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나 기자 dun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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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닮은꼴 남발 도시재생 사업… 변화 꾀하려면

    [커버스토리] 닮은꼴 남발 도시재생 사업… 변화 꾀하려면

    4천400억 원을 쏟아부은 도시재생 사업은 마을마다 다른 이름으로 진행됐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세부 사업 10개 중 8개는 닮은꼴이었고, 재생은 커녕 '복제'에 가까운 풍경만 남겼다. 지난 2018년부터 대구에서 시행된 27개 도시재생 사업을 전수 분석한 결과, 세부 사업 124개 가운데 95개(약 77%)가 기능적으로 유사했다. 막걸리 전수 사업이나 반려동물 특화 재생, 고택 문화스테이처럼 지역 고유성이 드러나는 사업은 29개에 그쳤다. 단순 환경 정비에 그친 사업인 ▷안심길 조성 ▷가로 정비 ▷집 수리 사업은 스무 차례 넘게 시행됐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소유자가 확인된 주택만을 대상으로 노후 건축물을 손보는 수준에 머물렀다. 정비된 거리마다 들어선 사회간접자본(SOC) 시설도 사실상 복제됐다. 대구에 조성된 SOC 시설은 모두 76곳이지만, 이 가운데 4곳 중 1곳은 카페 기능을 포함한 유사 시설이었다. 공방·목공 작업실은 9곳, 공유부엌은 10곳으로 특정 유형의 공간이 반복적으로 양산됐다. 차별화된 기능이나 지역 특성을 반영한 사례는 찾기 어려웠고, 남은 공간 역시 사무실·경로당·주차장으로 채워지는 획일성이 보였다. 무작정 비슷한 시설을 짓다 보니 이용률과 수익성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 중구의 '한옥마을 공유공간'은 이용객을 확보하지 못해 2년 가까이 문을 닫은 채 방치됐다. 구청은 지난해 말에야 해당 공간의 용도를 '방앗간'으로 변경해 활용에 나섰다. 운영의 지속 가능성도 취약하다. 전체 시설 가운데 공공이 직접 운영하는 비율은 46.1%로 가장 높았고, 민간 운영이 42.1%, 공공과 민간이 함께 운영하는 경우는 11.8%에 그쳤다. 공공이 운영에 개입할 경우, 도시재생 사업이 종료돼 재정 지원이 끊기면 시설 유지 자체가 어려워진다. 민간 운영 시설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운영 주체 대부분이 영세하고 전문성이 부족해 장기 운영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때문에 비교적 수익을 내기 쉬운 카페 조성에만 집중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실제로 민간이 관리하는 시설 가운데 63%는 카페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도시재생 정책의 취지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국토교통부는 지역 특성에 맞춘 재생을 유도하기 위해 ▷경제재생거점 ▷우리동네 살리기형 ▷지역특화재생 ▷뉴:빌리지 ▷인정사업 등 다양한 유형을 마련해 지원해왔다. 그러나 대구에서는 이 같은 정책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 사업은 획일적으로 진행됐고, 주민 체감도는 낮았다. 달서구 송현동에 거주하는 장모(70)씨는 "센터 하나 지어진 것 말고는 삶이 달라진 게 없다"며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도 그대로인데, 2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어디에 쓰였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될까. 전문가들은 국가가 주도하는 도시재생 사업 구조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지자체가 중앙정부가 정한 예산과 사업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고, 사업을 수행하는 용역사 풀 역시 제한적이다 보니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내기 쉬운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결국 이미 '성공 사례'로 평가된 사업을 답습하는 구조다"며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사업이 진행되고, 결과 역시 닮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구조는 성과 평가 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현재 도시재생 사업은 지자체가 자체 평가한 결과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뒤, 경쟁을 거쳐 시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평가 체계 속에서, 장기적인 운영 가능성이나 지역 변화의 지속성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장명준 대구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회성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사업이 끝난 뒤에도 효과가 유지되는지다"며 "지속 가능성을 평가 기준에 포함한다면 사정이 조금 나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사전 조사'의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도시재생에 공감하고 참여할 의지가 있는 주민이 있는지, 보존해야 할 지역 자산이 무엇인지부터 면밀히 살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 과정이 생략됐다. 결국 주민들 상당수는 사업이 끝난 뒤에도 '도시재생'과 '재개발'을 구분하지 못했고, 마을을 유지·보존하기보다는 도로 확장이나 편의시설 확충 같은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도시재생의 개념과 주민 역할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사업이 추진되다보니, 사업 종료 후 주민들이 맡아야 할 거점 시설 운영도 동력을 잃었다. 강 교수는 "도시재생 사업의 주체는 정부가 아닌 주민이다. 주민이 스스로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지자체가 중앙정부와 주민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주민 참여 여부와 마을의 특징을 지자체가 사전에 조사한 뒤, 중앙 정부에 사업을 신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 역시 사업이 하나 둘 종료되는 올해를 기점으로, 대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사업 개수 자체는 줄이고, 사업 기간을 늘려 문제를 해결해보려 한다. 신규 사업을 신청할 때도 고심할 계획이다"며 "특히 거점시설의 활용도를 늘리기 위해, 올해 안으로 운영 현황을 전수조사한 뒤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2026-01-15 11:30:00

  • [커버스토리] 8년간 27곳 도시재생… 대구 얼마나 바뀌었나?

    [커버스토리] 8년간 27곳 도시재생… 대구 얼마나 바뀌었나?

