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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의 장소의 사색] 청라언덕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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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과 대구제일교회(뒤쪽 건물)
청라언덕과 대구제일교회(뒤쪽 건물)

현재 청라​(菁蘿, 靑羅)가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은 인천과 대구 두 군데다. 라(蘿)는 댕댕이넝쿨, 청(菁)은 우거지다는 뜻이다. 인천 청라도는 멀리서 볼 때 댕댕이넝쿨처럼 보여 '청라(菁蘿)'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 이름을 따서 새로 조성되는 경제자유지역을 청라국제도시라고 부르게 되었다. 청라지구 홍보자료에서 '인천의 푸른 보석'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강조하면서 '菁蘿' 대신 풀초변(艹)이 빠진 '靑羅' 표기를 쓰고 있다. 대구는 <동무생각>이라는 노래 속에 등장하는 '청라언덕'을 특정 장소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지상철역이나 국민체육센터 같은 곳의 이름에도 그 말이 사용되고 있다. 대구시 중구의 제일교회와 동산병원 옛 선교사 주택지 인근 장소가 바로 그 곳이다. <동무생각>의 작곡가 박태준이 계성학교를 다니며 그 언덕을 자주 올랐고 그 노래가 그 당시 연모하던 한 여학생을 그리며 작곡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장소를 '청라언덕'으로 명명했다. 현재는 대구의 유명 관광명소가 되어 있다.

청라언덕 기념비
청라언덕 기념비

지명이나 공공장소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청라​(菁蘿)'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마산(창원시 마산합포구)이 그곳이다. <동무생각>의 작사가는 이은상인데 그의 고향이 마산이다. 그리고 이은상과 작곡가 박태준은 사촌 처남매부지간이다. 이은상의 사촌여동생이 박태준의 아내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곳이 마산창신학교다. 대구서는 박태준이 계성학교를 나왔으므로 그가 사모했던 여학생이 아마도 신명학교 여학생이었을 공산이 크고 노랫말에 나오는 '청라언덕'도 그 두 학교 사이에 있는 장소가 아니겠느냐는 추리를 하고 있고, 마산에서는 본디 노래는 가사가 먼저 지어지고 곡이 나중에 붙여지는 게 일반적인데 이은상이 쓴 시를 보고(지인의 결혼식에 헌정된 축시였다) 박태준이 곡을 붙였으니 '청라언덕'은 마산에 있는 장소라고 단정한다. 평소 이은상이 마산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노래를 짓던 장소가 노비산(鷺飛山, 해오라기 나는 산)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노산(鷺山)이라는 이은상의 호도 거기서 나왔다. 지금의 노비산엔 문창교회, 노산동 마을, 노비산 산책길, 가고파 거리, 마산문학관 등이 있다.

노비산 기슭의 마산문학관과 문창교회
노비산 기슭의 마산문학관과 문창교회

나는 대구와 마산 두 곳에 다 인연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대구에서 살다가 중학교에 들 무렵 마산으로 이사를 갔다. 우연찮게 살던 곳도 두 도시 다 '청라언덕' 아래였다. 내 소설 『레드빈 케이크』에 두 곳 모두가 다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 아버지가 동산병원 의사로 근무해서 선교사 사택 지역으로 자주 놀러 다녔다. 그 아래에 병원 사택인 친구집이 있었다. 서문시장 네거리에서 동산병원 옆 골목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지금은 차도로 되어 있다)을 따라 올라가면 한 번씩 소제부(掃除夫) 아저씨가 우리를 쫒아내기도 했었다. 병원에서 나오는 각종 폐기물들을 태우던 곳이 그 어름에 있어서 아이들 접근을 막았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마산서 살았다. 고등학교 때 나 혼자 다시 대구로 올라왔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공식적으로 내 주소지는 마산이었다. <동무생각>의 작사가 이은상을 말하려면 마산문창교회를 빼놓을 수 없다. 마산문창교회는 대구제일교회처럼 역사가 100년이 넘는 교회다. 이 두 교회는 유구한 역사 이외에도 공히 양 지역의 '청라언덕' 근처에 장소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구제일교회는 원래 약전골목에 있다가 '청라언덕'으로 이전 신축을 하였고 마산문창교회는 원래부터 노비산 '청라언덕' 기슭에 터를 잡은 교회다. 확장 이전한 지금의 교회터 역시 노비산 마산문학관 아래다. 이 문창교회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한 학교가 마산창신학교이고(설립기관은 호주선교회다) 이 학교 졸업생인 이은상이 동료 교사인 대구 출신 박태준에게 가사를 제공해 <동무생각>이 지어졌다. 이은상이 작사한 노래들에서 묘사하는 바다 풍경은 모두 노비산 위에서 내려다본 합포만 모습이다. <동무생각>(2절에 바다이야기가 나온다)을 위시하여 <옛동산에 올라>(이은상 작시, 홍난파 작곡), <가고파>(이은상 작시, 김동진 작곡) 등 널리 알려진 이은상의 노래들은 다 이 노비산에서 바라본 합포만과 관련이 있다.

