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엔 '마르시안스토리'라는 사진집 전문 출판사가 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소규모 1인 출판사다. 그동안 100종에 이르는 책을 냈다.
일반인에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업계에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름난 곳이다. '대구에도 이런 곳이 있다고 알리고픈 출판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수준급 결과물을 추구해온 덕분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는 서민규 사진가다. 그는 계명대 미술대학 공업디자인학과 출신이다. 대학 입학 전부터 사진에 푹 빠져있던 그는 졸업 후 프리랜서 사진가의 길을 걸었다. 패션·무용·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상업사진을 찍었다.
그 시기 또래 사진가들에겐 자신의 사진집을 갖는 게 꿈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사진집이 열정을 지닌 사진가들에게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2005년 출판사를 열었다. 학창시절 책을 좋아했고, 도전과 실험을 추구했던 그의 기질도 한몫했다.
그는 20년 가까이 대구와 제주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사진 작업은 제주에서 하고 출판 일은 대구에서 하는 식이다. 6, 7년 전부터는 제주도 서남쪽,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주변의 일상적 풍경을 흑백필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난 23일 사계리 용머리 해안에서 서민규 대표를 만나 마르시안스토리와 함께한 지난 20년의 이야기를 나눴다.
-창작을 하는 사진가가 직접 출판업에 뛰어든 배경이 궁금하다.
▶시작은 단순했다. 제가 작업한 사진을 책으로 한번 엮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사진집 전문 출판사를 만들어 서점에 제대로 유통해보라는 후배 사진가의 권유도 있었다. 주변에 다양한 작업을 하는 사진가들이 많았던 터라 함께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작업을 할 때 기존 인화지를 활용하지 않고 수작업으로 다양한 실험을 했듯,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사진집을 제작하면 재미있는 출판물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설렘도 있었다.
-마르시안스토리는 '아트북을 제작하는 출판사'로 거론된다. 아트북이 뭔가.
▶'아트북'이란 용어는 상당히 모호하다. 최소한 제겐 그렇다. 국내에서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10여년 전쯤이 아닐까 한다. 그 무렵 국내에 북페어 행사가 하나 둘 생겼고, 주최 측이 앞 다퉈 '아트북'이란 카테고리를 집어넣으면서 대중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 같다.
전 제가 만든 책이 아트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트북을 만든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트북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료조사도, 고민도 해보지 않았다. 다만 저는 기존의 책과는 다른, 작가를 위한 책을 만들고 싶었다.
-작가를 위한 책이란 어떤 건가. 그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사진집을 만들기 위해선 작가에 대한 해석, 기획, 디자인, 인쇄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최종적으로 책이라는 형태를 갖추기 위한 가공 공정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는 작가의 작품이 지닌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일이다.
결국 중요한 건 실현가능성인데, 막상 해보니 국내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 많았다. 매번 최선을 다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국내 인쇄소의 기술로는 해외의 수준 높은 사진집을 못 따라가겠더라. 그렇다고 적당히 타협하는 건 저와 맞지 않았다. 오리지널 프린트의 깊이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인쇄소를 찾아 협업하고, 때론 수작업을 고집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최소한의 가공만 거친 인쇄물을 작업실로 가져온 뒤 수작업으로 표지를 제작하거나 실로 일일이 꿰어 책을 만들기도 한다.
-만드는 책이 사진집이다보니 무엇보다 인쇄가 중요할 것 같다. 인쇄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쇄는 쉽지 않은 영역이다.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기 위해선 작업을 해석할 줄 알고, 그에 맞는 잉크를 조합하고 개발해 사용하는 분판(Seperation) 전문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해외 출판물을 보면 분판 전문가가 항상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거의 전무한 영역이라고 보면 된다.
인쇄에 대한 고민이 커가던 2018년 무렵, 국내에서 유일한 분판 전문가로 평가받는 유화컴퍼니의 유화 대표를 만났다. 대구 사진전문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열린 로버트 프랭크 전시를 통해서다. 이후 서로를 알아가며 조금씩 협업을 진행했다. 전문가를 만나니 점점 더 욕심도 생기고, 다양한 콘셉트와 인쇄 기법을 시도하게 됐다.
-유 대표와 협업한 첫 책인 정해창 사진집이 눈길을 끈다.
▶2023년 나온 책이다. 서구에서 온 예술장르인 사진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뿌리를 내려 이어오게 되었는지를 탐구하던 중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예술 사진 전람회를 연 무허 정해창 선생의 사진을 보게 됐다. 100년이 된 사진이었다. 이 분의 작품이야말로 우리의 뿌리구나 싶더라. 후손을 만나 동의를 얻은 후 출판을 진행했다. 1930년대 선생이 제작한 작품집에서 사진을 발굴, 복원했다. 기획부터 편집, 재촬영, 복원, 출간까지 2년이 걸렸다. 무척 어려운 작업이었던 만큼 보람도 컸다.
-사진집 외에 '리트머스 스토리'라는 잡지도 내고 있다. 어떤 책인가.
▶아날로그 필름 작업을 꾸준히 이어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사진집 형식의 비정기간행물이다. 아날로그 작업을 추구하는 작가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작업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와 원동력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2016년 시작한 일이다. 지금까지 4권의 책을 냈다. 출간과 동시에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가시적 결과물로 작가들에게 힘을 주려는 의도다.
-일반적으로 사진집은 소량 제작을 한다. 게다가 제대로 만들려고 하면 할수록 적자인 구조다. 그런 점에서 출판사 운영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2005년 첫 책은 250부를 찍었다. 표지엔 인쇄물이 아닌, 해당 작가의 원본사진을 붙였다. 내지 인쇄도 망점(halftone dot) 선수(line screen)를 높여 보다 부드럽고 정밀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제작비를 건지고 수익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다.
출판사를 낼 때부터 수익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았다. 책이 좋았고, 함께 작업하는 동료가 좋았다. 그들과 함께 사진전을 하는 것도 좋지만 책으로 남겨두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그렇기에 미술관의 전시 도록 제작이나 작가들의 작품전 도록 제작 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준 높은 사진집을 20년 동안 꾸준히 내고 있다.
▶출판일이 좋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다. 저는 사진가다. 출판사에서 제 사진집도 한 번씩 낸다. 사진 작업을 하다보면 결과물이 계속 쌓여 좀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사진집으로 만들어 정리하고 나면 홀가분해진다. 제가 이 일을 하고 있기에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동료 사진가들의 작품집을 제 손으로 만들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보람도 크다.
미국이나 유럽 쪽엔 인쇄기술이 독보적인 세계적으로 이름난 출판사가 많다. 제가 그곳에서 나온 사진집을 보며 성장했듯, 한국만의 색깔을 지닌 사진집을 만들고 싶다. 유화컴퍼니와 협업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금 K-문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것처럼 K-포토북도 그런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한다.



























댓글 많은 뉴스
李대통령 "국가란 스스로 지켜야…왜 외국군 없으면 어렵단 불안감 갖나"
원팀은커녕…'지선 방관자' 대구 국회의원들
보수 분열 끝내야 여야 균형 정치 이룬다
추경호 vs 김부겸 빅매치…투표함 열기 전에는 모른다
"왜 한국인만 고유가 지원금 주나"…이주민 단체, 인권위 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