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 반응은 하나같이 '감동'" 매일신문 창간 80주년 특별기획 사진전 '위대한 한국인' 반향
"예상은 했지만 저도 놀랐습니다." 지난 11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막해 23일까지 열리는 매일신문 창간 80주년 특별 기획 사진전 '위대한 한국인'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이 뜨겁다. 개막 당일부터 전시 안내를 맡은 도슨트 심은숙 씨는 17일 "지금까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의 반응은 한마디로 '감동' " 이라며 "마치 내가 사진전 주최자인듯 내내 기분이 즐겁고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했다. 그는 또 "'사진에서 어릴 적 살던 집이 보여 옛 생각이 울컥 났다'며 가족과 다시 보러 오겠다는 사람, '6월 항쟁 당시 동성로에 있었다'며 사진 속에 자신을 찾느라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 해설까지 꼼꼼히 읽으며 두어 시간씩 둘러보는 사람 등 관람객 표정이 매우 진지하다"고 했다. 특히 "'신문에서 전시 소식을 보고 왔는데 무료 전시라서 좋다', '상설로 전시하면 더 좋겠다', '사진 도록을 만들면 간직하면서 수시로 보고 싶다'는 분도 꽤 많다"고 말했다. 기자는 전시 안내를 위해 연휴 동안 전시장에 머물렀다. 비가 세차게 내린 16일에도 발길이 이어졌다. 중·장년층이 다수였지만 방학 숙제를 위해 찾았다는 학생들을 비롯해 아이들과 같이 온 가족 단위 관람객도 꽤 많았다. 방명록에 남긴 소감도 다양했다. "수업 때 배운 내용을 사진으로 보니 너무 좋았다.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보고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는 결코 쉽게 얻은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하정원·17) "황무지에서 시작한 우리 역사 발전이 감동적이다."(김영광 ·18) "어제가 광복절인데 한국사를 잊고 지낸 것 같다. 다시 공부할 때가 온 것 같다."(김자희·22) "슬픈 과거를 극복해가는 시민들의 모습에 감동 받았다."(김현옥) "인내하며 고달픈 삶을 살아온 1960~70년대 아버지를 회상하는 시간이었다."(김광배·58) "2·28대구학생운동에 감명 받았다. 보수적이라는 대구가 과거 야도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최정아·59) "대구의 역사가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을 살려낸 도시답게 전문 역사보존관이 있었으면 좋겠다."(조경희 대구현대미술가협회장·60) "대한민국 발전을 이끈 대구경북 선배들께 존경을 표한다. 전시를 기획한 매일신문에 감사를 전한다."(최진·61) "손녀(초등 2학년)가 왜 우리나라가 남한과 북한으로 되었는지 물었는데, 오늘 완전히 설명해 줄 수 있었다."(이미향·68)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세계 6위권 경제대국을 이룩한 우리의 의지가 자랑스럽다."(최영하 대구대 명예교수·87) 전시장에서 만난 이찬호(초교 교장 출신·73) 씨는 "이 전시는 대구에서만 보기에는 아까운 대기획으로, 대구경북의 재발견이자 대한민국 역사다. 무엇보다 각급 학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나온 발자취를 보면서 대구경북 통합이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경북에 순회전을 열면 통합 여론을 모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6-08-18 05:30:00
[매일신문 80년 대구경북 80년] 'K-People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 사진전 둘러보기 <하>
〈strong〉매일신문사는 창간 80주년 특별 기획으로 오는 11일부터 2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제11~13 전시실에서 '매일신문 80년 대구경북 80년(1946-2026), K-People :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 사진전을 갖습니다. 사진전에는 매일신문이 기록해 온 격동의 현대사를 생생하게 복원한 대형사진(1.5mⅹ1m), 신문 지면 등 약 400점을 선보입니다. 대한민국 80년 시대정신을 연표, 해설과 함께 한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자 주〉〈/strong〉 11일 오후 2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막하는 매일신문 창간 80주년 특별 기획 사진전은 모두 11섹션으로 전시한다. 제11 전시실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2·28학생의거와 4·19 혁명, 보릿고개, 근대화·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 초까지 대구경북의 역사적 순간들을 5개 섹션으로 선보인다〈strong〉(3일 자 보도). 〈/strong〉제12·13 전시실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시대정신을 담은 6개 섹션으로 구성했다. 〈strong〉◆제6섹션=반공…분단의 시대를 살아오다〈/strong〉 1960년대 후반 들어 북한은 남한의 베트남 파병을 저지하고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할 목적으로 잇따라 도발을 감행했다. 1968년 1월 김신조 일당의 이른바 1·21사태 이틀 뒤 북한은 또 동해상에서 미(美)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강제로 끌고 갔다. 안보가 위태롭자 그해 4월 1일 예비군이 창설됐다. 그럼에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에 이어 곳곳에서 간첩이 활개치자 간첩을 식별할 주민등록증이 발급 되고, 유사시를 대비해 고교에도 군사훈련(교련)이 실시됐다. 1970년대는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잇따라 발견돼 '반공'이 고착화됐다. 그러나 냉전 속에서도 남북 이산가족 찾기 등 통일과 평화을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strong〉◆제7섹션=잘 살아보세…새마을운동을 시작하다〈/strong〉 1970년대 농촌의 시대정신은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운동'.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혀 환경을 개선하는 이 운동은 청도 신도마을, 포항 문성마을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됐다. 농민들은 또 정부 방침에 따라 저온 피해를 마다하고 다수확 품종, 통일벼를 심어 녹색혁명을 이뤘다. 이 무렵 대구 달성공원·동촌유원지, 포항 송도 해수욕장은 최고 휴식처였다. 당시 대구 최대 번화가 동성로는 연말연시면 언제나 인파로 북적였다. 그 풍요로운 일상 뒤에는 도시의 난방 연료인 석탄을 캐느라 막장을 드나들며 땀 흘리는 광부도 있었다. 〈strong〉◆제8섹션=최루탄과 88올림픽…민주화 봇물 터지다〈/strong〉 1979년 10·26 사건으로 유신시대가 저물고 '서울의 봄'이 채 오기도 전,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국은 다시 얼어붙었다. 신군부는 '새 시대 새 질서'를 표방하며 대대적인 사회정화운동을 벌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출범한 프로야구는 시민들의 해방구였다. 그러나 민주화를 부르짖는 함성은 멈출 줄 몰랐다. 학생, 종교인, 넥타이 부대와 주부까지 나선 6월 항쟁으로 시민들은 4·19 혁명에 이어 두 번째 민주화 꽃을 피워냈다. 노사분규가 잇따르고, 참교육을 외치며 출범한 교원노조는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이 와중에도 성공적으로 치른 서울올림픽은 민족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strong〉◆제9섹션=압축 성장의 그늘…IMF 체제를 극복하다〈/strong〉 1990년대는 성장의 빛 만큼 그림자도 깊은 시대였다. 낙동강 페놀 유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을 비롯해 전국에서 대형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숨가쁘게 달려 온 압축 성장 의 후유증이었다. 또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로 농촌에는 변화의 바람이 몰아쳤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 시련이었다. 기업이 줄도산하고 실업자가 급증했다. 중산층이 붕괴되고 가정이 해체됐다. 이런 절망 속에서도 국민들은 금모으기운동으로 뭉쳐 IMF 체제를 조기에 졸업하고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섰다. 〈strong〉◆제10섹션=스포츠·축제…광장문화 꽃피다〈/strong〉 1998년 처음으로 선보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대한민국 문화가 세계로 뻗는 한류(韓流)의 첫 출발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6월 거리를 붉게 물들였다. 대한민국 4강 신화에 시민들은 범어네거리를 가득 메우며 새로운 광장문화를 낳았다. 2003년 대구하계U대회는 스포츠 제전을 넘어 대구를 세계 청년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또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골드라벨' 대구마라톤을 통해 대구는 국제육상도시로 성장했다. 이제 스포츠는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됐다. 〈strong〉◆제11섹션=전환의 시대…대구경북 다시 날다〈/strong〉 지진, 코로나19 팬데믹, 다문화 사회, 동물복지, 기후위기, 탄소중립…. 지금 우리는 유례없는 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러나 재난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 또한 아픈 역사는 진실과 화해로 내일을 비추는 등불이 됐다. 인공지능(AI), 휴먼로봇, 자율주행, 북극항로…. 지금 우리는 전례 없는 변화와 혁신의 기로에 섰다. 행정통합, 통합신공항, 신성장 산업 생태계 조성 등 산은 높고 갈 길은 멀지만 이 땅은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갈 터전. 산업화 출발지 대구경북이 다시 비상하는 염원을 담아 이제 막 닻을 올린 민선 9기 뉴리더를 마지막 전시 사진으로 구성했다.
