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의 구심점은 지방언론'.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월초 춘천에서 열린 '지방분권 토론회' 자리에서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방화 시대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 언론 활성화가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그 이유로 노 대통령은 "지방이 발전하기 위한 전략과 기획의 구심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지방언론과 대학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선진국 대부분이 '여론의 다원화'와 '지방분권'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방언론 육성책을 시행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수도권 집중국가인 프랑스의 경우 매년 국가 전체 인쇄매체 매출액의 10%를 지방언론 보조금으로 지원해오고 있으며 광고는 물론 각종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또 독일과 오스트리아, 노르웨이와 이탈리아 등 유럽 대다수 국가들이 지방언론 또는 약소 언론 지원을 위한 법을 제정하고 이를 근거로 직·간접적인 정부 지원을 계속 해오고 있다.
이들 국가의 지원책은 보조금 지급외에도 △인쇄에 대한 지원과 부가세 면제 △항공료나 육상운송료 요금 감면 △정부광고 우선 배정 △언론인 교육 프로그램 제공 △ 통신사 지원 및 금융대출 우대 등 다양하다.
대구가톨릭대 최경진(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선진국이 지방언론에 대해 이처럼 지원에 나서는 것은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며 "즉 지방분권이 국가 발전의 중심 과제고 이를 위해서는 지방 언론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선진국은 정부가 현실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며 "지방분권이 시급한 현안인 우리도 이들의 교훈을 배워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71%, 독일 95%, 미국 92% 등 외국에서 지방지가 신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이유는 이러한 국가적 노력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전국지의 시장 장악력이 높은 일본의 경우도 전국지 비중이 52%에 불과하다.
서울 소재 거대 신문 3사가 전체 신문 시장의 75%를 점유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과도한 정보 독점과 여론 편중의 현주소일 뿐 아니라 '수도권 집중'의 심각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셈이다.
'지방언론 위기'에 대해 장호순 교수(순천향대 신방과)는 "국민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일본 식민시대 언론 정책과 중앙의 권력이 모든 지방을 원격통제하는 중앙집권적 정치체제가 그대로 유지되어온 탓"이라고 지적한다.
장 교수는 "지역언론의 부실은 지역사회내의 정보교류나 여론 수렴 수단의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사회적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국가적으로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지방분권이 21세기 국가 발전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뒤늦게나마 지방언론 활성화에 대한 주장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해 이후 지방분권국민운동본부를 비롯 기자협회와 언론재단 등 언론단체, 언론학계 등 곳곳에서 '지방언론 육성' 방안을 내놓고 있으며 국회 차원에서도 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에 나설 계획으로 있다.
현재까지 거론된 지방언론 육성책의 주요 내용은 △지방언론지원법 제정 △지방언론 발전기금 설치 △거대 신문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한 신문고시 강화 △지역 방송 활성화를 위한 지역방송위원회 설치 △정부 광고 및 대기업 광고 지방언론 배정 등이다.
또 노 대통령이 지방언론 육성방안을 밝힌 직후인 지난달 2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서울 소재 거대 신문의 고가 경품을 앞세운 불공정한 신문 판매 행위를 막기 위해 강력한 단속에 직접 나서기로 하는 등 정부 차원의 노력도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계 안팎에서는 지원에 앞서 지원 대상 지방 언론의 선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사이비성 신문사가 난립해 있는 상황에서 무턱댄 지원은 곧 부실 언론의 양성이라는 또다른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기자협회와 언론재단의 공동주최로 열린 '지방분권과 지방언론활성화' 세미나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쏟아졌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창룡 인제대 교수는 "지방언론 지원에 대한 국민적 당위성과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원 대상에 대한 선별 기준 마련이 시급한 과제"라며 "잘못된 지원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지역 발전 기여도와 유가 구독부수, 기자채용과 광고수주의 적법성 여부를 포함한 경영투명성, 윤리강령 준수 등의 지원 대상 기준을 제시했다.
언론재단의 김영욱 연구위원도 "부실 지방 신문사 상당수가 공사 수주 등의 이해관계를 노린 건설사 사주에 의해 발행되는 현실을 감안할때 지원에 앞서 불건전 언론에 대한 정화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결론이 도출된 것은 아니지만 향후 지방언론 활성화 움직임이 구체화 될수록 부실 지방언론에 대한 자정 목소리 또한 높아질 전망이다.
'지방분권'이 국가 경쟁력으로 대변되는 21세기. 경제와 정치, 문화의 수도권 집중으로 껍데기만 남은 지방의 현실처럼 위기를 맞은 지방언론의 활성화는 국가 경쟁력을 가늠하는 또다른 잣대가 될 것이다.
이재협 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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