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아니 이젠 튀르키에라고 불러야 하나. 그곳에서의 기억은 이스탄불공항에 도착하던 순간부터 내겐 참 다채롭고 따듯했다. 비행기에서 약지에 낀 푸른 보석 반지를 잃었다가 찾은 일, 그때 벌인 호들갑과 그 민망함으로 탁심광장 마켓에서 체리 한 상자를 사 일행들과 일주일 내내 나눠 먹은 일, 당시 우리나라에선 비싼 과일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체리가 그렇게나 싸서 또 놀랐던 일, 아아,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이었던 건 차나칼레해협을 건너면서 항공모함만큼 큰 배의 선장에게서 내가 느닷없는 프로포즈(?)를 받은 일이다.
수많은 버스와 자동차를 싣고 트로이에서 차나칼레를 건너던 여름 바다 위 선상에서, 만난 지 한 시간도 채 안되어 갑판장과 선원들이 죽 늘어선 선실에서 흰 제복을 입은 선장에게서 청혼을 받았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코믹하면서도 아찔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당시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꽃을 건네는 선장의 모습에 일행들은 우려 섞인 탄식을 내뱉었고, 그때 찍힌 사진까지 버젓이 있으니 한여름 백일몽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파묵칼레, 지구의 신비 또는 환상 같은
안탈리아 해안도로를 벗어나 파묵칼레(Pamukkale)로 가는 길은 황량했다. 내륙으로 향하는 길은 무더위에 아른거렸고, 가는 길에 들른 튀르키에 전통맛집에서 먹은 토기 항아리케밥은 육개장만큼 뜨거웠다. 디저트로 나온 촉촉한 바클라바 역시 튀르키에 여느 식당처럼 달디달았다.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수많은 케익이나 과자를 먹었지만 튀르키에 디저트만큼 극강의 단맛이었던 것은 별로 없었고 그 나라를 떠나오면 그저 까마득히 잊고 말뿐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곳의 거리나 카페에서 먹은 터키쉬 딜라이트나 로쿰은 요즘도 가끔 해외배송으로 주문해 먹기도 한다.
파묵칼레는 분지 데니즐리주 북쪽의 작은 온천마을이다. 파묵(pamuk)은 목화, 칼레(kale)는 성(城)이라는 뜻이니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진이 많은 일대의 정단층 고지대에서 탄산칼슘이 과포화된 온천수가 솟아나와 공기에 접촉되면 이산화탄소가 휘발되고, 남은 석회 성분이 지표면에 목화송이처럼 오래 퇴적되면서 형성된 산의 경사면이다. 멀리서 볼 때부터 그 석회폭포가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다워 처음 보는 모든 이들이 탄성을 지르게 하는 곳이다.
하얀 석회질의 얕고 넓은 웅덩이는 마치 켜켜이 쌓인 다랑이 논(계단식 논) 같고, 옅은 마린 블루빛 물이 담긴 곳마다 수영복을 입은 유럽인들이 꺄아, 소릴 지르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걷다 나오면 뿌연 석회가 발에 묻어 나온다. 수억 년 축적된 동물의 뼈가 또 석회질로 변한 것이라는데 우주의 생성만큼이나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는 것도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현재는 족욕만 허용되는 그 푸른 웅덩이에서 십여 분남짓 물이끼 미끈거리는 석회붕에 앉아 발을 찰방거리며 당시엔 허용되었던 알록달록한 비키니를 입은 유럽인들도 재미있게 바라보고, 지구의 신비도 체험하다가 파묵칼레 언덕 위 '성스러운 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로 올라갔다. 파묵칼레가 피부염 치료로 정평이 난 온천인지라 목욕을 지극히 좋아했던 로마인들이 개발한, 헤라클레스와 아르카디아의 공주 아우게의 아들 텔레포스의 연인이었던 여전사 히에라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설이 있는 고대도시다.
◆히에라폴리스, 황제와 신들의 세속 정원
입구에 있는 박물관은 무너진 고대도시의 유물들을 모아 두었고 작은 미니어쳐를 진열해 둔 아트샵은 붐볐다.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왕국을 거쳐 로마, 비잔틴 제국, 14세기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지배한 셀주크 왕조 때까지 사랑받으며 융성했던 이 고대도시는 1354년 대지진으로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테르메 온천욕장은 그때 지진에 휩쓸린 신전 기둥과 건물의 파편이 그대로 가라앉은 채였다. 치유의 물로 널리 알려져 클레오파트라도 이곳에 온천욕을 하러 왔다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는데 자칫하면 바닥의 파편들에 부딪혀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히에라폴리스는 14세기 대지진 이후 세간에 잊혀졌다가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견해 발굴과 복원을 거쳐 파묵칼레와 함께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함께 발굴된 주변 네크로 폴리스는 질병을 치유하려 온천을 찾았지만 안타깝게 죽음을 맞은 이들의 공동묘지다. 입구에 허물어져 형체만 간신히 남은 도미티니아누스 황제의 문과 함께 비감스럽기 짝이 없다. 네로처럼 로마의 폭군으로 여겨져 끝내 시해당한 도미티아누스는 12사도 중 5사도인 필립보를 이곳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했고, 북서쪽 언덕 꼭대기 그가 순교한 자리에 무덤과 기념 성당이 있다.
히에라폴리스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복원에만 30여 년이 걸렸다는 원형극장이다. 유럽 곳곳에 로마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 건 흔한 일인데 이곳 히에라폴리스 원형극장은 대리석 기둥으로 세운 파사드와 관람석을 일일이 전문가들이 세밀한 붓질로 복원한 것이라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제국을 순찰하면서 곳곳에 흔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2세기 무렵 건립했다. 흡음과 반향음까지 측정해 지은 극장의 수용 관람 인원이 2만 명이라니 고대 히에라폴리스는 도대체 얼마나 흥성한 도시였는지 이 폐허에서도 설핏 가늠된다.
요즘은 이곳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거나 열기구를 타고 내려다 볼 수도 있고, 발품을 팔며 무더위에 걸어 다녔던 그 유적들의 잔해가 널린 폐허를 카트를 타고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느린 고대의 시간에 비해 21세기의 시간은 얼마나 빠른 것인가. 다시 한 번 그곳엘 간다면 고대의 황녀나 신들처럼 히에라폴리스를 오롯이 향수할 수 있을 듯하다. 그때는 놓친 아프로티테에게 헌정된 인근도시 아이든의 아프로디시아스(Afrodisias Antik Kenti)와 석회동굴 카클륵도 함께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역시 지진으로 폐허가 된 중심광장 아고라에 흩어진 기둥 잔해들을 떠올린다. 지금은 봄날 아침, 누군가 보내 온 기형도의 시 한 편에 그 기억이 더욱 아릿해진다.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熱風)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 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 /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 / 봄날이 가면 그뿐/ 숙취는 몇 장 지전(紙錢)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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