땅이 왜 '성스러운 섬'이라 불리는지 깨달았다. 이곳은 스리랑카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삶의 안식처였다.
칼루타라의 진짜 얼굴을 보고 싶다면, 이른 아침 어시장을 찾아야 한다. 갓 잡아 올린 생선들이 쉴 새 없이 경매되고, 크고 작은 어선들이 부두에 줄지어 들어온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생선 위로 햇살이 내려앉고, 상인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시장을 가득 채운다. 이곳은 여행지가 아닌,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흥정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상인들, 낯선 여행자에게도 먼저 말을 건네는 순박한 얼굴들. 언어는 달라도 마음은 쉽게 통한다는 것을 이 시장에서 배웠다.
발길을 남쪽으로 돌리면 불교 사원과는 또다른 고요한 성소, 성십자가 교회(Holy Cross Church)가 나타난다. 1835년에 세워진 이 유서 깊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실제 예수의 성십자가 유물을 소장하고 있어 종교적 무게감이 남다르다. 매년 9월이면 이곳은 연례 축제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교회 부지의 동굴에서 열리는 루르드의 성모 축제는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경건한 울림을 준다. 불교 사원과 가톨릭 교회가 한 도시에서 각자의 평화를 노래하는 모습, 스리랑카 사회의 관용과 다층적인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진정한 얼굴이다.
◆ 사람이 풍경이 되는 스리랑카의 뜨거운 정에 울다
스리랑카는 카메라에 담긴 화려한 풍경보다 마음을 더 뜨겁게 달구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누군가는 스리랑카를 가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길 위에서 우연히 인연이 닿은 현지인 가족은 이방인인 여행자를 흔쾌히 집으로 초대해 주었다. 낯선 이를 경계하기는커녕, 그들은 마치 오래전 헤어진 가족을 맞이하듯 대문의 빗장을 풀었다. 그들이 내어준 '라이스 앤 커리'에는 세상 어느 산해진미보다 깊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손으로 밥을 먹는 법을 가르쳐주며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 서툰 영어와 몸짓으로 나누던 대화는 그 어떤 가이드북에서도 배울 수 없는 삶의 철학이었다.
더욱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마을 사람들이 여행자를 위해 열어준 작은 잔치였다. 마을의 원로들부터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모여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이방인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그들의 맑은 눈망울 속에 비친 여행자는 그 마을의 일원이었다.
여행 중 방문했던 인근 시골 초등학교에서의 시간은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작은 기부금을 전달했을 때, 학교는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 되었다. 전교생과 교사들이 나와 화관을 씌워주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쓴 감사 카드를 건넬 때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작은 나눔이었음에도, 그들은 여행자에게 뜨거운 환영식과 더불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선물해 주었다.
칼루타라에서 만난 대한민국에서 온 이두화 교민은 스리랑카 여인과 결혼하여 30년을 살며 자칭 스리랑카 정글추장이 되어 여행자를 반기며 한국음식 김치찌개를 맛보였다. 우리나라에 딸 카빈디(Kavindi)를 유학 보낸 부모님은 하룻밤을 묶어가게 붙들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나눔은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넉넉해서 하는 것임을 배웠다. 그들은 가난할지언정 마음만큼은 인도양보다 넓었고, 그들의 친절은 계산되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였다. "여행은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 했던가.
공항으로 향하는 길, 배낭 속에는 그들이 건넨 홍차 잎보다 더 묵직한 사랑이 담겨 있다. 사람이 풍경보다 아름다워 사람이 곧 풍경이 되는 나라 스리랑카. 이제 떠나지만, 여행자의 마음은 스리랑카의 그 따뜻한 집 마당과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득한 교실에 남겨두고 간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것은 사파이어 빛 바다나 고대 유적이 아니다. 길을 잃었을 때 수줍게 다가와 손을 내밀던 청년, 뜨거운 홍차 한 잔을 건네며 환하게 웃어주던 노인, 그리고 외국인 여행자에게 거리낌 없이 "헬로!"라고 외치던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이다.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기회이며. 여행의 최종목적지는 결국 사람이다. 스리랑카를 사랑한다는 말은, 결국 그곳의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말과 같았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굳이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여행자의 발걸음은 이미 이 보석 같은 섬으로 다시 향할 채비를 하고 있다.
아이유보완(Ayubowan)! 다시 만날 날까지 평안하기를….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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