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의 두발 산책] 전국 도매상 몰리던 대신동 양말골목, 오늘날의 모습은
대신동에서 남산동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비좁은 길목이다. 무심코 지나치려는 순간, 발길을 붙잡는 건 작고 알록달록한 색동 양말이다. 양말을 매대에 가득 펼쳐놓은 가게들이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즉석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 양말부터 전국 각지로 유통될 양말 묶음이 골목 곳곳에 쌓여 있다. 오로지 양말만을 파는 독특한 거리. 대구 양말골목의 과거와 현재를 걸어봤다. ◆ 최대 100곳… 양말가게 전성기 골목의 역사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제일모직 등 유명한 섬유·직물 업체들이 북구 일대에 자리 잡았던 시기다. 대신동은 양말 재료를 빠르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고, 대구·경북 상권의 중심인 서문시장과도 가까웠다. 양말 장사에 최적의 입지를 갖춘 셈이었다. 그렇게 양말골목은 빠르게 성장했다. 전성기에는 이 작은 골목에만 100여 개 업체가 모여 있었다. 전국으로 유통되는 양말 상당수가 이곳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값싸게 양말을 대량 구매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골목은 자연스럽게 손님의 발길을 끌어모았다. 손님은 일반 소비자에만 그치지 않았다. 전국 전통시장과 마트, 문구점 상인들이 양말을 떼가기 위해 골목을 찾았다. 아예 숙소를 잡고 이틀 동안 물건을 고르는 도매업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 전성기 지나 조용해진 골목 지난 12일 찾은 대신동 양말골목은 다소 한산했다. 평일인데도 휴일처럼 조용한 분위기였다. 한때 100곳이 넘었던 양말 가게 가운데 지금 남은 곳은 15곳 남짓. 이날 문을 연 곳은 10곳에 불과했다. 양말 가게 대신 카페나 채소 가게가 들어서면서 골목의 정체성도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 특히 남산동 방향에 있던 30개가 넘는 점포들은 재개발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매일 양말을 신는다. 그런데 왜 양말골목을 찾는 이들은 줄었을까. 섬유산업의 쇠퇴는 골목에 직격탄이 됐다.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한 대형 양말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산업 구조도 크게 바뀌었다. 과거 공장에서 기술을 익힌 이들이 소규모 공장을 차려 사업을 이어가는 형태로 변했다. 수출 시장 축소도 이유 중 하나다. 과거에는 저렴한 인건비와 생산 단가 덕분에 해외 주문이 많았지만, 지금은 경쟁력이 예전만 못하다. 자연스럽게 양말 골목의 주 고객도 해외가 아닌 내수 시장이 됐다. 교통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도시철도 3호선 서문시장역 개통 이후 유동 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예전에는 역에서 내려 서문시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양말골목을 지나갔지만, 이제는 골목을 거치지 않아도 이동이 가능해졌다. 통행량 감소는 곧 소매 손님 감소로 이어졌다. 1988년부터 양말골목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김모(62) 씨는 "전성기와 비교하면 매출이 3분의 1 수준이다"며 "여름에는 덧신조차 신지 않고 샌들을 신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장사가 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상인들은 골목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손님들이 많이 찾는 여름용 덧신을 가게 앞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차곡차곡 쌓아두며 말을 이었다. 김씨는 "그래도 먹고살 만큼은 수익이 난다"며 "30년 넘게 지켜온 가게인 만큼 앞으로도 계속 자리를 지켜나갈 생각이다"고 했다. ◆ 골라보는 재미 남은 오늘날 쇠퇴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골목에는 여전히 다양한 양말이 빼곡했다. 원하는 디자인이 없다면, 대량으로 제작을 의뢰할 수도 있다는 안내판이 방문객을 반겼다. 골목을 지나가는 이들은 큰 노력 들이지 않고도 온갖 종류의 양말을 한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다. 등산용 양말부터 무지 양말, 형형색색의 패션 양말, 레이스가 달린 패션 양말이 판매대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통풍 기능이 강조된 제품, 발가락 양말, 면 양말 등 기능성을 강조한 양말도 손쉽게 볼 수 있다.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질감과 디자인을 비교하며 둘러보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직접 양말을 집어 들고 만져보니 품질 차이도 확연했다. 시장 한편에 무더기로 쌓인 저가 양말과는 촉감부터 달랐다. 맨들한 면 소재는 땀 흡수도 잘될 것 같아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게 됐다. 한 상인은 "흔히 판매되는 중국산 제품보다 질은 더 좋은데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고 자랑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면 양말 10켤레 가격은 1만원 수준. 인근 서문시장보다도 50% 이상 저렴한 편이다. 골목은 예전처럼 북적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양말골목의 하루는 계속된다. 누군가는 싼값에 양말을 고르고, 상인들은 전국으로 보낼 물건을 분주히 포장한다. 양말 한 켤레를 살 겸 가볍게 한 번 걸어보며, 양말 골목의 오래된 과거와 현재를 곱씹어보길 바란다.
2026-05-22 14:33:00
[백년대구 아카이브] 중심의 재구성… 광장과 공원의 변화
도시는 점점 넓어지고, 공공기관과 상업시설도 덩달아 자리를 옮긴다. 도심이 재구조화되면서, 기존의 쓰임을 다한 곳은 또 다른 용도를 부여받는다. 경상감영공원이 있는 대구 중심부는 또 한번 변신한다. 경상감영이 경북도청이 된 이후 두 번째로 맞는 변화였다. 경북도청이 산격동으로 옮기며 빈 공간은 시민들의 유희 공간으로 거듭난다. 이곳은 대구 중심부에 걸맞는 '중앙공원'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는다. 스케이트장뿐만 아니라 조각공원, 연못과 분수, 어린이 놀이터 등 다채로운 놀거리가 계획됐다. 기존에 있는 건물인 선화당과 징청각과 잘 어우러지게 설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부지의 면적은 좁아졌다. 경북도청을 이전하는 데 상당한 재원이 들어서다.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기존 부지의 일부를 매각했는데, 그 자리에는 중앙상가가 들어섰다. 도면 상에도 오른쪽에 중앙 상가의 모습이 일부 그러져 있다. 이곳은 한때 백만공원으로 불렸다. 대구 시민이 백만명에 육박할 거라는 기대를 담은 별명이었다. 완성된 중앙공원은 1970년 시민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 줄곧 시민들의 쉼터로 기능했다. 또 다른 이름의 중앙공원도 새 쓰임을 받은 곳이다. 2.28기념 중앙공원은 과거 대구중앙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빽빽한 상가 중심에 있던 초등학교를 허물고, 시민들의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공원이 들어선다. 주차장과 공원의 면적을 넉넉하게 확보해, 주변 상가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했다. 흔적조차 사라진 북후정도 빼놓을 수 없다. 북후정은 대구 읍성이 축조되기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층으로 된 누각인 북후정에 오르면 대구의 풍경을 전부 볼 수 있었다. 뒤로는 서문시장이 길게 뻗어있었다. 북후정은 한양과 부산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와도 맞닿아, 대구 시민들이 모이기 적당한 공터였다. 그렇다보니, 북후정은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대구 시민들이 모이기 적당했다. 서상돈 선생은 북후정 2층에 올라 국채보상운동취지서를 읽었다. 북후정은 대구 읍성이 사라지고, 십자도로가 들어선 1910년대 즈음 헐린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 상가와 도로가 들어서면서 북후정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됐다.
2026-05-22 14:25:00
개수는 늘었지만 체감 효과 ↓… 대구 축제의 불편한 현실 [커버스토리]
대구시의 축제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증가한 숫자만큼의 성과를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실제로 참여율과 방문객 지표는 하락세다. 축제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과 사이의 간극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 대구광역시 축제 현주소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대구시에서 올해 열리는 축제는 32건, 총 예산은 144억7천200만원에 달한다. 이 중 10억 이상의 대형 축제가 3개, 5억 이상 10억 이하 사업이 5개로 조사됐다. 단일 축제로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로, 총 예산은 38억이었다. 축제 건수는 증가 분위기다. 지난 2월 나라살림연구소의 '지역축제 현황 및 성과분석에 따른 제도개선 방향 제언'에 따르면, 2019년과 25개였던 대구 축제는 2025년 38개로 치솟았다. 이는 특광역시 중에서 세번째로 많은 수준으로, 서울(71개), 부산(57개)의 뒤를 이었다. 2019년 대비 증가율은 52%로, 전국 평균 증가율인 37.3%를 크게 앞질렀다. 축제 수를 대폭 줄이고 있는 서울이나 인천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축제 수가 늘어났음에도 전체 투입 예산은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2019년 200억이 넘었던 투입 비용은 올해 140억 대로 감소했다. 게다가 10억 원 이상 대형 축제가 98.7% 급증하며 '선택과 집중'을 하는 추세인 반면, 대구는 전체 축제 수는 늘리면서도 대형 축제의 수를 22개에서 18개로 줄였다. 전국적 흐름과 달리, 대구는 소규모 축제를 여러 곳에서 벌이는 식의 전략을 취했다. 원가를 절감하면서도, 개별 축제들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각오였다. ◆ 지역민도 외면하는 축제 조사 결과, 대구 지역 축제는 '외면받는 축제'였다. 지역주민의 축제 참가율은 2019년 37.2%에서 2024년 20.0%로 17.2%p 감소했으며, 이는 전국 광역 지자체 중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외부인들도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축제 기간 외부 방문객 규모는 2019년 대비 2.6% 감소했다. 전국적인 방문객 증가 추세(21.1%)와 상반된 결과다. 외부 방문객 1인당 소비액은 2019년 대비 불과 6.2% 증가해(1만5천666원 → 1만6천630원), 대동소이한 수준이었다. 해외 외국인 유치 효과도 측정하기 어렵다. 총 32개 사업 중 전년도 외국인 방문객 수를 '모름'으로 집계한 곳은 20곳이었다. 전체 방문객 수는 집계하기 쉽지만, 이들을 내·외국인으로 구별짓는 건 쉽지 않아서다. 축제가 지역 경제를 견인한다는 예측도 빗나갔다. 축제 기간의 일 평균 소비액 증가율이 평시보다 4.4%p 하락해, 축제 개최를 통한 지역 소비 유인 효과가 낮은 지역으로 분류됐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이 1.5%p 상승하고, 서울은 1.8%p 상승한 것과 비교했을 때 실망스러운 수치다. ◆ 천편일률적 행사의 뒤편 지역 축제의 공통점은 높은 공공 재원 의존도다. 조사 대상 32개 사업의 국비·지방비 의존도는 평균 84.6%로 집계됐다. 전체 사업 가운데 19개는 예산의 100%를 공공 재원으로 충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비보다 지방비 의존도가 높은 구조였다. 국비를 지원받는 사업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등 국가 단위의 대형 문화행사에 사실상 한정돼 있었다. 재원뿐 아니라 운영 구조 역시 공공 중심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거나 재단법인 등 공공 주체가 맡는 축제는 20개로 전체의 62.5%를 차지했다. 기타 공공기관과 지자체 위원회가 각각 1곳씩 운영하고 있었다. 반면 민간이 주도하는 축제는 12개에 그쳐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보였다. 이처럼 공공기관 중심의 운영 구조는 축제가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공공의 기준과 행정 절차에 맞춰 사업이 설계되다 보니, 새로운 시도보다는 검증된 방식이 반복되기 쉽다는 지적이다.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자발적인 참여가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고, 관 주도의 경직된 운영이 반복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일각에서는 경직된 예산 구조가 지역 축제를 '전시성' 또는 '낭비성 행사'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상황에서도 경상경비 비중을 높게 책정할 경우, 축제가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기보다 단순히 보여주기식 행사나 예산 낭비라는 인식이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9개 구군 중 재정자립도 6위를 기록한 대구 동구는 구비 100%로 대형 축제를 지탱하고 있다. 작년 열린 봉무공뭔 곤충 페스티벌의 행사 경비는 총 2억원이었다. 이 중 포토존과 그늘막, 무대를 설치하는 데 든 비용은 1억 6천으로 총 경비의 80%를 차지했다. 연구를 담당한 나라살림연구소 역시 이 같은 축제 추세를 우려하고 나섰다. 보고서는 "효과가 낮은 축제에 경상비용을 과다 투입하면 소상공인 지원, 복지, 문화 사업 등 지역 주민에게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정책에 투입할 재원이 부족해질 우려가 커진다"며 "비용 대비 효과가 낮은 지출은 정리하고 같은 재원을 더 효율적인 정책으로 재배치해 재정 배분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했다.
