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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하태길]현대미술로 다시 태어난 섬, 나오시마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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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섬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인 나오시마. 하태길 교수 제공
섬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인 나오시마. 하태길 교수 제공

섬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는 곳이 있다. 액자가 걸려 있고 조각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활력을 잃어가던 작은 섬에 불과했다고 한다. 버려져 가던 섬은 어떻게 전 세계 현대미술 팬들이 방문하는 예술의 섬이 되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일본 다카마쓰(Takamatsu)로 향했다.

다카마쓰 항구에서 배에 오르자 일본의 지중해라 불리는 세토내해가 펼쳐졌다. 50분쯤 지났을까. 미야노우라항에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지는 붉은 점이 있었다. 그것은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 빨간 호박이었다. 이곳이 예술의 섬 나오시마라는 것을 알려주는 로고 같았다. 미야노우라항에 내리자마자 빨간 호박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세토내해의 푸른 바다와 하늘이 둥근 창을 통해 조각난 풍경을 선물해주었다. 항구 주변에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작품이 있었다. 흰 철망 구조물로 이루어진 나오시마 파빌리온(Naoshima Pavilion)이다. 구름 조각을 표현한 것일까, 바다에서 어로작업을 하는 그물일까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수많은 삼각형이 모여 나오시마 섬의 모양을 구현한 파빌리온이었다. 특히 밤이 되면 내부 조명이 켜지고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등불이 된다. 바다의 어둠과 대비되며 낮보다 더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나오시마에서는 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낮에는 빨간 호박, 밤에는 나오시마 파빌리온이라는 예술과 동행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미야노우라항의 빨간 호박과 나오시마 파빌리온. 하태길 교수
미야노우라항의 빨간 호박과 나오시마 파빌리온. 하태길 교수

셔틀버스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 쯔쯔지소에 하차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을 찾아 나섰다. 흐린 하늘 아래 검은 점무늬를 두른 노란 호박이 세토내해를 배경으로 앉아 있었다. 2021년 8월 태풍 루핏((Lupit)의 강풍과 높은 파도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간 기사가 떠올랐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작가는 작품을 안전한 전시장 안이 아니라 바다 끝에 덩그러니 내놓았을까? 쿠사마는 작품이 자연과 분리된 채 존재하기보다 세토내해의 빛과 바람, 비와 파도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예술과 자연이 만나는 순간을 보여 주기 위해서 말이다. 태풍에 떠내려간 사건마저도 어쩌면 자연과 예술이 함께 만들어 낸 뜻밖의 공연이었을 수도 있다.

설치미술의 혁신적인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반복되는 점과 호박 이미지는 이제 전 세계인이 알아보는 브랜드가 되었다. 2012년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쿠사마 야요이와협업을 통해 도트 패턴과 호박 모티프를 가방과 의류에 적용했다. 이는 예술과 브랜드가 서로의 가치를 증폭시키는 공동 브랜딩(Co-branding)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하는 동시에 예술을 개별적으로 소비하게 되었고 브랜드는 차별화된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10년 뒤인 2023년 두 번째 협업이 진행되었을 때 전 세계 매장은 거대한 도트 무늬 전시장으로 변했다. 하나의 작품이 미술관을 넘어 도시와 거리 그리고 소비자의 일상 속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러나 나오시마에서 만난 호박은 명품 브랜드의 아이콘이기 전에 세토내해의 풍경 속에 몰입된 예술 작품이었다. 그곳에서 호박은 자연의 힘 앞에서 무너지기도 하면서 나오시마가 추구하는 예술과 자연의 관계를 비로소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예술 애호가와 함께. 하태길 교수
캘리포니아에서 온 예술 애호가와 함께. 하태길 교수

호박 주변에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뒤에 있던 캘리포니아 출신의 중년 부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흐린 날씨 탓에 노을을 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낯선 여행지의 어색함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노란 호박 곁에 기대기도 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저마다의 추억을 사진 속에 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토내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놓인 노란 호박, 그리고 그 곁에서 웃고 이야기하며 같은 풍경을 공유하는 사람들. 어쩌면 이 모든 장면까지도 작가가 의도한 작품의 일부가 아닐까. 예술은 눈으로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기억을 만들어가는 과정까지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변의 야외 정원에는 조각 작품들이 흩어져 있었다. 작품들은 정돈된 전시장 대신 바다와 풀밭, 나무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보물찾기를 하듯 걸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알록달록한 낙타 조형물이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선명한 색채를 뽐내는 낙타는 금방이라도 어린아이들을 태우고 사막을 향해 걸어갈 것만 같았다. 조금 더 걷자 화분 모양의 코끼리가 나타나 긴 코를 내밀며 인사했다. 예술의 정원에서는 무생물에게도 말을 건네는 다정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길 끝에는 유리 구조물 하나가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안에서 낯선 사람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왜곡된 내 모습이었다. 몸은 길게 늘어나고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는 확연히 다르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작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푸른 찻잔에 담긴 세토내해. 하태길 교수
푸른 찻잔에 담긴 세토내해. 하태길 교수

언덕 위의 시사이드 갤러리(Seaside Gallary)도 향했다. 세 장의 묵직한 철판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금속은 단단하다는 고정관념을 흔들어 주면서 세토내해의 바람을 눈으로 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파란색 그릇이 화강암으로 쌓은 사각 받침 위에 올려져 있는 구조물이 나타났다. 세토내해를 담아 따뜻한 차 한 잔을 권하는 순간이었다. 여행자인 나는 그릇 안에 감탄을 담고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나오시마 주민들은 추억을 담고. 예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나오시마를 명상하는 자리였다.

