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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의 연극리뷰] '삶과 죽음, 결국 꽃밭으로 향하는 길' 중국 풍령극단 유진우 연출의 신체극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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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유진우 연출은 현재 중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교수를 역임한 자크 르콕(Jacques Lecoq)의 신체 훈련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배우 교육과 창작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이자 연출가다. 이번 작품은 한국의 바리데기와 오늘이, 한락궁이 등 한국과 제주 신화를 모티브로 삶과 죽음, 구원과 순환의 세계를 시적인 신체극으로 풀어낸 '김천가족국제연극제' 공식 참가작품이다. 공연은 60분 정도인데, 서사적이고 드라마틱한 구조가 뚜렷하지 않은 신체극임에도 어린이 관객들의 몰입도가 상당히 높은 작품이다.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엉킨 세계

무대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분한 세 명의 중국 배우가 등장한다. 이들은 죽은 자이면서 살아가는 자이고, 미래를 지칭하는 신들이기도 하다. 마치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에 등장하는 신들처럼 보이면서도, 유진우 연출은 이들을 매우 동양적인 신과 인간의 형태로 형상화한다. 이 작품에서 삶과 죽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과거와 현재, 미래도 하나의 시간 안에서 뒤엉킨다. 살아가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고, 인간은 그 안에서 희망을 품고 미래로 전진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소멸하여 다시 꽃밭으로 향한다.

꽃밭은 죽음 이후의 공간만은 아니다. 죽음도 삶도, 인간도 세상도 결국 하나가 되어 돌아가는 생명의 순환이고, 어쩌면 인간이 도달하고 싶은 평온한 세계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번민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욕망을 내려놓고 꽃밭의 길로 향하는 것, 그것이 결국 모두가 바라는 '꽃밭' 아니겠는가. 신체극 〈꽃밭〉은 삶과 죽음을 대립시키기보다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다시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세계를 보여준다.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오방천이 열어놓는 이승과 저승의 길

무대가 인상적이다. 한국 전통의 제의 공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분위기다. 무대 바닥에는 제의의 마당을 연상시키는 문양 위로 흰 천이 덮여 있다. 현실과 저승을 잇는 신성한 경계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꽃밭을 상징하는 공간처럼 보인다. 무대 뒤편에는 오방색 계열의 천들이 수직으로 드리워져 있다.

굿판에서 신을 맞이하는 신단과 오방기, 인간과 신의 세계를 연결하는 신로(神路)를 연상시키는 오브제들이다. 이 천들은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문이 되기도 하고 길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생명의 나무와 꽃밭이 되고, 때로는 망자가 지나가는 길로 변주된다.

한국 전통연희가 최소한의 장치만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확장했던 것처럼, 무대의 오방천도 고정된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바리데기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었던 여정의 통로처럼 활용되면서 배우들은 현실과 신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무대는 화려한 장치를 채우기보다 비움과 상징을 선택한다.

타악기로 소리의 효과를 살리는 연주 공간과 오방색 천, 흰 바닥, 그리고 세 배우의 신체. 이것만으로 생명의 순환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설화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신체극의 언어로 확장한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다. 무대의 오브제들은 강렬하지만 자극적으로만 감각되지는 않는다. 굿판의 외형을 재현하기보다 제의성이 신체와 움직임을 통해 시적인 퍼포먼스로 전환되는 것이 유진우 연출의 <꽃밭>의 특징이다.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설화를 재현하지 않고 몸의 언어로

관객은 세 명의 극중인물이 살아왔거나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들을 하나의 굿판처럼, 하나의 의례처럼 감각하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매우 진지하고 서사적이며, 일반적인 의미에서 드라마틱한 사건이 선명하지 않은 신체극임에도 어린이 관객들의 집중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배우들의 몸과 움직임, 반복되는 소리, 변화하는 천과 공간, 죽음과 생명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하나의 감각적인 언어가 되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공연이 끝난 뒤 어린이 관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신체극이 설명하지 않고도 관객의 상상력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꽃밭〉은 유진우 연출이 그동안 마임과 몸, 움직임으로 풀어온 작업의 장점들을 한국 설화와 연결한 작품이다. 바리데기와 오늘이, 한락궁이의 서사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중국 배우들의 신체언어와 결합해 한국 설화의 제의성과 인간의 생사관을 신체극으로 융합하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한국의 설화를 중국 배우들의 몸으로 표현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언어와 국적의 경계를 넘어 몸이라는 공통의 연극언어로 신화를 다시 읽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밭〉의 신체는 특정한 문화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감각으로 확장된다.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많은 것을 덜어낸 유진우의 〈꽃밭〉

유진우 연출의 〈꽃밭〉을 보고 있으면 연출도 이제 많은 것을 덜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의 마임과 움직임 중심의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신체적 에너지를 앞세우기보다 이번에는 움직임을 절제하고 공간을 비우면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도 단순해졌다. 정서적으로는 불교적인 색채도 느껴진다.

결국 인간은 태어나 살아가고, 욕망하고 번민하며, 다시 죽음으로 향한다. 그리고 죽음은 끝이라기보다 또 다른 순환의 시작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꽃밭은 저승의 공간이면서도 생명의 공간이고, 죽음의 끝이면서 다시 시작되는 길이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그 꽃밭에서 만난다.

삶도 공연도 결국 어디론가 가는 길이다. 〈꽃밭〉의 세 배우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나 생명의 꽃밭으로 향했듯이, 공연장을 나온 관객도 다시 각자의 현실로 돌아간다.노하룡 예술감독은 공연 후 "내년부터 김천가족국제연극제는 시즌별로 연속하려고 구상 중입니다. 5월에는 어린이 가족극, 9월에는 일반작품, 그리고 10월까지 축제를 사계절화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가족극을 어린이만을 위한 공연으로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세대와 작품으로 확장하려는 방향이다. 김천 하면 또 떠오르는 게 있다. 유명한 중국 만두와 자두, 신도시처럼 달라진 혁신도시, 직지사를 포함한 김천 8경이다.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꽃밭. 김건표 교수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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