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개인전 '사랑 안의 미로(In the Labyrinth of Love)'가 부산 F1963 석천홀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부산에서 처음 선보이는 개인전으로, 최근 2년 간 제작한 대표작 100여 점을 대거 소개한다.
이번 전시를 두고 "감정과 헌신, 기쁨과 슬픔이 얽혀 있는 하나의 미로"라고 설명하는 작가는, 사랑이라는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감정에서 출발해 자연과 우주로 확장되는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전시는 F1963 의 야외 정원인 달빛가든에서 시작해 석천홀로 이어진다.
달빛가든에는 '황금 연꽃(Gold Lotus)' 작품이 설치됐다. 연꽃은 생명력과 재생, 치유를 상징하는 동시에 오토니엘이 오랫동안 탐구해 온 예술을 통한 회복의 의미를 함축한다.
석천홀에 들어서면 공중에 매달린 조각 '매달린 연인(Amant Suspendu)'과 '목걸이(Collier)' 연작, 약 2천개의 유리 벽돌로 강의 흐름을 형상화한 '푸른 강(Rivière Bleue)' 등 화려한 빛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 작업들을 만날 수 있다.
오토니엘에게 유리는 단순한 심미적 기능을 넘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액체에서 고체로 굳어지는 과정 속에서 생긴 기포와 불순물, 미세한 흠집을 모두 품은 유리는 상처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재료다.
1993년부터 이탈리아 무라노의 유리 장인들과 긴밀한 협업을 이어온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장인들의 기술과 자신의 예술적 언어를 결합하며 작품을 제작해왔다. 이러한 협업은 작품의 제작 과정을 넘어 서로의 경험과 시간을 나누며 상처를 보듬고 회복하는 행위로 승화된다.
문화재단 1963 관계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마주하는 상처와 흉터가 예술로 치유되기를 바라는 오토니엘은 유리라는 매체를 통해 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설명했다.
다음 공간에서는 꽃을 주제로 한 석판화 연작이 이어진다. 어린 시절 1년 정도 머물렀던 마이애미의 자생식물인 시계꽃, 아비뇽을 상징하는 꼭두서니, 일본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벚꽃이 추상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꽃은 자연을 재현하는 대상이 아니라, 익숙한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상징이자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중요한 매개체라는 것이 작가의 얘기다.
이어지는 공간에는 흐르는 물을 담은 분수 조각이 놓였다. 끊임없이 들리는 물소리는 조각의 형태를 넘어 공간 전체를 하나의 감각적 경험으로 변화시키며, 관람객의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마저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금박으로 장식된 알루미늄 꽃 조각들로 에워싸인 분수는 마치 환상적인 정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전시의 후반부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넘어 우주로 확장되는 오토니엘의 시선, 그리고 이로써 직조된 대형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아비뇽 교황청 대예배당의 천장을 수놓으며 처음 공개됐던 지름 4m 크기의 '코스모스(Cosmos)' 작품과 별자리를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황도 십이궁(Zodiac)' 연작이 장대한 우주의 질서를 펼쳐 보인다.
거대한 행성을 연상시키는 조각을 둘러싸고 궤도를 그리듯 배치된 열두 별자리는 미시적 존재인 인간과 거시적 세계인 우주를 연결하며, 사랑과 상처, 치유라는 개인의 서사가 결코 고립된 것이 아니라 우주의 보편적 질서 속에 놓여 있음을 일깨운다.
전시의 마지막은 유리 벽돌이 모듈로 기능하는 '원더 블록(Wonder Block)', '프레셔스 스톤월(Precious Stonewall)', '오라클(Oracle)' 연작 등이 장식한다.
오토니엘은 2010 년 인도의 작은 도시인 피로자바드(Firozabad)를 여행하던 중, 언젠가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흙벽돌을 하나씩 쌓아둔 현지 사람들을 마주했다. 이 경험을 통해 작가는 벽돌을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라 삶과 미래를 향한 희망의 기본 단위로 바라보게 됐고, 이러한 인식은 유리 벽돌을 작업의 핵심 모듈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유리 벽돌은 이번 전시에서 배치와 축적의 변주를 통해 새로운 조형으로 확장된다.
전시장 중앙에는 작가가 지금까지 선보인 것 중 가장 큰 규모의 '원더 블록' 설치를 소개한다. 높게 솟은 이 유리 벽돌 조각들은 마치 미로 속의 이정표처럼 자리하며 관람객을 그 안으로 이끈다.
문화재단 1963 관계자는 "삶의 미로를 지나온 끝에 오토니엘이 끝내 붙드는 것은 사랑이다. 그에게 사랑은 인간이 겪는 고통을 지우는 감정이 아니라 그것을 감싸 안고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며 "이번 전시는 그 사랑이 삶의 미로를 통과하게 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음을 나지막이 전한다"고 말했다.
한편 장-미셸 오토니엘은 1964년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태어나 현재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 IX에서 유황 조각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파리 팔레-루아얄–루브르 박물관역의 '야행자들의 키오스크(Le Kiosque des Noctambules)',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아름다운 춤(Les Belles Danses)', 루브르 박물관의 의뢰로 제작한 '루브르의 장미(La Rose du Louvre)' 등 주요 공공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 센터, 뉴욕 현대미술관, 서울 리움미술관,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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