시사이드 갤러리에 액자 풍경. 하태길 교수
시사이드 갤러리에 액자 풍경. 하태길 교수

절벽 끝으로 이어진 다리를 따라 걷다가 문득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파도와 매일 맞닥트리는 절벽 위에 작은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첫 느낌은 낯설었다. 시간의 주름이 가득한 바위 주변은 초록 이끼가 매끈하게 붓질하여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액자는 풍경을 방해하지 않았다. 흔히 그림이 액자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생각이 뒤집힌다. 액자는 이미 존재하던 자연이라는 풍경을 작품으로 알아차리라는 초대장이었다. 매일 다른 모습의 바다와 닳아가는 절벽, 그리고 사라졌다 다시 돋아나는 이끼. 풍경은 그림 액자와 달리 한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머물지 않는다. 예술은 미술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절벽에 있던 액자가 말해주고 있었다. 섬 전체가 미술관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자연환경과 하나로 융합된 이우환 미술관. 하태길 교수
자연환경과 하나로 융합된 이우환 미술관. 하태길 교수

그 깨달음은 이우환(Lee Ufan) 미술관에서 더욱 깊어졌다. 섬 곳곳에 자리한 여러 미술관 가운데서도 유독 강한 인상을 남긴 공간이었다. 이우환의 작품 자체도 훌륭했지만 내가 더욱 주목한 것은 미술관이 자리한 위치였다. 완만한 골짜기가 바다를 향해 넓게 펼쳐진 곳. 특히 세토내해가 펼쳐지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면 이우환이 만든 관계항(Relatum)에 주목하게 된다. 자연과 날씨는 물체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게 만드는 장치라는 작가의 의도에 동의하게 된다. 돌은 바다를 더 넓게 보이게 하고 철판은 하늘의 색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며 빈 공간은 바람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또한 끊임없이 움직이는 해의 위치는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를 만들어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상태에 가까운 침묵의 공간인 셈이다.

현대 마케팅에서 흔히 "입지가 곧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사람들이 찾기 어려운 곳에 있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어떤 작품이 어디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우환 미술관은 그런 점에서 매우 뛰어난 사례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공간 설계와 이우환의 철학적인 작품, 그리고 나오시마의 자연환경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경험하게 만든다. 마케팅에서는 이를 컨버전스(Convergence)라고 부른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좋은 구슬이 아무리 많아도 흩어져 있으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 그러나 하나의 실에 꿰어지는 순간 새로운 가치의 작품이 된다. 하나의 철학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브랜드가 된다. 애플(Apple)은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했고, 스타벅스(Starbucks)는 커피와 공간문화를 결합했다. 테슬라(Tesla)는 자동차와 미래 비전을 결합했다.

세토내해가 펼쳐지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이우환 작가의 관계향. 하태길 교수
세토내해가 펼쳐지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이우환 작가의 관계향. 하태길 교수

디지털 시대에는 어떤 플랫폼(platform)에 존재하느냐가 브랜드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같은 제품이라도 유튜브(Youtube), 인스타그램(Instagram), 틱톡(TikTok)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첫째, 유튜브에서는 제품의 성분과 효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직접 시연을 통해 그 가치를 보여 준다. 대표적인 사례로 고프로(GoPro)를 들 수 있다. 고프로는 실제 사용자가 촬영한 영상을 통해 카메라의 성능을 자연스럽게 전달했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영상을 보며 제품이 자신의 용도에 적합한지 판단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둘째, 인스타그램에서는 제품의 기능보다 이미지와 감성이 강조된다. 소비자들은 제품 자체보다 그것이 만들어 내는 라이프 스타일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Airbnb)는 아름다운 숙소 사진을 공유하며 숙박 공간이 아닌 특별한 경험과 삶의 방식을 판매했다. 셋째, 틱톡에서는 짧고 재미있는 영상이 빠르게 확산된다. 사용자는 제품 사용 후의 변화를 몇 초 안에 보여 주며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 관심은 순식간에 공유된다. 미국 화장품 브랜드 e.l.f.는 브랜드 전용 음악과 챌린지를 제작해 이용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기업이 광고를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브랜드 홍보에 참여하는 효과를 얻었다.

유튜브는 제품의 가치를 설명하고, 인스타그램은 제품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를 보여 주며, 틱톡은 제품에 대한 관심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공간이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의 마케팅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각 플랫폼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식으로 소비자와 소통할 때 비로소 브랜드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강력한 브랜드는 언제나 서로 다른 가치를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나오시마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예술이라는 구슬, 건축이라는 구슬, 자연이라는 구슬, 철학이라는 구슬이 하나의 실로 연결되면서 세계인이 찾아오는 특별한 섬이 되었다.

나오시마에서 내가 본 것은 몇 점의 작품이 아니었다. 예술이 공간을 바꾸고, 공간이 사람을 부르고, 사람들이 다시 섬의 미래를 바꾸는 거대한 순환이었다. 세토내해의 바람과 빛, 그리고 그 속에 놓인 작품들은 서로를 완성하며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섬의 진짜 작품은 호박도, 미술관도, 조각품도 아니었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낸 나오시마 그 자체였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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