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영남 성리학을 대표하는 대학자인 지수(芝叟) 정규양(1667~1732) 선생의 불천위 제사가 28일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 보현산 자락의 옥간정(경북도 문화유산자료 제270호)에서 봉행됐다.
지수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게 빼앗긴 영천성을 최초로 수복한 호수 정세아 의병장의 5세손이다.
이날 제사에는 영일정씨 종회 회장인 정극일 법무법인 대경 대표 변호사를 비롯 종손 정윤극 전 울산과학대 교수, 정화태 전 라오스대사, 정극원 전 한국헌법학회장(대구대 교수) 등 후손 20여명이 참석해 지수 선생의 학덕과 충의 정신을 기렸다.
불천위는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학문과 덕행으로 유림의 존경을 받은 인물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제도다.
영천에선 영일정씨 가문에서만 호수 정세아를 비롯해 훈수 정만양·지수 정규양 형제, 형조참의 매산 정중기, 청백리 명고 정간 등 5명의 불천위를 배출해 지역 유학사의 위상을 전하고 있다.
지수 선생은 형인 훈수와 함께 화북면 횡계리에 진수재와 옥간정을 세우고 평생 벼슬길을 마다한 채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암행어사 박문수와 이조판서 오명항 등의 거듭된 천거에도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며 문하생으로 영의정 조현명과 판서 이유, 참의 정중기, 승지 정간 등 172명의 인재를 양성했다.
또 두 형제는 시를 함께 짓고 공동으로 방대한 저술을 남길 만큼 각별한 우애를 이어갔다. 모두 141권 72책에 달하는 저술 가운데 현재 '훈지집' 62권 33책이 전해지며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올해 이를 번역·출간할 예정이다.
지수 선생은 학자에 머물지 않고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추대돼 창의하는 등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충절을 몸소 실천했다. 당시 영의정 조현명은 지수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듣고 "선생의 존망에 영남의 성쇠가 달렸다"고 애도했다고 한다.
영일정씨 후손들은 훈수 선생이 남긴 '충효공검(忠孝恭儉, 충성·효도·공경·검소로 덕을 기르다)'의 가훈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영일정씨 종회는 "이날 불천위 제사는 영일정씨 가문이 대대로 계승해 온 충의와 학덕, 형제애의 전통을 되새기고 지역 유학 문화의 가치를 계승하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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