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나가고 개학준비로 분주하나 수해와 더위로 올 여름방학이 아이들에게는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을 즐겁게 하지 못한 것 중의 하나, 그것은 실속보다 형식을중시하는 '보이기 위한' 숙제하기다. 여행을 간 곳에서는 보고서를 써야 하기 때문에 유적지를 감상하기보다 관광엽서와 관광안내도를 사기에 열심이다. 또한 탐구생활에는 실험과 만들기에 심취하기보다는 현장을 담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래서 아이들의 숙제는 엄마들의숙제가 되고, 사진관은 방학 끝무렵이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기도 한다. 개학후 방학 과제물상을 받은 아이를 보고도 같이 기뻐할 수 없는 이유는 아이가 벌써 '보이기 위한' 사회에물들어가는 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슬픔때문이다.
암기식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열린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저기에 그 잔재들이 남아있다. 공부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루라도 마음껏 뛰어놀아야 하는 운동회 또한 여러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행사로 바뀐지 오래다. 운동회날 너무 질서정연하고 실수없이 자로 잰 듯한 시범들을 볼때 나는 대견스럽기보다는 그 단순동작을 연습하느라 진작 즐거워야할 운동회가 어른들을 위한 꼭두각시 놀음으로 바뀐게 아닌지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오래전 나의 학창시절, 장학사가 오신다고 하면 일주일전부터 교실 곳곳을 청소하느라 힘들었던 일부터 생각난다. 내용보다는 형식을 따지는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 어른들이 지금 자기도 모르게 탁상공론에 의지한 정책을 세우고, 무슨 사고가 나면 보고할 브리핑 자료를 만드느라 오히려 그 일의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 수해때 공무원들이 밤잠 못자며 복구에 고생했지만 한편 상부에 보고할 보고서나 통계자료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얘기는 왠지 씁쓸하다. 내용보다는 형식, 보이기 위한행사, 브리핑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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