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통문화파수꾼의 신명과 보람

영천의 지역사를 발굴하고 보듬는 외길을 걸어온 향토사가 안재진씨(54)가에세이집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외다}를 도서출판 대일에서 출간, 화제를 낳고 있다.성균관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한때 서울에서 기자생활을 하다가 질곡의시대적 상황에 환멸을 느껴 일찍이 고향으로 되돌아와 농사에 전념하며 영천문화원 설립(68년)에 참여한 이래 전통문화의 파수꾼으로 신명을 바쳐왔던 저자의 휴매니티가 묻어나는 수필 53편으로 꾸며졌다.

[농경지 정리탓에 아득한 꿈이 배어있던 청못 얘기들이 육중한 중기계에 깔려 죽어가던 70년대, 제법 질펀하게 자리잡은 아랫마을 당나무 터가 깎일대로깎여 손바닥만하게 줄어들고 그곳으로 가는 길마저 없어져버린 80년대,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푸근하던 개봉산을 까뭉개어 공업단지를 만드는 바람에목동골도 때밭도 모두가 없어지고 칼날처럼 번쩍이는 공장만 들어서게 된 90년대를 살아오면서 보고 들은 것을 느낀대로 적은 것 뿐입니다]{딸아이의 출근 전날}이라는 글에는 교사를 한갓 직업인이 아니라 영혼을 관리하는 순교자로 보는 엄정함이 깃들어있다. 출근날 딸은 새로운 지평에 뛰어드는 출필곡의 뜻으로, 아버지는 선생님께 드리는 존경의 표시로 맞절을 했다.그는 선생은 언행이나 행위에 한치 부끄러움이 없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고고하고 외로우면서도 기쁨을 느껴야 하는 무한의 봉사와 희생이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기자를 했던 안목으로 동구권과 아시아 여러나라를 여행한 소감을 담은 {오스트리아는 작은 거인} {자연의 나라, 말레이시아} {모자이크의 나라, 싱가포르}등과 세상사를 보는 진솔함이 미문에 살아나는 {가자, 저 봄의 광장으로...}{녹슨 염불소리} {솔밭 노인의 죽음}등으로 짜여져있다.

안씨는 영천국학학원(83년)을 설립하여 민초들의 삶에 향기를 불어넣는 한편영천 청제비등을 국가지정문화재로 보존했고, 지방의 내방가사를 총체적으로정리한 {규방가사집}, 지역사연구집 혹은 고문번역집인 {국역경재실기} {해소} {조양각시문집번역}등도 출간했으며, 90년에는 첫 수필집 {고전 한 줄로오늘을 생각한다}를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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