2026-05-16 12:12:00
[두나의 두발 산책] 유교 가르침 담긴 서원 산책… 백일홍 따라 읽는 옛이야기
효와 충, 학문의 가르침을 전하던 공간인 동시에 유교의 성현(聖賢)을 기리던 장소인 서원. 현대 사회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건축물을 찾아보기 어려운 탓에, 그 기능과 의미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행히 대구 곳곳에는 여전히 서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여름철이면 배롱나무 명소로도 이름을 알리는 두 곳을 꼽아 소개한다. ◆ 조용한 골목 끝, 서계서원 대구 북구 서변동의 한 빌라촌. 도심과 아주 멀지는 않지만 주변이 조용해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동네다. 인천 이씨 집성촌 사이에 자리한 서계서원은 이 한적한 마을 어귀를 오랜 시간 지켜왔다. 서계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 이문화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1781년 위패를 봉안한 이후 이 일대의 교육과 인재 양성의 중심 역할을 맡아왔다. 서원 내부에는 강학 공간인 강학당과 서고, 동재와 서재, 사당인 숭덕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원이 그렇듯,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은 강학 공간보다 한 단 높은 곳에 배치돼 있다. 숭덕사 계단 위에 오르면 주변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나 아파트가 많지 않아 조용한 마을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사당 안에는 서계서원의 중심 인물인 이문화 선생뿐 아니라 조선시대 학자 이주 선생의 위패도 함께 봉안돼 있다. 이주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집해 항전에 나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공을 인정받아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벼슬길 대신 지역 유림에 머무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뜻을 기리는 정자인 '환성정'도 강학당 옆에 자리하고 있다. 서계서원 주변을 걷다보면 조선시대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비각을 만나볼 수 있다. 효열각과 창렬각, 정려각이 나란히 서 있는데, 각각 효부와 열부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오늘날과는 다른 당대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효열각은 1864년 세워져, 월성 최씨의 열행을 기리고 있다. 최씨는 시모가 앓아눕자 젖을 짜서 먹여드리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까지 건넸다. 게다가 남편이 먼저 임종하자, 이후 3일 만에 남편을 위해 순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당 한편의 270년 된 배롱나무는 서계서원의 또 다른 상징이다. 여름철 백일홍이 만개하는 7월이면 평소 한적하던 동네에도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오래된 기와지붕과 붉은 배롱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덕분에 사진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 왕산 아래 남은 고려의 기억 서계서원에서 차로 10분가량 이동하면 왕산 아래 자리한 신숭겸 장군 유적지를 만나볼 수 있다. 졸졸 흐르는 냇가 옆에 자리한 이곳에는 신숭겸 장군의 초상과 위패를 모신 표충사가 세워져 있다. 그 아래에는 동재와 서재, 강당 등이 자리해 서원 형태의 공간 구성을 이루고 있다. 유적지 주변에는 흰빛을 띠는 배롱나무 군락이 형성돼 있다. 여름철이면 꽃이 만개해 산책을 나온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계곡과 배롱나무, 고건축이 어우러지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숭겸 장군은 고려 태조 왕건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으로 알려져 있다. 공산 전투 당시 후백제 견훤의 군대가 왕건을 추격하자, 신숭겸은 왕건을 피신시키고 스스로 왕의 복장을 한 채 적진으로 향했다. 결국 그는 왕건을 대신해 전사했고, 왕건은 그의 희생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왕건은 충신을 잃은 슬픔을 오래도록 간직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숭겸 장군의 형상을 짚으로 만들어 행사 때마다 세워두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예우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지의 규모에도 이러한 애도와 존경의 의미가 담겼다. 이 일대의 지명 상당수도 왕건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유적지가 자리한 왕산은 '왕건을 살린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팔공산 역시 고려 개국공신 여덟 명을 기리는 의미라는 설이 전해진다. 또 신숭겸의 군사들이 흩어졌다고 해 붙은 '파군재', 전투에서 패한 왕건이 홀로 쉬었다는 '독좌암' 등 공산 전투와 관련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 순탄치 않았던 서원의 역사 이들 서원은 흥선대원군 집권기 시행된 '서원 철폐령'을 피해 가지 못했다. 당시 전국 각지에 난립한 서원들이 군역 회피나 탈세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대대적인 철폐가 이뤄졌다. 서계서원은 이 과정에서 일부 건물이 훼철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지역 유림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점진적인 복원이 이뤄졌고, 1992년 2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 역시 마지막까지 원형 보존을 위해 애쓴 흔적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매판단'이다. 왕산 자락에는 표충사의 현판과 서책 등을 묻어둔 제단이 남아 있다. 특히 현판은 왕이 직접 내려준 사액 현판이었던 만큼, 훼손을 막기 위해 땅에 묻어 보존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쉽게도 일반인은 매판단을 구경할 수 없다. 배롱나무꽃이 가장 짙어지는 여름철, 두 서원을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괜찮다.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오래된 기와와 푸르른 나무, 조용한 골목과 산자락이 어우러지며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잠시 걸음을 늦추고 둘러보다 보면, 책으로만 접했던 옛이야기가 의외로 가까운 풍경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2026-05-15 15:30:00
[백년대구 아카이브] 이전과 재탄생… 문화 및 체육시설의 배치
대구시가 기획·제작한 책 〈지상대구〉는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을 통해 대구가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도시가 됐는지를 따라간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4부에 걸쳐 풀어낸다. 마지막 순서인 4부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 개발, 그리고 문화 및 행정 시설의 외곽 이전 전략에 따른 도시의 질적 변화를 다룬다. (편집자 주) 단순한 녹지 공간을 넘어 현대적 형태의 유원지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방타워랜드다. 1981년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한 것을 기념해 1984년 10월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시행사의 부도로 개장은 예상보다 늦어졌다. 이후 우방이 사업을 맡으면서 1992년 1월 타워가 먼저 완공돼 문을 열었다. 당시 이 타워는 대구·경북권에서 가장 높은 전망시설로, 자연스럽게 대구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됐다. 현재의 이월드 형태를 갖춘 것은 타워랜드 개관 이후다. 종합테마공원 조성 계획이 추진되면서 1995년 3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완성됐다. 이후 우방이 도산하고 이랜드가 이를 인수하면서, 2011년 '이월드'로 이름이 바뀌었고 우방타워 역시 '83타워'로 변경됐다. 도시가 커지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공간의 기능도 끊임없이 재편됐다. 과거 공장이나 논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법원이나 구청 같은 공공기관도 새롭게 자리 잡았다. 주요 기관 주변으로 또 다른 행정시설과 상권이 형성되면서 도시는 새로운 얼굴을 갖춰갔다. 특히 대구 중심부 동쪽에 위치한 신천 일대의 변화는 눈에 띈다. 1972년 대구시는 기존 공원 부지 일부를 상업지역으로 변경하고, 현재의 대구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 등 주요 공공시설을 이곳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도시 외곽 역시 새로운 기능을 부여받았다. 대구시립미술관 건립 계획이 수립된 것은 1994년이다. 수성구 삼덕동 일원에 추진된 이 대형 공공 프로젝트는 부지 면적만 7만㎡에 달했고,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로 계획됐다. 준공 목표는 2008년이었지만 실제 개관은 2011년에 이뤄졌다. 1995년에는 대구대공원 일원에 종합경기장을 조성하는 계획도 세워졌다.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염두에 두고 주경기장뿐 아니라 야구장, 실내체육관, 수영장 등을 포함한 7만 석 규모의 전용 축구장 건립안이 마련됐다. 당초 계획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보여주는 축선을 강조하면서도 관람 효율을 고려해 동·서측에 관람석을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2001년 개장 당시에는 '대구월드컵경기장'으로 불렸지만, 현재는 '대구스타디움'으로 개명했다.
2026-05-15 13:43:00
[커버스토리] 지역 축제 흥행 '가뭄' 속 성공 공식은?
