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명작 고전소설을 뒤틀어 지금 현실을 바라보는 팩션(사실을 뜻하는 '팩트'와 허구를 의미하는 '픽션'의 합성어) 콘텐츠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원작 설명
서얼(양반의 자식이지만 정실 소생이 아닌 첩이 낳은 자식)로 태어난 홍길동은 능력은 뛰어나지만 신분제 탓에 호부호형(呼父呼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른다)이 허락되지 않는 차별 속에서 성장한다. 결국 집을 떠난 그는 활빈당을 조직해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는 의적으로 활동한다. 이후 조정의 추적을 피해 바다 건너 율도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된다. 조선 사회 신분 질서의 모순과 정의에 대한 갈망을 담은 한글 소설이다. 조선 중기 문제적 문신 허균(1569-1618)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아침의 강의실은 비가 막 그친 뒤라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에게서 집중하는 기색은 찾기 힘들었다. 교수는 무심하게 칠판 앞으로 걸어가 분필로 세 글자를 적었다. 홍길동.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의 중심이다.
교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 이름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실존 인물처럼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했다.
소설 곳곳 개인의 이야기로 보기 어려운 부분들도 지적했다. 활빈당의 활동 방식이 특히 그렇다. 홍길동은 특정 지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국 각지에서 등장하며, 그것도 시간차를 두고 이동하는 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활동하는 것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는 표현으로 묘사된다. 관아를 습격해 재물을 빼앗아 백성에게 나눠준 다음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 '신출귀몰'이다.
교수는 분필을 내려놓고 학생들을 바라봤다.
"이걸 한 사람이 할 수 있을까?"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윤재가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활동 범위도 그렇고, 등장 방식도 그렇습니다.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나타난다는 설정은 손오공처럼 분신술을 쓰는 게 아니라면, 개인이 아니라 조직을 전제로 해야 설명됩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홍길동이 사람이 아니라면 뭐지?"
교수의 질문에 윤재는 머뭇거렸다.
"네가 말한 조직의 이름일 수 있다.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집단이 공유하는 이름."
이어 교수는 칠판 앞으로 가 홍길동의 출신이기도 한 조선 후기 서얼 계층의 구조를 설명했다.
서얼은 단순한 하층민이 아니었다.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문자를 익힐 수 있었고, 가문 내부 사정에도 밝았다. 그러나 관직 진출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제도 밖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즉, 체제를 이해하지만 그 중심에 들어갈 수 없는 위치에 놓인 처지였다.
이러한 계층이 만일 조직화될 경우, 단순한 범죄 집단이 아니라 체제 내부에서 형성된 병렬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활빈당은 그런 형태의 네트워크로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지역 단위로 분산된 집단들이 느슨하게 연결돼 있지만 일체된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움직이며 무엇보다도 동일한 이름을 쓴다. 이때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홍길동'이 움직였다고 가정하면, 작품 속에서 설명되지 않던 대부분의 모순과 오류가 해소된다.
윤재가 물었다.
"그럼 율도국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상향이라기보다 탈출 서사에 가깝지. 구체적 장소가 아니다."
"왜 그렇게 보시죠?"
"현실에서 실패한 집단은 이야기 속에서 다른 공간을 얻는다. 율도국은 실제 국가가 아니라, 기록에서 사라진 집단이 이념·사상적으로 머무르는 일종의 서사적 좌표일 가능성이 커."
실제 역사에서도 반란 같은 집단적 저항은 성공하지 못할 경우 기록에서 삭제되거나 축소된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진 않고 다른 형태로 변형돼 살아남는다. 설화나 영웅담 같은 형태로 구전되고 또한 몰래 소설로 집필될 수 있다.
▶다음 날, 출석부 한켠엔 못보던 작은 표시들이 남아 있었다. 교수가 끄적인 건 아니었다.
홍길동(2)
홍길동(3)
홍길동(4)
…
어제 수업을 들은 어느 학생의 '꿀밤' 한 대 맞을 장난은 아닐까 '피식' 웃음을 짓던 순간, 교수의 머릿속 질문은 '홍길동은 누구인가'에서 '홍길동은 왜 작동하는가'로 급히 수정됐다.
소설이 쓰여지고 수백년이 지난 지금 세상에서도 같은 이름을 쓰는 다수의 익명이 동일한 목표를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 그게 사건을 일으키고 현상을 만드는 게 '뉴스'이니, 각종 문서에 견본 이름으로 두루 쓰이는 처지 역시 실은 작품이 멀리 미래를 내다 본 쓰임은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곁들이다가, 수업을 시작했다.
※'②흥부전-구조를 이해한 자'에서 계속.
▶함께 보면 좋을 작품=로빈 후드: 도둑들의 왕자/조커/브이 포 벤데타
◇영화 '로빈 후드: 도둑들의 왕자'(1991, 케빈 레이놀즈 감독, 케빈 코스트너·모건 프리먼 출연)=부당한 권력에 맞서 약자를 돕는 의적 이야기다. 12~13세기쯤부터 전해지는 영국의 전설적 의적 영웅, 쉽게 말해 서양판 홍길동의 이야기인 셈이다. 로빈 후드의 대중적 이미지를 확립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2005, 제임스 맥티그 감독, 나탈리 포트만·휴고 위빙 출연)=가면을 쓴 저항자가 권력에 맞서는 모습을 그린다. 아나키스트를 표방하는 주인공 '브이'가 개인을 넘어 상징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홍길동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영화 '조커'(2019, 토드 필립스 감독, 호아킨 피닉스 출연)=사회에서 배제된 개인이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름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약자의 분노가 홍길동의 출발점과 닮았다.
▶연결고리 시사 이슈=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개표소 앞에는 선거 절차 공정성·참정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일상을 살던 개인들이 재선거 요구와 선거관리 제도 개혁이라는 공통된 메시지 아래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홍길동전을 떠올릴 만하다. 홍길동은 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작품 속 여러 곳에 동시에 나타나고 또한 반복해 출몰한다. 그래서 홍길동은 단일 인물이라기보다 같은 뜻과 행동 양식을 공유한 여러 존재의 이름처럼 읽힌다.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도 현장에 모인 사람들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같은 의사를 밝히고 자료와 주장을 공유한 이들까지, 마치 홍길동들이 각지에서 동시에 나타났듯이 물리적 현장과 디지털 공간을 오가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구호만 외치는 게 아니라 투표지와 투표함, 개표소 출입구 같은 물리적 대상을 쟁점의 중심에 놓고 있다. 추상적 불신 표출이 아니라,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무엇을 반출해선 안 되는가' 등의 구체적 행동지침을 공유 및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홍길동전 내용을 현실 사례에 그대로 겹칠 수는 없다. 가령 홍길동전 속 활빈당은 빈틈 없는 단일대오의 집단으로 그려진다. 반면 올림픽공원 개표소 앞엔 정치적 구호, 봉쇄에 따른 피해, 위법성 논란이 일부 섞여 있다. 참가자들의 문제의식은 분명 귀하지만, 일부 위법 소지를 보인 행위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사례는 홍길동전의 현대판 재현이라기보다는 홍길동전이 던진 질문을 오늘의 장면으로 가져오는 사례에 가깝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 하나의 이름처럼 움직이게 되는가? 그 집단적 행동은 어느 지점에서 정당한 문제 제기와 질서 교란 사이의 경계에 서게 되는가?
홍길동은 의적과 도적 사이에서 대의를 강조하고 행동을 관리해 율도국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는 아직 평가가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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