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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73년 19회>은상 김수열 작 '섬마을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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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김수열 작
은상 김수열 작 "섬마을 어린이"

1972년 초가을, 파도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남해의 작은 섬마을에는 새벽 바람부터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배어 있었다. 밀물과 썰물 시간을 따라 하루가 움직이던 그 시절, 어른들은 해가 뜨기도 전에 바닷가로 나갔다. 어머니는 허리까지 바닷물에 잠긴 채 꼬막을 캐고, 아버지는 굴을 따며 하루 품삯을 벌었다. 가난은 영숙이 집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섬마을 사람들의 손마디는 짜디짠 바닷물에 부르트고 갈라져 있었고, 아이들 역시 어린 나이부터 삶의 무게를 배워야 했다.

열한 살 영숙이도 그중 하나였다.영숙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어린 동생부터 챙겼다. 어머니가 남겨둔 보리죽을 데워 먹이고, 울음을 달래며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파란 포대기로 동생을 등에 업은 채 마루 끝에 앉아 책을 펼쳤다.사진 속 영숙이의 시선은 책장에 고정되어 있다. 아마도 그 글자들 속에서 영숙이는 바다 너머 육지의 세상, 혹은 교복을 입고 마음껏 공부하는 자신의 미래를 꿈꿨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책을 읽는 순간에도 영숙이의 온 신경은 등에 업힌 동생에게 향해 있었다.

언니의 고단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등에 업힌 동생은 그저 천진난만하다.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노란 꽃 한 송이를 입에 물고 언니 등에 얼굴을 기대고 졸다가도 가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언니의 책장을 바라보곤 했다. 동생에게 언니의 등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요람이었다.영숙이는 책을 읽다가도 동생이 칭얼대면 책장을 접어두고 다시 달랬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오래 집중할 수 없었다. 어린 동생의 체온과 숨결이 늘 그녀의 등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섬마을의 큰 딸들은 철부지 어린이가 아닌 작은 엄마였다.학교 운동장에서 뛰놀 나이였지만, 영숙이의 하루는 늘 집안일과 동생 돌보기로 채워졌다. 친구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도 영숙이는 우물에서 물을 길었고, 소풍날에도 동생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영숙이는 투정을 몰랐다. 아니, 투정조차 사치였던 시절이었다.

저녁이 되면 바닷일을 마친 어머니가 축축한 고무치마를 두른 채 집으로 돌아왔다. 손은 소금기에 갈라져 있었고 얼굴엔 피곤이 묻어 있었다. 어머니는 늘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영숙이, 또 동생 업고 있었나…"

그 말에 영숙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동생이 오늘은 안 울었어예."

어린아이답지 않은 그 말에 어머니는 잠시 얼굴을 돌리곤 했다. 행여 큰딸에게 눈물 보일까 싶어서였다.

밤이 되면 희미한 촛불아래서 영숙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다시 책을 펼쳤다. 동생은 어느새 옆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영숙이의 눈꺼풀도 금세 무거워졌다.세월이 흘러 영숙이도, 등에 업혔던 동생도 이제는 중장년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은상 작품인 김수열 '섬마을 어린이'는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중략)... 동요 〈섬집아기〉의 구슬픈 멜로디처럼, 그 시절 섬마을의 풍경은 가난했지만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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