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나 기자 duna@imaeil.com

기사

  • [창간 80, 격동 80] 유신의 종말, 신군부의 시작… 전두환과 하나회의 반란

    [창간 80, 격동 80] 유신의 종말, 신군부의 시작… 전두환과 하나회의 반란

    김재규의 총성은 유신정권의 종말을 알렸다. 시민들은 장기 집권자의 사망으로 민주화가 이뤄질 거라 꿈꿨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격동 속에서 기회를 엿본 자, 전두환의 등장 탓이었다. ◆ 하나회의 음모 1979년 겨울, 최규하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계 기관장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빈 대통령의 자리를 메꿔야 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인 최규하는 먼저 유신 헌법에 따라 일단 대통령을 선출하기로 한 뒤,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후 그는 긴급조치 9호 등 유신 헌법의 흔적을 지워나가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때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대통령의 죽음을 수습하는 합동수사본부(합수본)의 장을 꿰찼다. 합수본은 헌병과 검찰, 경찰과 중앙정보부 등 다양한 조직을 조정·감독하는 기관이다. 박정희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여러 기관의 협조가 필요해지자 마련됐다. 전두환은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군과 검경, 중앙정보부까지 모두 주무를 힘을 쥔 셈이었다. 당시 군 내부의 권력 정점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쥐고 있었다. 그는 계엄사령관으로서 대통령 사망에 연루된 중앙정보부와 대통령 경호실의 몸집을 줄이는 한편, 군 체제 개편에도 나섰다. 그는 이미 전두환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밑에는 비밀 사조직 '하나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다. ◆ 두 번째 군사 반란 정승화는 하나회 수장을 동해경비사령부로 발령시키고, 그 권력을 빼앗으려 했다. 전두환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하나회를 불러들여 정승화를 불법 연행하기로 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의 손에서 출발했다. 영남 출신인 동향끼리 모여 고민을 털고 술도 마시며 우정을 다졌다. 이들은 6개월만 교육받던 과거 육사 기수와 달리, 최초로 4년의 정규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넘쳤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이들이 뭉쳐야겠다고 생각한 하나회는 후배들을 영입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회는 1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 됐다. 이들은 정승화가 10.26 사태를 방조했다는 이유로 체포하기로 했다. 전두환은 "김재규와 함께 있으며 사건에 동조했다"거나 "돈을 받은 정황이 있다"고 죄를 뒤집어 씌웠다. 12월 12일, 거사 날이 밝았다. 전두환의 지시하에 보안사와 수도경비사령부가 움직였다. 이들은 예고도 없이 공관에 들이닥친 후 체포를 통보했다. 손에는 실탄이 장전된 총이 들려 있었다. 이상을 눈치챈 경호원과 군인들이 뒤늦게 들이닥쳤다. 반란군은 저항하는 이들에게 서슴없이 총을 겨눴다.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쓰러지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정승화는 결박된 채 눈앞에서 부하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끌려간 정승화는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육군참모차장 등 수뇌부는 이를 제지하고 나섰지만 이미 늦었다. 육군본부, 국방부에도 반란군이 점령한 상태였다. 결국 군의 지휘권은 반란군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 ◆ 천하를 주무르는 전두환 수뇌부를 모두 자신의 손아귀에 둔 뒤, 전두환은 정승화 체포 사후 재가를 받았다. 최규하는 재가를 꺼리다가도, 국방부장관의 설득에 넘어가 체포동의안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다. 단 10시간 만의 일이었다. 체포의 명분까지 확보했으니 쿠데타는 대성공인 셈이었다. 전두환은 반란을 함께한 이들에게 보상을 건넸다. 하나회 회원들을 수경사령관, 특전사령관으로 취임시켰다. 이듬해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하나회의 승승장구가 이어졌다. 대통령 비서실과 군 수뇌부에서 일하고 싶다면 무조건 하나회 출신이어야 했다. 18년간 이어진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지만 기대했던 민주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12·12 군사반란을 계기로 신군부가 권력을 잡았고, 또 다른 군사정권이 시작됐다.

    2026-08-21 14:05:00

  • [두나의 두발 산책] 붉은 옷의 곽재우, 대구 곳곳서 만난다

    [두나의 두발 산책] 붉은 옷의 곽재우, 대구 곳곳서 만난다

    조선의 복장을 한 군인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쓰러졌다. 대륙 침략의 꿈을 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은 왜군의 솜씨였다. 조총을 든 왜군을 활과 칼만으로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오합지졸이 된 조선군에게 15만 대군을 막아낼 방법은 없었다. ◆ 붉은 옷의 구세주 1592년 4월 22일, 이 소식을 들은 곽재우가 일어섰다. 과거에서 낙방한 뒤 벼슬길을 접고 은거하겠다고 다짐한 지 3년 만이었다. 처음부터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몰아내자는 그의 외침에 응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재산을 내놓고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렇게 그의 곁에 모인 사람은 점차 늘어 2천 명에 이르렀다. 의병들은 쓰러진 관군을 대신해 칼을 쥐었다. 선봉에 선 곽재우는 붉은 옷을 입고 '홍의장군'이 돼 전장을 누볐다. 의령과 현풍, 진주 일대까지 세력을 넓히며 왜군의 진격을 막고 백성들을 보호했다. 그는 홀로 적진에 들어가 위장전을 벌이거나 적의 뒤를 노리는 매복을 즐겼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장이었기에 지형을 활용한 전술은 누구보다 익숙했다. 결국 왜군은 그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힘을 잃고 물러섰다. 그를 칭송하는 시에는 '왜군을 노루 쫓듯 한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 화려함 대신 청렴함 곽재우는 왜군을 물리친 공으로 조정의 부름을 여러 차례 받았다. 하지만 당쟁에 휘말리며 한자리에서 오래 일하지 못했고, 인생 대부분을 산골에 은거하며 보냈다. 그의 삶을 닮은 듯 조용한 곳에 장군의 흔적이 있다. 달성군 구례마을 한쪽에 자리한 '예연서원'이다. 곽재우와 그의 재증손 곽준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여름을 맞아 잔디가 제법 높게 자랐지만,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흐트러뜨리지는 못했다. 사당 내부는 들여다볼 수 없지만 강당과 마당은 둘러볼 수 있다. 마당 곳곳에 자란 꽃나무가 사당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곳에는 귀가 솔깃해지는 전설도 전해진다.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세워진 거대한 신도비에 얽힌 이야기다. 곽재우가 죽어서도 나라를 걱정해 큰일이 닥치기 전에 비석이 땀을 흘린다고 알려졌다. 6.25전쟁과 1983년 버마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당시에도 비석에 땀이 맺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원에서 차로 20분가량 이동하면 곽재우 장군의 묘도 볼 수 있다. 도보로 찾아가기에는 거리가 있어 차량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선산에는 곽재우의 가족들이 함께 잠들어 있고, 그의 생애와 공적을 소개하는 작은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여러 봉분 가운데 유독 높이가 낮은 묘가 눈에 들어온다. 낮은 봉분 위 잔디는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곳이 곽재우의 묘다. 얼핏 초라해 보이는 모습은 장군의 유언을 따른 것이다. 죽거든 구덩이에 묻기만 하고 묘비도 세우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나라가 혼란한 상황에서 자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해 크고 화려한 묘를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의 청렴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 도심 속 애국의 흔적 달성군의 서원과 묘를 직접 찾기 어렵다면 도심 가까이에서도 곽재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그의 호를 딴 '망우당공원'이다. 공원에 들어서면 위풍당당한 모습의 곽재우 장군 동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붉은 옷을 입고 전장을 누볐던 홍의장군의 기세가 그대로 느껴진다. 공원에는 그의 호를 딴 망우당기념관도 자리하고 있다. 기록 속에 남은 장군의 초상화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 밖에도 곽재우 장군의 친필 서신과 전장에서의 기록을 만날 수 있다. 망우당공원에는 곽재우 장군의 흔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서슴없이 일어섰던 이들의 역사도 함께 남아 있다. 항일운동기념탑부터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을 기리는 비까지 자리하고 있다. 공원을 한 바퀴 천천히 걷다 보면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았던 이들의 역사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망우당 곽재우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 시작한 길이 시대를 넘어, 나라를 지킨 이들의 역사로 이어진다.

    2026-08-21 14:01:00

  • [창간 80, 격동 80] 1979년 10월 26일, 유신의 마지막 밤과 김재규

    [창간 80, 격동 80] 1979년 10월 26일, 유신의 마지막 밤과 김재규

    1979년 10월 26일 저녁. 엄숙하고 조용해야 할 궁정동 안가에 요란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향했고, 그 순간 18년간 이어진 유신체제는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총격 직후 김재규는 시신을 뒤로한 채 육군본부로 향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쐈다는 사실은 숨긴 채 사태 수습을 위한 계엄령 선포를 촉구했다. 그러나 주변 인물들이 상황을 눈치채면서, 김재규는 곧바로 체포됐다. 이듬해 그는 대통령을 시해하고 정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아 형이 집행됐다. 그렇게 김재규는 오랫동안 '정권 찬탈을 위해 대통령을 살해한 내란범'으로 역사에 남았다. 하지만 '내란범'이라는 이름만으로 김재규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0·26 사건과 그를 둘러싼 시대를 다시 들여다봤다. ◆ 폭발하는 불만 당시 18년째 집권하던 박정희의 심기는 편치 않았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 물가가 18% 이상 치솟고, 경제 성장을 이끌던 노동 계층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장기 집권에 불만을 가진 이들의 민주화 열기도 거셌다. 위기감을 느낀 박 대통령은 반대 세력의 주축인 김영삼의 총재직을 박탈하고 국회의원직까지 빼앗았다. 시민들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의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부마항쟁'의 시작이었다. 일반 시민들까지 힘을 보태면서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 신임을 잃다 부마항쟁을 두고 정권 내에서 긴장감이 조성됐다. 정권 말 두 사람이 종종 충돌했다는 증언이 전해지고 있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강경 대응하겠다"고 주장했다. 김재규 부장은 비교적 온건하게 대응하자고 맞받아쳤다. 두 의견을 들은 박정희는 결국 부마항쟁에 군 병력을 투입했다. 후일 그는 이 순간이 총을 들게 된 이유라고 변론한 바 있다. 그는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의 바람을 부르기 위해서"라며 "부마항쟁을 군대로 진압하자는 박정희를 보며 정권의 정당성을 잃었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김재규가 한참 후배인 차지철에게 충성경쟁에서 밀려나 거사를 결심했다는 설도 있다. 김재규는 사관학교 2기 출신으로 박정희의 동기였다. 두 사람 모두 구미 출신인 데다가, 교사로 일한 경력도 같아 마음이 맞았다. 박 대통령은 7살 어린 김재규를 각별하게 챙겼다. 군사 쿠데타가 성공한 이후에도 김재규를 요직에 심어두고 가까이 뒀다. 그런 박정희에게 김재규 역시 충성을 다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박정희의 신임을 잃기 시작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철이 꿰찼다. 그는 국정 전반에 개입하면서 대통령 비서실, 중앙정보부와 마찰을 빚었다. 박정희는 차지철의 행위를 묵인했다고 알려져 있다. ◆ 다시 쓰이는 평가 어떤 설이 정답인지 알 수 없지만 최근 김재규의 속뜻을 다시 파헤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김재규 유족이 지난 2020년 재심을 신청해서다. 그들은 김재규의 최후 변론에서 "국민의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내가 혁명을 한 것이다"고 진술한 것과, 절차의 부당성, 직접적 증거 부족을 근거로 들었다. 재심 요청은 지난해 받아들여졌다. 법원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수사하면서 수일간 구타와 전기고문 등의 폭행과 가혹행위를 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며 재심 결정 이유를 밝혔다. 재심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울린 총성은 47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김재규는 내란범이었는지, 민주화를 앞당긴 인물이었는지. 그날의 총성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다.

