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와 함께 시작된 재즈(Jazz). 야릇하고 음울한 분위기속에서도 심금을 울려주는 독특한형식. 억눌리고 소외된 흑인들의 안식처로서의 음악. 19세기말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의 흑인, 특히 흑인과 프랑스 백인사이의 혼혈인 '크레올'인종이 처음 전파했다. 흑인음악과 유럽음악을 중심으로 각 국의 음악을 혼합시켜 주로 술집이나 캬바레에서 연주했던 장르.일반적인 음계에서 통상 제3음과 7음을 반음 내린 형태의 '블루노트'스타일과 반 박자 빠르게 연주하는 '싱코페이션'기법, 특정 화음이나 멜로디를 쓰지않고 분위기나 기분에 맞춰 연주자 전원이 하나의 느낌에 의해 연주하는 '모드 주법'이 특징. 사용되는 악기는 특유의 4박자 리듬을 맡고 있는 드럼, 베이스, 피아노가 기본. 트럼펫과 색소폰이 주로 멜로디를 담당한다.
한국에선 30~40대 일부 계층만 즐기는 '소수의 음악'. 일제시대 홍난파 등 초기 양악연주가들이 경성방성국에서 재즈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6·25이후 주로 미8군 클럽을 중심으로 '스윙재즈'가 본격 진출했다. 전쟁 이후 황폐화되고, 불우한 시대상황과 맞아떨어졌다.1958년 '잭 티가든 악단'의 내한 공연을 필두로, 60년 세계적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가, 62년 재즈 트럼페터 '루이 암스트롱'이 2주간 공연하는 등 내한공연이 줄을 이었다. 50년대엔특히 '애심' '베니 굿맨 스토리' '카사블랑카' '킬리만자로의 눈' 등 재즈영화가 보급되면서국내에서도 유행을 탔다. 이에 따라 김인배·강대관이 루이 암스트롱을 흠모해 트펌펫을, 최세진이 진 크루파처럼 드럼을 두들겼다. 또 송민영은 글렌 밀러처럼 트럼본을, 이봉조는 색소폰을 다루는 등 앞다퉈 재즈를 연주했다.
60년대 초 일본에서 활동하던 길옥윤은 미국 골든게이트 4중주단과 내한해 협연을 가지면서한층 발전한 재즈를 선보였다. 한편 이판근은 60년대부터 재즈연구에만 몰두해 '야누스 재즈 동우회'를 만들고, '밀양아리랑'을 재즈로 편곡하는 등 국내 유일의 재즈 이론가이자 작곡자로 우뚝 섰다. 그러나 60년대 중반부터 재즈는 방송의 기피, 지루함과 긴 연주시간, 팝송의 보급 등에 따라 퇴조했고, 그나마 이판근을 선두로 박성연, 정성조, 강대관, 조상국, 조정수, 신관웅 등 중견들이 맥을 이었다.
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퓨전재즈 바람이 불면서 80년대 들어 국내에서도 이를 선호하는 일부 계층이 생겨났고, 대중음악이 재즈적 분위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퓨전재즈는 기존 재즈에 전자기타와 키보드를 이용해 록리듬을 접목시킨 것.
90년대는 특히 드라마 '사랑을 그대품안에'의 차인표가 재즈바를 찾아 색소폰을 연주하는장면이 신세대들에게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색소폰주자 이정식을 비롯 김준,신관웅, 임희숙, 봄여름가을겨울, 박광현과 데이지 등과 해외파 김광민, 한상원, 정원영, 한충완, 김병찬 등이 가세, 제2의 재즈전성시대를 열었다. 지난 95년 일본에서 공부한 김범수가'애시드(Acid) 재즈'를 국내에 소개하면서 재즈의 새바람이 불고 있다. 애시드 재즈는 재즈와 펑크감각을 댄스음악, 특히 힙합에 강하게 접목시킨 것으로, '힙합재즈'로도 불리운다.그러나 스윙재즈·비밥·쿨재즈·하드밥·프리재즈·퓨전재즈·펑크재즈 등 시대별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 서구와는 달리 우리는 여전히 독창적 조류를 만들지 못한채 모방과 유행을 쫓으며 일부 매니아들만 향유하는 '비대중적 음악'에 머물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원자력 석학의 일침 "원전 매국 계약? '매국 보도'였다"
김문수 "전한길 아닌 한동훈 공천"…장동혁 "尹 접견 약속 지킬 것"
조국 '된장찌개 논란'에 "괴상한 비방…속 꼬인 사람들 얘기 대응 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