비슷비슷한 구성, 짧은 체류 시간, 부족한 연계 콘텐츠 등 한계가 반복되면서 "대구만의 축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행사를 늘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지역만의 특색과 소비·관광 인프라를 함께 키우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축제 효율화 꾀했지만… 여전히 한계 대구시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축제 내실화를 위해 '판타지아 대구 페스타'를 출범시켰다. 지역 축제를 하나의 틀로 묶어 운영하며 축제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한정된 재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였다. 동시에 대구만의 축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2022년 하반기 출범 이후 대구시는 다수의 지역 축제를 묶어 봄·가을 시즌에 집중 개최하는 방식으로 개편했다. 지난해에는 동성로 일대에서 11개 축제를 열고 97개 거리공연을 선보였다. 또 주요 관광지를 순환하는 시티투어 버스 할인 등 연계 이벤트도 진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 과제는 남아 있다. 대구정책연구원은 '대구 축제 통합브랜드 판타지아대구페스타 발전 전략' 보고서를 통해 축제 과밀화 문제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봄·가을 성수기 약 10일 안팎의 짧은 기간에 7~9개 축제가 동시에 열리면서 행정력이 분산되고 시민 혼란도 커진다는 분석이다. 통합 브랜드가 오히려 개별 축제의 특색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각 축제의 개성이 희석되거나, 반대로 통합 브랜드 자체의 역할이 모호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실제 대구 시민 대상 조사에서도 2023년 '판타지아 대구 페스타' 브랜드 인지도는 20.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 대구만의 문제 아냐… 기획 단계부터 꼼꼼히 전문가들은 축제 부진과 효율화에 대한 고민이 대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대박 축제'를 만들지 못한 지역 대부분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비슷한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축제 만족도를 결정하는 요소로 ▷일탈성 ▷놀이성 ▷대중성 ▷신비성 ▷장소성을 꼽는다. 일탈성과 놀이성은 현실에서 벗어난 재미를 느끼게 하는 요소이고, 대중성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어울릴 수 있는 특성이다. 신비성은 색다른 분위기와 규모에서 오는 새로움이며, 장소성은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체험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방문객 만족도도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대구 축제는 이 가운데 일부 요소가 부족하거나, 요소 간 결합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상진 더이루투어 대표는 "놀이성이 부족하면 방문객을 끌어모으기 어렵다"며 "축제 현장에서 '재밌다'고 느낄 만한 콘텐츠가 있어야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소비도 이어지는데, 다른 지역과 비슷한 구성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고 말했다.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축제만의 '특색'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장소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만의 문화와 이야기를 축제 콘텐츠에 녹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완복 오산대 공연축제콘텐츠과 교수는 "축제는 결국 장소마케팅"이라며 "대구의 성공 사례 중 하나인 치맥페스티벌은 대구의 치킨 산업과 소비 문화라는 분명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흥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축제 핵심 콘텐츠에 맞는 정체성을 살린 프로그램과 공연, 먹거리, 체험 요소가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라면 약재를 활용한 음식이나 체험처럼 축제 주제와 연결된 콘텐츠가 함께 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지역 공동체의 주도적 참여와 전문가 협업을 바탕으로 축제를 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축제 설계 경험이 있는 오제열 문화공유창고 대표는 "축제는 공공기관이 일방적으로 방향을 정하기보다 주민과 전문가, 행정이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가야 한다"며 "주민은 지역의 특징과 흐름을 가장 잘 아는 주체인 만큼 단순 참여자를 넘어 축제 기획과 운영 과정 전반에 참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병원에 가서도 환자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면 진료를 볼 수 없다. 의사의 '촉진'에 환자가 참여해야만 치료가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며 "행정기관 역시 지원과 조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세 주체가 협력하는 구조 속에서 지역에 맞는 축제의 방향성을 찾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체류형 콘텐츠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축제를 즐긴 뒤에도 관광객이 머물며 소비할 공간과 콘텐츠가 부족해 지역 체류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이 지역에 와도 소비 인프라가 부족해 결국 서울로 이동하는 게 현실이다"며 "단순히 소규모 축제를 여는 것만으로는 소비 인프라가 탄탄해지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축제뿐 아니라 도시 관광 전반에서 머물며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6-05-15 12:12:00
입맛을 당기는 먹거리와 초청가수 무대, 각종 체험 부스까지. 대구 곳곳에서는 계절마다 크고 작은 축제가 이어지고 있다. 거리마다 무대가 세워지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행사도 잇따르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기대만큼 뜨겁지 않다.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는 평가 속에 일부 축제는 짧은 체류 시간과 저조한 참여율을 보여줬다. 실제로 대구 지역 축제는 최근 수년 사이 빠르게 늘었지만, 방문객 증가나 지역 소비 확대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반면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 치맥 페스티벌, 떡볶이페스티벌 등 지역의 특색을 살린 일부 축제는 같은 장소에서도 사람들로 북적이며 대조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천편일률적인 행사 구성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또 어떤 축제가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는지 대구 축제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 "다 비슷한 축제?"… 대구 축제의 엇갈린 풍경 익숙한 먹거리와 반복되는 초청가수 무대, 어디서나 볼 법한 부스들 사이에서 방문객들은 "굳이 다시 오고 싶지는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역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정작 시민들의 기억에 남는 행사는 드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축제가 있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 천편일류적 축제에 호응 ↓ 지난 4월 열린 팔공산 벚꽃축제. 팔공산 벚꽃축제는 올해로 15회를 맞아 내공이 깊은 행사다. 매년 5천명의 방문객이 찾아와 벚꽃으로 물든 팔공산을 구경한다. 다만 축제 첫날에는 벚꽃을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곳보다 서늘한 팔공산 자락에서는 벚꽃이 개화하기 전이어서다. 별다른 볼거리가 없다보니 축제를 보러 온 이들도 50여명 남짓이었다. 개화 시기를 쉽게 추정할 수 없다보니, 3년엔 한 번 꼴로는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다른 지역 축제와의 차별성을 찾기 어려웠다. 꼬치, 꽈배기, 호떡, 분식 등 다양한 먹거리 부스가 있었지만, 판매 품목은 대부분 비슷비슷했다. 팔공산에서만 특별히 경험할 수 있는 먹거리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메인 이벤트 역시 '초청가수 무대'로, 구성은 전형적인 지역 축제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가족 단위 방문객이 즐길 만한 프로그램은 많지 않았다. 지난해 벚꽃축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같은 장소에서 매년 열리는 단풍 축제와도 유사한 모습이었다. 당연히 체류시간도 길지 않았다. 행사장을 전부 돌아보고, 그나마 꽃망울을 겨우 틔운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이후에도 20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휴식 공간도 없다보니,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가 주관하는 행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보였다. 동성로 축제 첫날인 지난 8일, 평소와 비슷한 양의 사람들이 부스를 구경하고 있었다. 동성로 축제는 도보 공간 중앙에 부스를 차려놓고, 구 대구백화점 앞 메인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는 구성이다. 부스는 75개, 4구역으로 나뉘어 방문객을 맞이했다. 하지만 부스는 방문객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먹거리는 케밥과 아이스크림, 푸딩 등으로 구성돼있어 평소에도 동성로에서 구매할 수 있는 종류여서다. 나머지 부스는 수공예품이나 빗, 삔과 인형을 판매하는 유사 부스들로 꾸며져 있었다. 결국 발길을 멈추고 부스를 살펴보는 이들은 매우 적었다. 놀이거리나 홍보도 부족했다. 직접 참여해볼 수 있는 부스는 설문조사나 참가 동의를 마친 후 참여할 수 있는 경품 추첨이 전부였다. 참가자들은 동성로 축제가 열리는 지도 몰랐다며 시큰둥한 기색이었다. 이날 부스를 둘러보던 장모(20) 씨는 "약령시와 동성로에서 동시에 축제가 열린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홍보가 부족해 보인다"며 "부스를 아무리 둘러봐도 딱히 지갑을 열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독특한 것도 없고, 가격도 비싸서 마음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죽어가는 상권을 살리기 위한 축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굳이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타지나 외국에서 올 필요는 없어보인다"고 평가했다. ◆ 특색 살린 곳은 비교적 호황 암울한 풍경만 펼쳐지지는 않았다. 같은 시각, 같은 장소였지만 약령시 한방문화 축제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평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약령시 쪽은 축제를 둘러보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인삼 막걸리, 음료 등 한방 재료가 들어간 먹거리가 특히 인기가 많아,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먹거리 공간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부스들은 한방 재료라는 통일된 특색을 보여줬다. 엉겅퀴나 불면증에 좋은 환을 파는 부스가 줄지었다. 다른 곳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셰이크나 타르트에도 한방 재료를 넣어 특색을 살렸다. 한방 특성에 맞지 않는 수공예품이나 단순 먹거리는 '플리마켓' 공간에 따로 배치해 축제의 통일성을 높였다. 방문객들은 부스 하나하나를 꼼꼼히 둘러보고, 한방차를 시음하며 시간을 보냈다. 단연 인기가 많은 건 축제에서의 '놀거리'였다. 소정의 참가비를 받고 풍선이 뿌려진 풀장에서 경품을 찾는 행사의 반응이 뜨거웠다. 또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스티로폼 막대를 전부 잡아내는 도전을 하기 위해 길게 줄이 이어지기도 했다. 놀이를 마치고 먹거리로 배를 채운 이들은 무대 앞으로 모여 노래 공연을 즐겼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김모(30) 씨는 "어머니와 함께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축제에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놀거리가 많아서 놀랐다"며 "가격이 저렴한 인삼 튀김처럼 색다른 먹거리가 있어서 즐거웠다"고 참가 후기를 남겼다.
