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구상이 거점국립대 세 곳을 우선 선정해 집중 육성하는 전략으로 다듬어지고 있다.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 지역 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못살 때는 장남(서울대)만 지원했지만, 이제는 지역 거점 대학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할 때"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말라붙은 지역 대학가에 내리는 단비와 같이 반갑다.
◆선택과 집중, 기초학문의 소외를 경계한다
정부가 영남권, 충청·강원권, 호남·제주권에서 각 한 곳씩을 우선 선정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우리 지역의 거점국립대인 경북대학교의 선정 여부에 지역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이미 일부 대학에서는 AI-X 등 정부 기조에 부응하는 특정 전공에만 예산과 인력을 집중 투입하고, 교원 승진 기준을 경쟁적으로 강화하며 내홍을 겪고 있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는 성장통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기초과학이나 인문·사회학 같은 기초학문이 변혁의 물결에서 소외되어 학문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대학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단순 예산 증액을 넘어선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청년 인구 급감과 열악한 산업 기반이라는 지역의 현실에서, 소수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 확대만으로 서울대급 교육·연구 기관을 창출할 수 있을까? 단순히 '서울대 만들기'라는 구호에 매몰되어 대학 내 돈 잔치로 끝난다면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없다. 서울대의 연간 재정 지원은 약 7천200억 원인 반면, 지역 거점국립대는 평균 2천100억 원 수준이다. 전임 교원 수와 박사급 연구 인력, 행정 인프라까지 고려하면 그 간극은 숫자 이상으로 거대하다. 단순히 예산 규모만 키우는 것으로는 환골탈태가 불가능하다.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선 시스템적 재정 지원책이 절실하다.
◆막스플랑크에서 찾는 지역 혁신의 해법
지역 대학이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할 성공적인 모델로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를 제안한다. 막스플랑크 협회는 특정 지역에 치우치지 않고 우수한 연구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며, 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이 지역 대학 교수를 겸임하는 '이중 소속제'를 통해 3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필자와 깊은 인연이 있는 2022년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 스반테 페보 박사 역시 라이프치히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이 모델의 저력을 증명했다. 과거 독일 유학 시절 그와 함께 연구하고, 경북대에 초청해 지리산 천왕봉을 함께 오르며 나누고 느꼈던 그들의 연구 생태계는 매우 유기적이었다. 대학으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막스플랑크형' 연구 플랫폼이 마중물이다
지역 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지역의 우수 교수진이 막스플랑크와 같은 지역 거점 교육·연구 플랫폼에서 협업할 수 있다면, 세계적 연구 그룹(Critical Mass)을 형성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연구소의 연구진이 대학 교수를 겸직하고, 대학 교수진이 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이 되어 대학원생들을 세계적 수준의 환경에서 교육한다면, 지역 거점국립대는 기초학문의 주체이자 지역 발전의 마중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재원 분배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국가적 '정의'라면, 그 재원이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은 정책적 '지혜'다. 지역 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우수 인재를 연계할 '막스플랑크형 지역 거점 연구소' 설립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서울대 만들기'라는 구호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고, 우리 지역과 국가의 미래를 밝히는 실질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모처럼의 단비가 메마른 지역의 갈증을 해소해 주길 고대한다.



































댓글 많은 뉴스
삼성 초기업 노조 "호남 반도체, 조합원 84% 반대…교섭으로 다룰 것"
사관학교 통합? ROTC는 어쩌고? [가스인라이팅]
"노무현이 봤으면 반겼겠나"…아님 말고식 '무섭노 일베몰이', 사과조차 없다[금주의 정치舌전]
"AGT vs 모노레일" 대구 도시철도 4호선 재검토, 걸림돌은?
노란봉투법 '부메랑'…삼성 노조,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 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