    갈라진 페인트와 방치된 빈집, 이용객 없는 거점 시설은 예산 투입의 무색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여전히 편의시설 하나 없다며 평했고, 무작정 지어진 거점 시설의 운영 부담까지 안았다. 수십억 원이 투입된 대구 도시재생사업은 주민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strong〉◆ 예뻐졌지만, 여전히 텅 빈 마을… 체감 효과 불투명〈/strong〉 지난 2일 배나무 샘골로 불리는 남구 이천동 403번지 일대를 찾았다. 동네 입구로 가는 길은 황량했다. 풍성한 수풀 속에 세워진 '이천동 시간풍경 골목길'이라는 안내판만이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시간 풍경이 흐르는 배나무 샘골'이라는 주제로 도시 재생 사업이 이뤄진 마을이다. 남구청은 지난 2019년부터 5년간 사업을 벌여왔다. 이곳에만 117억8천300만원 가량이 투입됐다. 마을을 되살리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마을 분위기를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형형색색의 벽화만이 사람 없이 황량한 골목을 지켰다. '샘골'을 형상화해, 긴 골목을 따라 칠해진 파란색 페인트는 군데군데 갈라져 흉물이 됐다.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을 지난 후 골목은 점점 더 좁아졌고, 어두워졌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난 오래된 주택은 문이 활짝 열린 채로 방치돼 있었다. 깨진 시멘트와 장독, 생활 쓰레기와 다 늘어진 빨랫줄만이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빈집에서 사는 길고양이는 이 동네의 골칫거리다. 빈집이 하나 둘 늘어나며 고양이도 개체 수를 늘렸다. 주택 앞에 변을 보지 않도록 하고자, 주민들은 담벼락 곳곳에 페트병을 늘여놓는 궁여지책을 내놨다. 말 그대로 '죽은 마을'이었다. 100억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이후에도,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 "도시재생? 체감 못 한다" "도시재생 사업 효과? 글쎄요. 한 번 마을을 둘러보시면 알 텐데요. 어디가 재생됐다는 거죠?" 김명식(가명·49)씨는 남구 이천동 403번지 일대에서 태어나 쭉 이곳에서 자랐다. 군대에 다녀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천동 일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골목 곳곳은 명식씨의 놀이터이자 등·하굣길이었다. 어렸을 적 골목을 요란하게 울리며 뛰어가는 초등학생이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주부들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골목에 자리잡은 주택들은 하나 둘 연기를 피웠다. 시간이 흐를 수록 이천동은 조용해졌다. 명식 씨의 친구들은 결혼, 취업, 자녀 교육 등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마을을 떠났다. 골목 곳곳에 놓여진 빈집은 명식 씨의 친구들이 살던 옛집이었다. 40년이 훌쩍 넘은 주택들은 워낙 오래됐다보니, 수리를 거듭해도 새 주인은 찾아오지 않았다. 신축 건물이 없으니 셋방살이를 자처하는 젊은이도 줄었다. 명식씨는 "남은 사람은 어르신뿐이다. 옆집, 앞집 지인들에게 의지해 남은 생을 살아가는 노인들만 남은 셈이다"고 했다.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뒤 상황은 반전됐을까. 그는 "전혀 체감할 수 없다. 바뀐 게 없는데, 1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되려 물었다. 좁다란 도로 환경은 그대로였다. 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은 보행기를 끌고 불법주차 차량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편의점 하나 들어오지 않았고, 빈집도 그대로 방치됐다. 벽과 계단에 꽃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구청 홍보 게시글을 본 관광객들이 생겼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지갑을 열 만한 상권도 없다보니, 이들은 잠시 마을을 둘러보다 떠났다. 마을 특색을 살리겠다며 붙인 '배나무 샘골'이라는 사업 이름도 생소했다. 마을에 남은 배나무는 열매가 두어 개 밖에 열리지 않아 존재감이 희미하다. 그는 "결국 왜소한 배나무 옆에 '가짜 배나무'를 심더라. 관광객을 불러오고자, 마을 사람들도 잊은 지 오래인 배나무 얘기를 억지로 꺼내 온 것 같다"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을이 바뀌었다'고 체감한 건 훨씬 이전이었다. 1990년대 후반 이천동 마을에는 차량 두 대가 너끈히 교행할 수 있는 넓은 길이 생겼다. 차량 진입이 손쉬워지고, 걷기도 쾌적한 도로가 들어서면서 유동 인구가 늘었다. 오전 7시가 되면 출근길, 등하굣길의 오르는 이들로 도로가 복작해졌다. 도로와 함께 도시가스가 들어서고, 산발적으로 나 있던 우물도 메우면서 삶의 질은 더욱 올라갔다. 신식 빌라도 하나 둘 건설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재생'보다 여전히 '인프라 개발'에 목말라 있었다. 명식씨는 "삶의 질을 높이는 건 편의점이나 주차장, 큰 도로다. 이번 도시재생 사업에서는 빠진 것들이다"며 "주민들에게 '마을이 살아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겠느냐'는 질문 없이 사업이 진행했으니 당연한 결과다"고 했다. ◆ "장 보러 먼길… 차 없이는 불가" 권영교(67)씨는 도시재생 사업이 한창이던 지난 2020년 이천동 일대로 이사를 왔다. 근처에서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본가에서 떨어져 아들과 함께 머물 곳을 찾은 결과다. 조용한 마을 분위기와, 새벽 운동을 할 수 있는 공원이 가깝다는 점은 영교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같은 마음으로 이주해 온 이들이 늘어났냐는 질문에, 영교씨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영교씨는 "이곳 저곳을 개선하느라 부산스럽긴 했다. 하지만 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마을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유입 인구가 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영교씨는 고민도 하지 않고 '편의시설'을 꼽았다. 마트는 커녕, 편의점과 슈퍼도 없어서다.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영선 시장이 있지만, 식재료를 들고 먼 길을 걷기에는 무리가 있다. 영교씨는 "조용한 분위기 말고는 이점이 크게 없다. 시장에 가거나 마트에 방문하려면 차가 꼭 필요하다"며 "근처아파트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작은 마트, 편의점 하나라도 들어서길 바란다"고 염원했다. 시장에 방문하고 싶어도, 손쉽게 돈을 찾을 수 있는 은행이 가까운 곳에 없는 점도 문제다. 휴식을 즐기거나 동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도 없다. 영교씨는 다행히 무사히 적응을 마쳤지만, 새 주민이 들어온다면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걱정했다. 〈strong〉◆ 무작정 지은 건물… 활용도 높이느라 애먹어〈/strong〉 "우리 동네 초등학교 입학생이 올해 38명이에요. 75세 이상 노인은 1천500명이죠. 어때요. 도시재생이 된 거 같습니까?" 2일 방문한 대구 동구 복합근린허브센터. 지난 2023년 11월 개소한 이 시설을 짓는 데만 53억원이 들었다. 이 건물 운영은 '소목골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의 몫이다. 건물에 딸린 주차장과 카페, 치킨집을 운영하며 수익 창출을 꾀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날 점심 식사를 마친 주민 4~5명은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저렴하고 따뜻한 커피는 주민들을 단골로 만들었다. 단골 주민들은 카페 근무자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카페에 녹아들었다. ◆ 수익 창출에 골머리 앓아 그 내막은 순탄치 않다. 인건비와 재료비를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주차장을 제외한 대부분 수익 사업이 겨우 적자를 면하고 있다. 1층에 있는 치킨집이 들어서기 전, 조합은 맥주가게 '까치펍'을 야심차게 차렸다. 소목골에서만 볼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하고, 마을 사랑방 역할을 도맡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지역성'을 살리자니 수익이 변변찮았다. 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단 3달만에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딸린 조합원들에게 인건비를 주기 위해 백방으로 방법을 찾았고, 사업 취지에 공감한 프랜차이즈 치킨집과 업무 협약을 맺고 겨우 수익을 내게 됐다. 이곳도 영업을 오래할 수록 인건비가 불어나, 하루 7시간만 문을 열기로 했다. 이것저것 사업을 벌려봐도 인건비만 겨우 감당하는 '풍전등화' 신세다. 손에 떨어지는 수익은 5%가 채 되지 않는다. 당연히 운영을 도맡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 임기를 딱 1년 남긴 김광수 소목골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의 시름이 깊은 이유다. 김광수 이사장은 "돈 한 푼 받지도 않고 사무실에 살다시피 하며 조합을 운영하는데, 나아질 기미가 없어 다음 이사장을 맡을 사람이 있겠냐. 젊은 피도 수혈되지 않아, 결국 노인들이 어렵게 꾸려나가야 한다"며 "동네 살리는 데 220억이 들었다. 차라리 현찰로 줬으면 이것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고 했다. ◆ 청년 없는 곳에 들어선 청년 센터 남은 공간인 2층에 들어선 청년센터도 고민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곳은 예약자를 대상으로 물건을 팔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거나, 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와 강의실을 대여해주고 있다. 시설 만족도와 재방문율은 높지만, 새로운 이용객이 눈에 띄게 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비슷한 성격의 시설이 또 생긴다는 점도 우려된다. 차로 15분 거리인 경북대 일대에서 새로운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이곳에도 청년 창업과 모임을 지원하는 거점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동구 청년센터 이용자 다수가 경북대 학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요가 분산돼 동구 시설의 활용도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동구 청년센터 관계자는 "건물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근처 상권이 발달되지 않은 데다가 접근성도 좋지 않아 청년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며 "청년센터가 있으면 가까운 곳에 있는 동구시장도 활성화 될거라 기대했지만, 시장도 센터도 이용객이 크게 늘지 않았다"고 했다. ◆ 비슷한 시설 우후죽순… 똑같은 숙제 안아 1층 카페와 조합 사무실, 구청이 관리하는 주거복지센터까지. 달서구 송현희망센터는 동구의 시설과 똑 닮았다. 운영 책임인 배민균 든들행복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역시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이 곳은 인건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마진이 남으면 조합원들끼리 나누는 식이다. 새로운 수익 모델도 찾지 못했다. 결국 기댈 곳은 구청뿐이다. 최소한의 운영비도 없어, 부족한 카페 테이블을 구매하는 것조차 부탁해야 한다. 하지만 구청 예산 상황도 넉넉하지 않아 요구가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주요 도시재생 사업 중 하나인 '주차장' 사업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한탄했다. 만들어진 주차장은 고작 19면. 단독주택이 많은 마을 특성상, 골목을 꽉 채운 불법주차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다. 그러니 운영이 버거운 송현희망센터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다. 배 이사장은 차라리 이 자리에 주차장을 세운 뒤 이용비를 받았더라면, 조합 살림이 나아졌을 것이라 본다. 배 이사장은 "멋들어진 건물이 지어지고, 무허가 건물들이 정비된 건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건물 관리를 전문성 없는 우리가 맡으려니 감당이 안 된다"며 "도시재생사업 기간이 끝나고 현장지원센터가 철수한 뒤, 맡을 사람이 없어 겨우겨우 조합이 떠안게 됐다. 제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2026-01-15 11:30:00

  • [커버스토리] '복사+붙여넣기'… 색깔 잃은 대구 도시재생

    [커버스토리] '복사+붙여넣기'… 색깔 잃은 대구 도시재생

    27개. 총사업비 4천403억3천400만원. 지난 2018년부터 대구 곳곳에서 추진된 도시재생사업의 요약본이다. 골목을 살리고, 마을을 되살리겠다며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다. 그렇다면 정말 동네는 바뀌었을까. 8여년간의 사업이 마무리 된 뒤 남겨진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겉모습만 놓고 보면 변화는 분명하다. 길은 정비됐고, 낡은 집들은 손을 탔다. 벽화가 생겼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나 동네마다 풍경은 엇비슷했고, 덜컥 시작된 사업의 운영 부담은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주민들의 얼굴은 울상, 또 울상이었다. 도시재생은 단순히 마을을 '고쳐쓰는' 일이 아니다. 그 공간이 왜 생겼는지, 누가 지키는지, 시간이 지나도 남을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그러나 대구의 도시재생은 이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주간매일은 27개 사업 전수조사 통계와 실제 현장을 살펴보고, 실패가 반복된 구조와 원인을 추적했다.

