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자구요" 토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치통에도 쾌감은 있는 법이라고 나는 대답하겠다. 나는 한 달 동안이나 계속해서 치통에 시달린 일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도 쾌감이 있다는 걸 확실히 알고 있다. 물론 그의 경우엔 말없이 화만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끙끙 신음 소리를 내게 마련인데, 이 신음 소리는정직한 것이 못된다. 그것은 심술궂은 데가 있는 신음 소리이며, 바로 그 심술궂음 속에 뭐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로 이 신음 속에 괴로워하는 자의 쾌감이 표현되는 것이다. 만약에 쾌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신음하지 않을 것이다'
글쎄 주인공의 이 말이 어느만큼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픔에 대응하는 방식은 여럿 있을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어떤 결과는 삶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통한 약효에 굴욕감이…
그래서 나는 치통 또는 두통따위에 아주 신중하게 대처한다. 금방 진통제를 먹거나 병원을 찾거나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물론 쾌감을 느끼려는 것도 그것을 신음으로 표현하려는 것도아니다. 나를 휘청거리게 하는 이 아픔에서 저 한 알약의 힘으로 빠져나온다는 것이 정녕 내키지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꼭 내몸이 무슨 기계나 고깃덩어리라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것 같아 싫은 것이다.
물론 이런 버팀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앙다물며 참아보다 별 수 없이 투항하듯 알약과 물컵을 집어들고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그때마다 신통한 약효에 대해 내가 느끼게 되는정서는 언제나 경이로움이 아니라 굴욕감이다.
나는 몸의 아픔뿐 아니라 정신의 고통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로 임한다. 나를 몹시 힘들게 하는것들 가령, 숨막히는 권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고독, 두려움, 적의 찬 낯선 눈길,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타인의 숨결, 이런 것들이 주는 긴장, 갈등, 불편함등에 대해서도 나는 두통이나치통에서 만큼이나 다부지게 맞서려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나는 그저 드물게 성공할 뿐이다. 때로 참아내려다가 탈진하기도 하고 버티어내려다 제풀에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견디어내려는 노력이나 고통이 결코 헛되기만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역·저항도 함께 배워야
아픔만큼 성숙한다고? 아니다. 모든 아픔이 우리를 성숙시키는 것은 아니다. 술, 마약, 마취제등으로 도피해버린 고통은 삶을 황폐화시키는 한갓된 소모전에 지나지 않는다. 버티어낸 아픔, 돌파해낸 고통 그리고 치러낸 번뇌만이 우리를 위로, 더 높은 경지로 밀어올린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충성하고 사랑하는 것뿐 아니라 반역하고 저항하는 것도 함께 배우라고말한다. 저 낯선 경험, 불편한 심기, 힘든 상황을 버티어 내고 견디어내며 참아내려 애쓰라고 다그치는 것이다. 그 아픔들을 무슨 환상의 미약(媚藥)같은 것으로 재빨리 털어버린 채 저 화평한질서, 안정된 일상으로 후딱 돌아가서는 사르트르가 '구토'했던 '성실한 납세자' '근엄한 부르주아'로 주저앉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우리는 백치처럼 길들여진 가축떼거리가 되는 길을피할 수 없다.
성숙과 지혜는 나이 위에 절로 쌓여가는 훈장같은 것이 아니다. 아픔을 참아내고 긴장을 버티어내며 두려움을 견디려 애쓰자.
〈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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