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선밑그림 수정 불가피

한보사태는 지역정치권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한보사태 초창기엔 '무풍지대'로까지 불렸던 지역 정치권은 신한국당 지역민주계의 중진급으로 국회재경위원장인 황병태(黃秉泰.경북 문경-예천)의원과 국민회의 경북도지부장이자 김대중(金大中)총재의 최측근 인사인 권노갑(權魯甲.경북 안동을)의원등이 연루돼 구속수감되면서 급격히 한보 돌풍의 중심부에 진입케 됐다.황의원의 경우엔 신한국당이 연말 대선과 관련,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 경북지역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던 인물. 본인 또한 아직까지는 민정계 주류인 지역 신한국당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공을 들여 왔었다. 이같은 점들은 그의 구속에 따라신한국당 지도부가 대선과 관련,이 지역에서 그려둔 기본 포석에 상당부분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역 국민회의 역시 마찬가지다. 권의원의 구속에 따라 당장 2월중 김총재와 함께 권의원 등이참석한 가운데 대구수성갑 등 3개지역 지구당 창당대회를 성대히 개최,대선을 겨냥한 교두보 마련에 나서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자민련의 경우 검찰수사가 정리단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온전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다.그러나 한보사태에 따른 지역 정치권의 손익을 따지는 것은 그다지 유용성을 갖는 일이 못될 듯하다. 한보사태에 여야 모두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거듭 확인된'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라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에 어느당도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찰의 수사가 결국 몸체가 아닌 '깃털'만을 건드리는 선에서 마무리단계에 진입함에따라 한보사태 초반 연루자로 60~70명,많게는 1백명선까지 거론되면서 예견돼 온 '정치판 물갈이 및 재편'이라는 거대 도식이 의미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도 유용성을 떨어뜨리게하는 대목이다. 만약 이같은 상황이 벌어질 경우 가장 역동적인 움직임을 나타낼 곳으로 지역정치권이 지목돼 온 참이었다.

여기에다 이렇다 할 대선 간판주자를 내놓고 있지 못한 지역정치권의 무심(無心)함도 가세된 듯하다. 지역 정치권의 침묵도 이에 연유한듯 싶다. 그러나 이같은 점에도 불구하고 각 정파마다 자신들의 입지를 되돌아 보며 한보 파장에 따른 의미반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신한국당내 지역 민정계 인사들은 민주계 인사들이 자기 계파의 한보 집중연루등에 따라 충격과허탈감을 표하는 가운데 '싸늘한 냉소와 계산'에 몰두하고 있다. 민정계 한 인사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TK인사들이 집중 단죄되더니 민주계가 좌지우지해온 PK정권이라고 나을 것이 뭐있느냐"며 "오히려 우리는 경제라도 살려 놓고 정권이 끝난 후 보복당하듯이 이루어진 일이지만 이 정권은 경제도 죽인데다 권력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실세들이 마구 잡혀가는 꼴"이라고 비아냥댄뒤 "결국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민정계 일반의 분위기를 전했다.

한보사태로 민주계 대선주자의 몰락은 기정사실인 만큼 사실상 지역 민정계의 대부격인 김윤환(金潤煥)고문의 행보를 주시하겠다는 뜻도 비췄다.

반면 한 민주계 인사는 스스로의 위기를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위기상황이 오히려 민주계를 단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민주계 출신인 박달출(朴達出)경북도지부장은 "우리당은 모두 신한국계"라고 전제,"최근 5일동안 동해안 7개지역을 돌면서 여론을 보니 민주계를특히 나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더라"고 자위했다.

지역 자민련은 한보사태를 내각제 고창의 호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박철언(朴哲彦)부총재는 "한보사태는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함을 다시 상기시킨 사건"이라며 1인중심 대통령제의 문제점을지적한 뒤 내각제를 통해 3김시대를 종식시키고 인물교체,정권교체를 달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높이고 있다. 〈裵洪珞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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