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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옥의 동아시아 신화에서 역사로] 선사시대 동이족은 어떻게 역사를 기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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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삼각지대 지도
금삼각지대 지도

◆문자 이전의 시대, 역사는 어떻게 남았을까
인간의 기억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결코 완전히 승리할 수 없다. 아무리 거대한 사건과 깊은 감정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흐려지고, 왜곡되며, 끝내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아마도 인간은 이러한 망각에 저항하기 위해 글자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문자의 발명 이후 사람들은 비로소 중요한 사건과 사상, 감정과 경험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선사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건과 생각, 그리고 기억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후대에 전하려 했을까?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남긴 유물을 통해 선사시대에 일어난 다양한 삶과 사건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대하촌유지에서 출토된 쌍둥이병
대하촌유지에서 출토된 쌍둥이병

◆대하촌유지와 쌍둥이병의 발견
우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미국·이스라엘-이란의 전쟁의 끝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절차만큼은 짐작할 수 있다. 두 나라의 정상들이 정전·휴전 문서에 서명하는 순간, 전쟁의 시대는 평화의 시대로 전환될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에 문자가 없던 시절, 집단과 집단 사이의 분쟁과 갈등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중국 하남성 정주(鄭州)시에는 신석기 시대 유적인 대하촌유지(大河村遺址, BC 4500~BC 1500)가 있다. 이 유적은 앙소문화(仰韶文化 BC5000~BC2700) 중·후기와 용산문화(龍山文化 BC2300~BC1800), 이리두문화(二里頭文化 BC1800~BC1500), 은(상)문화(殷또는 商文化BC1600~BC1046) 등이 약 3000년 동안 연속적으로 이어진 복합유적지이다. 이곳에서는 독특한 도자기가 발굴되었는데, 바로 쌍둥이병(雙蓮壺)이다. 이 병은 두 개의 병이 나란히 붙어 있으며, 병의 배 부분은 타원형 구멍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병에 물이나 술을 따르면 두 병이 함께 채워지는 구조이다. 이 병의 용도는 무엇일까?

묘저구문화의 새문양
묘저구문화의 새문양

◆화간과위옥백과 평화의 상징
《좌전·희공(僖公) 15년》에는 화간과위옥백(化干戈爲玉帛)이라는 말이 나온다. 간과(干戈)는 본래 무기이지만, 여기서는 전쟁을 의미한다. 옥(玉)과 비단(帛)은 제후들이 동맹을 맺을 때 가져가던 예물로, 평화를 상징한다. 즉 화간과위옥백은 원한과 적대를 없애고 전쟁을 평화로 바꾸며, 갈등을 해소하고 우호를 도모한다는 뜻이다.

이 말의 유래는 하나라의 대우(大禹)에게서 비롯되었다. 대우는 치수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구주(九州)를 개척하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농업과 목축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세상이 안정되었고 주변 부족들도 차례로 귀속되었다. 이후 대우는 도산(塗山)에서 부족 수장들의 회의를 열었는데, 옥과 비단 등의 예물을 가지고 온 수장들이 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화간과위옥백이라는 말은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반파유형의 물고기 무늬
반파유형의 물고기 무늬

◆쌍둥이병에 담긴 동맹 의례와 화합의 문화
중국에서는 쌍둥이병을 화간과위옥백의 의미로 해석한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생활용기가 아니라 씨족 간 동맹이나 중요한 의식을 치를 때 수장들이 함께 술을 마시며 우호와 단결을 다짐했던 전용 예기(禮器)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가 간 외교문서에 서명하는 행위와 유사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 BC 4300~BC 2600)에서도 쌍둥이 잔이 출토되었는데, 이것 역시 쌍둥이병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중국 소수민족인 동족(侗族)은 현재까지도 우정을 확인하거나 결혼을 통한 양가의 화합을 기원할 때 하나의 술잔으로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신다. 오늘날 우리가 친목과 화합을 위해 술자리에서 서로 팔을 엇갈려 술을 마시는 풍습 역시 화간과위옥백 문화의 흔적이다.

반파유형의 물고기 문양
반파유형의 물고기 문양

◆토기 문양에 담긴 선사시대의 기억과 역사
우리 동이족은 글자가 없던 시절에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생각과 사건을 기록했다. 동이족은 독특한 형태의 토기를 제작하거나 토기에 그림을 그려, 당대와 후손들에게 중요하다고 여긴 삶의 정보와 역사를 전했다. 즉 토기의 형태나 문양은 선사시대인의 역사 서술 방식이었다.

반파유형의 배모양 토기(복제품)
반파유형의 배모양 토기(복제품)

◆반파유적의 물고기 문양과 소망
중국 서안시에 위치한 반파유적지(半坡遺址, BC 4700~BC 3600)는 앙소문화 전기에 해당한다. 반파유지에서는 배 모양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 토기의 가운데에는 두 개의 선이 그어져 있고, 그 안에는 고기 잡는 그물을 표현한 듯한 마름모꼴의 사선이 그려져 있다. 그물 양쪽으로는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보이는 무늬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다. 토기 자체가 배 모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물 밖으로 튀어나온 물고기 지느러미는 풍어와 만선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파유지에서는 물고기 문양이 그려진 토기들도 다수 발견되고 있다. 물고기 문양을 반복해서 그린 것은 그들이 물고기를 숭배하는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옹관을 덮는 뚜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옹관 뚜껑에는 눈을 감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물고기의 몸을 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또 아이의 귀 양쪽에는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는데, 마치 어린아이의 영혼이 물고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하다. 이 그림은 아이의 영혼이 물고기의 도움을 받아 조상들이 사는 세계로 무사히 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소망이 담긴 것이다.

