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왕주의 철학에세이(35)

P교수에 대한 나의 오랜 사숙은 대학시절부터 시작된다. 그가 쓴 책 한권이 당시 내전공을 이어갈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를 붙잡아 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저명한 외국 대학의 교수로 있어서 나는 오직 책으로만 그를 만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그가 몇해전부터는 포항으로 영구 귀국했다. 나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마치 십대 소년처럼 가슴이 뛰었다. 포항은 여기서 지척 아닌가. 하지만 나는 선뜻 그를 만나러가지 못했다. 한편으로 만나보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 순진한 철학도가 마치첫사랑처럼 20년 넘게 품어왔던 꿈은 또 그냥 그런 상태로 묻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기때문이었다.

대학시절부터 내학문의 지침서

그런 차 이주 전쯤에 몸담고 있는 작은 모임에서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를 초청해야겠다고 담합을 했다. 물론 연락과 주선의 임무는 내가 떠맡았다. 전화를 했더니 부재중이어서 조교가 받았다. '지금 교수님은 미국, 일본, 프랑스 등지에서의 국제학술대회에 논문 발표차 나갔고 금요일에 귀국 예정'이라는 것이다.

금요일을 기다려 다시 전화했다. 이미 내 이름을 알고 있었고 내가 쓴 부끄러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며 반색하는 목소리였다. '한 열명쯤 철학이 좋아서 격식없이 모이는 모임이 있습니다. 청해서 한말씀 듣고 싶은데 응해주시겠습니까?' '그래요 언제? 다음주 토요일? 옳지 그날은 비는군.가지요' 협상은 단 3분만에 이루어졌다.

평소에 열명이 채 안차는 모임이 그날은 그 다섯배나 넘는 인원들이 몰려 장소를 바꿔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우리의 요청에 따라 최근의 사상적 관심사와 자신이 걸어온 학문의 역정을소박한 언어로 얘기해주었다.

그때 우리를 감동시켰던 것은 그가 들려준 언어들이 아니라 그것을 들려주는 모습들이었다. 시종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솔직하고 진지하게 우리의 자리로 다가서려 했던 그 태도들.공적인 모임이 끝나고 사석에 들어서자 우리에게 몇가지 물음을 던졌다. 그 중에는 이런 류의 물음도 있었다. '책을 집필할 때 자료들은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지요?' '구원의 차원을 빼고도 종교는 성립 가능할까요?'

우리는 잠시 아연했다. 솔직히 이런 질문은 국내외에 알려진 저명한 학자이며 난해하기로 악명높은 철학분야에 서른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긴 대석학이 묻기에는 너무도 천진난만한 물음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의 상식으로 그것들은 이름 석자에 명예를 거는 학문의 대가가 까마득한 후학들에게 던질말한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꼭 해야 했다면 그것은 우리 쪽에서 선생께 여쭈어야 하는 물음들이었다.

생생한 지혜를 일깨워 주는 현자

그러나 한꺼풀 더 깊게 가라앉아 생각해보니 그 물음은 차라리 그 자체로서 하나의 답이었다. '학자의 길이란 어떤 것입니까'라는 우리의 물음에 대해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준.스승은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도토리들만 남아 키재기에 열심히라고? 그렇지 않다. 눈 밝혀 찾아보면 보인다. 성성한 백발에도 아랑곳 없이 잔잔한 미소, 조용한 음성, 부드러운 손짓들로 생생한지혜를 일깨워주는 현자들이. 그렇다. 이런 현자들이 들려주는 것은 종이 나부랭이에 옮길 수 있는 서푼짜리 자식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존재자체로서 빛나는 어떤 아름다움일 것이다.〈부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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