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경북 선산의 작은 시골마을에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흙이 풀리고, 논두렁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었다. 멀리서는 쟁기를 끄는 소가 느릿느릿 걸어가고, 들녘에서는 모내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마을까지 흘러왔다.
용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용규야, 할매 말 잘 듣고 있어라." 당부하고 이른 아침부터 논으로 나갔다.
잠시후 툇마루에는 흰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백발의 할머니와 일곱 살 먹은 손자 용규가 오손도손 앉았다. 그 앞에는 장난기 많은 누렁이 강아지가 혀를 내민 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용규는 강아지 등을 쓰다듬다가 할머니 무릎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할매, 옛날 이야기 하나 해주이소."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셨다.
"또 듣고 싶나?"
"응. 호랑이 나오는 거."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용규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말이야..."
할머니의 구수한 목소리가 툇마루를 감싸 안았다. 도깨비가 나와 방망이로 금은보화를 뚝딱 만들어내는 이야기, 호랑이가 꾀를 내어 사람을 골탕 먹이는 이야기 등은 일곱 살 용규에게는 세상 그 어떤 동화보다 흥미진진했다. 할머니는 이야기에 맞춰 손짓 발짓을 더해가며 용규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용규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눈을 반짝이며 할머니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용규의 표정에는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곁에 앉은 강아지조차 꼬리를 흔들며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가끔은 "정말?" 하고 되묻기도 하고, 강아지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둘 사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이사이 꼭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사람은 욕심내면 안 된다."
"거짓말은 결국 들통난다."
"남을 도우면 언젠가는 복이 되어 돌아온다."
어린 용규는 그 말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목소리는 마음속 깊은 곳에 씨앗처럼 심겨 갔다.
해가 조금씩 기울 무렵, 논에서 일을 마친 부모님의 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
"아부지 왔다!"
용규는 벌떡 일어나 뛰어나갔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삶의 지혜와 손자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비록 가난하고 소박한 시골 생활이었지만, 할머니의 사랑과 이야기가 있었기에 용규의 어린 시절은 풍요로웠다. 그날 툇마루에서 나눴던 할머니와 손자의 따뜻한 시간은 용규의 마음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할머니는 이제 곁에 안 계시지만, 할머니의 옛 이야기는 용규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툇마루의 따뜻한 시간, 그 시간은 할머니와 손자의 사랑을 잇는 소중한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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