    2026-08-21 14:00:00

  • [MZ 연구소] 불안과 스트레스 달래주는 잇템… 역사 깊은 '워리스톤'

    [MZ 연구소] 불안과 스트레스 달래주는 잇템… 역사 깊은 '워리스톤'

    MZ세대의 가방에 주렁주렁 달린 장식품을 눈여겨본 적 있는가. 귀여운 캐릭터 인형이나 키링 사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약돌 하나가 눈에 띈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영락없는 돌멩이다. 왜 MZ세대는 조약돌을 들고 다니는 걸까. 이 조약돌은 '워리스톤(Worry Stone)'이라고 불린다. 불안하거나 긴장될 때 만지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워리스톤은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지지만 공통적으로 가운데가 손가락 모양에 맞춰 움푹 파여 있다. 이용자는 이 오목한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문지르며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손안에서 반복되는 단순한 움직임이 불안감을 덜어주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들어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스트레스 완화용 소품으로 이름을 알렸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워리스톤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양은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얼굴을 본뜬 제품부터 납작복숭아와 딸기 같은 과일, 하트와 꽃 등 개성 넘치는 디자인이 다양하다. 표면에는 바니쉬나 투명 매니큐어를 발라 매끈한 광택을 더하고, 키링처럼 가방에 달 수 있도록 고리를 부착하기도 한다. 스트레스 해소용 소품인 동시에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직접 만드는 재미도 워리스톤 유행의 한 축을 담당한다. 동성로 등 시내 소품숍과 공방에서 완제품을 구매할 수 있지만, 지점토를 이용해 자신만의 워리스톤을 만드는 이들도 늘고 있다. 먼저 지점토를 동그랗게 굴린 뒤 손가락이 닿는 가운데 부분을 자신의 손가락 크기에 딱 맞게 다듬는다. 이후 원하는 색을 칠하거나 반려동물의 얼굴, 좋아하는 캐릭터 등을 표현해 세상에 하나뿐인 워리스톤을 완성한다. 크기와 모양, 색상까지 모두 취향대로 정할 수 있어 '커스터마이징'을 즐기는 MZ세대의 성향과도 맞아떨어진다.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 필요한 재료는 지점토와 아크릴 물감, 바니쉬나 투명 매니큐어 정도다. 대부분 문구점이나 다이소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누구나 손쉽게 도전할 수 있다. 손재주가 부족한 사람들은 워리스톤 제작을 돕는 공방을 찾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만들기도 한다. 온라인 반응도 뜨겁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친구의 계정을 태그하며 "같이 만들자", "직접 만들어 선물해주고 싶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귀여운 캐릭터가 내 걱정과 불안을 몽땅 가져가줬으면 좋겠다", "계속 만지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반응도 이어진다. 단순한 돌멩이 하나가 스트레스를 달래는 도구이자 취향을 표현하는 소품, 친구와 마음을 나누는 선물로까지 의미를 넓혀가고 있다.

    2026-08-21 13:13:00

  • [방재직의 삶] '버티는' 재난 대응에서 벗어나야… 체계 바꿔야 안전 지킨다

    [방재직의 삶] '버티는' 재난 대응에서 벗어나야… 체계 바꿔야 안전 지킨다

    방재직 공무원들은 "재난은 앞으로 더 복잡해질 텐데, 대응 체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조직을 재정비하고, 현장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며, 숙련된 인력이 오래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예방·대응·복구 분담 가장 먼저 꼽은 과제는 인원 충원을 바탕으로 한 조직 개편이다. 현재 기초자치단체의 방재 업무는 소수의 인력이 재난 예방부터 대응, 복구까지 모두 담당하는 구조다. 업무 범위가 넓다 보니 재난이 장기화할수록 피로가 누적되고, 교대 근무도 쉽지 않다. A씨는 "구청 재난 부서를 '자연재난과' 등으로 격상하고 산하에 예방팀·대응팀·복구팀을 두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업무가 세분되면 자연스럽게 전담 인력도 늘어나고, 여러 명이 같은 업무를 맡아 장기 재난 상황에서도 교대 근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야 당장 인력 확충이 쉽지 않다면, 현장의 의견을 제도에 반영할 통로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D씨는 "현재는 상급 기관이 지침과 계획을 만들어 일방적으로 내려보내고, 기초 지자체는 이를 그대로 수행하는 역피라미드 구조"라며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것과 물리적으로 수행이 어려운 부분을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조율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사람이 남아야 재난도 막는다 숙련된 인력을 붙잡기 위해서는 꾸준한 신규 인력 유입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D씨는 "몇 년 동안 채용이 없다가 한꺼번에 많은 인원을 선발하는 방식은 수험생들이 채용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어 응시 의지를 떨어뜨리고, 우수 인재 확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매년 일정 규모를 꾸준히 채용해야 인력 공백을 줄이고, 기존 직원들의 업무 부담과 이탈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간 재난 업무를 맡은 직원들을 위해 순환근무 제도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재난 업무를 담당한 실무자는 일정 기간 행정복지센터 안전 담당직 등 상대적으로 긴장도가 낮은 부서에서 근무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C씨는 "방재 기획과 총괄 업무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며 "잠시라도 일상 행정을 맡으며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도 오래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 붙잡지 못하는 처우 수당 현실화와 인사 제도 개편도 공통된 요구였다. 방재직은 직렬 자체의 인원이 적다 보니 승진할 수 있는 자리도 제한적이다. 승진 여부 역시 각 구·군의 인력 운영 상황에 달려 있어, 무작정 개선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함께 재난 현장을 뛰는 다른 전문 직렬들이 승진할 때, 방재직 공무원들은 상대적으로 더딘 속도로 승진한다. 자연스럽게 임금 상승과 처우 개선도 늦어진다. 이들은 입을 모아 "월 20만 원 수준의 위험수당으로는 업무 강도와 책임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방·경찰과 마찬가지로 재난 현장에서 주민 안전을 지키지만, 위험에 대한 보상 체계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열악한 처우는 결국 인력 이탈로 이어진다. 사람이 빠져나가면 남은 직원들의 업무 부담은 더 커지고, 다시 새로운 인력이 들어오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A씨는 "승진이 더디다 보니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4~5년 차에 그만두는 직원들도 있다"며 "방재 기사 등 전문 자격을 가진 인력은 처우가 더 좋은 민간 안전관리 분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난은 앞으로 더 자주, 더 복합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현장을 지킬 사람이 남아 있어야 결국 주민의 안전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2026-08-14 13:32:00