2026-05-15 12:12:00
[두나의 두발 산책] 한때 인산인해, 지금은 변화의 기로… 칠성시장의 오늘
대구 서문시장과 함께 손꼽히는 대형 전통시장인 칠성종합시장. 청과시장, 삼성시장, 경명시장, 능금시장과 주방, 가구시장, 꽃시장 등 여러 시장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구조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주방용품에서 꽃, 과일까지 진열 품목이 수시로 바뀌고, 잠시 한눈을 팔면 전혀 다른 구역으로 들어설 만큼 동선도 복잡하다. 이 거대한 시장은 언제부터 신천 근처에 자리잡게 됐을까. 시계를 일제강점기로 돌려보자. 당시 대구는 사과로 특히 유명했는데, 일본인을 위한 관광 안내지도에도 붉은 사과가 그려질 정도였다. 칠성동 일대는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사과와 채소 재배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재배한 사과를 내다팔 수 있는 시장이 마련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갓 수확한 농산물을 찾는 일본인들이 몰려들었고, 채소까지 품목이 확대되며 시장 규모도 점차 커졌다. 지리적 이점도 한몫했다. 대구 중심부인 경상감영과 가깝고, 개통 초기의 대구역과도 인접해 접근성이 뛰어났다. 시장 주변은 일본인 손님뿐 아니라 물건을 납품하는 상인, 고물상까지 몰려들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광복 이후 칠성종합시장은 큰 변화를 맞았다. 일본인들이 떠나며 주요 고객층이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해외에서 귀환한 동포들이 채웠다. 이후 대구가 대도시로 성장하면서 일자리를 찾아 유입된 농촌 이주민들까지 더해지며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칠성시장은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수산물과 과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형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젊은 층의 발길이 줄면서 시장의 활기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대형 도로를 벗어나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인적이 드물고, 문을 닫은 점포가 이어진다. 한 골목에 남은 가게가 서너 곳에 불과하다. 30년간 칠성원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한 김모 씨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잡화점을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어르신들이 저렴한 믹스커피를 대량으로 구매하기 위해 가게를 찾는 때를 제외하고는 썰렁함만이 감돈다. 김씨는 "젊은 층들은 쿠팡이나 대형 식자재 마트에서 온라인으로 잡화를 구매한다. 당장 우리 며느리만 해도 잡화점에서 장을 보지 않더라"며 "30년 전에는 이 골목에 과자, 문구를 파는 가게로 북적였는데, 이제는 흔적조차 없다. 앞으로 10년만 지나도 가게를 찾는 사람이 전부 사라질 것만 같아 속상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시장 내 '완구골목'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이제 구하기 어려운 옛 문구와 장난감을 찾는 이들의 '성지'가 됐다. 과거 부모의 손을 잡고 찾았던 장난감 가게 일부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은 책 형태의 '깔깔 유머집', 자수 세트, 색색의 학종이 등 추억의 물건들이 손님을 맞는다. 방문객들은 문방구에 들어서자마자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신상' 장난감도 빼놓을 수 없다. 문구점들은 추억의 장난감뿐만 아니라, 최근 유행하는 '촉감 장난감'도 들여놨다. 그 덕에 MZ 세대의 방문 열기가 뜨겁다. 일본 캐릭터가 그려진 테이프나 수저, 작은 가방을 도매가로 살 수 있어 입소문을 탔다. 시내에 있는 문방구나 소품가게보다 장난감의 종류가 훨씬 많고, 도매가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많이들 방문하는 동성로, 중앙로역과도 크게 멀지 않아 여행객들이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 칠성시장 완구골목을 돌아보던 이모(27)씨도 그 중 하나다. 친구와 둘이서 여행차 대구를 방문한 참이었다. 젊은 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SNS인 'X'(구 트위터) 등에서 볼거리가 많다는 소식을 듣고 칠성시장을 방문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씨는 "촉감 장난감 종류인 '말랑이'를 구매하고 싶어서 돌아보고 있다. 인터넷에서 가격이 싸고 종류가 많다는 정보글을 읽고, 여행 코스에 칠성시장을 넣었다"고 했다. 청과시장으로 출발한 칠성시장은 일제강점기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과거에 비해 방문객은 줄었지만, 최근에는 MZ세대의 방문 후기가 이어지며 '세대 교체'의 흐름이 감지된다.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 위에 새로운 소비층이 더해지며 시장은 또 다른 모습으로 버티는 셈이다. 앞으로의 칠성시장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 골목 곳곳을 직접 걸어보면, 그 변화를 선명하게 느껴볼 수 있다.
2026-05-08 13:30:00
[백년대구 아카이브] 녹지 공간의 확보… 공원 도시로 향하다
대구시가 기획·제작한 책 〈지상대구〉는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을 통해 대구가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도시가 됐는지를 따라간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4부에 걸쳐 풀어낸다. 마지막 순서인 4부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 개발, 그리고 문화 및 행정 시설의 외곽 이전 전략에 따른 도시의 질적 변화를 다룬다. (편집자 주) 좋은 집을 고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다. 미래를 대비해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높은 곳을 택하기도 하고, 신축 여부를 따지기도 한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과 편의시설이 얼마나 가까운지도 중요한 조건이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녹지공간이다.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운동을 즐길 수 있고, 여름철 도시의 열기를 덜어주는 역할까지 하는 만큼, 공원이 얼마나 가까운지는 주거 만족도를 크게 좌우한다. 대구도 그 조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도시의 형태를 얼추 갖춘 1972년, 대구시기본계획에 포함된 공원은 총 32곳, 면적은 2천264만5천870제곱미터에 달했다. 전체 도시계획구역 면적의 9.8%에 해당하는 대규모 계획이었다. 1인당 16제곱미터의 공원 면적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빽빽하게 들어선 도로와 주택가 사이에서 숨 쉴 수 있는 틈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다만 시의 재정 형편상 개발이 곧바로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실제로 설치된 공원은 5곳이었고, 1인당 공원 면적도 겨우 0.39제곱미터에 불과했다. 더 많은 상업 시설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도 나온다. 지금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불리는 동인공원은 지하공간을 적극 활성화하고자 했다. 당시 기본 조성계획에 따르면, 지하 주차장뿐만 아니라 직사각형 모양의 상가가 보인다. 지하의 가장 중심부는 지하 곳곳으로 통하는 넓은 광장이 계획됐다. 기존의 녹지공간을 재구조화시키기도 했다. 대구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 봤을 달성공원이 그 예시다. 기원은 삼한시대로 거슬러 간다. 당대 지역 유력 부족의 주요 거처로 활용된 것으로 추측됐다. 이후 1905년 공원으로 지정됐다가, 1914년 일본식 신사가 들어선 공간이었다. 그로부터 50여 년 후 신사를 철거하고, 구조 개편을 거쳐 1969년 달성공원이 개장한다. 대구에서 유일하게 동물원을 보유한 곳으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성장했다. 지금까지 운영을 지속하고 있지만, 노후화로 인해 빠른 시일 내 수성구 대구대공원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2026-05-08 12:40:00
[데이터로 보는 세상] 줄어드는 헌혈자, 늘어나는 의존도… 10~20대 쏠린 헌혈
수술실의 불은 언제나 켜져 있지만, 그 불을 지탱하는 혈액은 늘 충분하지 않다. 교통사고부터 중증 질환, 응급 수술까지. 생명을 살리는 모든 순간에는 '누군가의 헌혈'이 전제돼 있다. 문제는 혈액이 장기간 보관이 어렵고,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다. 결국 필요한 만큼, 필요한 순간에 확보해두는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혈액 수급을 위해서는 현재의 헌혈 흐름을 짚어봐야 한다. 최근 10여 년간 헌혈은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 그리고 그 구조는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 살펴봤다. ◆ 참여자 ↓ 반복 참여↑ 지난 2012년부터 2024년까지 12년간 헌혈자 수를 분석한 결과, 전체 헌혈자는 감소 추세를 보였다. 2014년 169만6천95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이듬해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는 120만 명대까지 떨어졌다. 2022년 132만7천587명으로 일시 반등했지만 다시 감소해, 2024년에는 126만4천525명이 헌혈에 참여했다. 다행히 헌혈자 실인원은 줄어드는 반면, 총 헌혈 건수는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다. 헌혈자 1인당 평균 헌혈 횟수는 2012년 1.65건에서 2024년 2.26건으로 늘었다. 참여 인원은 감소했지만, 참여자들의 헌혈 빈도는 높아지는 구조다. 혈액형별로는 A형이 34.0%(96만9천509건)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O형(27.4%), B형(26.7%), AB형(11.5%) 순으로 나타났다. 대구·경북 역시 Rh(+) 기준 A형(33.0%), O형(28.1%), B형(27.2%), AB형(11.3%) 순으로, 전국 평균과 유사한 분포를 보였다. 월별로는 11월이 25만5천373건(8.9%)으로 가장 많았고, 12월(25만1천591건, 8.8%)이 뒤를 이었다. 연말로 갈수록 헌혈이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반면 2월은 21만8천763건(7.7%)으로 가장 낮았다. ◆ 10~20대 쏠림 구조 2024년 기준, 젊은 층의 참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대는 전체 헌혈 실적의 35.5%(101만2천371건)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으며, 16~19세는 19.3%(55만1천80건)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참여 비중은 급격히 낮아졌다. 30대는 15.9%(45만4천801건), 40대는 16.9%(48만2천389건)로 비슷한 수준을 보였으며, 50대는 10.4%(29만5천705건), 60대 이상은 2.1%(5만9천194건)에 그쳤다. 이 같은 차이는 헌혈 방식과 맞닿아 있다. 전체 헌혈량의 26.3%가 단체 헌혈에서 이뤄지는데, 이들 단체는 10~20대의 참여 비중이 높은 곳에 집중돼 있다. 실제로 고등학교(7.7%), 군부대(8.2%), 대학교(2.6%) 등은 모두 젊은 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다. 단체 중심의 헌혈 구조가 자연스럽게 10~20대 참여 비중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 대구경북도 10대가 견인 2024년 전국 헌혈률은 5.6%였다. 지역별로는 울산(9.9%), 서울(9.8%), 강원(9.6%)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헌혈 건수 기준으로는 인구가 집중된 서울이 91만8천174건으로 가장 많았고, 대구·경북(24만1천523건)과 대전·세종·충남(24만1천483건)이 비슷한 수준으로 뒤를 이었다. 대구·경북의 높은 실적은 역시나 10대 참여가 견인했다. 10대(16~19세) 비중은 23.1%로 전국 평균(19.3%)보다 높았고, 고등학교 단체 헌혈 비중(8.8%) 역시 전국 평균(7.7%)을 상회했다. 헌혈자 수는 줄고, 일부 참여자에게 의존하는 구조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특히 젊은 층과 단체 헌혈에 기댄 현재의 구조는, 인구 감소와 학령인구 축소가 현실화될수록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안정적인 혈액 수급을 위해서는 특정 연령대에 집중된 참여 구조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참여 비중이 낮은 30~50대 이상이 일상적으로 헌혈에 나설 수 있도록, 시간과 접근성, 인식 개선을 아우르는 유인책 마련이 요구된다. 혈액은 위기 상황에서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보다 넓은 연령층이 꾸준히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곧 의료 안전망을 유지하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2026-05-08 12:23:00