2026-08-10 05:30:00
이명희 '마음의 행로' 첫 개인 사진전·출판 기념회…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9일까지 전시
이명희 '마음의 행로' 사진전 및 출판기념회가 4일 최광호 사진작가, 전국문화사진 초대작가 회원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 봉산문화회관 제2전시실에서 열렸다. 이번 사전전에는 '우리는 어디로 흘러 가는가'를 화두로 10여 년 자연을 대상으로 촬영 해 온 작품 37점을 9일까지 전시한다. 자연주의 작가로 알려진 이명희 작가의 사진 소재는 모두 일상에서 마주친 '자연의 한 조각들'이다. 작가는 무심히 마주한 자연에서 아득한 지난 시절의 기억과 감정이 머무른 순간을 앵글에 담아 이날 첫 개인전과 함께 작품 72점을 담은 사진집도 출간했다. 김종수 전 대구예술대 사진영상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명희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은 무심히 스쳐가기 쉬운 대상을 시각적으로 재 창출하는 원동력" 이라며 " '마음의 행로' 작품은 관조의 미학을 담은 자연의 영상시"라고 말했다. 이명희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이번 사진전은 과거를 향한 회상이자 지금의 나를 마주하는 일"로 " 사진 작품들은 흐릿해진 시간의 끝에서 여전히 내 마음의 행로를 따라가고 있다"며 소회를 밝혔다. 2023년 제24회 전국문화사진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명희 작가는 현재 전국문화사진 초대작가회 사무국장을 비롯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첫 사진전에 이어 대구 푸른방송 초대전으로 '디카시 사진전'을 준비중이다.
2026-08-05 09:32:32
[매일신문 80년 대구경북80년] 'K-People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 사진전 둘러보기 <상>
〈strong〉매일신문사는 창간 80주년 특별 기획으로 오는 11일부터 2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제11~13 전시실에서 '매일신문 80년 대구경북 80년(1946-2026), K-People :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 사진전을 갖습니다. 사진전에는 매일신문이 기록해 온 격동의 현대사를 생생하게 복원한 대형사진(1.5mⅹ1m), 신문 지면 등 약 400점을 선보입니다. 〈/strong〉〈strong〉대한민국 80년 시대정신을 연표, 해설과 함께 한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개막식은 11일 오후 2시에 열립니다.〈편집자 주〉〈/strong〉 올해로 창간 80주년을 맞은 매일신문(每日新聞)은 1946년 남선경제신문(南鮮經濟新聞)으로 출발했다. 이어 1950년 3월 경제신문으로, 그해 8월 1일 다시 제호를 '대구매일신문'으로 바꿔 종합 일간지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후 1960년 7월 7일 취재망을 전국화 하면서 '매일신문'으로 변경해 오늘 자(3일)로 지령 2만5천86호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매일신문은 대한민국 현대사, 특히 대구경북 80년 역사적 순간들을 지면과 사진으로 오롯이 기록해 왔다. 그 80년 격동의 현장을 한자리에 모았다. 사진전 주제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80년을 관통하는 시대정신. 이를 위해 매일신문 아카이빙센터에 소장 중인 방대한 기록사진과 지면을 1년에 걸쳐 발굴, 고화질로 복원해 400점을 엄선했다. 전시는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11개 섹션에 대형사진(1.5mⅹ1m)과 각각 해설을 달아 80년 시대상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strong〉◆제1섹션=생존…폐허를 딛고 일어서다〈/strong〉 1945년 8월 해방의 기쁨도 잠시뿐,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분할해 신탁통치에 들어갔다. 미·소 군정(軍政)기 극도의 이념 대립 속에 남북은 각각 단독 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혈육은 흩어지고 강산은 폐허로 변했다. 제1섹션에서는 미군정 초기 대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날 대구, 한국전쟁 당시 임시 수도 대구와 피란촌, 재건을 위한 문경 시멘트공장 준공, 해방 이후 가장 무서웠던 1959년 사라호 태풍이 덮친 그날 등을 생생한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strong〉◆ 제2섹션=혁명…쓰레기통에서 장미 꽃피다〈/strong〉 자유당 정권은 '4사5입(四捨五入)'개헌으로 장기 집권 체제를 마련했다. 당시 대구는 야도(野都)였다. 독재에 굴하지 않은 언론, 높은 교육열로 대구는 어느 지역보다 시민의식이 높았다. 이런 토양 위에 일어난 2·28학생의거는 4·19혁명으로 이어져 12년 자유당 독재정권을 물리치는 출발점이 됐다. 제2섹션은 2·28학생의거 전사(前史)로 일컫는 이른바 '백주의 테러' 대구매일신문 피습사건, 3·15 부정선거와 2·28학생의거, 4·19혁명의 그날 대구, 1962년 2·28학생의거 기념탑이 제막되기까지 숨가빴던 순간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strong〉◆제3섹션=근대화·산업화…가난을 물리치다〈/strong〉 1960년 4·19혁명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61년 5월, 군사정변으로 다시 군정(軍政)시대를 맞았다. 정치 전면에 나선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일성은 '국가재건'. 2년간의 군정에 민정(民政) 이양 요구가 거세지자 군인 박정희는 군복을 벗고 1963년 10월 제5대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 대통령 박정희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제3섹션은 '체력은 국력', '국민교육', '신라 역사문화 개발', '국토건설단' 등 박정희 시대국가 재건 과정을 조명한다. 또 식량증산, 수출을 위한 구미 농산물 가공공장 준공, 두 번 열린 포항제철 기공식 등 근대화·산업화 초기 가난을 물리치던 그날을 돌아본다. 〈strong〉◆ 제4섹션=보릿고개…아련한 그 시절을 돌아보다〈/strong〉 1960년대 민초들의 삶은 너나 없이 힘들었다. 서문시장 대화재로 상인들은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었다. 해마다 닥치는 물난리, 무시로 찾아드는 가뭄에 고사리 손까지 두 팔을 걷어붙였다. 춘궁기 신천 근로구호 공사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그래도 민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1961년 대홍수로 물바다가 된 영주에서는 수해를 복구하면서 가흥산 허리를 잘라 물길을 바꾸고, 영주역까지 옮기는 대역사를 썼다. 