  • [방재직의 삶] 늘어나는 재난, 부족한 방재 인력… 방재직 공무원의 현실

    [방재직의 삶] 늘어나는 재난, 부족한 방재 인력… 방재직 공무원의 현실

    ◆"30시간째 근무 중" 방재직 공무원의 하루 오전 7시 30분, 하늘이 심상치 않다. 일주일 전부터 예보된 비가 현실이 되려는 듯했다. 김영훈(가명) 씨는 단기 기상예보를 다시 확인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동안 휴식은 없다. 별 효과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중얼거린다. "제발 우리 지역에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이미 전쟁은 시작됐다. 기상청 자료를 토대로 예상 피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대응 매뉴얼을 회의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가공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구청 실무회의에 이어 행정안전부 영상회의까지 잇따라 열린다. 혹시라도 실수가 있을까 자료를 몇 번이고 검토하다 보면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전에 기운이 빠진다. 오후 2시, 비가 쏟아지자 상황실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된다. 방재직 공무원은 단 두 명. 현장에서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장 인력을 배치하고 CCTV로 하천 수위를 확인하는 동시에 재난문자와 대피 상황을 점검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고 전화가 빗발친다. 강물이 가게 앞까지 차올랐다는 신고, 도로가 침수됐다는 신고가 잇따른다.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상황실을 비울 수는 없다. 현장에 나간 직원들과 연락하며 상황을 파악하고 쏟아지는 신고 전화에도 응답해야 한다. 숨 돌릴 틈 없는 와중에도 영훈 씨는 속으로 되뇐다. "제발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다음 날 오전 6시, 드디어 비가 그쳤다. 대구는 큰 피해 없이 밤을 넘겼다. 출근길 시민들은 밤새 상황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재난 업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성과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설움도 덮치지만,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만약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면 죄책감은 물론, 사고 경위를 설명하는 조사에 짓눌려야 한다. 창밖에는 평온한 출근길이 이어진다. 그는 밤새 끝내지 못한 업무를 다시 펼쳐 들고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신다. "원래 일은 다 힘든 거니까." 재난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태풍과 홍수, 지진과 대형 화재, 붕괴, 대설은 물론 환경 오염과 가스 누출 등의 위험이 일상을 위협한다. 방재직 공무원은 위협에 맞서 한발 앞서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재난 대응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날 때만 주목받을 뿐, 평소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은 재난 현장의 최전선에서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를 견디고 있다. 평상시에는 예방 활동과 시설 점검을 이어가고, 재난이 발생하면 밤을 지새우며 현장을 지킨다. 인력 부족 속에서 기후변화로 더욱 잦고 복합적인 재난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구 구·군에서 근무하는 방재직 공무원 4명에게 그 현실을 들어봤다. ◆ 큰 책임, 작은 힘 풍수해로 인한 피해를 막는 방재직 A씨는 "과중한 책임에 비해 권한이 크지 않다"고 꼬집었다. A씨는 여름철마다 불법 고무 덮개로 골머리를 앓는다. 상인들이 가게 앞 하수구에서 벌레나 악취가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고무 덮개를 임의로 덮어두는데, 이는 엄연한 불법 행위이며 폭우 시 도심 침수를 유발한다. 다만 이 덮개들은 사유물이다. 공무원들이 비가 오기 전에 임시로 '걷어 놓는 것' 외에 아예 강제로 압수하거나 폐기·철거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 할 수 있는 건 계도, 눈에 보이는 덮개는 열어두는 일뿐이다. A씨는 "비 예보가 뜨면 공무원과 민간 방재단 인력들이 넓은 달서구 전역을 돌며 무거운 고무 덮개들을 일일이 손으로 걷어내야 한다"며 "비가 그치면 상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하수구를 덮어버려 이 씁쓸한 사투가 매번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 평시에도 바쁠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 모호한 재난의 경계 방재직 공무원 B씨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절, 어디까지가 방재 업무인지조차 모호해진 현실을 실감했다. 당시 경찰로부터 협조 요청이 들어왔다. 청소년 20여 명이 한곳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신고였다. 원래라면 경찰이 담당할 사안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경찰은 각종 사건·사고 현장을 오가며 시민들과 접촉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감염 위험을 최소화해야 했다. 자칫 감염되면 다른 현장에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 때문에 현장에 적극 개입하기 어려웠고, 집합금지 여부를 확인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권한을 가진 구청이 대신 나서야 했다. 결국 B씨는 별다른 호신 장비도 없이 현장으로 향했다. 수십 명의 청소년을 강제로 해산시킬 방법이 없어 "여기서 모이면 안 된다"며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재난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방재직 공무원도 예상하지 못했던 업무가 계속 생겨난다"고 말했다. ◆ 불어나는 업무 이처럼 업무는 갈수록 불어난다. 여기에 현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지침까지 더해지면서 부담은 고스란히 일선 공무원들에게 돌아간다. 방재직 공무원 C씨는 현재의 인력 구조를 '역피라미드'라고 표현했다. 행정안전부 등 상급 기관은 재난 업무가 여러 부서로 세분돼 담당자별로 업무가 나뉘어 있다. 반면 일선 구청으로 내려올수록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업무는 점점 많아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태원 참사 이후다. 참사를 계기로 상급 기관에는 다중 인파 밀집 사고를 전담하는 조직이 신설되고 관련 지침도 잇따라 마련됐다. 하지만 일선 구청의 인력은 그대로였다. 기존 업무를 수행하면서 다중 인파 관리 업무까지 추가로 맡게 된 것이다. C씨는 "상급 기관에서는 여러 담당자가 분야별로 지침을 만들지만, 구청에서는 그 수많은 지침을 한 사람이 모두 숙지하고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급 기관의 지침은 업무 부담을 더 키운다. 행정안전부는 침수 시 지하차도를 신속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지자체 ▷행정복지센터 ▷경찰 ▷민간 관계자 등 4명의 담당자를 지정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또 비상 상황에 즉시 연락할 수 있도록 모든 담당자의 개인 연락처도 제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경찰의 경우 교대근무를 하므로 담당자가 수시로 바뀐다. 휴무로 자리를 비우는 특정 경찰관의 개인 연락처로 연락하는 것보다, 24시간 운영되는 상황실 연락처를 활용하는 것이 현장에서는 훨씬 현실적이다. 대구 한 구·군에서 자연재난 업무를 담당하는 D씨는 "상급 기관을 설득해 겨우 개인 연락처 대신 상황실 연락처를 기재할 수 있었다"며 "안전을 위해 담당자를 지정하는 제도는 필요하지만, 제도 운영도 현장 여건에 맞게 유연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메울 수 없는 빈자리 인터뷰에 응한 방재직 공무원들은 한목소리로 '인력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재난 업무는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특성이 있지만, 평소 인력은 이를 감당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 결국 일반 행정직 공무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지난달 대구시와 9개 구·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상시 재난 상황실을 운영하는 곳은 모두 7곳이다. 이 가운데 행정안전부가 권고한 '2인 1조 4교대' 기준을 충족하는 곳은 대구시와 중구뿐이다. 나머지 구·군은 권고 인원을 지키지 못했다. 대부분의 구·군은 당직실의 지원을 받아 재난에 대응하고 있다. 대구 서구의 인사 담당자는 "행안부 권고 기준에 미달하는 대신 도시안전망 CCTV나 오픈채팅방 등을 적극 활용해 신속한 상황 접수와 보고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향후 조직 부서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인력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방재직 공무원은 자리를 비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재난은 상황마다 양상이 달라 현장의 경험과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재난 상황에서는 팀장 역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실무자의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숙련된 인력의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 실제로 숙련 인력의 공백은 대체 인력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구시와 9개 구·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육아휴직 등으로 공석이 된 방재직 자리는 모두 2석이었다. 하지만 두 자리 모두 휴직 기간 동안 대체 인력을 채용하지 않은 채 공석으로 운영됐다. ◆ 쉬어도 쉬는 게 아니야 쉬지도 못한 채, 끊이지 않는 긴장감에 시달린다. 오랫동안 방재 업무를 맡아온 C씨는 쉬는 날에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내가 관리하는 구역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지자체에 안전관리 책임을 묻고, 담당 공무원 역시 경찰 수사와 각종 감사 대상이 돼서다. 설령 형사처벌을 받지 않거나 최종적으로 면책 결정을 받더라도 부담은 끝나지 않는다. 사고 이후 이어지는 감사와 감찰, 그리고 자신의 업무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방대한 해명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까지 모두 담당자의 몫이다.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이 같은 절차 자체가 극심한 피로감과 심리적 압박으로 이어진다. 방재직 공무원의 업무는 '끝'이 분명하지 않다. 근무시간에는 재난을 대비하고, 퇴근 후에도 혹시 모를 사고에 마음을 졸인다. 실제 재난이 발생하면 잠을 줄여가며 현장을 지키고, 사고가 지나간 뒤에는 책임을 떠안는다. 방재직 공무원들은 재난의 처음부터 끝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

    2026-08-14 13:30:00

  • [MZ 연구소] 샤워의 재발견… 몸·마음 힐링 위한 특별한 샤워

    [MZ 연구소] 샤워의 재발견… 몸·마음 힐링 위한 특별한 샤워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 준비와 미래에 대한 고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지친 MZ세대는 어떻게 쉴까. 이들은 그 답을 '물'에서 찾고 있다. MZ 세대에게 사우나는 목욕과 힐링, 먹거리까지 즐길 수 있는 복합 놀이공간이다. 주말을 이용해, 친구와 함께 온종일 사우나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몸을 씻기 위해서가 아니라, 쉬고 놀기 위해 사우나를 방문하는 셈이다. 사우나 속에서는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떨어진 채 온전히 휴식을 누릴 수 있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들고갈 수 없고, 땀을 흘리고 물을 마시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없다. 1~2만원이면 이용할 수 있는 데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MZ세대에게 사우나는 특별한 공간이다. 일상적으로 목욕탕과 찜질방을 드나들며 자란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명절 때만 가끔 찾던 곳이었고, 코로나19 유행 이후 많은 사우나가 문을 닫으면서 더욱 낯선 공간이 됐다. 오히려 이 같은 낯섦이 새로운 휴식 공간으로서의 매력을 키웠다. 개인적 시간을 중요시하는 MZ 세대의 특성에 맞춘 신세대 사우나도 등장했다. 이른바 나 홀로 사우나다. 1시간~1시간 30분 동안 개인 탕과 찜질방을 이용할 수 있는 구조다. 일반 사우나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먹을거리와 세신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일반 사우나보다 비싼 이용료를 내야 하지만, 벗은 몸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어 젊은 층의 수요가 늘고 있다. 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친밀한 가족과 함께 이용하기도 한다. 최소한의 비용과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다크샤워'도 떠오른다. 불을 모두 끈 채로 몸을 씻는 방식이다. 혹은 부드러운 주황색 조명을 켠 채로 라벤더향을 피우거나,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몸을 씻는다. 자기 전 시각적 자극을 최소화하면 심신의 안정을 얻을 수 있고, 수면의 질이 높아진다고 알려져서다. 실제로 어두운 환경에서 달빛에 가까운 조명을 보면 멜라토닌이 분비된다. 수면 조절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규칙적으로 분비될수록 건강한 수면이 가능하다. 실제로 다크샤워를 해봤다는 SNS 'X' 이용자들은 "불을 끄니 세면도구가 어디 있는지 헷갈려 고생했지만, 새로운 경험이라 즐거웠다"며 "은은한 조명 밑에서 샤워하며 명상을 하기도 한다"고 후기를 나눴다. 다만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지거나 가구에 부딪힐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정도의 조명을 켜둬야 한다. 향초를 사용할 때는 화재 위험이 없는지 확인하고, 환기도 충분히 하는 것이 좋다. 너무 익숙해 특별할 것 없던 '샤워'가 이제는 MZ 세대에게 가장 새로운 휴식이 되고 있다. 끊임없이 연결되고, 쉼 없이 자극받는 시대에 MZ들은 지쳤다. 이들은 화려한 여행이나 비싼 취미보다 잠시 세상과 거리를 두는 시간을 통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고 있다.

    2026-08-14 11:50:00

  • [두나의 두발 산책] 시를 품고, 독립을 외치다… 앞산 '시인·애국의 길'