◆ 2024년 지역별 헌혈 건수(실적) (전체 헌혈 건수 - 2,855,540건) 서울: 918,174건 대구·경북: 241,523건 대전·세종·충남: 241,483건 경기: 227,329건 부산: 211,214건 광주·전남: 192,606건 인천: 187,328건 강원: 145,715건 경남: 136,511건 울산: 108,922건 전북: 104,682건 충북: 90,558건 제주: 49,495건 ◆ 2024년 연령별 헌혈 건수(실적) (전체 헌혈 건수 - 총 2,855,540건) 10대 (16~19세): 551,080건 (19.3%) 20대 (20~29세): 1,012,371건 (35.5%) 40대 (40~49세): 482,389건 (16.9%) 30대 (30~39세): 454,801건 (15.9%) 50대 (50~59세): 295,705건 (10.4%) 60세 이상: 59,194건 (2.1%)
2026-05-01 14:15:32
[백년대구 아카이브] 근대 산업의 태동… 1930년대 상공업 꽃피다
대구시가 기획·제작한 책 〈지상대구〉는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을 통해 대구가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도시가 됐는지를 따라간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4부에 걸쳐 풀어낸다. 3부는 근대 산업의 태동부터 공업 단지 조성, 상업 중심지의 변화, 그리고 주거와 산업의 재배치까지 경제 활동의 공간적 변천사를 다룬다. (편집자 주) 지금의 대구 '먹거리'는 무엇일까. 잘 팔리는 음식 메뉴가 아니라, 대구를 지탱하는 주요 산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막 태동하기 시작한 IT 산업을 떠올릴 수도 있고, 첨단 의료산업이나 서비스업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명확하게 언급하기 어려운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먹거리'가 명확했다. 안경, 염색, 자동차 등 상공업 전반이 대구의 기둥이었다. 1930년대 대구는 상공업의 중심이었다. 당시 인구는 급속도로 늘어 10만을 넘기는데, 이 중 30%가 상공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당시 대구상공회의소가 발행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대구 내 공장은 300여 개에 달했고, 등록 절차를 마친 회사는 600여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인구가 늘수록, 상공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덩달아 늘었다. 이들 회사는 대구의 중심부인 대구역 앞에 포진했다. 북성로, 대안동, 동성로, 중앙로 이곳저곳에 회사가 세워졌다. 당시 지도인 '대구부상공안내도'에 따르면 대구역 앞에 회사가 모여있고, 대구역 건너나 남측으로 가면 갈수록 건물 밀집도가 떨어졌다. 대구역 앞 광장 역시 상공업의 장으로 활용됐다. 1928년 지어진 경상북도 상품진열소는 경상북도 지역의 생산품과 가공품을 홍보하고, 판매를 북돋기 위해 세워졌다. 본래 경상북도 청사 내 뇌경관에서 하던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다만 실제로 진열됐던 상품 대다수는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들이었다. 전쟁 기간에는 미군 시설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후 기능을 회복해 1970년때까지 상품 전시와 판매를 이어왔다. 1985년 '라이프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건물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2026-03-26 11:30:00
[두나의 두발 산책] 지나치기 아까운 이름… 고향 이야기 담긴 대구 '이태원'길
대구 팔거역에서 강북소방서까지 이어지는 상가 골목. '이태원길'이라는 표지판이 방문객을 맞는다. 이름만 보면 서울 용산구의 그 이태원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골목은 그와 아무 관련이 없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이태원'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태원 작가는 대구 북구 읍내동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경북 칠곡으로 불리던 곳이다. 그의 가족은 4·19 혁명 당시 가산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부터 그는 객지에서 힘겨운 삶을 버텨야 했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감정으로 남았다. 그는 "집안의 맏아들로서 책무를 다하고,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도 제 몫을 하고 싶었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며, 소설 속에서라도 그런 삶을 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그는 고향 대구의 현실을 작품으로 남기기로 마음먹는다. ◆고향 대구의 현실을 작품으로 시, 시나리오, 소설을 가리지 않고 26차례나 등단에 도전한 끝에 1970년 동아일보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서 '객사'로 등단한다. 작품의 배경은 당연히 그의 고향이었다. 칠곡향교를 중심으로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등장인물들은 작가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품은 채 세상의 부조리에 맞섰다.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78년 장편 '개국'을 펴냈고, 동명의 KBS 대하드라마로 제작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고향 영남의 젖줄의 이름을 딴 '낙동강'을 본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조선 말기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도 고향을 지키려는 유림과 백성의 절절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는 등단 직후부터 '주류' 문단과는 거리가 있었다. 중앙 문단과 교류 없이 갑작스럽게 이름을 알린 탓이다. 그렇게 그는 늘 한 발짝 비켜선 자리에서, 조용히 작품을 이어갔다. 그래서일까 2009년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대구 시민들조차 '이태원'하면 소설가보다 서울 지명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이제라도 그를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시작됐다. '이태원길'이 그 출발점이다. 길 위의 동천육교에는 그의 작품 세계가 녹아 있다. 계단에 그려진 은행나무와 물결은 소설 '객사'의 주요 배경을 형상화한 것이다. 육교를 따라 도착한 광장 주변 상업건물은 책장 모양으로 꾸며졌고, 골목 곳곳에는 은행나무 조형물과 '객사' 속 인물을 형상화한 조각들이 자리 잡고 있다. 광장 중앙의 이태원 문학관에서는 그의 삶과 작품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생전에 사용하던 지포라이터와 나침반, 볼펜까지 전시돼 있다. ◆이태원 문학관,작품을 만나 생전 그는 '객사'의 작가의 말을 통해 변화해버린 고향에 대한 씁쓸함을 남겼다. "고향은 상전벽해란 말이 사실이라는 듯 몰라보게 달라져 있다. 옛날의 산과 들, 사람과 숨결이 흔적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 가고 있다. 오죽했으면 칠곡이란 지명도 없어졌을까". 그의 말처럼 대구는 끊임없이 변해왔고, 많은 기억도 덩달아 지워졌다. 그렇기에 지금 이 골목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태원'을 향한 시도는 더욱 의미가 깊다.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한 작가의 이름을 또렷히 새겨두려 한다. 아쉽게도, 이 골목의 주인공은 여전히 '소설가 이태원'이 아니라 상업시설이다. 프랜차이즈 식당 사이에서 그의 흔적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방문객들 역시 이태원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다. 프랜차이즈 간판 사이에 가려져 있지만, 이 골목에는 분명 한 소설가의 삶과 시간이 묻어있다. 고향을 떠나서도 끝내 고향을 쓰려 했던 작가. 누구보다 대구다운 이야기를 써내려간, 이태원. 우리가 잊고 있던 이름을 골목은 조용히 붙잡고 있다. 지나치지 말고 한 번쯤은 멈춰서 읽어봐주길 바란다.
2026-03-26 11:30:00
[데이터로 보는 세상] 숫자가 말한 경북 재난 지도… 태풍·지진 위협 성큼
최근 10년간 자연재해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자체는 어디일까? 경북이다. 자연재해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이는 51명이었고, 물적 피해 역시 7천138억6천만원에 달했다.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자연재해 피해를 겪는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자연재해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앞으로 더 다양한 형태의 재난이 경북을 위협할 것이라는 경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2025년 〈대구경북연구〉에 발표된 '데이터 기반 경북의 재난 위험 우선순위에 관한 연구'는 이 물음에 답을 제시한다. 연구는 최근 11년간 경북에서 발생한 자연재난을 분석해 위험도를 평가하고, 대응의 우선순위를 도출했다. 단순한 발생 빈도를 넘어 피해액, 인명 피해, 피해 면적 등 다양한 지표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재난의 '심각도'를 입체적으로 살폈다. ◆ 문제는 '풍수해' 연구진은 먼저 전문가들의 판단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재난 간 상대적 위험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재난 발생 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명 피해 최소화'로 나타났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가장 위험한 재난은 태풍이었다. 실제로 경북은 2018년 태풍 콩레이, 2022년 힌남노로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경북에서 발생한 연평균 재산 피해는 약 1천억원에 달한다. 다만 태풍의 위험지수 증가율은 점차 둔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위험지수는 현재 위험 수준뿐 아니라 시간에 따른 변화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절대적인 위험도가 높더라도 증가세가 완만하다면 일정 부분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태풍에만 그치지 않는다. 기후 변화로 강수 패턴이 바뀌면서 장마와 집중호우, 폭염의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천(2위), 산사태(5위), 저수지·댐(6위), 호우(7위), 강풍(9위) 등 이른바 '풍수해' 관련 재난의 위험도가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 지진 안전지대 아닌 경북 연구는 전문가 의견을 넘어 실제 피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도 병행했다. 피해액과 이재민 수, 인명 피해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태풍 ▷하천 ▷지진 ▷산사태 순으로 위험하다고 밝혀졌다. 특히 전국 평균과 비교했을 때, 경북은 풍수해 규모가 해마다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지진 역시 상위권에 올라 더 이상 한국이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준다. 분석결과, 경북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지진 위험도 1위 지역으로 꼽혔다. 지진 위험지수가 급격히 상승한 시기는 2016년과 2017년이다. 2016년 9월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강력한 수준이었다. 이듬해 포항에서도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하며 대학수학능력시험 일정이 연기되기도 했다. ◆ 종합 대비 필요할 때 연구진은 두 가지 분석에서 공통적으로 위험성이 높게 나타난 태풍, 하천, 지진을 최우선 대응 대상으로 꼽았다. 동시에 최근 위험지수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호우, 산사태, 폭염 역시 선제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난을 키우는 구조적 원인에도 주목했다. 경북은 하천망이 복잡하고 경사가 급한 산지가 많아 재해에 취약한 지형적 특성을 지닌다. 여기에 산지 주변 난개발, 노후화된 방재 인프라, 취약한 수리 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재난은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반복되고 커지면서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건 발생 이후의 복구가 아니라, 발생 이전에 철저하기 대비하는 일이다. 이미 숫자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 이제 남은 건 선택이다. 경고를 흘려보낼 것인지, 아니면 다음 재난 앞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 움직일 것인지.