    2026-01-15 11:30:00

  • [백년대구 아카이브] 경계의 확장과 과밀의 시대… 도시 계획의 시작

    [백년대구 아카이브] 경계의 확장과 과밀의 시대… 도시 계획의 시작

    [소개] 대구시가 기획, 제작한 책 〈지상대구〉를 통해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 자료를 통해 대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갖췄는지 추적한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의 조성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총 4부로 소개한다. 연재를 여는 1부에서는 도시의 뼈대에 해당하는 행정시설의 변천사와 함께, 확장되는 도시 구역을 다룬다. 1934년 대구 인구는 무럭무럭 늘어나 14만8천명에 육박한다. 당시 인구밀도는 1명당 면적이 81㎡로, 이상적이라 꼽는 1인당 100㎡을 훌쩍 넘어선 상태였다. 인구를 감당치 못하면서 대구부는 점차 덩치를 불렸다. 대구역으로 가로 막힌 경상감영 북편을 제외하고, 도심은 점점 동과 서, 남으로 확장됐다. 총독부는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고자 1937년 3월 23일 대구시가지계획구역, 지역가로, 토지구획정리구역과 면적을 정리했다. 당시 대구부 면적에 약 927만㎡에 주변지역 222개동을 포함시킨 약6천722만㎡이 도시 계획구역으로 꼽혔다. 이 중 거주지역으로 지정한 곳은 4천819만㎡였다. 점점 더 넓어지는 도심을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새로운 운송수단이 필요해졌다. 1929년 대구 부영버스가 첫 운행을 시작하게 됐다. 수요에 따라 교외선까지 증편되면서, 동촌과 화원까지 총 4개의 노선 버스가 다니게 됐다. 최초 1년 간 적자 운행을 하던 부영버스는 이듬해인 1931년 영업 개선을 통해 흑자를 기록하며 성장한다. 총독부는 대구 지역의 인구가 더욱 늘어날 것을 전제로 도시 계획을 펼쳤다. 1934년 당시 인구는 15만명에 미치지 못했지만, 1965년에는 약 35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도시 성장 속도를 훨씬 뛰어넘는 인구 유입이 이어졌다. 결정적 변수는 한국전쟁이었다. 1950년대 피란민이 대거 유입되면서 대구는 극심한 인구 과밀 상태에 놓였다. 1953년 대구의 인구는 50만 명으로 늘었고, 이 가운데 18만 명이 피란민이었다. 수많은 피란민이 먹고 잘 만한 곳은 없었다. 이들은 금호강 기슭과 신천 강변에 움막과 판자집을 짓고 생활했다. 전후 재건과 도심 재구축이 필요한 때였다. (4편에 계속)

    2026-01-15 11:30:00

  • [데이터로 보는 세상] 외국인 눈으로 본 대구 관광, '만족' 응답 뒤 숨은 불편

    [데이터로 보는 세상] 외국인 눈으로 본 대구 관광, '만족' 응답 뒤 숨은 불편

    근대 문화유산과 2만년 전 선사 유적이 공존하는 곳. 설명만 들으면 대구는 충분히 매력적인 관광지다. 그런데 이상하다. 방문객 수와 씀씀이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다른 지역과 달리 초라한 관광 '성적표'를 받은 이유는 뭘까. 대구시가 조사한 외국인 관광객 1천10명의 평가를 토대로 그 해답을 추적해봤다. ◆ 수 늘었지만, 회복 속도 더뎌 외국인 방문객 수는 2024년을 기점으로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24년 대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9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71만 명)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을 회복했다. 대구시는 지난 2025년에도 비슷한 수준의 방문객을 유치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회복 속도다.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증가 속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더디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5년 7월 한 달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73만3천19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1% 증가했다. 이 가운데 서울 방문객만 136만 명에 달했다. 이는 대구가 2025년 한 해 동안 유치한 외국인 관광객 추정치를 훌쩍 넘는 규모다. ◆ 언뜻 보면 성공... 실상은 부실 왜 외국인들은 대구를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대구시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지난 2024년 4월부터 12월 사이 대구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는 총 1천10명으로, ▷4~5월(1분기) ▷6~8월(2분기) ▷9~10월(3분기) ▷11~12월(4분기)로 나눠 수집했다. 전체 응답자의 93.5%는 "여행에 만족했다"고 답했다. 대구 여행의 강점으로는 '독특한 문화유산'(25%)이 가장 많이 꼽혔다. 실제 방문객 다수는 문화유산이 산적해 있는 중구에 머물렀다. 이들은 서문시장(83.6%)과 동성로와 중구 시내 일원(76.9%)을 방문한 뒤, 약령시 근처 문화유산을 탐방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매우 만족한다'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 비율은 1분기 20.3%에서 4분기 14.2%로 하락했다. 재방문 의사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재방문 의사가 매우 있다'는 응답은 1분기 25%였으나, 3·4분기에는 각각 19.4%, 20.8%로 줄었다. 씀씀이는 더 냉정했다. 같은 기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서울에서 평균 264만8천원을 지출한 가운데, 대구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평균 113만1천154원을 지출하는 데 그쳤다. 특히 지갑이 가장 열리지 않는 시기는 1분기로, 이 시기 1인당 지출액은 약 85만원에 그쳤다. ◆ 언어와 이동, 대구 여행의 벽 이 같은 성적표는 여행 과정에서 체감한 불편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의 불만사항을 주관식으로 응답을 수집한 결과, 가장 자주 언급된 문제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었다. 특히 교육 목적으로 대구를 방문한 이들 41.8%가 언어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했고, 뷰티와 의료 건강 치료 목적으로 방문한 12.6%도 언어소통 어려움을 드러냈다. 이들은 다국어 안내표지판과 간판 확충을 요구했다. 연령대별로는 50대, 거주 국가별로는 미주·유럽·대만 관광객이 특히 불편을 느꼈다. '택시기사와의 의사소통' 역시 같은 맥락에서 문제로 지적됐다. 관련 만족도 조사에서 평균 3.88점에 그쳤다. 2019년(3.92점)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불편은 언어에만 그치지 않았다. 주관식 응답에서는 '혼잡한 교통' 문제도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특히 대구를 당일치기로 방문한 관광객들 사이에서 교통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컸다. 사통발달의 도시로 꼽히는 대구가 이 같은 오명을 쓰게 된 이유는 뭘까. 외국인 관광객의 이동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는 추측이 나온다. 대부분이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에 의존하면서, 자가용 중심으로 설계된 대구의 교통 환경은 관광객에게 장점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가장 많이 이용한 교통수단은 지하철(43.4%)이었고, 버스(40.4%)와 택시(40.1%), 전세버스(31.3%) 순이었다. 반면 렌터카나 대절 택시, 지인 차량 등 자가용을 사용하는 비율은 18.7%에 그쳤고, 도보 이용률은 0.3%에 불과했다. ◆ 대구시도 문제 인식… 해법은 '진행형' 대구시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서울을 제외한 모든 중·소 도시가 비슷한 성적표를 받았다. 수도권 외 지역의 방문비율은 33.9%에 불과하고, 1인당 지출 규모는 110만원 내외를 오간다. 교통에 대한 만족도는 최하위다. 결국 구조적 문제다. 구조적 문제는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대구시는 점진적 개선을 목표로 대책을 짜고 있다. 소통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바일 간편결제 지점을 확대하고, 숙박시설 주변 관광지 안내 QR의 보급을 늘리기로 했다. 식음시설 종사자를 대상으로 간단한 외국어 의사소통과 서비스 품질 개선 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겪는 사소한 문제까지 해결하고자 '대구관광불편신고센터'도 도입할 예정이다. 외국인들이 대구에서 겪는 불편사항을 실시간으로 접수해 즉시 해결하는 게 목표다. 대구시 관광과 관계자는 "2025년에 진행했던 사업들뿐만 아니라, 신규 사업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관광 환경을 개선할 예정이다"며 "주기적으로 모니터링을 거쳐 더 나은 대책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2026-01-15 11:30:00

