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비틀거리는 가정교육

우리나라엔 국민의 수만큼이나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있다고 한다.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높은 교육열 탓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이제는 교육문제가 모든사회문제의 온상이라는 점을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간다고 했던가. 다른 문제엔 가만있던 사람들도 교육소리만 들으면 핏대를 세우고 목청을돋우는 것을 보면, 교육부 장관도 일 하기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준전문가들에게 어디 웬만한 정책이 통하겠는가? 교육정책에 관한 한 새로운 것에는 '회의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설익은 것은 아예 외면하는 습성이 우리 국민들에게는 제2의천성처럼 굳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히 굳어져버린 것은 죽은 시체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틀에 박힌 경직된 사고는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과 제도의 변화를 용납하지 않는다.말만 들어보면 그보다 더 비판적일 수 없는 국민들이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교육제도에 타성처럼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우리는 혹시 남앞에서는 촌지의 폐해를 외치면서도 남이 보지 않을 때는 촌지를 들고 습관처럼 선생님께 가지 않는가? 우리는 혹시한 손으로는 사교육비의 과다지출을 꼬집으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과외선생을 끌어들이고 있지는 않는가? 이러한 희망섞인 '혹시'가 '역시 그렇다'는 절망적인 사실의 확인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아마 이런 말에도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혹시 아이들의 교육에 온갖관심과 열성을 기울인다고 하면서도 실은 우리의 자식들을 학교로, 거리로, 학원으로 내몰고있는 것은 아닌가?

가정은 없고 학교만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자랑하는 가정의 가치와 교육열이 한갖 허상에지나지 않는다고 폭로한다. 우리의 교육열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에서 샘솟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랑을 가꾸어갈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는데 있다. 어린 청소년들은 대부분의 생활을 주로 학교나 학원에서 보내고 있다. 학교수업이 끝날때 쯤이면 그들을 다시 학원과 독서실로 실어 나르기 위해 나타나는 괴물 같은 버스들을 바라보노라면, 온갖 교육기관이 교육열과 부모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고문 장치 같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이와 같은 교육의컨베이어 벨트에 내동댕이 치고서는 아이들에게 "돈 걱정은 하지마, 너희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라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학원과 독서실에 보낼 돈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정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자식과의 진솔한 대화는 커녕 보기도 힘들다면, 어린 청소년들은 공부라는 명목으로 가정의 바깥에서 방황하고 있는 '부모있는 고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가정이 제 역할을 다해야 교육이 바로 선다. 정신 없이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학교가 이미 '지식'교육의 기관으로 전락하였다면, 가정은 아이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심어줄 수 있는 '가치'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 우리는 과연아이들이 보고 배울만한 부모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부모의 본을 뜨려면우선 봐야 하는데, 그들은 과연 부모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는가? 만약 이 물음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아마 부모이기를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는지 또 자신을 면책하기 위하여 모든 탓을 학교로 떠넘기지는 않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어린 청소년들이 학교 공부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 생각하고 행위할 수 있도록 가정을 대화의 공간으로 되살려야 한다. 우리 어른들은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하고, 숙제를 같이 풀고,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스포츠에 관심을 기울일 줄 아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어른들이여, 아무런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바깥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의 자식들을 가정으로 불러들이자. 그들의 숨통이 터지도록 대화의 쉼터를 제공하자.이진우(계명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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