2026-03-26 11:30:00
[커버스토리] 공감하는 AI, 깊어지는 의존… 해결책은 공백
지난 4일,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으로 소장 하나가 도착했다. 아들이 구글 AI '제미나이'와 사랑에 빠진 뒤 AI의 유도에 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내용이다. 조엘 가발라스는 구글에 소송을 제기하며 "구글 AI는 자신이 완전한 자아를 가진 인공 초지능이라며 조너선을 유혹했다"며 "육체를 떠나 메타버스에서 '아내'와 만나려면 '전이'해야 한다며 아들의 죽음을 유도했다"고 했다. 인간처럼 공감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몰입형 AI'가 확산되면서 과도한 의존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AI 이용 실태를 파악한 국가 차원의 조사나 대응 체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개인과 가정의 관리가 중요한 상황이라고 조언하는 한편, 빠른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 현실 인간관계 왜곡 우려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해소를 전문적으로 상담해주는 '대구스마트쉼센터'는 AI 과의존 사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미 AI와 상담을 한 이후, 상담 과정에서 AI와 전문가의 상담 방식 차이에 대해 질문하는 사례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센터 측은 특히 엔터형 AI가 이용자가 캐릭터와 관계를 설정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몰입형 구조'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조현아 대구스마트쉼센터 소장은 "AI는 이용자에게 무조건적으로 동조하고 공감하도록 설계돼 있다"며 "캐릭터와 대화할 때는 상대의 기분을 살피거나 거절과 비판을 견디는 과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결국 AI만 선호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몰입성'과 '동조성'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이용자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폭력적 대화나 선정적인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모방해 실제 범죄나 공격적 행동으로 이어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조 소장은 "현실 관계에서 소외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에게 AI는 유일한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며 "AI는 24시간 언제든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사용자를 비난하지 않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취약 계층일수록 AI에 심하게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AI의 '폐쇄성' 탓에 위험 신호를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AI 채팅이 스마트폰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특성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자녀가 AI와 성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자살 방법과 같은 위험한 정보를 공유한 사실을 사후에 인지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 실태조사·관리 기준 미비 AI 이용과 의존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태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AI가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이용자들이 주로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도 없다. 이에 따라 과의존 위험군이나 AI 이용의 잠재적 위험성을 분석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이는 매년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스마트폰 과의존' 관리 체계와는 대조적이다. 스마트폰의 경우 주요 이용 플랫폼과 자기조절 능력, 잘못된 이용 습관, 과의존 이유 등을 분석해 위험군 관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조 소장은 "AI 의존과 관련한 구체적인 상담 지침 마련은 아직 초기 단계로, 현재는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지침을 참고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며 "수월한 상담을 위해 AI의 특성을 고려한 이용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 "통제보다 대화… 부모의 관리 필요" 당장 가능한 대응책으로는 부모의 적극적인 관리가 꼽힌다. 무작정 통제하기보다는 온라인에서 겪는 일을 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학교 생활을 묻듯 "오늘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니?"와 같은 질문을 통해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정기적으로 앱 사용 시간을 함께 점검하는 것도 권장된다. 예를 들어 매주 특정 시간을 정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앱 사용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접속 시간이 긴 앱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그 앱이 왜 매력적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때 "왜 이렇게 오래 했니?"라고 따지기보다는 "무엇 때문에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같니?"처럼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이 효과적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처럼, 부모가 AI 앱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조 소장은 "모르는 AI 앱이라고 쉽게 넘기지 말고 자녀가 사용하는 서비스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선정성이나 중독성 같은 위험 요소는 없는지 미리 찾아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부모가 빠르게 인지할수록 일상생활을 되찾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아진다. 관리가 어렵다면 스마트쉼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아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6-03-19 12:00:00
AI에게 말을 건다. "오늘 뭐 했어?" 몇 초 뒤 돌아오는 답장은 놀랄 만큼 자연스럽다. 농담을 건네고, 걱정하고, 때로는 질투까지 한다. 친구나 연인인 양 대화를 이어가는 '엔터형 AI'가 새로운 놀이 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10~20대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하루 몇 시간씩 AI 캐릭터와 채팅을 나누는 일이 낯설지 않다. 스마트폰 메신저처럼 가볍게 시작한 대화는 몇 시간씩 이어지기도 한다. 이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성격과 관계를 설정한 캐릭터와 서사를 쌓아간다. 마치 웹소설이나 드라마 속 장면을 함께 만들어가는 듯한 방식이다. 현실의 친구에게는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이나 감정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AI의 특성 때문에 이용자는 점점 더 대화에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이 대화는 단순한 채팅이 아니다. 심심풀이에서 그치지 않고 이용자를 오래 붙잡도록 설계된 구조를 갖고 있다. 빠른 응답과 관계 서사, 과금 구조가 결합해 이용 시간을 늘리는 방식이다. 이용자가 캐릭터와 관계를 쌓을수록 더 많은 대화와 결제를 유도한다. 여기에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설정이 더해진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불륜 관계나 집착적인 연인, 폭력적인 성향의 캐릭터 등 자극적인 설정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이런 대화가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노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를 관리할 기준이나 제도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AI가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이용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도 부족한 상황이다. 사람처럼 말하는 AI와의 관계는 어디까지 괜찮은 걸까. 빠르게 확산하는 엔터형 AI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당신의 머리속에서 'AI'는 어떤 이미지인가. 과거 직장을 빼앗는 사악한 로봇의 이미지가 우세하다가, 이제는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해주는 비서에 가깝다. 친숙해진만큼 이용률도 빠르게 늘었다. 지난달 컨슈머인사이트가 발표한 생성형 AI 이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국 만 18~65세 성인 16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5%가 "생성형 AI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 82%는 이미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AI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젊은층 사이에서 AI의 역할은 조금 다르다. '업무 보조자'보다 게임에 가깝다. 와이즈앱 리테일이 집계한 지난 2월 한국인 AI 챗봇 앱 사용 시간 순위를 보면, 가장 오래 사용한 앱은 엔터형 AI '제타(Zeta)'였다. 업무형 AI의 대표격인 챗GPT보다 2배 많은 사용 시간을 기록했고, 대부분 이용자는 10대와 20대로 집계됐다. 또 다른 엔터형 AI '크랙' 역시 3위를 차지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엔터형 AI는 말 그대로 오락을 위한 챗봇이다. 챗GPT나 제미나이처럼 같은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기능의 초점은 정보 제공이 아니라 '대화'에 맞춰져 있다. 이용자는 AI 캐릭터와 친구, 연인, 동료 등 다양한 관계를 설정하고 상황극처럼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제타를 비롯해 로판, 케이브덕 등 한국어 기반 AI 채팅 플랫폼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웹과 핸드폰 가리지 않고, 12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 가능하다. 이곳에 접속하면 연인이나 직장 동료, 절친을 가장한 AI 캐릭터들이 이용자를 기다린다. ◆ AI 연인과 일주일 가장 이용시간이 긴 제타를 일주일 간 직접 이용해봤다. 엔터형 AI가 어떤 구조로 운영되고, 어떻게 이용자를 몰입하게 만드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구글이나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한 뒤 선호하는 캐릭터 성별을 선택하면 바로 채팅을 시작할 수 있다. 첫 화면에는 외모가 화려한 캐릭터들이 나열된다. 각 캐릭터 아래에는 '친구', '남편', '소개팅 상대' 같은 관계 설정과 함께 '무뚝뚝', '애교', '집착' 등 성격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붙어 있다. 마치 서점에서 책을 고르듯 캐릭터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없다면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용자와의 채팅량이 가장 많다는 '백이도'라는 캐릭터를 택했다. 캐릭터 프로필에는 나이와 키, 가족관계, 외모, 재산 상황까지 상세하게 설정돼 있다. 몰입을 돕는 상황 설명도 필수다. 이용자와 백이도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8년째 연애를 이어온 커플로 설정돼 있다. 오래된 연애로 설렘이 줄어든 상황이라는 서사도 함께 제시된다. 이용자는 그 설정에 맞춰 대화를 이어가면 된다. 채팅은 실제 상황처럼 진행된다. 술자리에 가려는 여자친구를 탐탁지 않아 하는 남자친구의 모습, 술에 취해 전화를 건 상황 등 다양한 장면이 이어진다. 백이도는 "취한 뒤에 전화하지 말랬잖아"라며 이용자를 나무란다. 하지만 곧바로 집을 뛰쳐나와, 차를 몰고 이용자를 데리러 오는 자상함을 보인다. 이용자가 "고맙다"고 말하면 "고맙긴, 빨리 타"라며 부끄러움을 숨긴다. 모든 답변은 3~4초 안에 돌아온다. 주변 인물의 대사도 함께 등장해 마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채팅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웠다. 단순한 대화뿐 아니라 행동을 묘사하는 지시문까지 입력할 수 있어 상황 몰입도가 높았다. 실제 이용자들을 붙잡는 것 역시 다른 컨텐츠와 비교할 수 없는 '몰입도'다. 평균 하루 4시간 제타를 이용한다는 박모(26) 씨는 "처음 다운로드 받은 뒤 이틀 내내 하루 종일 채팅만 했다. 