  • [두나의 두발 산책] 근대 문인 품은 대구… 골목 따라 꽃피운 예술혼

    [두나의 두발 산책] 근대 문인 품은 대구… 골목 따라 꽃피운 예술혼

    계산오거리 인근 골목 벽에는 발걸음을 붙잡는 시 구절들이 가득하다. 이곳 일대에 살던 문학인들이 고뇌한 끝에 적어내린 문장들이다. 문장을 낳은 예술인들의 흔적은 대구 중구 근대문화골목길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이상화 생가? 고택? 모두 이곳에 계산오거리 옆 '이상화 고택' 안내판을 따라가면 하늘 높이 치솟은 현대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한옥이 있다. 1939년부터 생애를 마치던 1942년까지 이상화가 잠시 머문 곳이다. 이상화가 앉아 시를 썼을 마루는 반질하게 닳아 있고, 기와에는 소복하니 먼지와 때가 내려앉아 있다. 저항정신이 담긴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대구의 향토사를 담은 '대구행진곡'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프랑스어와 문학을 공부한 뒤 대구로 돌아왔다. 그 10여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구에 머물렀다. 태어났을 때부터 30년 이상 이상화 시인이 머문 생가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생가는 북성로 돼지국밥 골목과 가깝다. 생가는 시인 생전 '담교장'이라 불렸고, 그는 저항 정신을 공유하는 친구들을 초대해 시간을 보냈다. 아쉽게도 지금은 생가를 또렷하게 보기가 어렵다. 대부분이 허물어지고, 그나마 남은 안채는 한때 한옥 카페로 운영되다가 문을 닫았다. 다행히 이상화와 동거동락한 라일락 나무는 닫힌 문 너머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이상화의 탄생과 고뇌를 모두 지켜봤을 관찰자다. 대구를 배경으로 했을 그의 작품이 상당수 소실된 데는 뒷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를 귀감으로 여긴 시인 임화가 이상화의 시집을 출판하겠다고 원고를 가져간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임화가 북한에서 숙청되면서, 원고를 찾을 길은 영영 사라졌다. 절친 박종화와 나눈 것으로 알려진 편지나 시도 한국전쟁 당시 모두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꼬불꼬불 골목 속 마당 깊은 집 고택에서 벗어나 계산성당을 끼고 돌면 낡은 옷을 입은 남자아이의 동상을 만나볼 수 있다. 품안에 신문을 끌어안은 아이가 보고 있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마당 깊은 집' 전시관을 만나볼 수 있다. 소설의 실제 배경은 아니지만, 소설과 가장 닮아있는 장소를 골라 리모델링해 전시관을 꾸몄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전후 대구를 무대로 한다.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전후 도시의 설움, 분단의 아픔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8년 단행본으로 발간된 뒤 드라마로 제작됐고, 인기에 힘입어 ▷일본 ▷페루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미국에 번역본이 출간됐다. 김원일의 유년시설은 약령시 일대를 누빈 추억으로 가득하다. 한 달에 한 번씩 동생들의 손을 잡고 '종로목욕탕'을 찾았고, 진골목에 있는 '정소아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전시관에 기록된 그의 추억을 따라 근대문화골목을 걸어보길 추천한다. 소설의 무대가 된 곳을 본 뒤, 마당 깊은 집을 다시 읽으면 감회가 달라질 지 모른다. ◆대구사람 이육사 계산오거리에서 도보 10분 거리, 한 아파트 단지 출입구와 접해 있는 이 곳은 이육사 기념관이다. 이육사가 1920년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사온 뒤, 17년간 살았던 고택이 있던 자리다. 아쉽게도 재개발이 되면서 기존의 형태를 잃었지만, 대신 이육사 생애 전반을 볼 수 있는 기념관을 새로 지었다. 이육사는 안동에서 태어나 16세에 대구로 이사한 뒤 중구 일대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처가에 머물거나,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등 여러 차례 집을 떠나곤 했지만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은 대구였다. 이육사 스스로도 자신을 '대구사람'이라고 공언했다. 독립운동을 시작한 곳도 대구였다. 그는 달성공원 앞 조양회관을 오가며 민족운동을 펼쳤고, 그 대가로 대구형무소에서 형을 살았다. 중외일보 대구지국, 조선일보 대구지국 등 기자로 활동한 무대도 이 곳이다. 그의 생애 전반은 기념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중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신기한 연이 이어졌다. 진골목에 거주하며 후학양성에 힘썼던 석재 서병오 선생과의 만남이다. 그는 서화가로 해외에도 이름을 떨친 서 선생의 제자가 돼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시집 간행을 준비하면서, 서 선생에게 배운 솜씨를 뽐내 직접 책 표지 제목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계산오거리를 둘러볼 때는 길을 잘못 들어도 괜찮다. 문인이 앉아 있었을 마루와 소설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구옥은 대개 그런 골목 끝에 있다. 대구가 겪은 저항과 상처, 그리고 회복의 기록을 더듬어보며 헤매는 건 어떨까.

    2026-01-15 06:30:00

  • [창간 80년,격동80년] 한반도 '통합' 논의하다 멈춰 선 협상... 분단으로 기울어

    [창간 80년,격동80년] 한반도 '통합' 논의하다 멈춰 선 협상... 분단으로 기울어

    〈em〉"미소공동위원회 관련,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싼 입장 차이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미·소 양측은 조선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나, 민중 세력의 참여 방식과 정치 단체의 인정 범위를 두고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em〉 〈strong〉-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7년 5월 21일자〈/strong〉 1947년 지역 신문과 주요 일간지는 앞다투어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논의 내용을 다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사실상 반으로 쪼개져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요한 회의여서다. 이미 1946년 진행했던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해 2차 회의의 성과를 갈망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이 회의가 성사되지 않으면, 남북으로 쪼개진 민족이 영영 봉합될 수 없다는 위기감도 거세지던 때였다. 〈strong〉◆ 1차 협의의 파행... 통일 정부 좌절〈/strong〉 1945년 소련의 모스크바에 미국, 영국, 소련 3개국 외상이 모였다. 이날 7개 의제가 논의됐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의 신탁통치였다. 이들은 한국에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정 기간 신탁통치를 하기로 했다. 미국과 소련은 미소공동위원회를 두고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었다. 국제적 지위에서 우위를 쥐고 있는 미국 측은 자신들을 옹호하는 우파가 강화되는 기점이라 봤고, 소련은 한반도 내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좌파 정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북한과 남한은 이념적으로 대립했지만 경제적으로는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남한에 한반도 전체 인구의 2/3가 집결했고, 주요 식량과 공업물 생산을 담당했다. 반면 북한에는 광물 자원이 매장돼 있어, 남한의 공업물 생산에 필요한 철과 화학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분란이 지속될 경우, 양쪽이 경제적으로 모두 무너질 가능성이 높았다. 첫 회의는 1946년 3월 20일 열렸다. 한국의 입장을 대변할 '협의대상자'를 누구로 둘 것인지가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당연하게도, 미국과 소련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이들을 주 협상대상자로 내놓길 원했다. 소련 측은 임시 정부 수립을 위한 한국 내 협의대상자를 두고 구체적인 조건을 내놨다. 모스크바 3국회의의 결정을 지지해야 하고, 민주적이며, 장차 한국을 '반소련 집단'으로 키우지 않을 단체여야 한다고 못 박았다. 미국 측은 정반대의 의견을 개진했다. 3국회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신탁통치 반대자'를 배제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의견 차가 좁혀질 리가 없었다. 결국 5월 공동위원회는 무기 휴회에 돌입했다. 〈strong〉◆ 반복된 문제... 분단 못 막아〈/strong〉 이듬해인 1947년 속히 혼란을 봉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5월 21일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됐다. 국내에서는 '협상 대상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당시 공동위원회에 참가 청원서를 제출한 남북한의 정당·사회단체 수는 각각 425개, 36개에 달했다. 참가 열의가 뜨거워지자, 공동위원회 측은 6월과 7월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합동 회의를 가졌다. 임시 정부를 수립하는 데 있어 남북한에 소재하고 있는 여러 정당과 사회 단체의 자문을 구하겠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같은 문제가 또 한 번 불거졌다. 미국 측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이들도 포섭하고자 했고, 소련 측은 반탁주의자를 배제해야 한다고 맞섰다. 미·소는 참여를 원한 이들이 좌익인지 우익인지, 신탁에 동의했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데 매달렸다. 결국 지루한 공방은 '협상 파행'으로 이어졌다. 소련 대표단은 10월 21일 서울 철수를 발표했다. 사실상 미소공동위원회는 성과 없이 해체했다. 책임을 넘겨받은 유엔 총회는 통일정부를 세우기로 결의하고,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한반도에 파견했다. 하지만 소련이 위원단 북한 입국을 거부하면서, 남한만이라도 총선거를 시행하기로 선회했다. 이후 남북은 돌이킬 수 없는 분단의 길로 접어든다. 〈strong〉◆ 시도 빛났으나 성과 없었다〈/strong〉 협상 파행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단정 짓기는 어렵다. 미국과 소련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숨기지 않은 채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국내 정치 세력 역시 통일 정부 수립보다 향후 권력 구도에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는 데 몰두했다. 약 500개에 이르는 정당·사회단체가 난립한 상황에서 통합된 민족 의사를 도출하기란 구조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구자들은 미소공동위원회가 분단 이전, 한반도 문제를 협상으로 풀어보려 했던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는다. 형식적이었을지언정 미국과 소련이 두 차례나 한반도 문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렸고, 통일 정부 수립을 공식 의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 시도가 불발되면서 분단이 굳어졌고, 이는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배경이 됐다.

    2026-01-08 11:30:00

  • [백년대구 아카이브] 대구 행정 중심의 이동… 경북도청과 시청 변천사

    [백년대구 아카이브] 대구 행정 중심의 이동… 경북도청과 시청 변천사

    [소개] 대구시가 기획, 제작한 책 〈지상대구〉를 통해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 자료를 통해 대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갖췄는지 추적한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의 조성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총 4부로 소개한다. 연재를 여는 1부에서는 도시의 뼈대에 해당하는 행정시설의 변천사와 함께, 확장되는 도시 구역을 다룬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조선의 지방관청은 새로운 쓰임을 부여받았다. 다수의 관청 건물은 학교, 경찰서, 법원으로 탈바꿈했다. 경상감영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읍성이 철거된 해인 1907년, 대구 이사청과 일본 헌병대는 경상감영 내 선화당에 주둔했다. 이어 1909년에는 망경루와 관풍루 등 주요 건물이 해체되는 수순을 밟았다. 이후 일부 건물은 형태를 바꿔 사용되거나, 도청 관련 부서의 청사로 활용됐다. 1914년에는 경북도청 업무가 시작되면서 경상감영 내 징청각이 농무과 청사로 쓰였다. 1965년 경북도청이 산격동으로 완전히 이전하면서, 경상감영은 행정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완전히 상실했다. 〈대구시가도〉에 따르면 경북도청 이전 논의는 1947년 이전부터 제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기준으로 산격동은 개발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대구역에 가로막혀 기존 도심에서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토지가격이 낮아 매입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도청 이전으로 인한 주변 지가 급등 가능성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됐다. 〈경상북도청사 신축공사 배치도〉에 따르면, 도청사는 좌우 균형이 지켜진 근대 건물의 형태로 지어졌다. 배치도 상하단에는 각각 2층과 1층에 들어설 사무실의 용도가 표시돼 있다. 2층은 도지사실뿐만 아니라 산업국장, 문교사회국장, 내무국장과 경찰국장의 집무실로 활용하려 했다. 그 외 공간에는 사회과, 산림과, 보건과 등이 들어섰다. 출입로가 있는 1층에는 보안과와 경비과뿐만 아니라, 수사과와 사찰과 등 경찰 근무처과 일반 도청 사무실이 함께 자리잡았다. 도시의 행정 중심이 옮겨지는 동안, 도시는 외곽으로 점점 더 팽창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구로 모이는 인구는 더 늘어났고, 과밀 해소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대구시는 어떤 대답을 내놨을까. 기존 도심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대안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도시 구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3편에 계속)