    [두나의 두발 산책] 시를 품고, 독립을 외치다… 앞산 '시인·애국의 길'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쉼터인 앞산. 가벼운 마실을 나서듯 오를 수 있는 '시인, 애국의 길'이 있다. 천천히 숲길을 걷다 보면 아름다운 풍경은 물론, 대구경북에서 태어난 위인들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산 이들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엮어낸 산책길을 걸어봤다. ◆ 앞산에서 만난 시인 낙동강 승전기념관부터 앞산 케이블카까지 이르는 짧은 길에 대구경북의 역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기념관에서 출발하면 가장 먼저 두 시인을 만나볼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앞산 일대에 무장애길을 조성하는 중이라, 두 기념비는 가까이서 관람하기가 어렵다. 먼발치에서 '이윤수 시비'를 둘러봤다. 울퉁불퉁한 돌에 선명한 검은 글자로 그의 삶과 시 '파도'가 새겨져 있다. 시비에 적힌 구절 "헤아려도 헤아려도 헤아릴 수 없는 인간 삶의 사랑과 슬픔과 고뇌의 씨앗들, 파도 되어 밀려온다"는 구절을 되뇌며 주변을 맴돌았다. 호가 석우인 이윤수 선생은 대구 출신 시인이다. 1938년 일본 시단을 통해 등단한 그는 평생 시 창작에 몰두했다. 멋스러운 옷차림과 건장한 체구, 나이가 든 이후에도 잃지 않은 열정으로 잘 알려졌지만 무엇보다 시를 향한 열정이 남다른 이였다. 그 열정으로 국내 최초의 순수 시 전문지 '죽순'을 대구에서 창간했다. 시를 널리 알리고 오래 기억되도록 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달성공원에 대구 출신 민족시인 이상화를 기리는 시비를 세웠는데, 이는 전국 최초의 시비였다. 이전까지는 시인을 기리는 시비를 세운 사례가 없었던 만큼, 우리나라 시비 문화의 시작을 연 셈이다. 이윤수 시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호우 시비가 자리 잡고 있다. 여름철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 속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은 시비다. 이곳에는 이호우 시인의 대표 시 '개화'가 새겨져 있다. 시인은 1912년 청도에서 태어나 일본 동경 예술 대학에 유학을 다녀왔다. 1940년 시조 '달밤'으로 등단하고, 매일신문에 근무하며 수많은 칼럼을 썼다. 영남 시조 문학회의 초대 회장을 맡거나, 전국 예술 단체 총연맹을 만들어 민족 문학을 부흥시키는 데도 관심을 가졌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56년 제1회 경상북도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새겨진 항일의 역사 작고 짧은 다리를 건너 낙동강승전기념관을 지나면 애국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념관 바로 위에는 수풀에 가린 붉은 벽돌 탑이 언뜻 보인다. 편의점 뒤로 돌아서서 수풀 속으로 들어가면, 우재 이시영 선생의 항일 투쟁을 기리는 기념비가 고고하게 서 있다. 이시영 선생은 대구에서 태어나 독립운동가다. 대한광복회를 조직한 후 전국 각지와 베이징, 만주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항일 운동의 동력을 만들어냈다. 그의 모습을 본 안창호 선생은 "마치 날개가 달린 호랑이 같다"며 극찬했다. 비와 바람에도 끄덕없을 듯한 기념비의 모습에서 호랑이 같은 기개가 느껴지는 듯했다. 졸졸 흐르는 개울 소리를 따라 다음 코스로 발을 옮겼다. 탁탁 발을 구를 때마다 도망치는 벌레들의 뒤를 쫓아 산을 올랐다. 개울에서 흐르는 차가운 바람과,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밑으로 걷다 보니 더위도 조금 가셨다. ◆ 흉상이 전하는 굳은 의지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송두환, 임용상 선생의 흉상이 있었다. 송두환 선생은 1892년 당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는데,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귀향한 후 항일 비밀 결사단을 꾸렸다. 신배달회라 불리는 조직은 대구를 거점으로 항일 운동을 펼쳤다. 국산품을 장려해 독립심을 키우는 동시에,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무기를 모았다. 임용상 선생은 경북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다. 그는 주로 무장 항일 투쟁의 선봉장을 밭았다. 일본군이 주재한 곳을 직접 덮쳐 독립을 부르짖거나, 직접 의병을 꾸려 움직였다. 그 혐의로 10개월 동안 감옥에서 옥살이한 뒤에도, 청송과 의성에서 일본군을 무찌르며 독립심을 다졌다. 끝내 그는 징역 1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기에 이른다. 이들의 꿋꿋한 삶을 보여주듯 흉상 속 두 선생은 굳건한 표정으로 방문객을 맞이했다. 특히 임용상 선생의 흉상에는 거미줄이 잔뜩 드리워져 있었지만, 형형한 눈빛만큼은 조금도 빛을 잃지 않았다. 일제의 탄압에도 꺾이지 않았던 독립 의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 앞을 쉽게 지나칠 수 없어 한동안 흉상 앞을 서성였다.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마실이었다. 하지만 다섯 사람의 삶을 돌아보고 대구경북의 역사를 되새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여름철 계곡을 찾아 앞산에 올랐다면, 시원한 물길을 따라 '시인, 애국의 길'도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짧은 산책이 예상보다 오래 마음에 남을지도 모른다.

    2026-08-14 11:30:00

  • [데이터로 보는 세상] 늘어나는 온열질환자… 폭염은 재난이 됐다

    [데이터로 보는 세상] 늘어나는 온열질환자… 폭염은 재난이 됐다

    두세 걸음만 내딛어도 땀은 줄줄, 기력은 쭉쭉 빠진다. 에어컨을 끄기가 무서운 더위가 찾아왔다. '살인적인 더위'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단순 비유가 아니다. 작열하는 태양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무더위는 얼마나 더 심각해졌을까. 최근 3년 동안의 데이터로 살펴봤다. ◆ 늘어나는 폭염 피해 질병관리청이 매년 발표하는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신고현황 연보'에 따르면, 온열질환자 수는 증가 추세다. 2023년 2천818명이던 온열질환자는 2024년 3천704명, 2025년 4천460명으로 치솟았다. 매년 20~30%씩 늘어난 셈이다. 추정 사망자 수는 2024년에 소폭 증가했다. 2023년 사망자는 32명, 2024년 사망자는 34명이었다. 작년 추정 사망자는 29명으로 소폭 줄었다. 가장 최근인 2025년 통계를 보면, 온열질환 피해는 특정 계층과 환경에 집중됐다. 4천460명의 79.7%가 남성이었고, 50대가 19.4%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60대가 18.7%, 30대가 13.6%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오 이후에 환자가 집중됐다. 한낮의 복사열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간대로, 야외 작업이나 외부 활동이 많은 사람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시간대다. 오후 3~4시에 481명으로 가장 많았고, 오후 2~3시가 438명이었다. 오후 4~5시와 정오부터 오후 1시 사이에도 각각 400명가량 피해를 봤다. 온열질환자는 주로 야외 환경에서 근무하는 이들이었다. 실외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1천431명이었다. 또 논과 밭이 542명, 길가가 522명, 기타 실외가 445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직업군별로 살펴봤을 때, 단순 노무 종사자는 1천160명으로 전체 온열질환자의 26%였다. 무직자는 589명(13.2%)으로 그 뒤를 이었다. 외부 활동이 많은 농림어업 숙련 종사자도 348명으로 상당수를 차지했다. ◆ 증가세 가파른 대구경북 지역별로는 경기도의 피해자가 가장 많았다. 경기도의 온열질환자는 978명으로, 전체 21.9%나 차지했다. 그 뒤를 경북(436명), 경남(382명)이 이었다. 특광역시의 경우 서울이 378명으로 가장 많았고, 인천이 280명, 울산이 188명 순이었다. 전국적으로 온열질환자가 늘어난 가운데 대구·경북의 증가세는 더욱 가팔랐다. 특히 지난해에는 두 지역 모두 환자가 큰 폭으로 늘며 폭염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다. 두 지역을 합친 경북권 전체 환자 수는 2024년 357명에서 2025년 576명으로 약 61.3% 증가했다. 전국 평균 증가율인 20.4%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대구광역시의 환자 증가가 눈에 띈다. 2024년 67명이던 환자는 작년에 2배 이상 늘어, 총 140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열탈진을 호소한 이가 82명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열사병 22명, 열경련 22명, 열실신 10명, 기타 4명 순이며 사망자는 없었다. ◆ 경북, 작년 사망자 4명 경북은 단순 환자 수로 전국 2위를 차지한 가운데, 인구 대비 피해자 수도 많았다. 2025년 기준 경북의 인구 10만 명당 온열질환자 수는 16.9명으로, 전남(21.4명)에 이어 울산과 함께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발생 빈도였다. 경북에서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는 작년에 4명이었다. 논과 밭에서 2명, 산에서 1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한 명은 주거지 주변 실외에서 사망했다. 여름은 해마다 찾아오지만 폭염의 강도는 예년과 같지 않다. 숫자는 더위가 얼마나 위험해졌는지, 또 누가 가장 먼저 그 피해를 떠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대구·경북은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증가세를 보였다. 이제 폭염은 견디는 문제가 아니라 예방하고 대비해야 할 재난이 됐다. 야외 작업자와 농업 종사자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폭염 특보에 맞춘 작업시간 조정과 충분한 휴식 등 실질적인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2026-08-14 11:30:00

  • [MZ 연구소] 스마트폰에 '피처폰' 감성 더하는 MZ… 히퍼와 줄이어폰

    [MZ 연구소] 스마트폰에 '피처폰' 감성 더하는 MZ… 히퍼와 줄이어폰

    지금보다 훨씬 더 작은 화면에, 꾹꾹 눌러볼 수 있는 물리 버튼까지. 지금의 스마트폰과는 사뭇 다른 '피처폰'만의 감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건 폰꾸였다. 귀여운 핸드폰 케이스를 끼우는 것뿐만 아니라, 휴대폰 모양에 꼭 맞는 스티커를 붙이고 스트랩을 달았다. 이어폰을 꽂을 수 있는 구멍에 먼지가 들어가는 걸 막는 '먼지마개'에 피규어를 달아 꾸미기도 했다. 폰꾸 유행은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조금 사그라들었다. 스마트폰은 화면이 크고 버튼이 간소화된 만큼 꾸밀 수 있는 면적도 좁다. 휴대폰에 뚫린 구멍도 모두 사라졌다. 꾸밈의 영역이 케이스로 한정되면서, 폰꾸 시장은 케이스 제작과 판매로 한정됐다. 올해 상반기에 과거 유행이 되살아났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 뒤에서 빼꼼 바라보는 듯한 피규어 '히퍼'가 등장해서다. 뒤에서 보면 핸드폰에 귀여운 캐릭터가 대롱대롱 매달린 듯한 모양이라 귀여움을 자아낸다. 히퍼는 납작한 배 부분에 접착제를 발라 둬 어디든 찰싹 붙는다. 화장품 뚜껑이나 책상 모서리에 붙이는 경우도 있다. 캐릭터 브랜드는 유행을 놓치지 않았다. 헬로키티, 소니엔젤을 비롯한 유명 캐릭터의 히퍼가 잇따라 등장했다. 여기에 프로야구 구단인 한화이글스까지 구단 대표 캐릭터를 활용한 히퍼를 출시하며 20대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무선 이어폰의 등장 이후 모습을 감췄던 줄이어폰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충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고, 음질도 훨씬 깨끗해서다. 무선 이어폰만큼 무겁지도 않아 들고다니기도 편하고, Y2K 감성을 불러모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줄이어폰을 이용하는 이들은 SNS를 통해 "이어폰을 엉키지 않게 하기 위해 바지와 가방에 묶는 식으로 꾸밀 수 있어 좋다"거나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자면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줄이어폰은 그럴 걱정이 없어서 좋다"고 후기를 남기고 있다. 줄이어폰도 꾸밈의 대상이 된다. 개성있는 네일 스티커와 큐빅을 붙이거나, 줄을 화려한 장식으로 도배해 자신만의 이어폰을 만들곤 한다. 또 실타래에 실 대신 줄이어폰을 감아 키링으로 활용하거나 귀여운 주머니에 엉키지 않게 담아 보관하고 있다. 수요에 발맞춰 줄이어폰도 다양한 모양으로 출시됐다. 무대 위 가수가 끼는 '인이어'와 비슷하게 생긴 인이어 이어폰이 그 중 하나다. 다른 이어폰보다 귀에 꽂는 부분이 커 스티커를 붙여 꾸미기가 수월하다. 스마트폰은 모두 비슷한 모양이지만, 꾸미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다. 한때 먼지마개와 스트랩이 그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히퍼와 줄이어폰, 작은 장식들이 자신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가 됐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과거의 폰꾸는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2026-08-07 13:13:00