제4섹션은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던 아련한 그 시절을 모았다. 도심 외곽으로 온통 논밭 일색인 1964년 하늘에서 본 대구 풍경은 유년의 추억이 울컥 묻어 난다. 〈strong〉◆제5섹션=근대화·산업화…대(大)대구를 건설하다〈/strong〉 1965년부터 시작된 '대(大)대구 건설'은 인구가 급증해 대구 첫 도시 계획(1937년)이후 28년 만에 대구를 새로 확장하는 프로젝트였다. 동쪽 구릉지엔 신도시 거점 동대구역 신설, 허허벌판 서쪽엔 낙동강 물을 끌어 식수를 해결 할 강정상수도(옛 두류정수장) 건설, 남쪽엔 한옥 베드타운, 그리고 대구역 북쪽 들판은 산업화를 견인할 제3공단 부지로 낙점됐다. 쓸 곳은 많은데 예산은 턱 없이 모자랐다. 해가 가도 공사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궁리 끝에 당국은 공설시장인 서문시장을 민간에 불하해 건설비를 충당했다. 당시 넓직하게 계획한 동서관통로(달구벌대로)는 착공 14년 만인 1979년에서야 완공됐다. 제5섹션에서는 그 시대를 살아 온 아버지 어머니들이 피땀으로 일군 그날의 대(大)대구 건설 현장을 볼 수 있다. 〈다음 주에 계속〉
2026-08-03 05:30:00
전국문화사진 초대작가회 창립 20주년 '빛으로 걸어온 여정' 출판 기념회…작품전도 개막
대구 달서구문화원(원장 조현정) 전국문화사진 초대작가회(이하 초대작가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20년 사력(寫歷)을 담은 사진집 '빛으로 걸어온 여정'을 발간했다. 초대작가회는 6일 오후 사진계 원로, 회원 등 1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달서출판산업지원센터 내 또바기 북 까페에서 20년사 사진집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사진집에는 초대작가회 연혁, 회원들이 발표 해 온 사진 작품과 다양한 개인전 사료 등을 꼼꼼히 수록했다. 초대작가회는 달서구문화원이 사진문화 발전을 위해 주최하는 사진 공모전 수상자로 구성된 단체다. 올해로 27회째를 맞은 공모전은 우수 신진 사진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역량 있는 중견 작가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들은 대부분 테마 사진을 모토로 활동한다. 4~18컷으로 하는 테마 사진에 대한 탐구는 초대작가회의 독특한 전통으로, 김종수 창립 고문(전 대구예술대 교수), 임재현 초대 회장 등이 테마 사진 작업을 이끌어 오고 있다. 또 정기 촬영, 사진 세미나, 테마 사진 특강 등으로 회원 간 작품 철학을 공유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정기 전시회는 테마전으로 열리며, 우수 작품은 달서구 푸른신문 '테마가 있는 사진 여행' 시리즈에 90회째 연재 중이다. 이해순 회장은 "그동안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달서구문화원에 깊이 감사 드린다" 며 "창립 20주년을 계기로 '사진의 메카 대구'의 명성을 잇는 내실 있는 초대작가회가 될 것"을 다짐했다. 이날 출판 기념회에 앞서 달서아트센터 내 달서갤러리에서 제27회 전국문화사진 공모전 시상식과 함께 제20회 초대작가 사진전도 개막했다. 공모전 수상 작품과 회원 테마 작품 등 130점을 11일까지 전시한다.
2026-07-07 09:36:55
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특집〉 K-People :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2>
〈strong〉1962년 국토건설단 〈/strong〉1962년 2월 재건 일꾼이 부족하자 박정희 군사정부는 군 미필자, 실업자, 깡패 등으로 국토건설단을 창단했다. 건설단은 군대 조직으로 편성됐다. 태백산지구 개발을 위한 경북선 연장 구간(점촌~예천~영주) 공사는 국토건설단 제5지단이 맡았다. 제5지단 단원 4천573명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자는 3천615명이었다. 〈strong〉1966년 포정동 경북도청사 〈/strong〉1895년 조선 8도가 13도로 재편되면서 포정동 경상감영터에 자리했던 경북도청은 1912년 새 청사를 신축했다. 7년 뒤엔 본관 동편 청사를, 3년 뒤엔 서편 청사를 지어 ㄷ자형 건물이 완성됐다. 2·28학생의거 당시 학생 집결지는 바로 이곳이었다. 건물은 1966년 4월 1일 도청이 산격동 신청사로 이전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른쪽 앞 건물은 상품 진열소인 뇌경관(賴慶館)으로 대구 최초 컨벤션센터였다. 〈strong〉1968년 완공 앞둔 동대구역 〈/strong〉1965년 대(大)대구 건설 계획에 따라 대구역을 폐쇄키로하고 대구 동부 신도시 건설 예정지에 건설한 동대구역은 1966년 7월 16일 착공, 1969년 6월 9일 완공됐다. 당초 대구역 폐쇄 계획은 무산됐지만 동대구역은 청석받이 구릉지 신천 동부를 신도시로 탈바꿈 시킨 일등공신이었다. 〈strong〉1970년 헐리는 대구역 본관 〈/strong〉대(大)대구 건설 일환으로 1971년 4월 24일 중앙로와 산격동 도청을 잇는 남북 소통 대구역 지하도가 개통됐다. 경부선 개통으로 남북이 단절된 지 68년 만의 소통이었다. 이 과정에 1913년 르네상스풍으로 건축한 대구역 본관이 1970년 9월 안타깝게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strong〉1972년 새마을운동 지붕 계량 〈/strong〉1970년 농촌에서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 정신으로, 잘 살아보자는 운동이었다. 마을마다 지붕 계량으로 초가 지붕이 기와나 슬레이트로 바뀌자 농한기에 일손이 많이 가던 지붕 보수 대신 부업 등 생산활동 시간이 늘면서 점차 소득증대로 이어졌다. 〈strong〉1972년 달성공원 수문장 〈/strong〉1970년 5월 2일 달성공원에 동물원이 개원되고 이듬해부터 공원 정문을 지킨 류기성 씨는 키가 2.25m로 거인, 키다리 아저씨 등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27여 년간 달성공원 수문장 역할을 도맡아 1970~80년대 달성공원을 대표하는 마스코트였다. 〈strong〉1975년 반공궐기대회 〈/strong〉1960년대 베트남 파병 저지를 위한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이어 1975년 3월 북한이 판 제2땅굴이 발견되자 5월, 경북 22개 시·군에서 일제히 반공궐기대회가 열렸다. 대구대회에는 직장 예비군, 학생, 민간단체 등 45만 명이 참가해 대구역 광장동서남북 1km 구간 도로를 가득 메웠다. 구호는 '반공(反共)'을 넘어 '멸공(滅共)'이었다. 〈strong〉1987년 6월 항쟁 〈/strong〉1987년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이 전국 37개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열렸다. 학생, 종교인, 넥타이 부대, 주부 등 전국에서 100만여 명이 참가해 6·10 항쟁 이후 최대 규모였다.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자 민정당 노태우 대표는 시국 수습을 위해 6·29 선언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시국사범 석방 등이었다.