항새 물고기 도끼 채도 항아리
항새 물고기 도끼 채도 항아리
앙소문화박물관 전경
앙소문화박물관 전경

◆물고기 토템 부족과 새 토템 부족의 충돌
반파유지와 비교적 가까운 임동현(臨潼縣) 강채유지(姜寨遺址, BC 4000년 전후)에서는 '호리병 모양의 도자기 병(葫蘆口瓶)'이 발견되었다. 강채유지는 앙소문화 중기에 해당한다. 호리병의 중앙에는 새의 몸체는 보이지 않고 머리 부분과 날개만 표현되어 있다. 새의 날개는 막 날아오르기 직전처럼 힘차게 펼쳐져 있어 매우 생동감 있다. 새 그림은 정면과 뒷면에 각각 대칭으로 그려져 있으며, 마치 측면에서 새를 바라보는 듯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 반면 호리병의 변두리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서로 가운데를 향해 마주 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옛사람들은 그림으로 기록을 남길 때,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을 크게 그리거나 눈에 잘 띄도록 중앙에 그렸다. 호리병 그림을 그린 이들은 물고기보다 새를 중요하게 여겼던 부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새를 숭배하는 새 토템 부족과 물고기를 숭배하는 물고기 토템 부족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새 토템 부족이 주도권을 가져갔음을 알려준다.

◆묘저구문화와 새 토템의 시대
하남성 삼문협(三門峽)시의 묘저구(廟底溝)는 황하가 니은(ㄴ)자 형태로 굽이치는 지역과 가까운 곳이다. 하남성 서부·산서성 남부·섬서성 동부를 금삼각(金三角) 지대라고 하는데, 묘저구는 하남성 서부 지역에 속한다. 앙소문화 중·후기에 해당하는 묘저구문화(廟底溝文化, BC 3900~BC 3600)는 새를 토템으로 삼았다. 묘저구문화의 새 문양은 매우 다양하다. 점과 삼각형을 이용해 새가 하늘을 날아오르거나 내려오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무리를 지어 나는 모습도 묘사했다. 또 기하학적인 형태나 단순한 선만으로 새의 특징을 표현하기도 했다. 새 숭배는 동이족 문화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묘저구유형에서는 다양한 그림의 도자기들이 발견되는데, 특히 해·달·별 등 하늘과 관련된 문양도 많다. 이러한 점 때문에 당시 천문학이 발달했으며, 하늘을 관찰해 농사를 지었던 실제적 자료로 평가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묘저구문화가 크게 번성하며 중원을 통합했다고 설명하면서, 그 주인공을 황제(黃帝)라고 본다. 그러나 황제가 동이족이었다는 기록 역시 여러 사서(史書)에서 확인된다.

◆황새·물고기·도끼 그림에 담긴 상징
하남성 여주(汝州)시 염촌(阎村)에서는 '황새 물고기 도끼 채도 항아리(鹳鱼石斧彩陶缸)'가 발굴되었다. 이 항아리는 이차 장례용 유골 항아리이다. 일차 장례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그 뼈를 수습해서 유골함에 담는 이차 장례는 하남성 정주(鄭州) 지역 동이족의 전형적인 장례 풍습 가운데 하나였다. 이 항아리에는 물고기를 물고 있는 황새와 도끼가 그려져 있다. 황새와 도끼에 비해 물고기는 작게 표현되어 있으며, 황새의 두 다리는 도끼 쪽으로 뻗어 있다. 또 도끼날은 황새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어 마치 황새가 도끼 자루를 잡고 있는 듯하다. 도끼 자루에는 신권(神權)을 상징하는 'X' 문양이 그려져 있다.

도끼는 적을 죽일 수 있는 살상 도구라는 기능이 확대되면서, 점차 귀신을 물리치는 신성한 기물로 인식되었다. 순임금 역시 도끼를 휘두르며 춤을 추어 삼묘(三苗)를 제압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인들은 도끼를 적이나 귀신을 물리칠 수 있는 신성한 힘을 지닌 기물로 여겼던 것이다.

◆토기에 남겨진 전쟁과 영웅의 역사
'황새 물고기 도끼 채도 항아리'는 가장 유명한 채도 유물 가운데 하나로, 앙소문화 묘저구유형(廟底溝類型, BC 4000~BC 2700)에 속한다. 항아리에 그려진 그림은 항아리 주인인 남성의 업적을 기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남성은 새 토템 부족 출신으로, 물고기 부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다. 새 토템 부족은 그의 업적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항아리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문자가 없었던 시대의 역사는 토기와 그림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대 동이족은 자신들의 신앙이나 여러 부족 간의 전쟁, 새로운 시대의 시작 등을 토기에 그림으로 남겼다. 오늘날 문자 기록과는 방식이 달랐지만, 동이족은 이런 그림문자로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전해주었던 것이다.

동방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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