마산문학관 노산시비
마산문학관 노산시비

한때 <동무생각>에 나오는 가사 중 '백합 같은 내 동무야~'라는 대목을 보고 작곡가가 연모했던 사람이 경북여고생이었을 것이라는 말이 떠돈 적이 있다. 경북여고의 교화가 백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무생각>이 지어진 것은 1922년이고 경북여고가 개교한 것은 1926년이라는 것이 확인되면서 그런 유언비어는 쑥 들어가고 말았다. 대구 청라언덕에 세워진 <동무생각> 노래비에는 그 연모의 대상이 대구신명여고 여학생이었다고 적혀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마산에 있던 여학교들도 백합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마산성지여고의 교화가 백합이고(학교축제 이름은 백합제다), 마산여고의 교화는 나리꽃인데 <동무생각>에도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앞서 나온 백합을 흰나리꽃으로 바꿔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두 쌍첨탑. 계산성당에서 바라본 제일교회
대구를 대표하는 두 쌍첨탑. 계산성당에서 바라본 제일교회

'청라언덕' 이야기를 쓰다 보니 대구시 중구청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근대역사 거리' 프로젝트가 의욕에 비해 역사적 고증이 다소 미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지하철 역이름으로 청라언덕역이 사용되는 것을 두고 마산청년회의소 측에서 크게 항의했다는 소식도 들은 바가 있다. 그러나 마산에서 그렇게 자기주장만 펼칠 계제도 아닌 것 같다. 약간의 견강부회가 있기는 하지만 청라언덕을 아름답게 의미화하고 가치를 부여한 것은 어쨌든 대구 시민들이었다. 마산은 '내 고향 남쪽 바다~'가 나오는 <가고파> 하나만 해도 배가 부르다. 서로 좋은 것을 사이좋게 나누어가지는 것도 후손들에게 좋은 본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역사는 역사대로 제대로 알고, 기릴 건 기리고 반성할 건 반성해야 하는 것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일례로 대구가 배출한 저항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빼앗긴 들'은 과연 어디로 비정될 수 있는가도 그렇다. 대구시 수성못에 가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새긴 이상화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과연 그곳에 그런 바윗돌 시비가 세워져야 할 역사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과거 수성못 아래가 넓은 들이긴 했으나 그곳이 이상화가 노래한 '빼앗긴 들'의 장소적 배경이 될 공산은 상당히 낮다. 특히 이상화의 동생 이상백 전 서울대 교수가 1962년 3월 11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을 통해 형 이상화가 묘사한 '빼앗긴 들'이 '앞산 밑 보리밭'이라고 적시한 자료가 발견된 상황이라 굳이 시비를 세울 거면 최근 캠프 워커가 반환한 장소에 신축된 대구 대표도서관 마당으로 옮겨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는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 일대 풍경이 장관이었다. 늦봄이면 온통 누런 황금빛 보리밭 물결이 바닷물처럼 출렁거렸다. 한 번씩 그 사이로 날개를 반짝이며 날아오르는 비행기도 볼 수 있었다. 모르긴 해도 시인 이상화도 그 자리에서 그 황금빛 보리밭을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 속에서 '빼앗긴 들'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대자연의 섭리를 보면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비탄의 심정이 절로 터져 나오지 않았을까?

소설가·대구교육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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