2026-07-07 05:30:00
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특집〉 K-People :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3>
〈strong〉1998년 IMF 극복 금모으기운동 〈/strong〉외환위가가 닥친 1998년 초, 금을 모아 수출해 IMF 외채 195억 달러를 갚자는 금모으기운동이 시작됐다. 대구에서는 '제2의 국채보상운동'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97년 12월 28일부터 시작해 10만3천여 명이 동참했다. 금모으기운동은 국론을 모아 IMF체제를 조기에 졸업하는 데 큰 힘이 됐다. 〈strong〉2006년 월드컵 응원 광장문화 〈/strong〉2006년 6월 13일 독일 월드컵 토고전에서 한국이 2대1로 승리하자 거리 응원전이 열린 범어네거리는 축제의 도가니였다. 거리에서 응원하며 즐기는 광장문화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의 사상 첫 4강 진출로 범어네거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등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응원전이 열리면서 시작됐다. 〈strong〉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strong〉 2011년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202개국 1천945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시민들의 질서 있는 관람, 풍성한 볼거리, 서포터스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등 외신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면서 대구가 국제육상도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strong〉2020년 코로나19 K-방역〈/strong〉 2020년 2월 18일 대구에서 국내 31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대유행으로 번지자 대구는 패닉에 빠졌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도 대구는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생활화, 세계 최초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 운영, 대구시의사회의 의병(醫兵) 모집, 의료진의 헌신 등에 힘입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세계적 모범 사례로 평가 받은 K-방역 현장은 바로 대구였다. 〈strong〉2021년 합천댐 수상 태양광〈/strong〉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확대 일환으로 2021년 11월 합천댐에 수상 태양광 발전소가 완공됐다. 발전 용량은 41MW. 합천 군민(4만3천여 명) 수 보다 많은 6만명이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연간 탄소배출량 2만t, 미세먼지 23t 감축 효과도 있다. 수상 태양광은 임하댐(2025년 준공)에 이어 군위댐에도 건설 중이다. 풍력발전은 2005년 영덕으로 시작으로 지금까지 경북 9개 시·군에 발전단지가 조성됐다. 〈strong〉2025년 경주 APEC 정상회의〈/strong〉 2025년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APEC)가 경주에서 성공리에 개최됐다. 인천, 제주와 최종 유치 경쟁에 나선 경주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주낙영 경주시장이 직접 천년고도 경주의 강점을 역설하면서 최종 개최지로 확정됐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경주는 글로벌 거점 관광도시 도약을 위해 '포스트 APEC'을 구상 중이다. 〈strong〉2025년 북극항로 전진 기지 영일만항〈/strong〉 포항 영일만항이 북극항로 전진 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북극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차세대 해상 물류 루트로, 운항 거리가 수에즈운하 경로보다 30% 이상 단축돼 전략적 가치가 크다. 정부는 2030년 정기 북극항로를 개설하고 2035년쯤에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trong〉2026년 동성로 누빌 자율주행 셔틀〈/strong〉 대구는 국가로봇테스트필드,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을 비롯해 로봇기업 250여 개, AI 소프트웨어 기업 240여 개로 비수도권에서 로봇기업이 제일 많은 도시다. 첨단 로봇 인프라를 기반으로 대구는 4차 산업혁명시대 'AI 로봇 수도'을 지향하며 새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헬스케어·로봇·미래모빌리티·ABB(AI·빅데이터·블록체인)·반도체 등 5대 신산업도 육성중이다.
2026-07-07 05:30:00
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특집〉 K-People :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1>
매일신문사는 창간 80주년 특별 기획으로 오는 8월 11일부터 2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K-People : 은근과 끈기의 위대한 한국인' 사진전을 갖습니다. 사진전에는 매일신문사가 격동의 현대사 80년을 생생히 기록해 온 사진과 신문 지면 등 약 400점을 선보입니다. 사진전은 지난 80년 시대정신을 11개 섹션으로 선보입니다. 해방후 전쟁의 폐허를 딛고 근대화 산업화를 통해 가난을 물리치는 과정, 분단 현실에 일상이 된 '반공'과 '새마을운동', 권위주의 시대와 IMF체제 극복, 이를 통해 마침내 세계가 주목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K-People, 위대한 한국인을 조명합니다. 전시 사진은 매일신문 아카이빙센터에 소장 중인 수십만 장의 기록사진 가운데 엄선한 것으로, 특히 한국 현대사에 중추적 역할을 해 온 대구경북 역사 현장 중심으로 선보입니다. 다음달 열릴 특별 기획 사전전에 앞서 주요 사진을 소개합니다. 〈strong〉1945년 치안유지대 〈/strong〉1945년 해방과 함께 남한에 미군정(美軍政)이 시작돼 10월 1일 대구에 미군이 첫 입성하자 대구역 광장에서 환영회가 열렸다. 이 무렵 좌·우익계열 치안유지단체가 난립하자 미군정은 10월 23일 모든 치안단체를 해산시키고 치안권을 경찰에 이양했다. 〈strong〉1948년 정부수립 경축 대구시민대회 〈/strong〉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일제에 국권이 피탈된 지 38년, 광복 후 미군정 3년 만이었다. 이로써 미 육군 존 하지 중장이 군정사령관에, 헨 대령이 경북지사에, 존 콘치 대위가 대구부윤(시장)에 취임하면서 실시된 미군정은 정부수립과 함께 폐지됐다. 〈strong〉1950년 임시수도 대구 〈/strong〉6.25전쟁 초기 전세가 악화되자 정부는 7월 16일 대전에서 대구로 피난, 8월 17일까지 대구를 임시수도로 삼았다. 포정동 경북도청은 임시정부청사, 구 한일극장은 임시국회의사당, 학교와 공공 시설은 군 주둔지로 징발됐다. 낙동강 전선이 위험해지자 정부는 8월 17일 밤 다시 부산으로 옮겨갔다. 〈strong〉1959년 사라호 태풍 〈/strong〉1959년 추석날 닥친 태풍 사라호는 초속 45m의 강풍과 폭우로 대구·청도·경산, 영천·경주·포항, 안동·청송·영덕을 휩쓸고 울진까지 초토화 시켰다. 경북에서만 사망·실종 280명(전국 929명), 부상 1천277명, 이재민 40만8천83명이 발생해, 사라호는 해방 후 가장 무서운 태풍이었다. 〈strong〉1960년 정·부통령 선거 신천 유세장 〈/strong〉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미국에서 병 치료 중 급서했다. 자유당은 대통령에 이승만(85) 당선은 무난했지만 고령으로 사망 시 부통령에 대통령직 승계를 우려해 이기붕 부통령 당선에 사활을 걸었다. 조병옥 국민장(25일) 직후 대구에서 민주당 첫 선거유세가 열린 2월 28일, 일요등교·일요출근·외지출장 등 당국의 방해에도 10만 인파가 운집했다. 멀리 왼쪽은 수성교, 가운데 큰 건물은 남산여고와 신명여중이다. 〈strong〉1960년 4·19혁명의 날 대구 〈/strong〉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에 경북대, 대구대, 청구대 등 3개 대학 교수단과 대학생, 남녀노소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중앙통(로)은 온통 감격의 도가니였다. 자유당 12년 독재정권을 물리친 4·19혁명 출발지는 고교생들이 불의에 항거했던 '2·28의 도시' 대구였다. 〈strong〉1966년 보릿고개 넘는 모정 〈/strong〉1960년대 민초들의 삶은 유난히 힘들었다. 해마다 몸서리 치는 물난리에, 무시로 찾아드는 극심한 가뭄에 이맘때면 곳간은 여지없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막둥이를 들쳐 업고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고 또 넘었다.
