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열린중국 닫힌 중국(2)

"남녀의 애정표현"

유교문화의 뿌리를 같이 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지만 중국인들은 우리와는 여러면에서 이질적이라는 느낌을 갖게한다.

남녀간 애정표현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공자의 후손들이니까, 도덕성이 강조되는 사회주의국가니까 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놀라움으로 어리벙벙해지기 십상이다.중국남녀들의 애정표현은 매우 직설적이고 대담하다. 남의 눈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철면피들이많다. 여자쪽이 더 적극적인 점도 이색적이다. 언젠가 미니좌석버스를 탔을때였다. 차장이 욕심을내 마구 태운 탓에 자리가 없어 허리를 구부린채 서있는데 바로 옆좌석의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20대 초반의 남녀가 서로 뺨을 맞댄채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자의 한 손은 남자의 윗도리를 헤집고 가슴께로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버스안엔 부모뻘되는 어른들이 여럿 있었지만 힐끗 쳐다보기만 했을뿐 무표정한 모습들이었다.

특히 베이징의 버스정류장은 낯두꺼운 연인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과 버스들로 붐비는 그곳에서 그들은 마치 촬영장의 배우들처럼 부둥켜 안고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거나 몸을비비대고 때로는 대담하게 입맞춤을 하기도 한다. 부끄러움을 타는 이들은 어둑한 곳에서 그렇게하지만 어떤 이들은 버스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으며, 또는 네거리에서 자랑스럽게 그런 행동을한다. 몇쌍의 남녀가 여기저기 동시다발적으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생각이 든다. 나와 친구들은 그런 장면을 볼때마다 "또 영화촬영이군"하고 빈정거렸다.그들의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애정표현은 과감하달지, 낯두껍달지 분간이 안갔다. 주변 사람들도한번 슬쩍 쳐다볼뿐 그것으로 그만이다. 혹 뭐라고 빈정거리거나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을 경우 성질 나쁜 녀석들은 눈을 부라리거나 "니 여우 삥마(너 병났냐?)"하며 시비를 걸기도해 모두들 못본척 한다.

여자들이 애정공세에 더 적극적인 점도 재미있다. 베이징에서 네댓시간 거리에 있는 허베이(河北)의 청더(承德)에 갔을때였다. 청(淸) 황제의 여름궁이었던 피서산장 안에 있는 호수를 배로 유람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고 야단법석이었다. 건너편 호후가에 한쌍의 20대 남녀가 껴안고 무아지경으로 키스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주변의 소동에 부끄러워졌는지 남자가 얼굴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남자무릎위에 앉아있던 여자가 남들의 눈이 무슨 상관이냐는듯 남자의얼굴을 자기쪽으로 잡아당기려 했다. 남자는 계속 고개를 딴데로 돌리려하고…. 또 극장에 가보면양옆이 막힌 2인용 좌석들이 있는데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애용하는 자리이다. 이들은 흔히 영화감상은 뒷전이고 내내 딴짓하느라 정신이 없다. 영화가 끝나 불이 들어오면 2인용좌석엔 저마다부둥켜안은 남녀들로 영화이상으로 재미난 장면들이 연출되기 일쑤이다.

왜일까? 유교의 본산이요, 사회주의 냄새가 아직도 강한 중국땅에서 이토록 대담하고 노골적인애정표현방식은? 의문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어떤 이는 결혼한 부부 아닌 남녀가 함께 숙박업소에 드는 것을 금지한 중국의 법때문에 성적 욕망을 해소할 장소가 없는 젊은 연인들이 그런 식으로라도 열기를 식히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연수온 한 은행원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지난해 11월의 어느날밤 친구랑 술마신후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리뚜호텔앞을 지나는데 도로변과 인도사이에 불규칙하게 늘어선 키 큰 백양나무들 사이로 한 남자가 나무뒤에 착 달라붙어 있길래 처음엔 소변보는 줄 알았다한다. 마침자신도 요의를 느껴 무심코 남자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나무밑둥 부근에서 여자가 허겁지겁 바지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고 취기가 확 달아나더라고 했다. 그는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 쌀쌀한날씨에 길에서 그렇게 했을까"라며 동정했다.

그런데 갈곳없는(?) 미혼의 청춘남녀들만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신쟝(新疆)의 위구르족 자치구를여행할때였다. 우루무치행 열차의 침대칸을 탔는데 차탁자 하나를 사이에 둔 맞은편 침대에 30대남녀 한쌍이 누워있었다. 원래 1·2층이 그들의 침대였지만 1인용 침대에서 몸을 포개다시피 껴안고는 자정이 넘도록 속살대고 있었다. 밤 10시가 되면 불을 꺼 어둑하기는 했지만 아래위로 6명이 마주 보는 침대칸에서 그런다는건 여간한 강심장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맞은편 침대에 있던 나는 시선을 어디로 둬야할지 고민하다 결국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써버렸다. 이튿날 아침, 우연히 그들과 얘기를 하다보니 아이 하나를 둔 결혼 4년된 부부였다. 수수한 인상의 남편은 "우오 흔 시환 우오더 아이런(난 내 아내를 너무 너무 좋아해요)"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지난밤 자기들때문에 이불을 뒤집어쓴 내게 미안해하는 기색은 털끝만큼도 없었다.여하튼 대중앞에서의 노골적인 애정표현은 신세대 중국남녀들에겐 하나의 시대를 앞서는 멋, 서구적인 세련미, 또는 용감한 행위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는것 같았다. 예의가 무엇인지 아는 50대이상의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요즘 젊은이들의 그런 몰염치한 행위야말로 개방이 몰고온 퇴폐적 유행"이라고 개탄했다.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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