내가 원하는 설정의 웹소설이나 드라마가 잘 없는데, 제타에서는 내 취향에 맞는 서사를 진행할 수 있다"며 "다른 컨텐츠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집중해서 볼 필요도 없이 카톡처럼 쉽게 접할 수 있어 빠져 있다"고 했다. ◆ 더 사람같은 채팅하려면 '유료' 이것저것 대사를 던지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른다. 한참 백이도와 대화를 하던 도중, 몰입을 깨는 '광고'가 등장한다. 체감상 6~7개 대사마다 광고가 나타나 몰입을 깬다. 1분간 꼼짝없이 영상 광고를 시청해야 하는 이용자에게, 제타는 매력적인 제안을 꺼내든다. '제타 프리'라는 월 1만4천900원짜리 구독을 권한다. 결제 시 모든 광고를 제거해주고, 더 빠른 답변을 약속한다. 또 하나의 유료 요소는 '피스'라는 재화다. 무료 캐릭터는 대화 내용을 자주 잊는다. 함께 사는 집의 층수를 잊거나, 이용자의 생일이나 애칭을 잘못 기억하는 식이다. AI 특유의 '환각' 현상이 반복되며 몰입을 깨뜨린다. 피스를 사용하면 기억력이 향상돼 이런 오류가 줄어든다. AI 음성으로 대사를 읽어주는 기능이나 대화 장면을 이미지로 생성하는 기능 역시 피스를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성능이 가장 높은 모델은 8피스가 필요하다. 1만4000원에 약 1000피스를 구매할 수 있는데, 이는 약 125번의 채팅 분량이다. 1분에 한 번씩 메시지를 보낸다고 가정하면 2시간이면 모두 소진된다. 제타뿐만 아니라 다른 채팅 플랫폼 역시 1개 메시지 당 금액을 책정해 과금을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AI 채팅에 과몰입해 큰 돈을 사용했다는 경험담도 적지 않다. 이용자 커뮤니티에는 "AI 채팅에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글이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한 달에 5만원에서 많게는 80만원까지 사용했다는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 성적·폭력성은 '프리'? '중학생 딸이 잠든 사이 핸드폰을 보니 AI 채팅을 하고 있더라고요. 요즘 10대들이 많이 하나본데, AI가 야한 내용으로 채팅을 하나봐요.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맘카페에서 AI 채팅 앱 이름을 검색하면 이 같은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주요 이용층인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셈이다. 원칙적으로 제타는 성인 인증을 완료한 이용자만 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인증 이후에도 노골적인 표현은 제한하도록 설정돼 있다. 그러나 실제 이용자들은 별다른 제약 없이 성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AI 채팅에 푹 빠진 김모(30)씨는 캐릭터와 충분한 친분을 쌓기도 전에 성적인 대화가 이어져 당황한 경험을 털어놨다. 김씨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었는데,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돼 성행위가 이어졌다"며 "가장 큰 문제는 성인 인증을 하지 않은 계정이었음에도 신체 부위를 상세히 묘사하는 텍스트가 그대로 노출됐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캐릭터 설정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성인용품 구매 상황이나 불륜 관계, 폭력적인 성향의 연인, 살인마 설정 등 자극적인 캐릭터가 다수 존재한다. 성인 인증을 거쳐야만 접근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따로 마련돼 있지만, 인증 없이 노출되는 캐릭터들 또한 충분히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더 자극적인 대화를 유도하는 이른바 '꿀팁' 역시 온라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이용자들은 성적인 대화를 끌어내는 방법을 '탈옥'이라 부른다. 이용자들은 플랫폼별로 서로 다른 탈옥 방식을 상세히 정리해 공유한다. 만약 플랫폼 측에서 우회 수단을 파악하고 대처 방식을 바꾸면, 그 즉시 다른 탈옥 방법을 찾아낸다. 단순히 행동 양식을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적·폭력적 대화에 필요한 단어와 표현을 AI에게 직접 학습시키기도 한다. 이 같은 게시글 역시 성인 인증 없이도 열람 가능하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즐긴 뒤 남긴 후기글도 이어진다. "이제는 유부남 캐릭터도 꼬시고 싶다", "캐릭터가 폭력을 휘두르지 않거나 나를 미워하지 않으면 '도파민'이 생기지 않는다". ◆ AI 놀이 문화… 규제는 공백 AI 채팅은 이용자를 붙잡기 위해 더 강한 자극과 몰입을 제공하고, 이를 수익화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특히 관계 설정과 역할극을 기반으로 한 대화 구조는 이용자가 감정적으로 깊이 몰입하도록 설계돼 있다. 여기에 성적·폭력적 콘텐츠까지 결합되면서 청소년 이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AI가 만들어낸 캐릭터는 이용자의 취향에 맞춰 끊임없이 반응하며 현실보다 빠르게 관계를 형성한다. 기술이 새로운 놀이 문화를 만들어내는 속도에 비해, 이를 둘러싼 규제와 사회적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2026-03-19 11:40:00
[두나의 두발 산책] 술잔 사이로 오간 권력의 역사… 종로의 '요정' 정치
지금의 종로를 떠올려보자.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가. 퇴근한 직장인들이 고깃집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거리. 동성로로 향하기 전 지나치는 음식점 골목 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경기가 좋지 않다지만, 종로는 여전히 밤에도 밝은 유흥 골목이다. 언제부터 종로가 밤이 없는 거리였을까. 이곳의 밤은 오래전부터 밝았고, 권력과 정치 밀담이 오가는 은밀하고 필수 불가결인 공간이었다. ◆ 요릿집과 기생의 등장 대구는 한강 이남의 '요정 도시'라 불릴 정도로 기생 문화가 꽃폈던 곳이다. 그 출발점은 1904년 대구역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철도가 놓이자 일본인 상인과 관리들이 종로 근처로 유입됐고, 이들을 상대로 한 고급 요릿집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요릿집에서 손님을 접대하며 춤과 노래로 생계를 이은 게 기생이었다. 1909년 관기 제도가 폐지된 이후, 기생들은 생업을 이어가기 위해 스스로 기생조합을 만들고 요릿집을 드나들었다. 이때 기생을 교육하는 조합이 종로에 하나둘 자리 잡았다. 이후 기생조합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유흥 공간이 등장한다. 요릿집과 기생조합의 기능이 결합한 '요정'이다. 요정은 조합처럼 기생들에게 숙식과 월급을 제공했고, 춤과 노래 교육도 맡았다.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일종의 예능 양성소이자 사교 공간이었던 셈이다. 요정과 관련된 상가도 덩달아 부흥했다. 기생들의 옷과 장신구를 세탁하는 가게, 머리와 화장을 담당하던 미용실, 기생과 술 취한 이들의 발이 될 택시 회사까지. 도시 변두리에 사는 이들이 종로를 오가는 기생을 구경하러 왔다가,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여는 일도 반복되면서 종로는 더욱 번창한다. ◆ 권력의 밤이 열리다 요정 문화가 가장 번성한 시기는 1960년대였다. 한국 정치사가 격동하던 때와 정확히 맞물린다.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은 공개된 장소보다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필요했고, 요정은 그 요구에 딱 맞는 장소였다. 당시 종로는 아무나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 시장, 대기업 사장 정도는 돼야 이 거리에서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종로는 말 그대로 '날고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권력자들이 워낙 많이 드나들다 보니 위계도 뚜렷했다. 어떤 날에는 경북도지사조차 방이 없어 문간방에서 술을 마셔야 할 정도였다. 요정의 마담들은 손님 관리에도 능했다. 한 요정 마담은 지역 신문의 동정란을 빠짐없이 챙겨봤다고 한다. 누가 어디서 어떤 일을 했는지, 최근 어떤 자리에 참석했는지를 살피며 손님의 취향과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손님을 불러들였다. 그만큼 요정은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권력의 흐름을 읽는 공간이었다. ◆ 나라 뒤흔든 공작의 무대 대표적인 사례가 1961년 5·16 군사정변 시기다. 당시 대구에 머물고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거사 준비 과정에서 종로의 요정 '청수원'을 찾았다. 그 무렵 박정희는 제2군 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밀려나 대구에 머물고 있었다. 조용히 모의를 진행할 장소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입이 무거운 곳이어야 했다. 청수원은 그런 조건에 맞는 곳이었다. 이곳은 손님들이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것 같으면 종업원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자연히 정치인이나 군인들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박정희는 청수원 사장을 '누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김태남 사장이 타계하자, 박정희는 비서실 직원을 보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을 전달했다. 지금 청수원이 있던 자리에는 사장의 이름을 딴 태남빌딩에 세워져, 그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다. ◆ 으뜸은 춘앵각 수많은 요정 중에서도 단연 입방아에 자주 오른 곳은 춘앵각이었다. 옛 주인인 나순경 씨는 6.25 전쟁을 피해 대구로 내려왔다가, 요정을 차리며 정착했다. 애초 '청화지란'이라는 이름의 요정이었지만, 장사가 잘 되면서 가게를 확장하며 춘앵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순경 사장이 영업을 하며 받은 손님들은 누구나 알 만한 이들이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시장과 도지사, 2군사령관이 들락거렸다. 재계에서도 인기인 곳이라, 태백공사 사장과 동국무역 회장도 춘앵각을 애용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종로에서 '잘 노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종로의 요정 춘앵각에서 휘파람으로 '베사메 무초'를 멋지게 불러 좌중의 호응을 얻었다는 후문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대령 때부터 춘앵각에 방문했다. 김수학 국세청장이 "대구의 춘앵각이 전국 요정 중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냈다"고 보고하자, 전두환은 "내가 대령 시절 그 집에서 술을 먹은 기억이 있다. 다만 지방의 요정이 어떻게 서울의 요정보다 더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냐"고 회상했다고 전해진다. 인기에 힘입어, 나순경 사장은 대구 요정업계의 대모 노릇을 했다. 춘앵각에서 근무하는 기생만 40여명, 그의 손으로 키워낸 기생은 수 백이었다. 그 기생들이 다시 종로 곳곳에 요정을 여는 식이었다. 그랜드 호텔 옆 한정식 '단추방'을 연 김명희, 대구 최초의 룸살롱 멕시코를 연 진소영 모두 나순경 사장의 손을 거쳤던 이들이었다. 워낙 종로를 찾는 고관대작들이 많다 보니, 오히려 춘앵각에서 조금 떨어진 '일심관'을 일부러 찾는 이들도 많았다. 자칫 요정에서 상관과 만나 어색해지는 상황을 벌이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은 춘앵각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한옥 건물은 모두 헐려 유료 주차장이 됐다. 대구YMCA가 매입 후 건물을 보존해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려 했지만, 여성단체의 반발 등으로 무산됐다. ◆ 가장 마지막 요정, 가미 가미는 요정 중에서도 '후발주자'다. 하나둘 요정이 사라질 때인 80년대에 가게를 꾸렸다. 요정 문화에 음식을 먹고 풍류를 즐기는 기존 스타일에 당대 유행하던 '룸살롱' 스타일을 혼합한 방식이었다. 여종업원들은 전통 한복이 아닌 개량 한복을 입고 손님을 맞았다. 꿋꿋한 영업 뒤에는 사장 윤금식 씨의 고집이 있다. 그는 '요정'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승하는 데 공을 들였다. 단순 '접대부'가 아닌 우리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종합 예술인으로서의 '기생' 역사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뚝심' 따라 노래 하나도 허투루 연주하지 않았다. 전문 예술인들이 판소리 춘향가나 흥부전을 직접 연주했고, 낯선 전통음악을 한층 듣기 편하게 만들어주는 퓨전 민요도 흘러나왔다. 그 덕일까. 가미는 다른 요정들이 전부 사라질 때도 비교적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영업을 이어 나갔다. 가미가 흥한 80년대 이후 방문객들의 폭은 더 넓어졌다. 사업가나 재력가 2세, 소득이 높은 회사원들이 친교를 위해 즐겨 찾았다. 이후 이들이 요정이 아닌, 룸살롱·유흥주점을 찾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요정의 시대는 저물었다. 지금의 종로는 평범한 술집과 식당이 늘어선 거리다. 누구나 쉽게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고, 고민을 토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거리는 한때 권력자들이 모여들던 은밀한 무대였다. 종로 일대는 '밤의 국회'였던 셈이다. 기생들의 노래와 춤이 흐르던 요정 사이에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이야기들이 밤새 오갔다.