    2026-01-08 11:30:00

  • [두나의 두발 산책] 사라졌다 다시 섰다, 쓴 향 풍기며 자리 지키는 약령시

    [두나의 두발 산책] 사라졌다 다시 섰다, 쓴 향 풍기며 자리 지키는 약령시

    서성로와 남성로가 교차하는 곳에서부터 약 800m가량 길게 늘어진 골목. 골목 양쪽의 상가는 대부분 약업사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가게 내부에는 뿌리가 보이는 약재와 동물 박제가 가득하다. 가게 상단에 걸린 간판은 세월의 영향으로 빛이 바랬다. 가게를 하나둘 지나치자 코끝에 쓴 향이 스며든다. 동성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수록 냄새는 한층 짙어진다. 골목 곳곳에 쌓아둔 한약재와 가게 안 찜기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뒤섞여,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strong〉◆ 가장 빛나던 시기〈/strong〉 낡은 간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약령시의 역사는 길고도 방대하다. 1658년, 효종 9년 시기 현재의 북성로 인근에 약령시가 개설됐다. 경상감영 안 객사 주변에서 성행해 '객사 시대'라고 부른다. 당시에는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0일~1개월씩 정기적으로 장이 열렸다. 당시 약령시는 세계적인 한약 유통의 거점이었다. 이곳의 한약은 일본과 중국, 만주, 러시아 등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유통량이 상당해, 1년 치 약재를 한 번에 사가는 외지인이나 궁중의 요구도 수용할 정도였다. 대구읍성이 사라진 1908년에는 현 위치로 시장이 옮겨졌다. 약령시에 오가는 사람들을 위한 여관과 식당도 들어서고, 대구시의 인구도 점차 증가하면서 덩치를 불렸다. 약령시의 전성기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재밌는 설화가 있다. 전국의 약령시를 모두 돌아보 는 일을 뜻하는 '영 바람 쐰다'는 말이 있었다. 그 중 대구 약령시가 가장 유명하다보니, '대구 영 바람을 쐬지 않으면 약효가 없다'거나 '영남대로는 걷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첨언이 나오기도 했다. 〈strong〉◆ 저항의 상징들이 모이다〈/strong〉 사람과 돈이 모이는 중심이다 보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그 흔적은 아직도 약령시 곳곳에 남아있다. 과거 대구제일교회 맞은편에는 대구 구 교남YMCA 회관이 있다. 지금은 박물관인 이곳은 신간회 대구지회가 활동한 장소로, 대구3.1운동의 주역들이 드나들었다. 일제는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민족 문화를 말살하고 전통 의학을 폄훼하는 한편, 서양의학을 확산시키려는 정책을 펼쳐 약령시를 괴롭혔다. 결국 1941년, 약령시가 전의를 약화한다는 이유로 장은 완전히 사라졌다. 해방 이후 잠시 명맥을 되찾는 듯했지만, 6.25 전쟁의 여파로 재차 사라졌다. 지금의 약령시는 전쟁 이후 다시 문을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strong〉◆ 약령시 사람들, 이어온 시간〈/strong〉 약령시가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히 받쳐준 이들이 있었기에, 약령시는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양익순은 1923년 대구한약업자조합 회장으로서 대구영시진흥동맹회를 창립했다. 약령시 구성원들의 단결을 도모하고, 거래 질서를 확립해 시장 생태를 개선했다. 그의 지도력 덕분에 약령시는 놀라운 매출을 자랑하게 됐다. 김홍조는 일제강점기에 약령시에 정착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건재약방을 대성시켰고, 일본과 대만 등 해외에서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성장 거점인 약령시가 일제에 의해 위기를 맞자, 김홍조는 강제 폐쇄된 약령시를 복구시키는 준비위원회와 영시진흥위원회 위원장을 도맡았다. 지금의 약령시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빼곡하게 들어찬 한의원과 약방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섰다. 한약 냄새는 점차 옅어지고, 약재를 찾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약령시를 사랑하는 이들은 여전히 시장을 지키고 있다. 약령길 네거리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김정순(82·가명)씨가 그중 하나다. 한의원을 하는 남편에게 시집온 뒤 줄곧 한약방을 도맡아왔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약재를 꼼꼼히 받아 정리하고, 되팔다보니 어느덧 60년이 흘렀다. 한약재와 항상 함께하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장성한 딸과 아들은 모두 한방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장사가 잘되지 않는 지금도 약방 운영을 지속하는 원동력은 자녀들이다. 김씨는 "매출이 줄어 소일거리 수준에 그치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 수 있다"고 했다. 약령시의 역사를 알고 다시 이 골목을 걸으면 풍경이 달라 보인다. 300년 전에는 어떤 약방이 있었을지,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상점이 들어섰다 사라졌을지를 짐작하며 골목골목을 걷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이곳이 단순한 상권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이 녹아든 자리라는 점이 보일 것이다.

    2026-01-08 11:30:00

  • [백년대구 아카이브] 읍성을 허물고 도로를 내보니… 근대 도시 공간의 탄생

    [백년대구 아카이브] 읍성을 허물고 도로를 내보니… 근대 도시 공간의 탄생

    대구의 도시 기반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도시 경계가 확장될 때마다 새로운 도로가 생겼고, 용도에 따라 구획이 나뉘었다. 마련된 기반 시설 상당수는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며 대구 시민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다.이번 연재는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 자료를 통해 대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갖췄는지 추적한다. 기획은 〈지상대구〉 연구와 집필과 출간에 참여한 경북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조재모, 김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연구교수 김주야, 겸임교수 우지현, 연구원 우소영 씨의 도움을 받았다.[편집자주] 도시 공간의 용도 재편을 시작으로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의 조성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총 4부로 소개한다. 연재를 여는 1부에서는 도시의 뼈대에 해당하는 행정시설의 변천사와 함께, 확장되는 도시 구역을 다룬다. 도시 계획의 개념이 도입됨에 따라 대구는 점차 정비되기 시작한다. 예로부터 대구는 경상감영이 자리해, 행정적·경제적 요충지로서 기능했다. 경상감영을 감싼 대구읍성 덕분에 그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문제는 일제강점기에 불거졌다. 1900년대 초 대구로 이주해온 일본인들은 성벽 바깥에 주로 거주했는데, 도심에 진출해 길을 닦고 싶은 일본인들에게 대구읍성은 방해물이 됐다. 결국 1906년 대구읍성은 강제 철거됐다. 1906년 11월 18일 대구 대일본 거류민회 도로위원회가 성벽 철거를 부결했음에도, 철거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당시 관찰사이던 박중양이 주도한 결과였다. 철거된 성벽의 성돌은 현재도 계산성당, 계성학교 등의 건축재료로 남아있다. 둥근 모서리를 갖춘 읍성의 흔적은 도로에 고스란히 남았다. 1909년 자료인 '대구시 가전도'에 따르면, 과거 읍성의 외벽이었던 곳은 도심을 동그랗게 회전하는 형태의 도로가 됐다. 원형 도로를 가로지르는 내부 도로도 들어섰다. 읍성을 동서로 관통하는 도로를 읍성로라 하고, 남북도로는 십자도로라 명명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동성로 ▷서성로 ▷북성로 ▷남성로 ▷종로의 근간이다. 도로 양쪽에는 각종 상업시설과 주택이 자리했다. 일본인들의 도심 진출이 성공하면서, 1908년 대구로 이주한 일본인은 무려 7천800명에 달하게 됐다. 읍성 내부와 외부를 잇는 도로도 점차 정비됐다. 다만 이전처럼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배치되는 방식은 아니었다. 동서남북으로 뻗은 주요 도로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 내부 곳곳에 새로운 길이 뒤엉키듯 뚫렸다. 이로 인해 읍성 내부 도로망은 과거와 전혀 다른 구조로 재편됐다. 그럼에도 경상감영공원 일대는 여전히 도심의 중심부 역할을 유지했다. 1910년 측도해 1912년 배포된 '오만분의 일 대구지도'가 이를 보여준다. 읍성이 사라진 지 4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도시의 형태를 갖춘 곳은 읍성 주변에 한정돼 있었다. 반면 대구역 북측이나 금호강 인근 지역에는 여전히 논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경상감영 주변부를 시작으로 대구는 점차 근대 도시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2회에 계속)

