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로로 페인트통의 물을 퍼낸다. 물이 미지근하다. 낮 동안 햇볕을 받은 탓이다. 조로의 물을 옥상 화단에 준다. 고추와 상추, 토마토가 잎을 늘이고 있다. 낮동안 햇볕이 따가웠다. 햇볕을 너무 많이 쬐었다. 지쳐있다. -물은해거름에 주는게 좋지. 하루나 이틀 정도 묵힌 물로. 그럼 낮동안 공기속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흠뻑 취해 몽롱해진 식물이 물을 먹으면 생기를 얻어. 늘어진잎이 청청하게 살아나지. 밤 사이에 부쩍 성장하게 돼.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할머니와 함께 텃밭을 가꾸었다. 엄마는 농사 일을 싫어했다.나와 시애가 할머니와 아버지를 도왔다. 고추, 상추, 토마토는 이제 뿌리를 튼튼히 내렸다. 고추와 토마토는 줄기가 꼿꼿하다. 상추는 잎을 넓게 펼친다. 조로의 물줄기가 채소 잎과 흙을 적신다. 화단은 푸르름으로 가득하다."난 갯가 놈이라 어물전에 가면 고향생각이 나. 넌 산골 놈이라 농사를 잘짓는군. 씨밭이 다르니 넌 옥상에다 채소도 키우구. 근데 그걸 먹을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여길 떠날텐데"쌍침형이 말한다. 쌍침형은 목발을 짚고 있다. 형님똥 오줌, 내똥 오줌이 좋은 거름이지요. 나는 그 말을 하고 싶다.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똥이란 말을 하기가 부끄럽다. 채소 모종, 병아리, 병아리모이, 조로는 그날 사왔다.노경주를 만난 날 저녁이었다. 겨우 한군데 그런걸 파는 노점이 있었다. 그날도 나는 업소에 가지 못했다. 순옥이를 만날수 없었다.
쌍침형이 목발을 옮긴다. 걸음 연습이다. 쌍침형은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한다. 주로 걷기 운동이다. 아령으로 팔힘도 올린다. 쌍침형이 옥상 저쪽으로 걸어간다. 오른쪽 다리는 기브스를 떼었다. 그쪽 다리는 아직 힘이 없다. 목발이다리구실을 한다. 목발이 옥상바닥을 쿵쿵 올린다. 병아리들이 놀란다. 삐약삐약 운다. 네마리다. 헌 새장에 갇혀 있다. 세마리는 사온 뒤 곧 죽었다. 네마리는 제법 컸다. 노란 털이 갈색 털로 변해간다. 세마리는 튼튼하다. 한마리는유독 몸집이 크다. 한마리가 신통찮다. 늘 비실거린다. 자주 졸고 있다. 몸집도 작다. -이제 네마리만 남았군. 저 큰놈이 형님, 비실거리는 저놈이 마두로군. 마두, 잘 키워. 비실거리는 놈을 잘 돌보라구. 저놈이 바로 너니깐. 기요가 말했다. 좁쌀, 조를 주면 세놈이 먼저 달려든다. 한놈은 뒷전에서 어정거린다. 발에 채여 넘어지기도 한다. 세놈이 실컷 먹고 물러난다. 그제서야 한놈이남은 걸 쪼아 먹는다. 그놈이 안쓰럽다. 나는 그놈이 아니다. 나는 병아리가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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