  • [두나의 두발 산책] 도주 중 달콤한 휴식터… 왕건과 지명 산책

    [두나의 두발 산책] 도주 중 달콤한 휴식터… 왕건과 지명 산책

    급박한 대피길이었지만 숨을 돌릴 순간도 있었다. 왕건은 견훤의 추격을 피해 산자락 곳곳에 몸을 숨기며 잠시나마 휴식을 취했다. 그 흔적은 지금도 대구 곳곳의 사찰과 지명에 전설처럼 남아 있다. ◆ 은적사 왕건은 걷고 또 걸어 지금의 남구 봉덕동 일대까지 이르렀다. 패전의 충격에 며칠째 이어진 도주로 몸과 마음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몸을 숨길 곳이 필요했다. 주위를 살피던 왕건의 눈에 대나무숲 너머 작은 굴 하나가 들어왔다. 큰 바위 두 개가 비스듬히 겹친 틈에 만들어진 좁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축축하고 비좁았지만 처지를 가릴 형편은 아니었다. 왕건은 몸을 웅크린 채 견훤의 군대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마침 굴 앞에 거미가 실을 늘어뜨리며 내려왔다. 이후 자신의 집을 짓고자 열심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건은 거미의 집 짓기를 방해하지 않고 계속 숨을 죽였다. 때마침 안개도 짙게 끼기 시작했다. 잠시 뒤 굴 앞을 지나던 견훤의 군사들은 거미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안으로 사람이 들어갔을 리 없다고 판단했다. 굴 안을 확인하지 않은 채 발길을 돌렸고, 왕건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굴 안의 물을 마시며 사흘 동안 숨어 지냈다고 한다. ◆ 안일사 굴에서 벗어난 왕건은 도중에 만난 작은 샘에서 갈증을 달랬는데, 이 샘이 오늘날 '왕정'으로 전해진다. 왕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작은 사찰이 있었다. 사찰 주변을 절벽이 두르고 있고, 숨을 만한 굴도 있어 안전한 곳이었다. 이곳에서 비로소 몸을 누이고 쉬었다고 해 절 이름도 '안일사'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안일사에서 조금 더 가면 '임휴사'가 나온다. 왕건이 대구를 거의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마음 놓고 쉬어 갔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팔공산 일대가 까마득히 멀어진 뒤여서다. 잠시 숨을 고른 왕건은 이후 성서와 달성군 일대를 거쳐 성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알쏭달쏭 안지랑에 얽힌 이야기 왕건의 도주와 관련해 안지랑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왕건이 안일사 인근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 견훤이 바로 코앞까지 추격해 왔다. 견훤을 '지렁이의 아들'이라 부르던 설화와 연결해, '왕지렁이'가 '안지랑이'로 변했다는 해석이다. 또 왕건이 이곳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머물다 떠났기 때문에 '안지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이 같은 설화가 정설은 아니다. 안지랑의 맑은 계곡물을 마시면 기운을 되찾아 걷지 못하는 사람도 일어설 정도였다고 해, '앉은뱅이'에서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도 함께 전해진다. ◆ 지금의 은적사 고려로 돌아간 왕건은 거미가 줄을 치던 굴로 돌아왔다. 고승 영조대사에게 굴 근처에 절을 지어달라고 명령했다. 왕건은 자신이 숨었다는 의미를 담아 '은적(隱蹟)'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은적사는 앞산공원 깊숙한 곳에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산공원 입구에서 20~30분은 걸어야 한다. 그 전까지 비교적 매끄럽게 닦여 있던 땅은 앞산 케이블카 인근부터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이전보다 훨씬 우거진 풀을 구경하며 깎아지듯 높게 솟은 언덕을 올라야 한다. 돌로 된 옹벽 위에 은적사가 고고하게 서 있다. 그다지 큰 절은 아니지만, 깊은 역사를 지닌 절이다. 입구 근처를 맴돌자 은은한 향냄새가 풍겨왔다. 오래된 절에서 풍겨오는 엄숙한 분위기에 절로 숨을 죽이게 됐다. 대웅전 왼쪽에는 왕건이 몸을 숨겼다는 굴이 남아 있다. 여름철이라 우거진 나무와 달려드는 벌레를 피해 잠시 구경해볼 수 있다. 굴 안에는 작은 불상이 왕건이 머물렀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왕건의 도주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도시의 일부로 남아 이어져왔다. 역사는 책 속에서만 남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지명과 매일 걷는 길 위에도 천 년 전 한 왕의 발자취가 스며 있다.

    2026-08-07 12:45:00

  • [데이터로 보는 세상] 탈시설 장애인, 기초수급자 ↑ 만나는 사람 ↓…

    [데이터로 보는 세상] 탈시설 장애인, 기초수급자 ↑ 만나는 사람 ↓… "지속 가능한 탈시설 필요"

    인간은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길 바란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도 그 꿈을 안고, 시설 바깥으로 한 발짝을 내딛었다. 이들은 성공적으로 바깥 삶에 정착했을까. 정착을 위해 더 필요한 건 없을까. 물음에 답하기 위해 대구시 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에서 대구시 관할 거주 시설을 퇴소한 장애인들을 조사했다. 작년 9월과 10월에 조사를 진행했으며, 퇴소 후 지역 사회에 정착한 장애인 135명이 그 대상이다. ◆ 오랜 시설생활 끝에 자립 조사 결과 응답자 중 56.3%가 지적 장애인이었다. 뇌병변장애 22.2%, 정신장애 9.6% 순이었다. 특히 타지역과 달리 '노숙인 시설'에 있다가 퇴소한 이들이 32.6%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시설에서 머무르다가 퇴소를 결심했다. 응답자의 51.1%가 20세 미만에 시설에 입소했다고 응답했다. 당시 입소의 주된 원인은 돌봄의 부재로, '가족 및 주변에 돌볼 사람이 없어서'가 38.5%를 차지했다. 이후 시설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이들의 시설 평균 거주기간은 24.9년에 달했다. 그렇다 보니 자립의 이유도 독립적 삶에 대한 열망이었다. 이들은 자립의 이유로 '단체생활이 아닌 혼자 살고 싶어서'(68.9%)라고 응답했다. 자립 이후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다. 일상생활에서의 '삶에 대한 선택과 결정'에 대한 만족도가 특히 높게 나타났다. 또 외출 빈도도 잦았다. 거의 매일 외출한다는 응답이 74.8%에 달했다. ◆ 고립 우려 심화 다만 도움 없이는 생활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주를 이뤘다. 응답자의 83.0%가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또 일상생활 지원의 79.3%, 여가활동 동행의 62.2%를 활동지원사에게 의탁하는 상황이었다. 서비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자 중 50.4%가 '서비스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또 평균 152.2시간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주변 지인들과의 사회적 교류도 잦지 않은 편이었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은 평균 2.3명이지만, 21.5%는 지인이 '한 명도 없다'고 답했다. 특히 정신장애인은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1.77명으로 가장 적었다. 또 응답자의 40.0%는 '중요한 물건을 맡길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응답했다. 친밀하게 교류하는 이가 없는 만큼, 자립 지원 인력에게 심하게 의존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 경제와 건강, 현실의 벽 응답자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빈곤한 상태였다. 94.1%가 기초생활수급자이며, 평균 월 소득은 122.4만 원, 월 생활비는 72.4만 원이었다. 응답자의 93.3%가 생활비 지출 항목 중 '식료품비'를 가장 지출이 많은 항목으로 꼽아, 저축 등 자산 형성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재산 관리를 스스로 하는 비율은 42.2%에 불과하며,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는 이들 중 75.6%가 활동지원사나 코디네이터 등 전담인력의 도움을 받고 있다. 만성 질환의 유병률도 높았다. 응답자의 74.8%가 만성질환이 있으며 그 가운데, 79.3%가 관련 약을 먹고 있었다. 또한 한 달간 의료기관 이용률은 72.6%에 달했다. ◆ 현장 "퇴소 후 관리체계 필요" 현장 종사자들은 이러한 자립 장애인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자립 장애인의 고립을 막고,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장애인 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의 기능 강화를 주문했다. 퇴거 이후에도 복지관 등 인근 기관과 연계해 안부를 확인하고, 낮활동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이들은 의료 정보 접근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봤다. 시설 퇴소 과정에서 당사자의 과거 병력, 약물 복용 기록 등 필수 의료 정보가 현장에 제대로 인수인계되지 않아 초기 자립 시 시행착오를 겪어서다. 시설을 떠난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활동 지원과 의료, 사회적 관계망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단순히 퇴소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갖추는 게 필요한 때다.

