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경상도 방언 사용자들의 말끝 하나하나를 검열하고, '일베 말투'로 낙인 찍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물 두 살 아이돌의 "무섭노" 한마디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유족들의 명예를 지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음모론,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모략 이제 중단해 주십시오" - 〈2002년 4월 6일, 새천년민주당 인천지역 국민경선 대회 연설 중〉
"앞뒤 다 자르고, 앞의 얘기 뒤의 얘기 다 빼버리고, 뚝 잘라서 그것도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단어만 딱 골라가지고 제목을 뽑아내서 사람을 바보로 만듭니다 (…) 이것은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폭력입니다" - 〈2007년 6월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 강연 중〉
반면 노 전 대통령은 생전 말꼬리 잡기·짜집기 등에서 비롯되는 정치권의 악의적 프레임 양산을 경계하는 발언을 수차례 남겼다. 자신과 측근을 향한 이 같은 공세를 자제해 줄 것을 공개적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시민들 사이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참칭(僭稱) 하지 말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군다나 해당 표현이 일베 말투가 아니라는 학계 판단과 여론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그럼에도 처음 문제를 제기하고, 또 키운 이에게서 사과는 찾아볼 수 없다. 책임감 없는 '아니면 말고'식 저격에 애꿎은 피해자들만 냉가슴을 앓는 모양새다.
◆"혐오 표현"·"조롱·폄훼" 근거 없는 경상도 방언 '흠집내기'
이번 '일베몰이'의 발단은 김현지 MBC경남 PD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말투 지적이었다.
김 PD는 지난 1일 자신의 SNS에 "여성 아이돌과 PD가 사이좋게 '노노'를 주고받고 있어 무척 속상했다"며 "혐오 표현에 뿌리를 둔 표현임을 알았을 때의 선택은 태도의 영역"이라고 적은 바 있다.
김 PD가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에서 지난달 28일 공개된 영상 내용을 지적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리센느의 리더 원이는 멤버 미나미의 집을 둘러보던 중 옷장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나자 PD와 "무섭노"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이것이 '-노'를 활용하는 일반적인 사투리 용법에서 벗어나,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할 목적이 포함된 '일베 말투'라는 게 김 PD의 지적 취지다.
하지만 원이가 20년 가까이 거제시에서 자란 '지역 토박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무섭노' 등이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동남권 사투리 표현이라는 반론이 힘을 받으면서 김 PD는 대중적 비난에 직면했다.
이에 김 PD는 "어제 태어나 사투리 모르냐는 말 들은 중년의 경상도 네이티브 심정… 여러분이 그 혐오 표현을 내고장 사투리로 알고 계신 게 절 슬프게 한다"며 "그냥 경상도 말에서 노를 다 들어내뿌(버리)자. 그게 우리가 이 사회에 빚을 갚는 길이라면"이라는 글을 또 게시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식지 않자 김 PD는 지난 3일 "SNS는 토론에 적합한 수단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모두의 마음속에 분노보다는 고민을 남겼으면 좋겠다. 어떤 '-노'를 구분하느냐보다 그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면 사용에 잠깐의 머뭇거림이라도 들 수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김 PD는 SNS 계정을 폐쇄했다.
조국 전 대표는 지난 5일 뒤늦게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SNS에 '부산 사람 구별법' 이미지를 공유하며 "나의 관찰로는 일베는 말 뒤에 기계적으로 '노'를 붙여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김 PD의 문제의식에 동의한다는 취지였다.
마찬가지로 거센 반발을 마주한 조 전 대표는 다음날 재차 글을 남겼다. 그는 "많은 10·20대들이 일베가 아님에도 의문문에 '노'를 붙여 사용하고 있는 바,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10·20대를 훈계하는 꼰대짓이라는 비겁한 주장이 있나 보다"라며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문문에 '노'를 붙여 사용하는 것은 경상도 말 용법에 맞나 맞지 않나가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폄훼하는 잘못된 행위임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청년들도 의문문에 '노'를 붙여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혐오 표현임을 알고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훈계했다.