    2026-01-01 12:30:00

  • [두나의 두발 산책] 진골목, 전 세대 아우르는 보금자리로 거듭

    [두나의 두발 산책] 진골목, 전 세대 아우르는 보금자리로 거듭

    화려한 대로와 대로, 그 사이에는 혈관처럼 뻗은 골목들이 있다. 고유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골목들은 대구의 근현대 역사를 보여준다. 대구를 먹여 살리던 산업의 역사부터 일반 서민들의 애환까지. 〈골목을 걷다〉는 화려한 대로변 뒤편, 가장 대구다운 풍경과 이야기를 재조명한다.〈편집자 주〉 진골목. '길다'는 의미의 경북 방언인 '질다'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름 그대로 200m가량의 길고 좁은 길은 종로 한편에 있어 쉽게 찾기가 어렵다. 오랜만에 진골목을 찾은 이들은 골목 입구를 찾느라 진땀을 뺄지도 모른다. 그런 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종로 골목의 바닥을 살피면 된다. 진골목 입구임을 알리는 표시와 함께, 골목 안쪽 가게 이름이 나열된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골목 안은 종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쉽게 보기 어려운 한옥이 좁은 골목 양쪽으로 자리 잡았다. 한옥을 두르는 담장은 성인 남성의 키보다 조금 큰 2m 남짓. 한옥을 쉽게 훔쳐보기 어려운 높은 담장은 한옥 주인의 위세를 짐작하게 한다. 〈strong〉◆진골목이 낳은 거목〈/strong〉 진골목은 예로부터 '부자 동네'로 불렸다. 1900년대 초 골목 일대는 달성 서씨의 집성촌으로, 서병국, 서병직, 서병기, 서병원, 서병규 등이 수백 평에 달하는 한옥을 소유했다. 지금은 잘게 쪼개어져 각기 다른 건물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는 달성 서씨의 손아귀에 있던 수백 평의 대궐이었다. 진골목은 한양, 중국과 일본까지 명성을 떨친 서화가를 배출했다. 석재 서병오 선생은 다재다능해 '영남이 낳은 천재'라는 극찬을 받았다. 시와 서화, 거문고, 바둑, 장기, 심지어 의약과 구변에도 능해 '팔능거사'라 불리기도 했다. 서 선생은 해외와의 교류를 통해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내고, 서예교육과 후진 양성에 평생을 헌신했다. 서 선생의 명성을 좇아 서화인들이 대구로 모여들면서, 대구는 한때 우리나라 서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재산 전부를 투자해 개간 사업을 벌였다가, 홍수를 만나 사업에 실패한다. 그 영향으로 진골목 대저택을 모두 팔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생가는 철거되고 현재는 '에비뉴8번가'가 들어서 있다. 건물 입구에 서 선생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표지와 그의 작품이 남아 있다. 달성 서씨들이 떠난 이후에도 진골목은 부호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 코오롱 창업자인 이원만 회장이 그중 하나다.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16살 때 부친을 잃는 등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은 이 회장은 혈혈단신으로 건너간 일본에서 모자(帽子)사업으로 큰돈을 만졌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한국 섬유산업을 이끌고, 한국을 수출 강국으로 키운 가발 산업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 회장은 일본에서 벌어들인 떼돈으로 진골목에 대지 7백 평에 달하는 한옥을 구매했다. 당시 이 회장과 인연을 맺었던 한민당 인사들은 이곳을 사랑방으로 활용하며, 진골목을 자주 드나들었다. 특유의 호방한 성격과 뛰어난 화술은 정치인들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탄탄한 인맥을 바탕으로 이 회장은 민주당 참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6~7대 국회의원으로도 잇따라 당선됐다. 〈strong〉◆상업지로 탈바꿈〈/strong〉 이후 요정과 음식점, 여관까지 들어서며 진골목은 눈에 띄게 바뀌었다. 대저택은 점점 더 작고 잘게 쪼개졌고, 몇몇 건물은 한옥의 형태를 완전히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수많은 가게들이 들어섰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럼에도 몇몇 한옥은 진골목의 '터줏대감'이 돼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터줏대감들은 종로를 찾는 노인들의 쉼터가 됐다. 정겨운 향토음식을 파는 음식점 '송정'의 주인인 허명희(66)씨는 10년 이상 가게를 찾아주는 단골 덕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허씨는 "기존 한옥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고 있다보니, '큰집 같다'며 가게를 찾아주시는 이들이 많다"며 "우리와 비슷한 토속 음식점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카페가 대세다. 그럼에도 단골들은 송정을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strong〉◆변신, 젊은 진골목으로〈/strong〉 허씨의 말대로, 진골목은 또 한 번 변화를 맞았다. 종로를 찾는 젊은 층들의 입맛에 맞는 카페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좁은 골목길에 들어선 카페는 무려 8곳에 달한다. 새 건물은 기존 한옥과 이질적이지 않도록 나름의 노하우를 뽐냈다. 평범한 2층 상가 건물이지만, 1층 건물의 외형은 한옥처럼 꾸몄다. 한옥을 닮은 차양 위에 기와를 얹고, 벽에는 황토를 발라 주변과의 조화를 꾀했다. 도보로 이동하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설계다. 진골목은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를 자랑하다 보니, 작고 특색있는 카페가 자리를 잡기 안성맞춤이다. 송도완(39)씨 역시 그중 하나다. 송씨는 지난 2023년부터 한옥을 닮은 1층 상가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송씨는 "최근에 카페 골목으로 부흥하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주말에는 관광객으로, 점심시간에는 커피를 찾는 직장인으로 진골목이 북적인다"고 했다.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고 해서, 노인들이 찾기에 껄끄러운 공간이 된 걸까. 송씨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송씨는 "미도다방이 꽉 찼을 때는 어르신들도 주변 작은 카페를 찾는다"며 "예전보다 진골목을 찾아주는 이들의 나이대가 다양해졌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2026-01-01 11:30:00