    2026-07-31 13:13:00

  • [MZ 연구소] 주파수와 사주·타로… 샤머니즘에 푹 빠진 MZ

    [MZ 연구소] 주파수와 사주·타로… 샤머니즘에 푹 빠진 MZ

    "2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쭉 이것만 들었어요. 2주 차에 연락 왔네요. 기 받아가세요". 알쏭달쏭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대체 어떻게 재회에 성공했다는 걸까. 그 비결은 주파수다. 주파수 영상은 염원하는 것을 이뤄진다는 일종의 미신이다. 특정 주파수의 소리와 함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벌레 소리, 물 흐르는 소리나 클래식이 함께 흘러나온다. 이 소리를 들으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믿음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연애를 성공시켜 준다거나, 헤어진 연인과 재회할 수 있다는 내용의 주파수가 먼저 인기를 끌었다. 이 영상을 본 뒤 원하는 걸 이뤘다는 '간증' 댓글까지 이어졌다. 영상들의 조회수가 높아지니 비슷한 영상이 쏟아졌다. '부자가 되는 금전운 주파수', '기분 좋은 소식이 붙는 주파수'가 뒤이어 제작됐다. 그중에서도 최근 인기를 끈 건 '아이돌처럼 예뻐지는 주파수'다. 장원영, 카리나 등 여자 아이돌 중에서도 MZ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돌처럼 될 수 있다는 홍보 문구를 달았다. 영상 제작자는 '잘 때 들어야 효과가 있고, 계속 틀어 놓아야 성공 확률이 높다'는 사용법으로 MZ들을 유혹하고 있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번진 샤머니즘 열풍은 타로 콘텐츠로도 이어졌다. 이제는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타로점을 볼 수 있는 시대다. 방식은 간단하다. 영상을 재생하면 여러 장의 카드가 화면에 펼쳐지고, 마음이 끌리는 카드 한 장을 선택한다. 이후 제작자는 각 카드의 의미를 차례대로 설명하고, 시청자는 자신이 고른 카드의 해석만 들으면 된다. 주제도 다양하다. 연애운과 재물운, 건강운은 물론 인간관계와 진로, 올해의 운세까지 원하는 분야의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자신의 미래가 궁금해 영상을 찾는 이들도 있지만, 차분한 목소리와 잔잔한 분위기를 수면 콘텐츠나 힐링 콘텐츠처럼 소비하는 시청자도 적지 않다. MZ들의 샤머니즘 사랑은 점차 확장되고 있다. 최근 SNS인 X에서는 무료로 사주를 볼 수 있는 사이트가 화제됐다. 일부 사이트는 10대의 가장 큰 궁금증인 진학 대학을 맞춘다고 입소문이 났고, 홈페이지 방문자의 수가 대폭 늘어나 한동안 접속할 수 없기도 했다. 사주를 간단히 분석한 뒤 그 결과를 AI에 입력해 맞춤형 상담을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무료 사주 사이트에서는 건강운이나 대운 등 기본적인 해석만 제공하는 경우가 많지만, AI는 이용자의 질문에 맞춰 추가 설명을 이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해 운이 좋다는데, 로또에 당첨될 가능성도 있는 건가?", "이동수가 있다는데 집을 옮기는 건지, 회사를 옮기는 건지 알려달라"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면 이에 맞는 해석을 제시하는 식이다. 이런 콘텐츠가 실제 미래를 예측한다는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MZ세대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주파수를 듣고, AI에게 사주를 묻고, 온라인 타로를 뒤적인다. 점술은 더 이상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켜면 언제든 소비할 수 있는 일상의 콘텐츠가 됐다.

    2026-07-31 12:20:00

  • [두나의 두발 산책] 패전의 아픔 달래기도 잠시… 왕건의 계속되는 도주

    [두나의 두발 산책] 패전의 아픔 달래기도 잠시… 왕건의 계속되는 도주

    아끼는 부하들을 잃었다. 남은 건 패전의 상처를 깊게 입은 소수의 군사뿐이었다. 왕건은 부하들을 잃은 곳에서 멀지 않은 산에 올랐다. 패전했지만 왕을 살린 산이라 해, 훗날 이 산은 '왕산'이라 불리게 됐다. 머릿속에는 후회와 미안함, 두려움이 어지럽게 얽혔다. 시끄러운 속을 잠재우고자 왕건은 평평한 돌 위에 홀로 앉았다. 이 일화에서 '독좌암'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독좌암 아래 마을도 자연스레 '독암마을'이라 불리게 됐다. 부하들의 기지로 잠시 적을 따돌렸지만, 왕건에게 시간은 많지 않았다. 남은 이들의 목숨이라도 지켜야 했다. 바위에서 몸을 일으킨 왕건은 남은 부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휴식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터 부지런히 걸어야 견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아이들만 남은 마을 산을 벗어나 마을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지만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언제 적군이 나타날지 알 수 없었고, 주민들 역시 낯선 군사를 반길 처지가 아니었다. 왕건 일행은 눈에 띄지 않게 길을 골라 이동했을 것이다. 한참을 달리던 이들은 산 아래 마을의 풍경과 마주했다. 흔히 생각하는 마을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어른은 보이지 않고 어린아이들만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전쟁은 군대끼리만 싸우는 일이 아니다. 민간인도 전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수 있었고, 적에게 식량이 넘어가는 것을 막고자 마을을 불태우기도 했다. 두려움에 떨던 주민들은 마을을 버리고 도망쳤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아이들만 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늙은이가 없는 동네'라는 이름의 불로동 지명을 얻었다. ◆ 괴목나무 아래 닭 괴전동은 공예품 재료로 쓰이는 괴목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이후 송전동과 합쳐지면서 지금의 괴전동이 됐다. 영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곳도 왕건과 인연이 있다는 설이 있다. 괴전동은 과거 '괴은골', '괴동' 등 유사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중 눈길을 끄는 건 '계명동'이라는 별명이다. 닭 계(鷄)자를 써 괴목나무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왕건은 팔공산을 빠져나와 이곳을 지나다가 새벽닭 울음소리를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온다는 신호였다. 왕건은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다시 길을 재촉했고, 사람들은 그 일을 기억해 이곳을 계명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 새벽 반달 아래서 안심 적군이 언제 들어 닥칠지 모르니 쉴 수가 없었다. 오랜 도주로 몸이 축축 늘어져도 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결국 밤을 새워 남동쪽으로 도망쳤다. 겨우 왕건은 숨을 고르고 하늘을 바라봤다. 새벽녘 하늘에는 반달이 걸려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도망쳤으니, 이제야 안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반야월과 안심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 ◆ 홀로 남은 독좌암 도주로의 시작이던 독좌암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봉무정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위치는 지금과 달랐다. 과거에는 봉무정 아래 개천 남쪽에 있었지만, 도로가 들어서면서 북쪽으로 옮겨졌다. 사람 네댓 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랗고 평평한 바위였다. 표면에는 오랜 세월이 남긴 퇴적층의 줄무늬가 선명했다. 홀로 앉아 부하들을 생각했을 왕건 대신, 산을 뛰노는 고양이가 바위 위에 올라타 여유를 즐겼다. 긴박했을 피난의 이미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바위 주변으로는 봉무정 아래 개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길을 따라 걸으면 농구장, 분수대가 있는 위남공원과 파크골프장 등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 이어진다. 천 년 전 왕건이 목숨을 걸고 지나간 길은 이제 시민들의 평범한 산책길이 됐다. 전쟁의 함성은 사라졌지만, 그날의 흔적은 독좌암과 왕산, 불로동, 괴전동, 반야월, 안심이라는 이름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2026-07-31 12:02:00

  • [취재현장-정두나] 선거에 필요한 레시피 노트

    [취재현장-정두나] 선거에 필요한 레시피 노트

    퇴근 후 유일한 낙은 직접 만든 요리를 먹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대접할 만큼의 솜씨는 아니지만 내 입에만 맛있으면 될 일 아닌가. 먹고 싶은 요리의 레시피를 수집해 공부하고, 나만의 개성을 더해 완성한다. 먹기 전 자랑을 위한 사진 촬영도 빼놓을 수 없다. 설거지와 뒤처리까지 할 일이 산더미지만, 유일한 취미를 놓치긴 싫다. 멋들어진 음식 뒤편에는 누덕누덕한 '레시피 노트'가 있다. 천원짜리 공책에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괴발개발 글씨체로 요리법을 수정한다. '유튜브, 블로그에서는 당근을 채소와 함께 넣으라고 함. 직접 해보니 당근을 가장 먼저 넣는 게 나을 듯' '다음 번에는 물 대신 우유를 넣어보기 도전'. 종이를 찢어버리고 새롭게 쓰는 게 더 깔끔하겠지만, 수정을 고집한다. 예전에 어떤 실수를 했는지를 알아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서다. 여러 개의 요리법을 합쳐 보고, 수차례의 시도와 기록이 쌓인 뒤 비로소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아쉽게도 이 당연한 법칙이 선거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선거는 오지선다 중 단 1개의 답만 고르고, 나머지 선지는 모두 빨간 펜으로 '틀림' 표시를 한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 낙선인은 소리 소문 없이 지워진다. 선거 기간 내내 거리마다 걸려 있던 공약은 철거되고, 온라인에 넘쳐 나던 게시물도 금세 뒤로 밀린다. 다음 선거에 다시 출마하더라도, 사람들은 처음 보는 후보인 양 그를 마주한다. 공약을 후보자의 '버킷리스트'로 보고 미련 없이 지우면 곤란하다. 우리 지역의 출퇴근길이 왜 막히는지, 아이를 맡길 곳이 왜 부족한지, 청년이 왜 떠나는지, 노인이 왜 불편한지에 대한 진단이다. 후보들은 저마다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해법을 제시해 뒀다. 같은 문제에도 해법은 여러 가지다. 교통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도로를 넓히거나 지하철역을 짓는 것만이 아니다. 마을버스를 늘릴 수도 있고, 대중교통 노선을 손보는 방법도 있다. 낙선인의 공약을 살펴보면, 다양한 선택지를 공부할 수 있다. 그 기록은 시간이 쌓일수록 더 큰 의미가 있다. 오래된 공약을 보면 4년 전 지역의 핵심 현안이 무엇인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는지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연대기를 참고해 더 나은 공약을 내놓을 수도 있고, 어떤 후보의 공약이 더 좋은지 판단하기도 쉽다. 지역의 문제를 담아낸 기록을 쉽게 버리지 말자. 좋은 레시피가 수많은 메모 끝에 완성되듯 좋은 정책도 축적된 기록 위에서 더 단단해진다. 낙선인과 당선인,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지역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서로 다른 기록이다. 취재하며 씁쓸한 이야기를 들었다. "낙선인의 공약을 살펴보는 일, 정말 중요합니다. 잘 정리해 공개하면 당연히 좋죠. 그런데 솔직히 당선인의 공약조차 제대로 보지 않는 사람이 많잖아요." 기사를 다 쓴 후에도 계속 곱씹게 되는 말이다. 공약보다 사람을, 정책보다 정당을 먼저 보는 문화가 여전히 강하다. 당선인의 공약조차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데, 낙선인의 공약에 시선을 돌리자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을까. 어쩌면 한발 앞선 주문일지도 모른다. 먼저 선거의 무게 추를 공약으로 옮겨와야 한다. 사람을 선택할 때 무엇보다 공약을 먼저 살피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낙선인의 공약을 지역의 기록으로 남기자는 제안도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더 나은 선택으로 나아가는 선거가 되길 바란다.

