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근안씨 초기 도피행적

'도망자 같지 않은 도망자'

세기의 도망자라는 악명까지 얻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61) 전 경감이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자택으로 숨어들기까지 초기 1년7개월간의 도피행적은 의외로 너무나 평범했다.

1일 이씨의 도피행적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강력부에 따르면 이씨가 도피생활을시작한 것은 민청련 사건의 김근태(국민회의 부총재)씨 등을 고문한 혐의로 수배된 88년 12월.

이씨는 이때부터 이듬해 1월까지 약 한달간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짐을 들지 않고 열차를 이용해 부산, 대전, 경주, 영주, 울산, 포항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이씨는 부인에게서 받은 300만원을 가지고 은둔생활에 나선 뒤 여인숙에서 주로 잠을 잤고 낮에는 인적이 뜸한 공원을 주로 택해 시간을 보냈다.

객지 생활에 지친 이씨는 이후 치안본부 대공분실팀 경감이던 84년 4월 보증금 210만원에 자신 명의로 임대, 가끔 이용해 왔던 서울 일원동 공무원 아파트로 숨어들었다.

이 아파트는 이씨가 경기도경에 근무할때 출.퇴근 거리가 가까워 옷을 갈아 입거나 잠시 쉬는 휴식공간으로 활용했던 곳으로 부인이 매월 8만원의 관리비를 내 이씨의 잠행 후에도 다른 사람이 입주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이 아파트에서 90년 1월까지 1년간 지냈다.

이때의 생활비는 89년 1월께 우연히 아파트에 들렀다가 만난 부인이 한차례에 30만∼60만원씩 수시로 준 돈으로 충당했다.

이 아파트를 거점으로 늦은 밤이나 새벽 청량리역 등으로 가 7∼10일씩 열차여행을 한 뒤 3∼4일씩 쉬고 또다시 여행길에 오르는 도피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잠복한 경찰관이 있는 지 여부 등 수사기관의 동향과 이웃주민들의 동태를 사전에 철저히 살핀 뒤 절대 안전하다고 판단할때만 아파트로 들어갔다.

이런 잠행생활을 하는 데는 과거 간첩단 사건을 수사하면서 1년여간 엿장수로 위장, 잠복생활을 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됐다.

자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점차 떨어진데다 들락거리는 도피생활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판단한 이씨는 90년 1월부터는 아예 아파트에 눌러앉았다.

밤에는 불을 꺼 집안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위장했다.

이때 부터 이씨 가족들은 은신중인 그를 위해 간간이 음식을 갖다 주었으며 둘째 며느리가 요리법을 알려주는 등 수시로 출입했다.

수사 관계자는 "이씨는 며느리 한테 요리법을 배워 스스로 '훌륭한 요리사'라고 말할 정도"라고 밝혔다.

이씨는 90년 7월 용두동 자택으로 가족들과 합류하기 전까지 이런 생활을 계속했다.

그런데도 아파트 주변을 감시했던 경찰은 집안을 제대로 수색하지도 않은 채 수박겉핥기식 동태파악으로 일관, '특이사항 없음'이란 보고만 했다.

아파트 주민들 역시 이웃에 대한 무관심 때문인지 이씨 가족들이 아파트를 들락거리는 것을 보긴 했지만 이씨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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