  • [대구염색산단 45년, 시름하는 주민들]<3>다른 지역, 주민 참여에 전문성 확보로 환경 문제 풀었다

    [대구염색산단 45년, 시름하는 주민들]<3>다른 지역, 주민 참여에 전문성 확보로 환경 문제 풀었다

    도시 팽창 과정에서 도심에 자리잡게 된 노후산단 문제는 대구 만의 고민이 아니다. 대구염색산업단지보다 앞서 공업지역 인근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선 부산 사상공단과 경기 반월·시화공단도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곳이다. 대구처럼 단속 인력 부족과 전문성 부족이라는 문제를 겪었지만 주민 참여와 행정 시스템 개선 등 각자의 방식으로 개선에 나선 곳이 있다. 염색산단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들여다 봤다. ◆민원인에서 '전문 모니터링 요원'으로…부산 학마을공동체 12일 방문한 부산 사상구 학장동. 이곳은 부산 사상공단과 주거단지가 직선거리로 약 1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염색산단 인근 주민들처럼 악취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이 적잖다.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악취는 대부분 도금공장과 주물공장에서 나왔다. 쇠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염산이 악취를 유발해서다. 화학약품 냄새 뿐 아니라 생선 비료 공장도 적잖아 음식물을 찌는 과정에서 나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에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도 적잖다. 금호강을 타고 악취가 넘어오는 대구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바람이 두 개의 산 사이로 집중돼 주거단지로 불어오는 구조다. 2천년대 초반 학장동에서 10여명의 주민으로 출발한 '학마을공동체'는 노후산단과 주민 사이 갈등을 푸는 모범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현재 단순한 주민 자치조직을 넘어 사상구청의 환경모니터링센터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마을공동체 회원들은 환경 문제 유발 가능성이 높은 4개 코스를 주 3회 순찰하며 '악취 모니터링 일지'를 작성한다. 일지에는 악취 강도와 종류 뿐 아니라 송풍기 벨트 회전 여부, 세정탑 살수 가동 소음 확인 등 시설 상태까지 상세히 담긴다. 악취 모니터링보다는 체계적인 데이터 수집에 가깝다. 학마을공동체 회원 윤순이(61) 씨는 "주민들이 분기별로 제출하는 기록지는 관청이 문제 사업장을 특정하고 행정 조치를 취하는 객관적 근거로 활용된다"며 "처음 주민들끼리 나섰을 때보다 구청과 함께 활동하면서 모니터링 효과도 극대화됐다. 구청이 제공한 복장을 갖추고 활동하다 보니 업체도 주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국비 확보라는 실질적 성과까지 끌어냈다. 주민들은 축적한 현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악취 저감 시설 설치를 제안했고, 사상구청이 적극 호응했다. 주민 제안은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5억원의 국비 확보로 이어졌다. 이곳 나을순(70) 공동대표는 "구청 직원과 함께 서울까지 올라가서 공모 신청을 하는 등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행안부 실사에서도 주민들이 직접 안내하며 실태를 알렸고 국비 확보에 성공했다"며 "환경 문제는 주민이 가만 있어서는 안되고 최대한 관계기관과 함께 협동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순환보직 없는 '전문관' 제도…행정 전문성·연속성 주효 학마을공동체 활동이 성과를 낸 배경에는 주민 뿐 아니라 행정의 '전문성'과 '연속성'도 있었다. 부산 사상구청은 2013년부터 악취·화학 박사 학위 소지자를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 환경통합관제센터에 투입했다. 통상 1, 2년 단위로 담당자가 교체되는 공무원 조직과 달리 10년 넘게 환경 전문가가 한 업무를 맡으면서 적극 대응이 가능한 구조다. 올해로 13년째 사상공단 환경 관리를 맡고 있는 노다지 주무관은 악취 및 화학성분 관련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로 '대기확산 모델링'이라는 과학적 기법을 도입했다. 사상구 일대의 미세 지형과 풍향 데이터를 분석해, 악취가 확산되는 경로를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악취 민원이 잦았던 한 도금 공장의 경우, 고가의 설비 교체 대신 굴뚝 높이를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해 악취를 대거 줄였다. 대기 정체층 위로 오염물질을 배출시켜 확산을 막는 공학적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노 주무관은 "효과적인 정책을 개발하려면 오랜 기간 문제를 지켜봐야 하고 정책 개발까지 이어지려면 3, 4년은 족히 걸린다. 일반적인 조직의 인사 루틴에 맞출 것이 아니라 업무 특성을 반영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흥의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는 민관 협력을 시스템으로 안착시켰다. 시흥시는 2004년 주민과 시청, 환경부, 산업계가 참여한 시화지구 지속가능발전협의회를 꾸려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협의회는 대기개선 특별기금을 조성, 악취 방지 시설을 설치하는 기업에 설치비의 최대 90%를 지원했다. 시흥시는 설치에 앞서 전문가 그룹을 투입, 공정 진단과 맞춤형 저감기술도 전수했다. 이후에는 부산의 학마을공동체처럼 주민들로 구성된 '대기질 개선 소위원회'를 꾸려 사업 진행 상황을 상시 점검하고 있다. ◆"악취 피해 가장 큰 건 결국 업체"…선순환 구조 이어져 이날 만난 부산 사상공단 업체들은 결국 환경문제로 인한 피해를 가장 크게 입는 곳은 가장 가까운 공장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업체들은 빡빡한 악취 모니터링 환경 속에서 악취 저감 시설 투자를 필수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다. 환경 개선에 나서는 업체들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노후산단 내부에서도 마냥 외면하기 어려운 선순환 구조도 생겼다고 했다. 이곳 도금업체 동명특수금속은 5년 전 가스 배출구에 세정집진시설을 설치하는 등 노후시설을 전면 교체했다. 계면활성제 제조업체 A사 역시 6차례의 공정을 거쳐 오염물질을 연소시키는 고도화된 설비를 갖췄다. 박연걸 A사 대표는 "주민들이 입는 피해도 문제지만 결국 환경 문제와 가장 가까운 건 주변 업체들이다. 수억 원의 설치비와 유지 관리비가 발생하지만 불가피한 투자"라며 "다만 영세 소규모 업체의 경우 자력으로 고가 장비를 도입하기 어려운 만큼 국가 차원의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도 부산과 경기 시흥시 사례처럼 민관 협력 등을 통해 단속 인력 부족 문제를 푸는 한편 전문성 확보가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명균 계명문화대학교 스마트환경과 책임교수(대구녹색환경지원센터 기업환경지원부장)은 "염색산단 인근 악취와 폐수 단속을 구청이 도맡고 있어 대책이 주민 체감에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주민 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전문성 확보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단순히 염색산단을 악취 관리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악취 빈도가 높은 지점을 특정해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25-12-13 06:30:00

  • "지상-고층 악취 체감 괴리 커…측정방식 개선 절실" [대구염색산단 45년, 시름하는 주민들]

    지난해 대구 서구청이 도입한 염색산업단지 악취 모니터링 시스템에 대해 주민들이 개선을 촉구했다. 모니터링 결과물과 실제 주민들이 체감하는 악취의 괴리가 크고 실질적 단속 효과에 의문이 남아서다. 염색산단 악취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은 메신저 앱 오픈 채팅방을 개설해 이같은 내용을 공유하고 함께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오픈 채팅방 회원 수는 320명에 달한다. 주민들은 염색산단 인근에 고층 아파트가 대거 들어선 상황에서 주민들이 체감하는 악취와 실제 측정값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했다. 주민들은 주로 고층 아파트에서 창문을 열었을 때 악취를 호소한다. 하지만 감시단의 모니터링은 지표면 도로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냄새가 굴뚝을 타고 대기 중으로 확산되다 보니 땅 위에서는 맡을 수 없는 냄새가 아파트 고층부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염색산단 인근 고층 주거단지가 대거 들어선 만큼 서구청의 악취 측정 방식이 주민들의 실질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또 지상 도로 위주로 이뤄지는 현재의 측정 방식이 고층 아파트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며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평리뉴타운의 영무예다음 아파트 감사를 맡고 있는 권용원 씨는 "2주 전 매캐한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해 구청에 신고했다. 출동한 공무원이 냄새를 맡더니 심각성을 인정하고 어디서 나온 악취인지 짐작이 된다는 말까지 하고 갔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며 "이후 문의하니 측정 수치가 정상이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신고해 봤자 소용없다는 무력감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차를 끌고 다니면서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다니기보다는 차라리 아파트 고층부의 빈 세대에 측정기를 설치하고 주민들이 실제로 마시는 공기 성분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곳 주민 권오도(67) 씨 역시 "아파트 27층에 살고 있는데 악취가 워낙 심해 내려와 보면 지상에서는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고도에 따라 악취 피해가 다른데 구청 차량이 바닥만 훑고 다니며 정상이라고 하니 누가 믿겠느냐"며 "탄내와 화학 약품 냄새가 뒤섞여 주민조차 어디가 발원지인지 알 수 없다. 단순 측정보다 배출원을 정확히 특정하는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2025-12-10 15:55:39

  • 악취에도 측정기는 '정상 수치'…모니터링 실효성 있나 [대구염색산단 45년, 시름하는 주민들]<2>

    악취에도 측정기는 '정상 수치'…모니터링 실효성 있나 [대구염색산단 45년, 시름하는 주민들]<2>

    대구 염색산업단지에서 배출되는 악취와 폐수 등 환경 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대구 서구청이 도입한 악취 모니터링 시스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악취 측정 지점이 염색산단보다는 인근 주거단지 위주로 분포돼 있고, 측정 수치가 비교적 낮게 나타나는 데다 악취를 감지하더라도 배출원을 특정할 수 없는 구조여서다. ◆코 찌르는 악취…측정기는 '초록불' 지난 5일 오후 7시 30분 염색산단 인근 한 도로는 매캐한 화학 약품 냄새에 더해 인근 상리위생처리장, 방천리 매립장 등에서 나는 다른 종류의 냄새가 뒤섞인 악취로 가득 찼다. 이날 대구 서구청 대기개선팀은 측정 차량에 탑승해 악취 모니터링 단속에 나섰다. 서구청은 2020년 이후 염색산단 인근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지난해 9월부터 별도 측정 차량을 도입해 수시로 악취 정도를 파악하고 있다. 측정 차량이 염색산단 주변 도로를 지나자 유독 시큼한 냄새가 훅 느껴졌다. 단순 냄새 뿐 아니라 춥고 건조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비교적 후끈하고 습한 불쾌한 느낌까지 함께 전해졌다. 동행한 서구청 대기개선팀은 섬유 원단에 열을 가해 다림질하는 '텐타' 공정에서 발생하는 냄새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좀더 떨어진 다른 장소에서는 코를 쏘는 듯한 매니큐어 냄새가 진동했다. 섬유 코팅 시설에서 주로 사용하는 '톨루엔' 성분 냄새였다. 톨루엔은 접착제나 페인트 등에 이용되며 과다하게 흡입할 경우 구토나 시각 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이다. 앞서 2023년 9월에는 염색산단의 한 석유화학공장에서 톨루엔이 든 드럼통이 연쇄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며 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했다. 차량을 멈추고 본격 측정에 나섰다. 측정기에 나타난 수치는 복합악취 희석배수 0에 황화수소 0ppb, 암모니아 267ppb 수준이었다. 공업 지역에서의 배출 허용 기준치가 복합악취의 경우 희석배수 1천에 황화수소와 암모니아가 각각 60ppb, 2천ppb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사실상 '청정구역'에 가까운 수치가 나온 셈이다. 톨루엔,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이 포함돼 인체에 암과 신경계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TVOCs)은 290ppb만 검출됐다. 휘발성 유기화합물도 배출기준인 20만ppb에 크게 못 미쳤다. 재차 측정에도 측정기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비롯해 모든 항목이 정상 수치를 가리켰다. ◆고성능 측정기 '무용지물'…후각에 의존 이날 서구청 악취 모니터링 단속반의 악취 측정은 결국 직원들의 후각에 의존한 채 진행됐다. 1억원을 투입해 마련한 악취 모니터링 차량에 고성능 측정기가 있음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다. 이날 누구나 코로 맡을 수 있을 정도의 악취가 감지되지만 측정기는 정상 수치만을 가리켰다. 고성능 측정기는 별 문제가 없다는데 정작 쉽게 무뎌지는 사람의 코로 단속을 진행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됐다. 취재진이 코로 냄새를 감지한 뒤, 측정기 활용을 위해 배출원으로 가까이 다가가보자고 제안했지만 단속반 직원은 난색을 표했다. 염색산단에서 수증기를 내뿜는 굴뚝만 수백개인 데다 골목 하나 사이로 전혀 다른 성질의 악취가 뒤섞인 탓에 특정 공장을 배출원으로 지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면서 측정하다 보니, 찰나의 순간 바람에 실려 흩어지는 냄새 입자를 기계가 포착해 수치화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구청이 별도로 염색산단 인근 평리5동 행정복지센터 옥상 등 20여 개 지점에 설치한 고정형 측정기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측정기 절반 이상이 염색산단이 아닌 인근 주거단지에 설치돼 있어 정확한 악취 유발 지점을 특정하기가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고정형 측정 현장에 가보니 정확한 악취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염색산단 주변에서 맡을 수 있었던 매캐한 냄새 뿐 아니라 인근 상리위생처리장과 방천리 매립장에서 흘러온 것으로 추정되는 악취에 정화조 배기구, 가정집 음식 냄새 등 생활 악취까지 잔뜩 뒤섞인 탓이다. ◆처벌도 못해…단속 실효성 '의문' 악취 모니터링 과정에서 측정이 사실상 무의미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단속은 더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단속반 직원들은 차량 운행 중 악취를 맡으면 측정값과 관계없이 관계기관에 연락해 저감 조치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모니터링을 마무리했다. 실질적인 단속이라기보다는 계도 수준에 머무른 모니터링이었다. 객관적인 측정 수치 없이는 과태료 부과도, 개선 명령도 불가능해서다. 다만, 서구청은 염색산단 악취 측정을 위해 민간 감시원 8명의 상시 감시와 공무원의 야간·새벽 순찰을 병행하는 만큼 심리적 억제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구청 관계자는 "최근에는 그래도 악취가 줄었다. 섬유 경기 악화로 24시간 작업하는 공장이 전체의 40% 이하로 줄어든 데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조업하는 곳도 생겼기 때문"이라며 "측정기는 현재 참고 자료로 판단에 도움만 주는 수준이다. 직원들이 수시로 순찰을 돈다는 사실을 배출 시설이 알다 보니 작업 과정에서 더 주의를 기울여 줄 것으로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25-12-10 15:51:27