2026-07-07 05:30:00
경북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창회 학교 발전기금 5천만원 기탁
경북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창회(회장 김만호)는 지난 30일 동문 2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골프대회를 갖고 개교 80주년을 맞아 학교 발전기금 5천만원을 기탁했다. 왼쪽부터 안상정 경북대 발전기금 기획본부장, 김판수 경영대학원장,조제구 14대 회장(대구 남구청장), 한삼화 7대 회장(삼한 씨원 회장), 김만호 총동창회장(성호하이택 대표), 허영우 경북대 총장, 추교관 경북대 총동창회장, 김옥렬 8대회장(화신 대표), 이영도 11대 회장(대백마트 옥산점 대표).
2026-07-01 15:26:11
대경디카시인협회 제3회 호국보훈 디카시 공모전 시상식 및 작품전 개최
대경디카시인협회(회장 손은주)는 지난 23일 수성구 한 음식점에서 제3회 호국보훈 디카시 공모전 시상식을 갖고 26일까지 대상 수상작인 양재완의 '꽃넋의 춤' 등 작품 20점으로 수성구청 민원실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대경디카시인협회는 7월 6일부터 19일까지 수성구 시지 한신휴아파트 내 굼뜬도서관에서 2차 전시도 갖는다. 대경디카시인협회는 회원 36명으로 지난 6월 17일 수성구 시지 한신휴플러스 커뮤니티센터에서 공식 출범했다. 회원들은 협회가 결성되기 전 고산도서관에서 약 3년 동안 디카시를 배우며 전국 규모 디카시 공모전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역량을 입증해 왔다. 손은주 회장은 "회원들이 뜨거운 열정으로 모인 만큼 이번 공모전을 계기로 수준 높은 디카시 작품 활동을 펴 지역 문학 발전을 이끄는 단체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6-29 15:40:32
원케이 글로벌 캠페인 운동본부, 2026 대구경북 원 코리아 범국민대회 개최
원케이 글로벌 캠페인 운동본부(서인택 공동 조직위원장)는 15일 오후 매일신문 11층 강당에서 신동준 통일을 실천하는 사람들 대구경북본부 대표, 이수만 대구경북언론인회사무총장, 통일 관련 지도자, 회원 등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6 대구경북 원 코리아 범국민대회를 가졌다. 대회에서 장만순 이천만 이산가족 위원회 위원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두 국가(평화적 두 국가론)를 인정한다는 것은 8천만 동포의 꿈을 꺾는 일로 아이들에게 분단된 나라를 유산으로 남기겠다 는 비겁한 선언과 다름 없다" 며 '두 국가론'을 거부했다. 서인택 위윈장은 "남북 통일은 한민족의 역사적 소명이자 당위" 라며 국난극복의 보루인대구경북에서 삼일 보국정신을 되살려 하나의 국가인 한반도 통일 운동에 앞장서 줄 것" 을 호소했다.
2026-04-16 18:38:47
한국기술사회 대경지회 제14대 최문홍(신일이앤씨 대표이사) 회장 취임
한국기술사회 대구경북지회는 20일 오후 호텔라온제나에서 회원 150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6년 정기총회 및 제13대 14대 회장 이·취임식을 열고 최문홍 ㈜신일이앤씨 대표이사를 제14대 회장에 선출했다. 행사에는 김병수 대한토목학회 대경지회장, 이승현 대한건설협회 대구시 회장을 비롯한 각 학회 회장단과 업계 단체장들이 참석했다. 회장 이·취임식에서 이해진 전 회장은 "기술사들의 협조와 참여 덕분에 2년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최문홍 신임 회장은 "지역내 기술사의 역할 확대와 지속발전 기반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정기이사회에서는 2025년도 사업실적과 결산안을 인준하고 2026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을 의결했다.
2026-03-22 11:53:21
경북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김만호 제16대 총동창회장 취임
경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창회는 허영우 경북대 총장, 김판수 경영대학원장, 동문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4일 대구 웨딩 뉴욕뉴욕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제16대 김만호(성호하이텍 대표) 총동창회장 취임식을 가졌다. 왼쪽부터 이영도 대백마트 옥산점 대표(11대 회장), 엄원섭 성원정보통신 대표, 성달표 현대통상 대표(9대 회장), 김판수 경북대 경영대학원 원장, 조재구 남구청장(14대 회장), 한삼화 삼한 씨원 회장(7대 회장), 허영우 경북대 총장, 김만호 신임 총동창회장, 추교관 경북대 총동창회장, 김옥열 화신 대표(8대 회장).
2026-02-06 10:30:26
안상호 전 대구 중구도심재단 이사 문체부 지역신문발전위 위촉
안상호 전 대구 중구도심재생문화재단 상임이사가 제8기 지역신문발전위원에 위촉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제8기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이하 지발위) 위원 9명을 위촉했다고 14일 밝혔다. 신임 위원들은 문체부 장관이 위촉하는 비상임 명예직으로, 임기는 2028년 12월까지 3년이다. 문체부는 국회, 언론 관련 단체, 한국언론학회가 각 3명을 추천해 언론 및 지역신문 관련 전문성과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사를 중심으로 위촉했다고 밝혔다. 지발위는 문체부 산하 기구로 지역신문발전지원 특별법에 따라 지역신문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됐다. 지역신문 발전지원계획 수립에 관한 의견 제시, 지역신문발전기금 조성과 운용에 관한 사항 심의, 지역신문 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 선정 등의 업무를 맡는다.
2026-01-25 19:00:48
(사)대구서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피해자·가족 200여 명 초청 '2025년 송년의 밤' 개최
(사)대구서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사장 심기봉 ㈜덴티스 회장)는 지난 18일 신동원 대구 검찰청 서부지청장, 이태훈 달서구청장, 이재화 대구시의원, 이동운 서구의원 등 관계자와 범죄 피해자 및 가족 2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달서구 두류동 웨딩비엔나에서 '2025년 송년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행사는 김동욱 사무처장의 사회로 개회식에 이어 김국화 MC 진행으로 열린 공연 등으로 희망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에서 심기봉 이사장은 "오늘 만큼은 아픈 기억을 내려놓고 따뜻한 밥 한 끼와 웃음으로 마음을 채우시길 바란다" 며 "2026년에도 피해자들과 함께 하며 지역사회 안전망 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센터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누리보듬' 가족(범죄 피해자 및 가족)들이 함께 모여 가족애를 느끼고 새해 희망을 공유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며 "센터는 앞으로도 빠른 치유와 일상 복귀를 위한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사)대구서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경제적·심리적·법률적 지원으로 사회적 약자 보호와 지역사회 안전 강화에 힘쓰고 있다.
