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색깔없는 공모전 내실이 없다

국내에 공모전 제도가 도입된 것은 일제치하 '선전(鮮展)'이 열린 1922년. 이후 70여년간 공모전은 적잖은 상금과 명예로 연간 7천여명으로 추산되는 미대 및 관련학과 졸업생의 인기를 업고 우후죽순으로 증가, '범람시대'를 맞고 있다.

전국에서 연간 개최되는 각종 공모전은 모두 1백20여개. 지난 89년의 60여개에 비하면 8년만에무려 배나 늘었다.

대구·경북지역도 올해 신설된 '달구벌 전국사진공모전'을 비롯, 미술·서예·사진·건축분야에서20개 남짓한 공모전이 해마다 치러지고 있으나 대부분 다른 대전과 차별화되지않은 채 답보상태에 빠져 전면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지난주 심사를 마친 제17회 대구미술대전과 대구공예대전의 경우 지난해부터 전국단위 공모전으로 규모를 확대했으나 여전히 대구·경북에 치중된 출품작 지역별 분포에서 보듯 확대전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미술계 안팎의 중론. 대상 상금 1천만원으로 지역 공모전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구미전은 올해 출품작 3백27점중 대구·경북을 제외한 타지역 작품이 41점, 대구공예대전도 출품작 2백89점중 단지 34점에 불과하다.

출품부문도 상투적이어서 8개 부문으로 치러진 경북미술대전의 경우 최근 2년간 건축부문 출품작이 전무, 부문 재조정이 현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미술평론가 권원순씨(계명전문대 교수)는 "공모전 대다수가 특색없는 종합공모전으로 열려 개최방식과 입상작 경향이 대동소이하다"며 "결국 취지는 거창하나 결과는 고만고만한 아류로 귀착된다"고 지적한다.

한유회, 신조미술협회등 지역 미술그룹이 여는 '한유회 공모미술대전'과 '신조미술대상전'도 화력(畵歷) 쌓기를 위한 '집안잔치' 성격이 짙다. 실제 지난달 열린 제5회 한유회전의 특·입선자 명단을 보면 전년도에 이어 단골 출품-단골 입선한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각종 공모전 입선딱지 하나없인 작가로 행세하기 힘든 화단풍토 또한 이른바 '출품용 작품 스타일'을 부추기고 이는 작품을 독창성없이 안일하게 제작케하는 역기능을 부른다. 이에따라 공모전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출품을 않고 작품활동에만 전념하는 '재야파'들도 등장하고 있다.이탈리아 유학을 거친 '재야파' 조각가 오채현씨는 "무작위로 작품을 받는 국내 공모전 출품방식은 몰개성 그 자체"라며 "주최측이 작가의 작업활동 이력과 슬라이드로 1차 심사를 한뒤 작품을접수하는 유럽의 방식이나 일정한 주제의 범위내에서 실시하는 테마 공모전 도입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고 주장한다.

목표와 수단의 전도. 작가육성은 뒷전인 채 때가 되면 '그저 그런' 수준의 작품으로 치러져야만하는 각종 공모전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金辰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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