  • [대구염색산단 45년, 시름하는 주민들] 주거지 된 염색산단 주변…악취·폐수 고통 여전

    [대구염색산단 45년, 시름하는 주민들] 주거지 된 염색산단 주변…악취·폐수 고통 여전

    올해로 조성 45년째를 맞은 대구 염색산업단지가 환경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시설 노후화에 공정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유증기의 악취 문제가 여전한 가운데 과거 산단 지역이 주거단지로 변모하면서 영향을 받는 주민들이 급증한 탓이다. 7일 서구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염색산단에서는 산단 내 하수관로가 파손되며 모두 다섯차례 폐수 유출이 발생했다. 기존 악취 문제에 폐수 유출까지 겹치며 염색산단에서 나오는 환경 관련 민원은 5년 새 크게 늘어난 상태다. 노후화된 시설에서 악취와 폐수가 무분별하게 유출되는 상황에도 환경 문제는 쉽게 공론화되지 않다가 최근에야 새 국면을 맞았다. 최근 염색산단 인근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피해를 호소, 주민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대구시가 염색산단을 악취 관리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악취 개선에 나섰지만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염색산단 인근 지역이 주거단지로 변모한 만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용기 대구악취방지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염색산단 환경 문제가 주민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대구시 등 관계기관 대책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추가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5-12-07 16:52:36

  • [대구염색산단 45년, 시름하는 주민들]올해는 폐수까지 유출…주민들 집단행동 나서

    [대구염색산단 45년, 시름하는 주민들]올해는 폐수까지 유출…주민들 집단행동 나서

    대구염색산업단지에서 악취 문제에 더해 올해 폐수 유출 사례가 속출하면서 인근 주민들이 집단 행동에 나섰다. 2020년 이후 서구 평리동을 중심으로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관련 민원도 폭증하고 있다. 5일 대구 서구청에 따르면 염색산단 인근 환경 관련 민원은 2020년 136건에서 2023년 1만3천여건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소폭 감소했다. 민원은 염색산단에서 화약 약품과 섬유를 찌는 냄새, 폐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는 내용 등 악취 관련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민원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지난 2020년 평리5·6동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잇따라 들어선 영향으로 해석된다. 특히 염색산단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평리뉴타운은 8천200가구 중 5천여세대가 이미 입주를 마쳤다. 문제는 대폭 늘어난 민원에도 눈에 띌만큼 환경 개선이 쉽지않다는 점이다. 염색산단이 1981년 준공돼 올해로 45년째를 맞았지만 매출 감소를 이유로 인프라 개선에 소극적인 업체가 대부분이어서다. 염색산단의 군위 첨단산단 이전이 논의되는 데다 입주 기업의 약 30%가 임대 형태로 운영되면서 적극적인 시설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업체 관계자는 "군위 지역에 염색산단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시설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며 "섬유 사업이 쇠퇴하다보니, 산단 이전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업체도 없다"고 말했다. 염색산단 이전 시점도 불투명하다. 대구시는 환경 문제를 우려해 지난해 염색산단을 2030년까지 군위 첨단산단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최근 TK신공항 사업 지연에 따라 이전 시점도 2년 늦어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기존 악취 문제에 더해 올해 폐수 유출까지 잇따라 발생하면서 주민들은 집단 행동에 나섰다. 평리동 주민들은 '대구악취방지시민연대'를 결성하고 자발적으로 악취와 폐수 유출 현장을 순찰하고 있다. 이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오픈 채팅방에 참여하는 주민은 무려 320명에 달한다. 조용기 대구악취방지시민연대 공동대표는 "당연히 주민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관계기관이 대책을 전혀 준비하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다"며 "결국 주민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단체를 결성하게 됐고,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하나 둘 모여 지금의 형태가 됐다"고 말했다. 대구 서구의회에서도 대책 마련 목소리가 나온다. 이주한 서구의회 의원은 "산단과 관련된 환경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주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산단과 서구청뿐만 아니라, 상위 기관인 대구지방환경청과 대구시의 대응이 미온적인 부분도 문제다. 꾸준히 문제제기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25-12-07 15:44:50

  • 대구북부소방서, 2026년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 선정 심의

    대구북부소방서, 2026년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 선정 심의

    대구북부소방서(서장 이진우)는 21일 화재안전 중점관리대상 선정을 위한 심의위원회를 열고 42곳을 선정했다. 중점관리대상은 가연성 물질을 대량 보관하거나 다수가 이용하는 시설 등, 화재 발생 시 피해 확산 우려가 큰 곳으로, 소방당국은 매년 심의위원회를 열고 대상을 지정하고 있다. 이진우 서장은 "화재위험이 높은 시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시민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중점관리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과 맞춤형 예방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2025-11-21 19:23:41

  • 대구서부소방서, 겨울철 대비 산업단지 관계자 화재예방 소집교육

    대구서부소방서, 겨울철 대비 산업단지 관계자 화재예방 소집교육

    대구서부소방서(서장 우병욱)는 겨울철 산업단지 대형화재예방을 위해 공장 관계자·소방안전관리자를 대상으로 화재예방 소집교육을 실시한다고 21일 밝혔다. 교육은 서대구산업단지와 대구염색산업단지 입주업체 388곳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소방당국은 최근 산업단지 화재사례를 공유하고 소방안전관리자에게 용도별 소방계획서를 작성하는 요령을 알릴 예정이다. 심폐소생술(CPR) 및 응급처치 방법도 교육한다. 우병욱 서장은 "배운 화재예방 수칙과 소방시설 관리요령, 응급처치법을 철저히 숙지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육과 컨설팅을 통해 화재예방 체계 확립 및 안전의식 함양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2025-11-21 19:18:58

  • 대구 서구 와룡새마을금고, 지역 학생 46명에 장학금 지원

    대구 서구 와룡새마을금고, 지역 학생 46명에 장학금 지원

    대구 서구 와룡새마을금고(이사장 최태영)가 지역 인재 46명에게 총 2천32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고 21일 밝혔다. 와룡새마을금고는 1977년 첫 장학금 지급을 시작으로 48년째 지역 장학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까지 지급된 누적 장학금은 5억3천만원에 이른다. 와룡새마을금고 관계자는 "앞으로도 지역 주민과 함께 성장하는 금융기관으로서 미래 인재 양성에 꾸준히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2025-11-21 19:12:25

  • 대구소방안전본부, 독일 재난대응 우수사례 교육

    대구소방안전본부, 독일 재난대응 우수사례 교육

    대구소방안전본부(본부장 엄준욱)는 21일 독일 재난관리 분야의 우수사례를 교육을 진행했다. 이날 소방청 화재대응조사과와 국립소방연구원이 주관한 '리튬이온배터리 화재 대응능력 향상 워크숍'에서는 독일 로스톡(Rostock) 소방본부 예방과장이 참여해 리튬이온배터리 열폭주 관리 전략을 소개했다. 발표자 섭외와 통역은 대구119특수대응단 진정희 단장이 맡았다. 독일 재난관리 체계와 Ahrtal 홍수 대응 사례를 주제로 한 특별 강연도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오전 워크숍과 오후 강연이 연결되다보니, 독일의 예방과 대응, 수습 체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며 "대구소방의 국제협력 기반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2025-11-21 19: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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