    2026-07-27 05:30:00

  • [MZ 연구소] MZ 놀이터 된 냉동실… '얼먹' 열풍

    [MZ 연구소] MZ 놀이터 된 냉동실… '얼먹' 열풍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먹어온 젤리와 과자가 질렸다면? MZ세대는 냉장고에서 새로운 답을 찾고 있다. 익숙한 간식에 음료나 과일을 더해 얼리거나, 조합을 바꿔 새로운 식감과 맛을 만드는 '얼먹(얼려 먹기)' 레시피가 SNS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 사실 얼려 먹는 문화 자체는 낯설지 않다. 아이스크림은 물론, 작은 요구르트나 음료를 냉동실에 넣어 먹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잘 벗겨지지 않는 플라스틱 용기를 이로 뜯다가 입안을 다치기도 하고, 손에 녹지 않게 급하게 먹던 기억도 익숙하다. 원하는 모양대로 초콜릿을 짜서 얼려 먹는 제품처럼 '얼려 먹는 재미'를 앞세운 간식도 오래전부터 판매돼 왔다. 달라진 점은 기성품을 그대로 얼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얼먹' 메뉴는 젤리다. 가까운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젤리와 사이다만 사 오면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 넓은 밀폐용기에 젤리를 펼쳐 담은 뒤 바닥이 살짝 잠길 정도로 사이다를 부어 냉동하면 완성된다. 다만 사이다를 너무 많이 넣으면 젤리 본연의 단맛이 옅어질 수 있어 적당한 양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왜 젤리를 그대로 얼리지 않고 사이다를 넣는 걸까. 사이다의 단맛이 더해질 뿐 아니라, 기존의 쫄깃한 식감 대신 바삭하게 부서지는 색다른 식감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수분이 더해지면서 잇몸이 아플 정도로 딱딱하게 얼어붙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테이프처럼 길게 이어진 젤리를 여러 겹으로 접어 얼리거나, 레몬즙이나 사과즙을 넣어 신맛을 더하는 등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맛과 식감이 달라지는 만큼, 젤리가 얼기를 기다리며 기대감을 키우는 것도 하나의 놀이다. 유행은 젤리를 넘어 다른 음식으로도 번졌다. 그릭요거트와 요거트는 물론 샤인머스캣, 수박 같은 과일, 초콜릿이나 초코 과자까지 냉동실로 향한다. 평범했던 간식도 얼리는 순간 색다른 식감과 맛을 내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맛있거나 독특한 조합을 발견하면 SNS에 영상을 올린다. '이 안아픈 젤리 얼먹.zip(모음집을 의미하는 말)', '얼먹하기 좋은 과자 TOP 4', '얼먹 젤리 100% 성공법'이라는 이름으로 레시피가 공유되고 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다시 따라 하며 후기를 남기는 방식으로 특정 레시피가 입소문을 탄다. '얼먹' 열풍은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돼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나의 레시피가 입소문을 타면 비슷한 조합이 잇따라 등장하고, 또 다른 재료를 더한 새로운 얼먹이 탄생한다. 익숙한 간식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즐기려는 호기심과 직접 만들어 공유하는 재미가 만나, 냉동실이 새로운 간식 실험실로 변하고 있다.

    2026-07-24 13:27:00

  • [두나의 두발 산책] 도망쳐라, 뒤에 견훤이 온다… 왕건과 지명 산책

    [두나의 두발 산책] 도망쳐라, 뒤에 견훤이 온다… 왕건과 지명 산책

    공산 전투는 오래전에 막을 내렸지만, 그 흔적은 아직 대구 곳곳에 남아 있다. 왕건의 패주와 견훤의 추격, 병사들의 함성과 비명이 스며든 지명들은 천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도 당시의 치열했던 전장을 증언하고 있다. 살내천 일대에서는 견훤과 왕건의 군사들이 사활을 걸고 칼을 맞댔다. 둘 중 하나가 무너져야 끝나는 전쟁이었다. 팔공산 자락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전선은 이리저리 출렁이며 엎치락뒤치락했다. ◆ 패배는 고개 이름을 남기고 이 과정에서 '나팔고개'가 이름을 얻었다. 고려군이 고개 너머에 진을 친 후백제군을 향해 나팔을 불었다는 설, 반대로 후백제군이 고려군을 포위하며 진격의 나팔을 울렸다는 설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어느 쪽이든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수많은 병사가 갑옷을 부딪치며 고개를 내달렸을 것이다. 전선은 이제 동화사와 파계사로 올라가는 갈림길로 옮겨졌다. 고려군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와 후백제군에게 맞섰으나 참담히 패배한다. 장수들은 후백제 군의 칼에 목숨을 잃었고, 겨우 목숨을 부지한 이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며 도망쳤다. 이들 고려군이 파했다고 해 고갯길은 '파군재'라고 불리게 됐다. 그때 고려군의 잔당을 해치우던 후백제군의 눈이 번뜩였다. 고려군의 수장인 왕건이 보이지 않아서다. 그를 비롯해 충직한 신하 신숭겸과 김락도 자취를 감췄다. 그들의 목을 베어내지 않으면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을 터였다. 후백제군들은 이미 피로 얼룩진 칼을 쥐고 수장들을 찾아 나섰다. ◆ 대신 죽는 충신들 도망치던 왕건을 충직한 신하들이 붙들어 세웠다. 자신들이 짜낸 마지막 묘책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군사를 통솔하는 왕의 상징인 겉옷을 벗긴 뒤, 신숭겸 장군이 자신의 옷과 바꿔 입혔다. 자신이 왕건의 행색을 하고 적을 유인할 테니 그사이 몸을 피하라는 뜻이었다. 김락 등 충직한 장수 몇 명도 뜻을 함께했다. 몇 번의 손짓 끝에 영락없는 왕의 무리가 완성됐다. 신숭겸 일행은 달음박질치며 후백제군을 유인했다. 눈이 벌게진 후백제군은 계책에 속아 넘어갔고, 왕건과는 점점 멀어졌다. 결국 신숭겸과 김락 등은 추격해 온 적들에게 모두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의 왕은 살아남았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 지혜로운 계책이 나온 곳이라 해 지금의 '지묘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왕을 살리고 대신 죽음을 택한 이는 모두 여덟 명이었다. 사람들은 이들의 충절을 오래도록 잊지 않았다. 그래서 공산은 또 다른 이름을 얻었다. 여덟 공신의 넋을 기린다는 뜻에서, 대구와 경북 지역을 두루 껴안은 산이 오늘날 '팔공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 산책길 된 도주로 팔공산 자락에는 왕건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왕건길'이 있다. 왕건의 행적을 담아 조성한 길로, 총 8개 테마 코스로 구성돼 있다. 이 기나긴 숲길의 시작점은 '신숭겸장군 유적지'다. 공산전투에서 왕건을 대신해 목숨을 바친 신숭겸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으로, 장군의 영정과 순절비가 자리하고 있다. 유적지에서 산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대곡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길목에서는 등산을 즐기는 주민들뿐 아니라 완만한 오솔길을 가볍게 달리는 자전거 이용객들도 마주칠 수 있다. 길이 어렵지 않다보니, 사람들은 가벼운 차림으로 부채질을 하며 산을 오른다. 오랜 세월 동네 사람들의 산책로이자 쉼터 역할을 해온 친숙한 길이다. 숲길을 지나 마침내 전망대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인다. 눈앞에는 팔공산 능선과 함께 왕건이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자락이 한눈에 펼쳐진다. 지금은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이지만, 천여 년 전 이곳에서는 왕건과 견훤의 군대가 험준한 산세를 타고 넘으며 목숨을 건 격전을 벌였을 것이다.

    2026-07-24 13:22:00

  • [창간 80년, 격동 80년] 말 한마디가 죄, 긴급조치의 시대

    [창간 80년, 격동 80년] 말 한마디가 죄, 긴급조치의 시대

    1975년 대한민국은 '긴급'이라는 이름 아래 숨을 죽여야 했다. 대통령의 긴급조치가 잇따라 발동되면서 국민의 기본권은 뒤로 밀려났다. 긴급조치는 유신체제를 지키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 유신이 낳은 권한 긴급조치의 출발점은 유신헌법이었다. 1972년 10월, 박정희는 장기 집권을 위한 발판으로 유신헌법을 만든다. 정부는 안보 위협과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국가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기 집권을 위한 제도 개편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당시 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지지 세력이 뭉치면서, 연임을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방법은 단 하나였다. 편법을 벌여야 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을 '간선제'로 뽑기로 했다. 대통령의 연임 제한도 없앴다. 반면 국회의 국정감사권은 폐지됐고, 연간 회기 역시 150일 이내로 제한됐다. 거꾸로 대통령의 권한은 대폭 확대됐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긴급권'인 긴급조치였다. 대통령이 국가의 안전이나 공공질서 유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국민의 기본권과 사법 절차까지 제한할 수 있었다. 대통령을 견제하던 장치들도 긴급조치 앞에서는 속수무책 힘을 잃었다. ◆ 긴급조치의 칼날 첫 번째 긴급조치는 1974년 내려졌다.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신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이 확산하자 박정희 정권은 이를 강하게 억제하기 시작했다.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개정·폐지를 주장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했다. 이어 발표된 2호는 위반자를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하도록 했다. 정부는 북한의 위협과 불안한 국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조치는 실제 처벌로 이어졌다. 서명운동을 주도했던 장준하와 백기완 등이 구속됐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에도 각계 인사와 대학생들이 잇따라 체포돼 법정에 섰다. 같은 해 발표된 긴급조치 4호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과 관련 단체 가입, 집회 참여 등을 금지하고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야당은 곧바로 맞섰다. 긴급조치 1호와 4호의 해제를 요구하는 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정권을 압박했다. 결국 같은 해 8월과 12월에는 긴급조치 5호와 6호가 발표되면서, 기존 긴급조치가 해제됐다. ◆ 이어지는 일상 통제 사태는 종식되지 않고 1975년까지 이어졌다. 대통령이 긴급조치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한,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1975년 4월 8일 선포된 긴급조치 7호는 고려대학교를 겨냥했다. 당시 고려대 학생들은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유신헌법 철폐를 외치며 전방위적으로 정권을 압박했다.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를 꺼내 들며 그들에게 철퇴를 내린다. 7호는 고려대학교를 정조준했다. 휴교를 명하고, 학교 내 집회와 시위를 전부 금지했다. 조치를 위반할 때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영장 없이 체포와 구금이 가능했다. 조치가 시작되자 고려대학교 앞은 을씨년스러워졌다. 철모와 총을 든 군인들이 교문을 에워싸고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 달여 뒤인 5월 13일 긴급조치 8호로 7호는 해제됐지만, 곧바로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됐다. 9호는 가장 광범위한 긴급조치였다. 정부는 국가 안전과 공공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헌법을 부정하거나 개정을 주장하는 행위, 학생들의 집회와 시위 등을 모두 금지했다. 영장 없는 체포와 구금, 압수수색도 허용됐다. 술에 취해 "유신헌법은 독재를 위한 헌법"이라고 말하거나, 가족의 죽음에 격분해 대통령을 욕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었다. 이 때문에 "막걸리만 마시고 말실수를 해도 잡혀간다"며 긴급조치 9호를 '막걸리 보안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9호 조치는 4년 7개월간 이어진다. 긴급조치의 피해자만 1천140명이고, 이 중 970여 명은 9호 조치의 피해자로 알려져 있다. ◆ 뒤늦은 위헌 결정 긴급조치에 대한 법적 평가는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뒤집혔다. 2013년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1호와 2호, 9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긴급조치는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 긴급조치는 국민의 신체와 인신의 자유, 행복 추구권과 적법 절차에 따른 형사처벌 원칙 등을 위배하거나 과도하게 제한한 불법행위라고 해석했다. 이로써 긴급조치로 인해 전과자가 됐던 이들은 기록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됐다. 2022년 대법원은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후 유신 철폐를 요구하다 불법 체포·구금된 이철우 목사 역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긴급조치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수많은 시민을 범죄자로 만들었고, 일상의 말과 행동까지 통제했다. 국가의 잘못은 뒤늦게 인정됐지만, 그 상처와 흔적은 오랫동안 남았다.