2025-12-22 08:47:26
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56·끝> 1950년 크리스마스의 기적
1950년 전쟁 발발 6개월째인 12월, 인천상륙작전 여세를 몰아 유엔군과 국군이 압록강과 두만강 코앞까지 진격하자 중공군의 대대적인 인해전술이 시작됐습니다. 전세가 급변하자 12월 9일, 맥아더 유엔사령관은 전선을 사수하던 전 병력에 흥남 해상으로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영하 30℃ 혹한 속에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 등 동북부 전선(함경남북도 일원) 10만 병력이 속속 흥남항에 집결했습니다. 북한 피란민도 국군을 따라 흥남부두로 밀려들었습니다. 피란 행렬도 10만을 헤아릴 만큼 줄을 이었습니다. 4km 앞까지 접근한 중공군의 포성 속에 12월 15일, 흥남철수 작전이 시작돼 미 군함과 화물선이 병력과 군장비를 싣고 속속 항구를 탈출했습니다. 우리 정부와 군 지휘부의 간절한 호소에 피란민 구출작전도 함께 시작됐습니다. 흥남철수 8일째인 22일, 해상에 정박 중이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가 흥남항으로 들어왔습니다. 멀리 선창가에는 여전히 발을 구르는 피란민들로 아우성이었습니다. 놀란 광경에 라루(Leonard P. LaRue) 선장이 쌍안경을 들었습니다. 세간살이를 머리에 이거나 두 손에 잔뜩 들고 아이까지 업은 사람들. 병아리처럼 오들오들 떠는 아이들. 허리까지 차오른 바닷물로 걸어와 태워달라 애원하는 사람들…. 삶과 죽음이 멀지 않은 처참한 광경이었습니다. "배에 실린 물자를 모두 내리고 저 사람들을 태우시오!" 선장의 명령에 선원들은 그물망을 내려 사람들이 올라오게 했습니다. 이따금 터지는 포탄 속에 악착같이 그물을 기어오르는 광경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습니다. 선원들은 피란민을 화물칸 맨 아래 지하 5층부터 4층, 3층으로 올라오며 갑판까지 빼곡히 태웠습니다. 22일 밤 9시부터 시작된 승선은 이튿날 낮까지 계속됐습니다. 더는 탈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어디선가 또 틈이 생겼습니다. 훗날 라루 선장은 "얼마나 많이 태웠던지 7천6백톤짜리 강철 화물선이 마치 고무줄처럼 늘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이렇게 피란민 1만4천명을 태우고 23일 오후 흥남항을 출항했습니다. 기뢰가 쫙 깔린 바다를 탐지 장비도 없이 나섰습니다. 화물선 밑창에는 버리지 못한 300톤의 제트유가 실렸지만, 이를 모르는 피란민들이 추위에 불을 피우는 바람에 배가 통째 화장터가 될 뻔한 아찔한 순간도 겪었습니다. 흥남항을 떠나 온 지 28시간 만인 24일 늦은 오후, 우여곡절 끝에 다다른 부산은 이미 도처에서 몰려든 피란민들로 포화 상태. 뱃머리를 돌려 다시 7시간이 넘는 항해 끝에 25일 마침내 거제 장승포에 닻을 내렸습니다. 물, 음식, 화질실도 형편없는 데다 의료진, 통역관도 없는 최악의 피란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한 명의 사상자도 없는 완벽한 항해였습니다. 오히려 이틀간의 항해 동안 배 안에서는 새 생명이 다섯이나 태어났습니다. 가슴 졸였던 선원들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며 두 손 모아 기뻐했습니다. 그로부터 56년이 흐른 2006년 2월 26일, 메러디스 빅토리호 1등 항해사로 당시 피란민 구출 작전에 참여했던 로버트 러니(Robert Lunney·79)씨가 한국 방문길에 대구 대명성당을 찾았습니다. 그때 필자도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생생히 기억나요. 그날 한 젊은 여성이 양손에 아이 손을 잡고 아기까지 업은 채 배에 올랐지요. 그때 등에 업힌 10개월짜리 아이가 강 신부님이었어요…." 전쟁 후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해 온 러니 씨는 반세기를 훌쩍 넘겨 다시 만난 강순건(56) 신부와 그날의 감격을 나눴습니다. "그땐 구할 수 있는 모든 인원을 태우기로 했지요. 이 사진들은 우리 선원들이 직접 찍은 거예요." 러니 씨는 56년 전 그날을 기록한 사진을 담은 CD를 필자에게 건내며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피란민 구출작전의 영웅은 승무원들이 아니라 모두 하나가 돼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낸 한국인 자신들이었습니다."
2025-12-19 05:30:00
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55> 14년 만에 뚫은 달구벌대로
1979년 12월 26일 대구 동서관통로(구 대동·대서로, 현 달구벌대로) 시작점인 반월당. 마침내 도로가 말끔히 포장됐습니다. 확장된 도로는 중앙에 화단까지 갖추고, 직경이 100m에 달하는 반월당네거리는 광장을 방불케 합니다. 1965년 폭 50m, 총 연장 10km의 동서관통로를 계획한 지 어언 14년. 기나긴 여정이었습니다. 실로 지난한 세월이었습니다. 인구 80만에 자동차도 뜸하던 그때(1965년), 허허벌판 감삼동에서 도심을 지나 신천만 건너면 또 논밭이 아득한 만촌동까지, 당시 제일 넓다는 중앙로(약 22m)보다 폭이 두 배도 넘는 큰 도로를 설계한 이유는 뭘까. 1965년 2월 2일 건설부는 대구시 도시재정비계획을 고시, 10일부터 시행토록 했습니다. 장차 대구 인구가 늘 것에 대비해 중구 일원에 몰린 도심을 동서남북 외곽으로 확장하는 이른바 '대(大)대구 건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건설안에 따르면 칠성·침산동에 집중된 공업지대(제1공업단지)를 평리·검단·비산동을 넘어 성서·월배까지 확장키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성서 들판을 제2공업단지로 지정하고 이곳까지 새로 큰 도로를 뚫기로 했습니다. 당시 대구 주요 도로는 중앙로를 간선(幹線)으로 하는 남북관통로가 고작. 도시 확장을 위해선 동서관통로가 필수조건이었습니다. 반월당을 기점으로 수성교~범어동~만촌동 구간은 B-1광로(廣路), 반월당~내당동~감삼동 구간은 B-2광로로 명명한 동서관통로. 공사는 제2공업단지가 들어서는 서쪽 B-2광로부터 시작됐습니다. 1966년 3월 현재 도로 부지 매입은 겨우 30% 선. 사들여야 할 부지가 워낙 방대해 계산오거리, 내당주차장(현 대구서부교회 자리) 일대 등 땅값이 비싼 곳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한옥 등 건물 354동이 자리한 삼덕파출소(현 남산지구대)~신남네거리 500m 구간은 80% 이상 보상을 마쳤다고 강제 철거하는 바람에 어느 초가집은 세간살이가 뒤죽박죽 날벼락을 맞기도 했습니다. 1967년에는 두 차례 선거(5월 제6대 대선, 6월 제7대 총선)로 선심성 예산을 늘인 탓에 도로공사는 손도 못 댔습니다. 1969년 3월, 착공 4년이 지나도 동서관통로 소통은 감감 무소식. '대대구 안'을 짠 강계원 시장 후임으로 부임한 태종학 시장(재임 1966년 5월~1969년 10월)은 성서에 예정된 제2공업단지 입지가 나쁘다며 제3공업단지를 먼저 조성하는 바람에 동서관통로 건설에 힘이 빠진 탓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자금난. 당초부터 충분한 재원 확보 없이 얼마간의 국비로 시작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1973년 무렵엔 치솟은 용지 보상비에 반월당~계산오거리 구간(당시 폭 25m)을 확장하지 못해 발을 굴렀습니다. 반월당~경산 구간(B-2광로)은 확장을 하고도 포장을 못해 비만 오면 질퍽이는 구간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공사는 여기 찔끔 저기 찔끔, 해가 가도 진척이 없었습니다. 국비 보조가 시원찮은 데다 시민 살림살이마저 팍팍해 시 재정만으론 감당이 역부족. 1975년 시 당국은 궁리 끝에 시유지(공설시장)인 서문시장을 5지구까지 잇따라 민간에 매각해 그 자금으로 겨우 건설비를 충당했습니다. 1965년 착공, 1979년 12월 말 완공. 한때 대동·대서로로 불리던 달구벌대로는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쓸데없이 큰 도로를 낸다고 말이 많았지만, 도로는 설계 당시 초심 그대로 실현돼 지금은 전국에서 부러워하는 대구의 대동맥이 됐습니다. 대구의 미래를 헤아린 리더의 혜안을 돌아보게 하는 오늘입니다. 대구 신청사, 대구경북 신공항이 수년째 자금난으로 표류 중입니다. 지도자는 힘들고 어려울 때 앞장서 길을 여는 등대 같은 존재. 오로지 지역의 백년대계를 생각하고 또 생각할 일입니다. 14년 만에 기어이 뚫은 달구벌대로가 주는 교훈입니다.