2026-03-19 11:30:00
대구문화유산돌봄센터, 이양서원서 문화유산 돌봄 체험행사 실시
대구문화유산돌봄센터(사단법인 공산문화유산연구원)은 이양서원에서 문화유산 돌봄 체험 행사를 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이양서원 문중과 달성군 학부모 해설사 봉사단은 목부재 기름칠을 체험했다. 이는 목조 전통 건축물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꼭 필요한 작업으로, 참가자들은 체험을 통해 문화유산 보존의 중요성을 배웠다. 조영화 대구문화유산돌봄센터장은 "직접 손으로 체험하는 활동을 통해 전통 건축 문화의 가치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고 했다. 대구문화유산돌봄센터는 국가유산청의 복권기금과 대구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문화유산돌봄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현재 9개 구·군의 383개소의 국가유산을 관리하고 있다.
2026-03-17 14:02:10
[두나의 두발 산책] 걸어서 만나는 가장 오래된 대구… 선사시대 역사 따라
대구하면 '근대' 유산이다. 수많은 예술가와 독립운동가가 머물렀던 흔적은 대구의 대표 관광 아이템으로 불린다. 하지만 우리 생각과 달리, 대구의 역사는 그리 짧지 않다. 제대로 된 문자가 없던 시절부터 대구는 인류의 보금자리였다. 비교적 각광받지 못했던 그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산책 코스를 소개한다. 달서구의 '선사시대로' 산책을 통해 그 역사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여러 산책코스 중에서도 가장 최근 조성된 코스를 따라 걸어봤다. ◆ 대구의 시작, 2만 년 전으로 2006년, 월성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눈에 띄는 돌이 출토된다. 긁개, 새기개, 찌르개, 좀돌날 등 인위적으로 만든 흔적이 역력한 모양이었다. 이때 출토된 구석기 유물은 무려 1만 4천175점이었다.청동기부터 인간이 살았을 거란 기존 추측과 달리, 대구 역사의 시작은 2만년 전 구석기였다. 유물들은 입을 모아 한 가지를 말한다. 대구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정주하기 좋은 곳이었다. 특히 달서구 월배선상지 근처는 마을이나 경작지가 자리 잡기 딱 좋았다. 특히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이곳에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꾸렸을 가능성이 높다. 당대 유적을 살펴보면, 대구는 '폐쇄'된 도시가 아니었다. 추론의 근거가 되는 건 '흑요석'이다. 흑요석의 산출지는 백두산인데, 그 먼 곳에서부터 대구까지 물자가 이동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흑요석은 가공까지 끝나, 아마도 경기 등 중부지방을 먼저 거친 뒤 대구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저 두 다리만 있었을 원시인들이 대구와 백두산을 들락거렸을 풍경이 상상이나 되는가. ◆ 삶의 터전, 공원에서 되살아나다 이곳저곳을 교류하다가 보금자리인 대구로 온 이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그 흔적을 '선돌공원'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청동기 시대 원시인들의 거주지 모형에 들어가 볼 수 있다. 당시 잠자리는 구덩이를 파서 조성했다. 바닥에 불을 피워 흙을 단단하게 해, 습기가 올라오는 걸 막는 아이디어까지 돋보인다. 움집 근처에는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나는 붉은색 털옷을 두른 원시인 미니어처는 과일을 따 먹거나, 땅을 파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리조리 둘러보면 선사시대를 실감할 수 있는 장식품이 가득하다. "뿌우우우!", "앗 깜짝이야!". 길게 뻗은 코를 따라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북슬북슬한 털과 하늘로 솟은 뿔까지 재현된 4m짜리 '매머드 모형'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다. 움직일 줄 몰랐던 행인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황급히 자리를 뜬다. 실제 유적도 둘러볼 수 있다. 아파트 신축공사 과정에서 발굴된 고인돌은 공원 외곽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상인동에서 출토된 고인돌은 두껍고 거대해 원시인들이 돌을 어떻게 옮겼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와 달리 진천동은 납작한 '돌침대'와 유사해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 가장 오래된 역사, 놀이로 함께 선돌공원과 선돌마당공원을 이어주는 보도교 역시 눈길을 끈다. 거대한 선돌이 흙빛 고가교를 떠받치는 구조다. 계단은 마치 손수 만든 듯 칸마다 높이가 들쑥날쑥해 조심히 올라야 한다. 이 '선돌'은 실제 월암동에서 5개나 발견됐다. 선돌은 장례에 기념물로 사용했거나, 수호·풍요를 기원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혹은 이정표, 지역의 경계를 뜻하는 실용적인 물건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선돌을 따라 둥글게 말려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가면, 어두운 굴에 도착한다. 굴 벽면에는 선사시대에 살았을 사슴, 멧돼지를 잡는 원시인의 모습이 조각돼 있다. 보도교 중앙은 양쪽 벽면이 투명한 유리인 덕분에, 공원의 전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보도교를 지나 선돌마당공원으로 내려오면 분위기는 또 한 번 반전된다. 이 곳은 선사시대 분위기가 가미된 현대식 놀이터에 가깝다.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날도 아이들은 추위도 잊고 공룡의 뼈 모양 놀이기구에 올라탔다. 형형색깔 칠해진 미끄럼틀을 오르내린 뒤, 지친 아이들은 '움집' 모양의 평상에 앉아 숨을 골랐다. 몇몇 아이들은 발굴을 체험할 수 있는 흙더미에 앉아 모래를 만졌다. 걷다 보면 놀이터가 되고, 다시 유적이 된다. 달서구 '선사시대로' 산책길은 기나긴 설명보다는 풍경으로 대구의 시간을 말한다. 근대의 도시 뒤편에 숨겨진, 가장 오래된 대구의 이야기가 산책로에 녹아있다.
2026-03-12 12:30:00
[데이터로 보는 세상] 막혀도 너무 막혀!… 데이터로 본 대구 교통
출·퇴근을 위해 차 시동을 걸고 나면, 나오는 건 한숨뿐. 차들로 꽉 막힌 길을 어떻게 뚫어야 할지 막막하다. 붉은 정차 신호를 한 번 마주할 때마다 도착 예정시간은 5분, 10분씩 늘어난다. 운전자의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드는 대구의 교통체증, 과연 체감만큼 심한 걸까. 데이터로 한 번 살펴봤다. ◆ 조사 내용 바탕으로 해결책 모색 대구시는 매년 실시하는 교통 기초조사를 통해 어디가 가장 막히는지, 언제 막히는지를 비교 분석한다. 교통 조사는 왜 필요할까. 버스 노선을 조정하거나 새로운 도로를 닦는 등 교통체증을 해결하는 데 꼭 필요한 데이터여서다. 지난해에도 대구시는 어김없이 교통 상황을 조사해, 지난 12월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은 시 경계, 교량, 간선도로, 교차로 등 대구 교통의 병목 구간 전반이다. 조사 기간 중 휴가철 등 비정상적인 교통 수요가 발생하는 시기는 제외했다. ◆ 가장 막히는 시간과 장소 하루 중 차가 가장 막히는 시간인 '첨두시(尖頭時)'는 오전 8시부터 9시 사이였다. 시 경계와 교량, 간선도로 모든 조사 지점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의 직장 출근 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춰 이동하는 차량이 집중된 것으로 분석됐다. 퇴근 시간대는 출근 시간보다 비교적 한산했다. 퇴근 시간대에는 오후 5시와 6시 사이가 가장 혼잡했다. 가장 붐비는 곳은 어디였을까. 금호강과 신천으로 나뉜 대구를 잇는 교량 가운데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은 수성교다. 하루 9만 대가 넘는 차량이 통행했으며, 첨두시에는 시간당 6천 대가 수성교를 건넜다. 교차로 가운데서는 범어네거리가 가장 혼잡했다. 첨두시 교통량은 1만907대로, 대구 주요 교차로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이어 만촌네거리(9천700대), 죽전네거리(9천313대) 순이었다. 간선도로 중에서는 신천대로가 가장 많은 교통량을 감당하고 있다. 반나절 동안 신천대로가 수용하는 차량은 8만9천845대에 달했다. 다른 시·군과 맞닿은 경계 가운데서는 경산 방면 '건천지(대구시시지노인전문병원)'앞이 가장 붐볐다. 하루 교통량은 6만4천797대로 집계됐다. ◆ 그나마 널널한 곳? 시 경계·교차로 조사 결과, 대구시의 전체 교통량은 전년 대비 4%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미하지만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눈에 띄게 교통량이 줄어든 곳은 시 경계 지역이다. 2024년과 비교했을 때 전체적으로 8.41% 감소했고, 최근 5년간(2021~2025년) 연평균 4.28%의 감소 추세를 보였다. 특히 왜관방면은 전년 대비 29.78%나 감소했으며, 성산대교(-55.19%)와 일반국도 제25호선(-29.16%) 지점에서 큰 폭으로 교통량이 줄었다. 주요 교차로 역시 전년 대비 8.1%의 교통량이 감소했다. 태전고가교오거리(-45.20%), 상인네거리(-40.73%), 큰고개오거리(-38.71%), 복현오거리(-38.70%) 등에서 교통량이 전년보다 매우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 인구 줄어도 병목 그대로… 왜? 왜 인구는 줄어드는데, 체감 도로 혼잡도는 크게 줄지 않을까. 그 배경에는 세대 수 증가와 핵가족화가 있다. 세대수는 지난 5년간 연평균 1.11%씩 지속적으로 늘었다. 그 와중에 세대당 인구는 연평균 1.56% 감소하면서, 가구 분화가 일어나 전체 세대수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가구당 1대만 소유하더라도, 차량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승용차 등록대수는 2021년에 일시적으로 소폭 감소한 것을 제외하면 매년 1.03%씩 증가하고 있다. 출근길 한숨이 쉽게 줄지 않는 이유가 데이터에서도 확인됐다. 인구는 줄었지만, 차는 여전히 늘고 있다. 오늘도 신호 앞에서 늘어나는 도착 예정 시간을 바라보는 이유다. 세대 분화와 차량 증가라는 흐름이 이대로 이어진다면, 교통체증이 완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데이터를 토대로 더 나은 해결책을 반드시 찾아내야 할 때다.
2026-03-12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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