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윤기 세상읽기-내나 카이요

고은 시인을 모시고 미국 중서부를 자동차로 여행한 적이 있다. 공사중인 도로의 표지판에 대한그의 반응이 기억에 남기로 나도 여기에다 남겨 놓으려고 한다.

미국 고속도로의 경우, 도로공사 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에 '공사중' 표시와 함께 공사구간의 길이를 표시하는 것은 우리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다른 것이 하나 있다. 구간이 시작되는지점에 일단정지 표지 크기의 찡그린 얼굴 하나가 그려져 있는 것이 다르다. 공사구간이 5마일일경우, 이 찡그린 얼굴 표지판을 보고 1마일을 더 가면 이 얼굴이 조금 펴진 표지판이 나온다. 2마일을 더 가면 더 펴진 얼굴, 3마일을 가면 거의 무표정한 얼굴, 4마일을 가면 미소짓는 얼굴, 5마일, 그러니까 공사구간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활짝 웃는 얼굴이 나온다. 그러니까 운전자는 그활짝 웃는 얼굴 표지판을 보면서, 거의 비슷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짜증스러운 공사구간을 탈출한다.

'나라가 커서 문화가 퉁명스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놀라워. 보게, 화가 치밀어 오를만큼 곰상스럽지 않은가'

이것이 그 표지판을 본 고은 시인의 반응이다.

선진국 얘기하면서 우리도 좀 닮아야 하지 않겠느냐던 목소리들이 쑥 들어갔다. 외화 쓴 책임들물을까봐 그러는지 이제는 아무도 앞서 나아가는 나라 얘기를 않으려고 한다. 옛날 이야기만 무성할 뿐인데, 이래 가지고 앞으로 어찌 나아가려는지. 여론의 향방이 죽 끓는 듯하다.5년만에 미국에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서울에서 대구 가는 새마을 열차표를 끊었다. 그런데 개찰구를 보니 울산행이다. 마땅히 부산행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울산행이다. 그래서 대합실에 엉쩡거리고 서 있는 경찰관에게, 울산행 타도 대구에 갈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울산이 막강한 공업도시가 된 것을 모르고 있었던 탓이다. 그 경찰관이 반문했다.

'울산행이 대구 가지, 그럼 대구행이 울산 가요?'

되면 된다. 안되면 안 된다 하면 될 것을, 어린 경찰관이 머리 허연나에게 이랬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뒤틀린 심사가 수사(修辭)에 묻어난 것이겠다 싶은데도 괘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때려 줬으면서 성묘가는 길인데…'

아내가 내 팔을 끌면서 이렇게 속삭이지 않았더라며, 너 뭐라고 했어, 하고 대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퉁명스러운지. 온 나라 사람들이 증오의 악순환은 돌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을 수없었다.

대구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 타야 했다. 버스 터미널 가는 시내버스를 타야했다. 몇번을 타야 좋을지 몰라 아내가 역무원에게 물었다. 역무원이 뭐라고 대답을 했지만 아내는 알아들을 수 없노라고 했다. 내가 그 역무원에서 다시 물었다. 역무원은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만 내뱉었다.'내나 카이요?'

'지금 전에 가르쳐 드리지 않았어요'라는 뜻을 지닌 이 정겨운 대구 사투리가 그 당시에는 어쩌면 그렇게 퉁명스럽게 들리던지. 버스가 또 한 차례 행패를 부린다. 다음 신호에 네거리 건널형편이 되지 않자,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선으로 돌진한 다음, 신호대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신호바뀌자 마자 부리나케 다른 차를 앞질러 네거리를 건너는 것이다. 말하자면 차선 도둑질이다. 기어이 한 마디 했다가 버스 운전사의 지청구를 먹는다. 퉁명스럽기가 대침 맞은 바위 같다.'…그래가 우앴다는기요?'

'어릴 적 떠난 고향 늙어서 돌아오니/사투리는 그대로인데 내 수염만 허얘졌네/어린 것들 날보고 낯설어 하다가/깔깔대며 묻기를, 어디에서 오셨소(少小離家老大回, 鄕音無改?毛衰,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당시인(唐詩人) 하지장(賀知章)의 회향시(回鄕詩)를 떠올린다. 내가 강퍅해졌는가, 내 고향이 강퍅해졌는가? 이 무신경한 퉁명스러움의 악순환을 어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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