◆여론·학계 "'무섭노', 일베 말투 아냐" 한목소리
이들의 주장은 일반 여론은 물론, 진보진영 주류에서도 별다른 공감을 얻지 못한 채 사장(死藏)됐다. '-노' 표현이 일부 의문문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학계 의견에 더해, 큰 문제가 없다는 경상도 화자들의 반응이 누적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 8일 본지 단독 보도에 따르면, 국립국어원의 지역어 조사 결과 중 의문사가 없는 문장에서 '-노'가 사용된 용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국립국어원이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는 지난 2006년 국립국어원 조사에서 경남 창녕의 72세의 화자가 표준어로 '한 오십 년 넘었나'라는 표현을 경상도 방언으로 '한 오십 년 넘었노'로 표현한 내용이 포함됐다.
국립국어원이 해당 표현을 용례로 갖고 있다는 것은 '-노' 표현이 의문사가 없는 문장에서도 실제 경상도 방언으로 쓰여 왔음을 시사한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시 원이의 발언을 혐오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냈다.
신 교수는 8일 YTN 라디오 'YTN 해! 봅시다'에 출연해 "'무섭노'는 의문문이 아니고 감탄문 같은 것이다. 경상도 말에서는 '-오'형이 감탄형으로 쓰인다"면서 "서울말로 비교하자면 '-네(무섭네)'로 쓸 때 경상도에서는 '-오'라는 감탄문을 쓴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영상은 이미 지워졌더라. 그럴 이유가 없는데 그 영상이 지워진 것도 가슴 아프다"며 "왜 하지도 않은 혐오 표현을 했다고 얘기를 하면서, 공격 대상이 약자인 어리고 연약한 원이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사용이 문제 없다는 인식은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개혁신당 개혁연구원이 지난 6~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5.8%가 '무섭노'라는 표현을 지역 사투리로 인식한다고 답했다.
'일베식 표현을 볼 수 있다'는 응답은 16.7%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7.5%를 차지했다.
'말투나 표현을 이유로 특정 정치 성향으로 단정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는 68.1%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적절하다'는 답변은 13.2%에 불과했고, '잘 모르겠다'는 18.7%로 집계됐다.
(ARS(자동응답) 무선 RDD 방식으로 실시, 응답률 0.53%,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행정안전부 2026년 6월 주민등록 인구 기준 성·연령·지역별 림가중 적용)
◆역풍 일자 그대로 '입꾹닫'…"盧 이용 말라" 일침도
김 PD와 조 전 대표는 11일 오전까지도 자신의 의견을 정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일베식 표현은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조수진 변호사(노무현재단 이사)가 이틀 뒤 발언을 취소하고 고개를 숙인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조 변호사는 "온라인 대화 속 생략이 많은 젊은 세대의 언어에 대해 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제 발언으로 원이님이 상처를 받았을까 걱정되고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줄곧 침묵을 지키는 김 PD에 대한 시청자 비판도 여전히 거세다. 김 PD가 지적 과정에서 노 대통령을 언급한 것에 대한 핀잔도 적잖다.
시청자 조모 씨는 MBC경남 '시청자와 함께' 게시판에 '평생을 약자에 편에서 살아가셨던 고인이 만약 보셨다면 퍽이나…' 제하의 글을 작성하고 "과연 잘했다고 하셨을까? 아님 참담해 하셨을까"라고 반문했다.
조씨는 "공영방송사 PD라는, 소기업 기획사 연예인 입장에서는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제 막 피어나려는, 꿈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걸어왔던 어리고 젊은 청년들의 인생을 나락으로 보내려 했다"며 "방송국 PD이니까 본인의 일베 관련 언행이 연예인들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깨어있는 척, 약자의 편인 척, 진보인 척, 노 전 대통령을 위하는 척 했지만 과연 고인께서 평생을 거쳐 싸워오신 결과가 이거냐"고 따지며 "쉬고 있는 고인을 모독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른 시청자 이모 씨 역시 "노 전 대통령이 이런 것을 원했을까 싶다"며 "저들이 노 전 대통령을 이용하려는 느낌이 강하다"고 댓글을 남겼다.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유족 측 입장도 이 같은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조롱 여부는 표현 자체보다 사용된 맥락이 중요하다"며 "리센느의 경우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조롱이 아닌 것을 조롱으로 몰아가는 정치가 고인과 유가족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대방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고 타도하려는 문화 속에서는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 삿대질하기 전에 사실이 무엇인지, 본질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 〈故노무현 전 대통령. 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연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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