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7) - 아틸리아(1)

반도 국가인 이탈리아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국토의 모양새 만큼 남북간 지역감정이 극심한 나라로 손꼽혀 왔다. 한때는 남부 출신이 북부에서 주거와 취업을 제한받을 정도였다. 또 남북간 경제력 격차로 인해 더욱 심화된 지역간 반목은 국가 정체성을 위협할 수준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탈리아는 서서히 바뀌고 있다.

그 바탕에는 지방 분권화 전략을 중심으로 한 지역 균형 개발이 자리잡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남부 관광지인 나폴리. 해변을 따라 줄지어선 고급 호텔이 세계 3대 미항의 화려함을 뽐내고 있지만 도시의 뒷골목으로 조금만 다가서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

미로처럼 얽힌 길을 따라 촘촘히 늘어선 낡은 건물들. 외벽을 치장하는 타일은 커녕 페인트 자국조차 없이 벽돌들이 앙상히 드러난 주택들은 초행자의 눈을 의심케 한다. 그리고 낡은 주택에는 방 한칸에 5, 6명의 가족들이 궁색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이곳에서 10여년간 무역업을 해온 한인 교포 조년상(40)씨는 "도시 하층민들은 우리의 70년대 판잣집보다 못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도시의 뒷골목 곳곳에 이러한 집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나폴리 뒷골목의 빈곤함은 이탈리아 남부 도시 대부분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피렌체 산맥을 따라 북부로 올라가면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밀라노 등 북부 도시 대부분은 유럽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경제 발전 지역이다. 이러한 남북간 격차는 통계로 살펴보면 더욱 뚜렷해 진다. 북부와 남부의 GDP 차이는 무려 4배에 달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북부는 3만달러가 넘는 고소득 지역이지만 남부는 1만달러가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실제 유럽연합(EU)은 남부의 캄파니아.시칠리아.사르데냐주를 EU내 159개 지역 중 가장 가난한 10개 지역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남부의 청년실업률은 무려 60% 수준. 그러나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가 있는 베네토 등 북부의 두 지역은 EU에서 가장 부유한 10개 지역에 포함된다.

이탈리아 남부 포메치아 시의 전 시장인 안젤로 카프리오티(42)씨는 "이탈리아는 지역간 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며 이 탓에 북부지역에서 분리독립 주장이 나올 정도"라며 "중앙정부의 지난 50년간 주요 정책도 남북 지역간 경제 격차 해소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부의 세금을 주 재원으로 삼아 기금을 조성, 낙후된 남부 지역 개발에 나선 중앙정부의 정책은 별다른 성과를 나타내지 못한채 엄청난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 카프리오티씨는 "기금이 중앙 관료들에 의해 집행되면서 지역 산업 개발을 위한 투자자금이 아니라 비효율적인 배분 방식인 연줄이나 특정 지역의 특혜성 자금으로 변질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남부 GDP 4배 차이

이러한 반성에서 이탈리아 정부는 90년대 이후 지역개발의 주체를 중앙이 아니라 지방정부로 전환하게 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행정.재정 등의 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했다.

이후 남부 지역 100여 곳이 산업특별지역으로 지정되고 지방정부의 지역 산업 특성화 전략과 본격적인 외자유치 노력이 이어지면서 남부 개발은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97년 일본 혼다가 아부로소주에, 독일의 보쉬사가 바리 지역에, 미국 톰슨사가 시칠리아주 카타냐에 투자하는 등 외국투자가 줄을 이은 것. 이에 따라 99년을 기점으로 남부 경제는 10여년만에 처음으로 성장세로 돌아섰으며 생산율은 북부 지역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또 해결책이 보이지 않던 실업률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남부 개발에 있어 산업기반 시설과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면서도 개입은 삼갔다.

*골깊은 지역감정도 풀려

이처럼 남부의 발전이 가속화 하면서 골 깊은 지역감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밀라노 시의회 의장인 기오바니 마라(43)씨는 "지역 균형 발전이 가속화하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해 경제성장을 이뤘다"며 "북부에 대해 적개심을 나타내온 남부와 자신들의 세금을 빼앗아 간다며 불만을 표했던 북부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많이 약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EU에 의해 추진되는 분권에 바탕을 둔 지역균형 전략이 진전돼 아직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남부 발전이 앞당겨질 경우 지역 감정도 결국은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이탈리아는 21세기의 국가운영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는 지방 분권 추진을 통한 지역 개발로 뿌리깊은 지역감정의 치유책을 찾아내고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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