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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 칼럼] 칠곡 옻칠 너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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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 미국 카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조한규 미국 카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조한규 미국 카롤라인대학교 철학과 교수

옻칠은 자연이 준 귀한 도료다. 물건에 바르면 검붉은 빛으로 윤을 낸다. 현묘한 아름다움이다. 방수·방충·방부와 내구성마저 있으니 고급 공예품의 마감 옻칠로 사용된다. 옻칠은 자개로 장식하는 그릇뿐만 아니라, 갓이나 소반·쟁반 등 목기와 장죽(長竹)·죽기(竹器)·지기(紙器) 기타 일용 도구에 널리 이용된다. 다만 옻칠 작업의 공정이 까다롭다. 그래서 한때 합성 도료에 밀렸다.

그러다가 지난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전 세계적인 열풍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한국 방문이 늘어 전통 문화상품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나전칠기 수요와 함께 옻칠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가령, 국립중앙박물관 굿즈샵의 '나전칠기 보석함'과 국립고궁박물관 뮤지엄샵의 '나전칠기 벽시계', '나전칠기 마그넷' 등이 인기 상품으로 꾸준히 팔리고 있다.

나전(螺鈿)은 옻칠한 나무에 전복이나 조개껍질을 세밀하게 상감(象嵌)하는 기법. 핵심 재료는 옻칠과 자개다.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우리문화 박물지'에서 나전칠기를 "어둠에 빛을 새기는 예술"이라 예찬했다. 검은 옻의 바탕을 어둠으로 보고 자개를 그 위에 새겨진 바다의 빛으로 본 것이다. 과거 옻칠 공예품들이 주로 국가와 왕실의 중대사에 사용됐던 것도 같은 이유다. 외국인들이 감탄하며 나전칠기 상품을 구매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자개함
자개함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옻칠 사용의 흔적은 기원전 6~5세기에 제작된 요령식 동검(비파형 동검) 칼집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시대 무덤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된다. 역대 왕조는 전담 부서를 설치해 옻나무 재배지와 '옻칠 장인(漆匠:칠장)'의 활동을 관리했다. 통일신라의 공장부(工匠府)와 칠전(漆典), 고려의 공조(工曹)·공조서(供造署)·중상서(中尙署)·군기감(軍器監), 조선의 경공장(京工匠)·외공장(外工匠) 등이 있었다.

조선의 기본 법제서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기록에는 옻나무가 가장 먼저 나온다. 칠전 대장의 작성, 칠장·나전장이 배치되는 관부와 그 인원수까지를 더 상세히 규정했다. 옻칠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이다.

"여러 읍의 옻나무(漆木)·뽕나무(桑木)·과일나무의 수와 닥나무밭(楮田:저전)·왕골밭(莞田:완전)·화살대(箭竹:전죽)가 생산되는 곳은 대장을 작성한다. 옻나무·뽕나무·과일나무는 3년마다 대장을 다시 작성한다" <경국대전 권6, 공전(工典), 재식(裁植)>

옻나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자생한다. 우리나라에선 평안북도 태천, 강원도 원주, 경상남도 함양, 함경남도 신흥 등이 주요 산지다. 요즈음은 강원도 원주가 대표적인 옻 산지다. 이익종 생옻칠 장인은 "중국산 옻칠보다 원주 옻칠이 깊이 있는 빛을 낸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원래 최상품 옻칠은 칠곡 옻칠이었다. 칠곡(漆谷)이라는 지명이 말해준다. 옻나무가 많아 '옻골'이라는 순우리말을 한자어로 고친 지명이다. 칠곡에 있는 옻골, 옻밭재, 옻밭마을 등의 지명이 이를 웅변한다. 그중에서도 동명면 송산3리 '옻밭마을'이 중심지. 마을 주변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밭(漆田칠전)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도 옻나무가 다른 지역보다 많이 있다.

2012년 칠곡군은 '1만 주 옻나무 단지'를 조성해 전통 옻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다. 400여 년 전 형성된 '옻밭마을'을 옻칠 전통 마을로 육성하려고 했던 것.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옻나무를 꾸준히 관리할 사람들이 없었고, 옻나무에서 직접 칼집을 내서 채취한 진액 칠인 '생칠'을 생산할 수 있는 생칠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옻칠은 최근 항균성·방수성·VOC제거·습도조절 등에 탁월한 기능성이 확인돼 산업용 도료·코팅제로 개발·판매되고 있다. 게다가 나전칠기 기법이 자동차 내장재, 건강 생활용품 등으로 응용되며 'K-럭셔리'의 가능성마저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 무형문화재 1호 칠장인 손대현 장인이 까르띠에 시계 보관용 나전칠기함을 제작했고, BMW 7시리즈에선 실내에 옻칠과 나전으로 고급화를 시도한 적도 있다.

칠곡 '옻밭마을'의 품질 좋은 '생칠'이 생산됐다면 'K-럭셔리'에 크게 기여했을 터. 지금이라도 '생칠'을 낼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옻밭마을'이 최근에는 '동락외양간갤러리'와 함께 마을 곳곳의 도자기 솟대, 담벼락 위의 예술 작품 등으로 인해 '인문학 마을'로 변모돼 주민 삶이 풍요로워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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