2025-12-05 05:30:00
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54> 1967년 대(大)대구 건설 밑거름 서문시장
1967년 11월 대구는 이른바 '대(大)대구 건설'로 부산했습니다. 앞서 1965년 2월 10일 발표된 '대대구 건설' 계획은 대구 인구가 10만 7천명이던 1936년 일제 강점기에 첫 도시계획을 한 이래 29년 만. 그새 인구가 80만(1965년)으로 불어나 10년 뒤(120만명 추산)를 대비해 대구 지도를 새로 그리는 대역사였습니다. 구릉지 동대구는 신축 중인 동대구역을 중심으로 부도심을, 들판이 좋은 서대구는 주택지와 제2공단이 낙점됐습니다. 한옥이 즐비한 남대구는 두류산과 앞산에 대공원을, 대구역을 낀 북대구는 제3공단을 조성키로 했습니다. 도로망은 동서관통로(현 달구벌대로)를 비롯해 3개 순환선에 5개 방사선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기로 했습니다. 청사진은 가히 매머드급. 그러나 시작부터 험난했습니다. 사업을 추진할 국고 보조금이 내년(1968년) 예산에서 대부분 빠졌습니다. 연초에는 착공됐어야 할 동서관통로와 기공식을 가진 제3공단도 여전히 제자리 걸음. 알고보니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1971)이 3년 반으로 단축돼, 지방에 내려올 돈줄이 마른 탓이었습니다. "서문·교동시장을 불하(拂下), 55억 염출(捻出)해 도시 개발에" 그해(1967년) 11월 14일자 매일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공설시장(시유지)인 서문시장 부지 9천89평(30,047㎡)과 교동시장 내 시유지 약 3백평(992㎡)를 민간에 팔아 돈을 만들겠다는 것. 이와 함께 서문시장 사진기사도 실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 8월, 서문시장은 2지구를 시작으로 1지구(1973년), 3·4지구(1974년), 5지구(1975년)가 잇따라 민간에 매각됐습니다. 이 과정에 영세 상인들은 가게를 떠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이렇게 마련한 자금은 대(大)대구 건설로, 오늘의 대구 기틀을 닦는 밑천이 됐습니다. 당시 서문시장 일대를 촬영한 필름을 어렵게 찾았습니다. 시장 주변 시가지를 조금씩 겹쳐 촬영한 필름은 모두 4컷. 필름을 스캔해 포토샵 포토머지(Photomerge)에서 서로 붙여 봤습니다. 58년 전 모습이 생생한 파노라마로 되살아났습니다. 1967년 11월 서문시장은 2지구와 5지구를 빼고는 현대식으로 지은 콘크리트 2층 건물(1·3·4지구). 7년 전 목조 상가를 홀라당 태운 대화재를 겪으면서도 한강 이남에서 제일가는 장터임을 웅변하듯 저렇게 다시 일으켰습니다. 시장 너머 주택가는 기와집 사이로 초가가 옹기종기 자리를 지키고 섰습니다. 달성공원은 일제의 잔재 대구신사(神社)를 헐고(1966년) 서울 창경원 다음 가는 동물원 개장(1970년)을 예고했습니다. 그 후 58년. 이곳은 또 다른 변화를 준비중입니다. 계성중학교 부지에는 2032년 국립 대구독립역사관이 들어서고, 달성공원은 동물원을 옮긴 뒤 옛 토성으로 재 모습을 되찾을 예정입니다. 공원 왼쪽 언덕 주택가는 5세기 중후반 신라시대 고분이 무려 87기나 산재한 달성고분군이 있던 곳. 1923년 이곳 무덤에서 신라 금관을 빼닮은 금동관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미발굴 상태로 주택이 들어서, 고분 발굴은 숙제로 남았습니다. 공원 옆 대성초교는 월드스타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본명·김태형)가 뛰어 놀던 모교. 교정 담벼락은 그를 응원하는 60m 길이의 벽화거리가 조성돼 핫 플레이스가 됐습니다. 안타깝게도 서문시장 4지구는 1975년에 이어 2016년에 또 화마에 당해 상인들이 9년째 속앓이 중입니다. 돌아보면 오늘의 대구를 위해 밑거름이 됐던 서문시장. 해방 이후 10여 차례 화재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섰 듯 이젠 시민들이, 대구시가 따듯한 관심을 가질때입니다.
