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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초대석-김형준] '선택 없는 선거'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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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선거는 언제 결정되는가. 우리는 흔히 선거운동 기간의 메시지, 토론, 조직력, 바람을 떠올린다. 그러나 현실의 선거는 훨씬 이전에 이미 승패의 윤곽이 드러난다. 공천이다. 선거는 공천에서 사실상 절반이 끝난다. 유권자는 공약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정책은 비교의 대상이지만, 선택의 기준은 결국 인물이다. 투표용지 앞에서 유권자가 던지는 질문은 단 하나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따라서 후보는 곧 메시지다. 어떤 인물을 내세우느냐에 따라 정당의 가치와 방향, 그리고 진정성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문제는 이 기본 원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을 외치면서 기득권 인사를 공천하고, 세대교체를 말하면서 기존 정치인을 반복 공천하는 순간, 정당의 메시지는 스스로 붕괴된다. 공천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공천은 곧 유권자에 대한 기만이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신뢰의 붕괴다. 그렇다면 합리적 공천 기준은 무엇일까.

첫째는 경쟁력이다. 인지도, 호감도, 확장성, 그리고 상대 후보와의 비교 우위가 객관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둘째는 대표성이다. 후보는 유권자의 얼굴을 닮아야 한다. 특정 지역, 특정 세대, 특정 계층의 감정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면 공감의 문을 열 수 없다. 셋째는 공정성이다. 공천 과정이 공정하다고 인정받지 못하면 탈락자의 반발, 지지층의 이탈, 조직의 붕괴로 이어진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한다. 그러나 그 꽃이 피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공천이다. 후보를 어떻게 선발하느냐에 따라 선거의 경쟁력은 완전히 달라진다.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를 "선택 없는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선거는 존재하지만 유권자가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사라진 상태다. 이 개념은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난다. 바로 공천 실패다. 지역 유권자가 납득할 수 없는 공천이 이루어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투표는 있지만 선택은 없다. 경쟁은 있지만 대안은 없다. 이는 민주주의의 외형만 유지된 채 내용이 텅 비어버린 상태, 즉 '껍데기 민주주의'다. 이러한 공천 왜곡은 단순한 선거 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구조적 문제다.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선택한 후보를 강요받는 구조가 반복되면 시민은 정치에서 이탈한다. 무관심과 냉소, 그리고 분노가 축적된다. 이는 대표성의 위기이며 동시에 정치 체제에 대한 신뢰 붕괴다. 한국 지방선거에서 반복되는 장면은 익숙하다. 지역을 가장 잘 이해하고 주민과 호흡해 온 인물은 배제되고, 중앙당의 판단이나 계파 논리에 따라 낙하산 후보가 내려온다. 경쟁력 있는 후보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되고 사실상 단수 후보가 확정된다. 이 과정에서 유권자의 의사는 철저히 배제된다. 유권자는 선택하는 주체가 아니라 통보받는 객체로 전락한다.

최근 대구시장 공천 논란은 이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론조사 1위 후보와 현직 국회부의장을 컷오프한 결정은 공천의 기준이 무엇인지, 과연 유권자의 선택이 존중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진다. 공천이 경쟁이 아니라 통제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왜곡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도 이 위험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의 미래를 결정해야 할 선거가 중앙 정치의 연장선으로 전락하고, 정책 경쟁은 사라진 채 진영 논리와 감정 동원만 남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선거는 변화의 기회가 아니라 권력 재확인의 의식으로 전락한다.

해법은 분명하다. 첫째, 공천의 문을 시민에게 돌려야 한다. 상향식 시민 공천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둘째, 경쟁을 보장해야 한다. 대구 시장의 경우, 민주당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대구시장 출마가 사실상 현실화된 만큼 국민의힘의 8→4→2→1로 이어지는 강도 높은 단계별 전면 경선은 최강의 후보를 선발하고, 컷오프 후보의 무소속 출마를 막을 수 있다. 셋째, 공천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기준 없는 공천은 필연적으로 불신을 낳는다. 공천은 정치의 출발점이자 민주주의의 입구다. 이 입구가 왜곡되면 그 이후의 모든 과정은 무의미해진다. 공천이 무너지면 선거가 무너지고, 선거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지금 한국 정치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거가 아니다. 유권자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진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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