    2026-07-24 13:21:00

  • [데이터로 보는 세상] 나이 따라 달라지는 대구 관광지도… 20대 수성못·60대 수목원

    [데이터로 보는 세상] 나이 따라 달라지는 대구 관광지도… 20대 수성못·60대 수목원

    같은 대구를 둘러봐도 세대마다 마음을 빼앗기는 장소는 제각각이다. 도심 속에서 활기찬 활동을 찾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연과 역사 속 여유를 좇는 이들도 있었다. 세대별로 선호하는 관광지와 최근 떠오른 '핫플레이스'에는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한국관광 데이터랩의 세대별 관광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 차이를 알아봤다. 데이터랩은 티맵 등 내비게이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기 있는 대구 관광지의 순위를 매겨 공개하고 있다. ◆ 남녀노소 찾은 인기 명소 전체 연령대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관광지는 EXCO 서관이었다. EXCO는 각종 박람회와 전시, 콘서트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전체 검색량의 9.6%를 차지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콘텐츠를 갖춘 점이 높은 순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2위는 이월드(8.1%)였다. 놀이기구와 야간 경관 등 다양한 즐길 거리를 갖춘 대표 레저시설로, EXCO와 비슷한 수준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그 뒤로는 수성못(7.1%)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6.7%)가 이름을 올렸다. 도심 속 휴식 공간과 스포츠 관람 시설은 꾸준히 사랑받으며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꼽혔다. ◆ 연령 따라 달라진 관심사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관광지 선호도는 뚜렷하게 갈렸다. 20대가 가장 많이 검색한 관광지는 수성못이었다. 이어 2·28기념중앙공원,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이월드 순으로 나타났다. 2·28기념중앙공원의 높은 순위는 동성로와 가까운 주차시설 이용 수요가 반영된 결과로 추정된다. 20대는 전반적으로 도심 속 휴식 공간과 활기찬 놀거리, 데이트 명소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롯데시네마와 CGV, 메가박스 등 영화관이 상위 30위 안에 다수 포함된 점도 특징적이다. 접근성이 좋고 즉각적인 문화·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에 관심이 집중된 셈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활동성이 높은 관광지에 대한 선호는 점차 낮아졌다. 30대는 각종 박람회와 전시가 열리는 EXCO 서관(10.3%)을 가장 많이 찾았다. 문화생활을 즐기면서도 실용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수요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40대는 자녀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 장소로 관심이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국립대구과학관이 4위(5.0%)로 급부상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구간송미술관과 삼국유사테마파크 등 교육과 체험을 겸할 수 있는 관광지도 상위권에 올랐다. 가족 단위의 나들이 수요가 큰 영향으로 추정됐다. 50대와 60대 이상에서는 자연 친화적인 휴식 공간이 강세를 보였다. 50대부터 옥연지송해공원과 대구수목원이 최상위권으로 올라섰고, 60대 이상에서는 대구수목원(9.8%)과 옥연지송해공원(9.5%)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이전 연령대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던 동화사와 파계사 등 사찰도 상위권에 포함됐다. 60대 기준으로 동화사는 4위, 파계사는 10위에 올랐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종교시설과 역사 공간에서 여유를 찾으려는 수요가 커진 것으로 해석된다. 또 순위표에는 다수의 골프장이 등장했다. 도심 한복판의 문화·여가 공간보다 외곽에서 자연을 즐기며 머무를 수 있는 관광지로 관심이 옮겨가는 모습이다. ◆ '뜨는 곳'도 세대차 그렇다면 최근 들어 관광객이 가장 빠르게 늘어난 곳은 어디일까. 올해 5월 기준 최근 3개월과 비교한 결과, 20~40대에서는 영화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CGV대구', 'CGV대구스타디움', 'CGV대구죽전' 등이 핫플레이스 상위권에 오르며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문화생활을 일상 가까이에서 즐기려는 젊은 세대의 수요가 집중된 결과로 보인다. 반면 60대 이상 핫플레이스 순위에는 영화관이 단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남평문씨본리세거지(1위·127.3% 성장), 사유원(3위), 대구간송미술관(6위), 도동서원(8위) 등 역사·문화·자연 자원을 갖춘 관광지의 검색량이 증가했다. 데이터는 단순히 어느 관광지가 인기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세대마다 도시를 소비하는 방식과 관광에 기대하는 가치가 얼마나 다른지도 함께 드러낸다. 이는 특정 관광지 몇 곳의 흥행만으로는 도시 전체의 관광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화·여가 시설과 체험형 콘텐츠, 자연·역사 자원이 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관광자원을 균형 있게 육성하는 것이 앞으로 대구 관광이 풀어야 할 과제로 보인다.

    2026-07-17 14:30:00

  • [두나의 두발 산책] 대구 지명의 뿌리를 찾아서… 왕건과 지명 산책

    [두나의 두발 산책] 대구 지명의 뿌리를 찾아서… 왕건과 지명 산책

    매일 지나치는 익숙한 지명 속에는 1천 년 전 태조 왕건의 '절체절명의 탈출로' 역사가 담겨 있다. 왕건과 견훤의 군대가 팔공산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며, 대구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지금은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과거 이곳은 치열한 전쟁터였다. 전쟁의 서막부터 그 사연을 좇아보자. ◆ 경주를 삼킨 견훤 시계를 927년 후삼국 시대로 돌려보자. 당시 고려와 신라는 손을 잡고 후백제를 압박하려 했다. 이에 맞선 후백제의 견훤은 거세게 반격하며 판을 뒤집으려 했다. 견훤은 이대로 무너질 수 없었다. 그는 신라를 정조준했다. 문경과 영천을 차례로 휩쓴 뒤 마침내 경주로 진격했다. 다급해진 신라는 고려의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왕건은 군사를 이끌고 경북으로 향했다. 그러나 견훤이 한발 빨랐다. 경주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군대에 짓밟힌 백성들은 피할 틈도 없이 쓰러졌다. 견훤은 경애왕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몰아붙였고, 경순왕을 강제로 왕위에 앉혔다. 이어 경순왕의 친족들을 포로로 끌고 가며 성대한 귀향길에 올랐다. 왕건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목표는 단 하나, 돌아가는 견훤 군대의 뒤통수를 치는 것. 지금의 팔공산 동화사 인근에 군사를 매복시켜 두고, 그가 방심하는 순간 단숨에 끝장을 낼 생각이었다. 신라의 왕은 이미 죽었다. 견훤이 여기서 더 덩치를 키운다면, 다음 차례는 고려일지 모른다. 왕건의 눈에는 살기마저 서려 있었다. 바야흐로 '공산 전투'의 시작이었다. ◆ 무태, 왕의 한마디 돌아가는 후백제군을 덮치려면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했다. 왕건은 기동력이 뛰어난 기병들을 중심으로 군을 꾸렸다. 그리고 고려의 왕인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섰다.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한순간에 적을 집어삼키기 위해서였다. 왕건은 진군하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적진이 멀지 않다. 한눈팔지 말고 서둘러 나아가자.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고, 견훤의 군대를 끝장내자". 왕의 외침에 병사들은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들이 '게으르지 말라(무태)'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행군했고, 그 군사들의 발길이 닿은 곳이 훗날 '무태'라는 지명을 얻게 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 전장에 스민 독서, 연경동 '경전을 연구한다'는 뜻의 '연경동' 지명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왕건의 군대가 이 일대를 지나던 때였다. 그의 귀에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비들이 경전을 읽으며 학문을 닦는 소리였다. 견훤의 군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장한 채 진군하던 왕건에게 그 낭랑한 독서 소리는 깊은 인상을 남긴 듯하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 기억이 오늘날 '연경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됐다고 한다. ◆ 살내가 된 동화천 전쟁은 왕건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견훤과 왕건은 지금의 태조지로 불리는 산자락에서 크게 맞붙었지만, 승기는 견훤에게 기울었다. 신라를 짓눌렀던 그 기세 그대로 후백제군은 고려군을 거세게 밀어붙였고, 예상 밖의 공세에 왕건은 결국 후퇴를 결심한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했다면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왕건은 지금의 동화천 일대에서 군열을 가다듬으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강 건너편에는 견훤의 군대가 눈에 살기를 품은 채 진을 치고 있었다. 두 군대는 천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맞섰다. 화살과 창이 빗발치고, 누가 쫓고 누가 쫓기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천을 따라 떠내려온 화살이 강물을 뒤덮을 만큼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천을 '살내'라 불렀다. ◆ 과거 전장, 이제는 쉼터 지금의 동화천은 격전의 기억이 무색할 만큼 평화롭고 고요하다. 한때 피 냄새가 짙게 배었을 물가에는 은은한 물비린내만 맴돌고, 팔공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에는 화살 대신 작은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친다. 낮은 물결이 흐르는 천변에는 소금쟁이와 왜가리가 노닌다. 강변에 자라는 억새 상에는 조잘조잘 떠드는 듯 새들이 풀을 간지럽히는 소리가 난다. 주민들은 가볍게 달리거나 천변에 마련된 운동 기구에 앉아 몸을 푼다. 장미가 피어나는 계절이면 산책로는 붉은빛으로 물들고, 밤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져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한때 왕건이 목숨을 걸고 달아나야 했던 동화천은 이제 사람들의 산책길과 쉼터로 쓰이고 있다. 공간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동화천처럼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또 다른 지명들에도, 아직 들춰보지 못한 왕건의 흔적과 이야기가 남아 있다. (다음 주 계속)

    2026-07-17 13:13:00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지난 6·3 국회의원 보궐선거 유세 중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하정우 부산 북구갑 지역위원장이 부산경찰청의 불송치...
글로벌 가구기업 이케아(IKEA)가 대구 신세계백화점 8층에 대구 첫 매장을 내달 중순 개장할 예정이다. 이 매장은 1천586㎡ 규모로, 대...
30대 남성 사진기사가 서울 중구의 웨딩홀 여성 탈의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10여명의 이용객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
일본에서 21일 오사카의 파친코 가게 방화로 5명을 살해한 다카미 스나오의 사형이 집행되었으며, 이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정권 하에서 첫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