2025-11-21 05:30:00
[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53> 1974년 통일벼 추곡 수매
1974년 11월 15일 경북 금릉군(현 김천시) 어모면 추곡 수매장. 가로수도 잎을 떨군 늦가을, 농민들은 농협창고(현 어모로 799) 앞 길가에 아침부터 수북이 벼 가마니를 쌓았습니다. 태풍을 용케도 견뎌 여문 벼를 낫으로 거둬 탈곡하고, 가을 햇살에 바짝 말려 이제야 한몫 보는 추곡 수매. 가마니 저울질은 문제 없을까? 등급은 잘 나올까? 농민들은 기대 반 걱정 반 속이 탑니다. 올해도 수매량의 90% 이상은 통일벼. 월 초부터 시작된 김천시와 금릉군(현 김천시 통합) 벼 수매에서 1등품은 고작 0.6%. 그나마 괜찮다는 2등품은 겨우 32.1%, 헛농사라는 3등품은 무려 64.2%. "통일벼는 적어도 2등품은 받아야 남는데…." 등급을 후하게 쳐 주라는 정부 방침에도 검사원의 방망이는 짜기만 해 수매장마다 입씨름이 잦았습니다. 그럴만 했습니다. 1972년부터 정부는 통일벼를 적극 장려했습니다. 통일벼는 식량증산의 역사적 사명으로 태어난 다수확 품종. 일반벼 보다 소출이 30%는 더 나온다고 농민들은 너도나도 통일벼를 심었습니다. 하지만 보급 첫해는 헛농사. 저온 피해로 쭉정이가 수두룩했습니다. 수확이 거의 없거나 80% 이상 감수된 농가도 많았습니다. 연구 끝에 정부는 농민들을 안심 시킬 대책을 내놨습니다. 이른바 시한영농. 모내기를 2주 앞당기면 저온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비닐로 모판을 덮는 보온 못자리가 등장하고, 5월 하순까지는 통일벼 모내기를 끝내자는 시한작전이 도입됐습니다. 작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김천 삼락동 청년들은 4월 20일 보온 못자리, 5월 30일 모내기, 10월 10일 수확으로 경북 새마을경진대회 통일벼 다수확 부문에서 1등을 먹었습니다. 〈strong〉(매일신문 1972년 11월 21일~1974년 11월 19일 자)〈/strong〉 1976년 들어서는 통일벼 단점을 개량한 '유신','밀양21호·23호' 등 신품종이 잇따라 보급됐습니다. 그 결과 1977년 벼 농사는 그야말로 대 풍년. 쌀 생산량 3천만석을 돌파(1974년)한지 3년만에 4천만석을 찍었습니다. 통일계 벼 보급 전 10a(1000㎡·300평)당 340㎏이던 쌀 생산량이 494㎏으로, 1975년 일본이 세운 세계 기록 447㎏도 갈아 치웠습니다. 쌀 4천만석 이면 주곡 자급율 100%. 해방 후 줄곧 쌀이 모자라 이웃나라에서 사다 먹었는데 1977년 11월엔 사상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 10만톤을 수출까지 했습니다. '녹색혁명'의 일등공신은 단연 '통일벼'. 그러나 숨은 주인공은 따로 있었습니다. 사실 통일벼는 '다수확' 빼고는 문제가 더 많았습니다. 맛은 말 그대로 '밥맛'. 일반미(아키바레)에 비할 바 못돼 '보리밥 맛이 통일쌀 보다 낫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또 볏짚은 너무 짧아 농한기 가마니짜기 부업도 못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병해충에 취약해 1978년부터는 벼 도열병으로 3년 내리 흉년. 특히 1980년엔 역대급 냉해까지 겹쳐 전국 쌀 수확량이 32%나 급감해 농민들을 빚더미로 내몰았습니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통일벼를 지켰습니다. 정부 시책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식량증산은 곧 전쟁. 들판은 총성 없는 전쟁터. 농민들은 통일계 볍씨로 전장을 누볐습니다. 잊을만하면 찾아드는 풍수해, 뛰는 인건비, 하루가 다른 농자재 값…. 정부는 이중곡가제로 농민들을 달랬습니다. '녹색혁명'의 진짜 주역은 군말 없이 들판을 지킨 농민들이었습니다. 2024년 10a(300평)당 벼농사 총수입은 115만3000원. 이것저것 빼고나면 순수익은 겨우 27만1000원(통계청 자료). 돈만 좇자면 이제 벼농사는 해서는 안될 일. 그렇다고 벼논을 놀릴 수는 더더욱 없는 일. 예나 지금이나 농민들의 이런 속내를 누가 알아줄까요?
2025-11-07 05:30:00
[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52>1973년 제155호분 천마총 발굴
1973년 7월 26일 경주 황남동 미추왕릉지구 제155호분(천마총) 발굴 현장. 오늘은 피장자의 머리맡 부분을 발굴하는 날. 지난 13일 바로 옆 80~90cm 떨어진 곳에서 금관을 장식하는 새 날개 모양의 금제 관식(冠飾·꾸미개)이 나온 터라 이제 곧 금관이 나오리란 기대감에 하루하루가 흥분과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날 늦은 오후, 검붉은 흙더미에서 금빛이 발하더니 마침내 금관 끝부분 출(出)자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기대가 그대로 적중한 순간. 4월 6일 발굴 착수 3개월여 만이었습니다. 조사단은 이 역사적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실측해 도면에 옮겼습니다. 금관은 내관과 외관이 분리된 채 발견됐습니다. 외관은 관대 위로 3개의 출자형 장식과 2개의 사슴뿔형 장식이 서로 포개진 채 나왔습니다. 장식에는 금판으로 세공한 반짝이, 영락(瓔珞)을 무수히 달고 곳곳에 금실로 반달 모양의 구슬, 곡옥(曲玉)을 매달았습니다. 지금껏 발굴된 신라 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했습니다. 1차 수습을 마치고 무덤에서 금관을 들어 올리자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조사단은 두려움에 금관을 내려놓고 급히 사무실로 피했습니다. 당시 경주에는 가뭄이 극심해 왕릉을 파는 바람에 그렇다는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여태 비 한 방울 없었는데 금관을 수습하는 날 폭우라니,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금관 출토 한 달여 만인 8월 23일, 이번에는 부장품 수장궤에서 믿기지 않는 천마도가 나왔습니다. 수습된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백화수피·白樺樹皮)을 누벼 만든 말다래에 그린 2점(한 쌍)과 대나무를 얇게 깎아 엮고 그 위에 금동판을 입힌 말다래에 그린 1점 등 모두 3점. 금동판 말다래는 수장궤 윗부분에 노출된 탓에 썩고 삭아 그림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 아래로 겹쳐진 백화수피 말다래 중 아랫장을 들어내는 순간 조사단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선명한 극채색으로 힘차게 하늘을 나는 천마. "세상에 !…." 이런 물건이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신라 천년을 통틀어 단 한 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1천5백년 전 채색화 천마도. "저건 그때 나오면 안 되는 게 나온 거야" 훗날, 발굴을 지휘했던 김정기 조사단장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1971년 청와대는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세웠습니다. 1970년 준공한 서울~부산간 경부고속도로가 경주로 휘어진 것도 이 때문. 155호분 발굴은 그 첫삽이었습니다. 제일 큰 98호분(황남대총) 발굴을 위해 연습으로 판 이 무덤에서 유물이 1만 1천526점이나 쏟아졌습니다. 천마도가 나온 뒤부터 일제가 붙인 155호분은 천마총으로 불렀습니다. 피장자가 누군지 몰라 릉(陵)이 아닌 총(塚)이 됐습니다. 〈strong〉(매일신문 1973년 7월 17일~ 8월 25일 자)〈/strong〉 지금까지 세계에서 발견된 금관은 총 20개. 그 중에도 순금 금관은 13개. 이 중 우리나에에만 7개. 이 가운데 6개가 신라 땅, 경주에서 나왔습니다. 학자들은 이 금관 모두 4세기 중반 이후 신라 마립간(麻立干)시대 것으로 추정합니다. 징기스칸의 칸(干)처럼 마립간은 간(왕) 중에도 으뜸인 왕중의 왕. 신라 금관은 최고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경주는 이스탄불, 교토(京都)와 어깨를 맞대는 세계 3대 천년고도(千年古都). 금관, 천마도, 불국사,석굴암, 첨성대 등 크기는 작아도 알고 보면 모두가 놀라는 세계유산이 수두룩합니다.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10월 31일~11월 1일)가 경주에서 열립니다. 금세기 최고 권력자들이 경주를 찾습니다. 때를 맞춰 신라 금관 6개가 처음으로 경주 신라금관특별전(10월 28일~12월 14일)에서 한자리에 모입니다. 바야흐로 경주의 시간. 신라의 지혜, K-컬처 진수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입니다. 준비 되셨습니까?
2025-10-2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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