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찻잔 속의 갈등

찻잔 속의 태풍이 우리 사회를 휘몰아치고 있다.

한 초등학교 기간제 여선생의 차 심부름 거부로 촉발된 이 사건은 급기야 교장의 자살로 이어지면서 일파만파로 커졌다.

한갓 해프닝으로 그칠 수도 있었던 일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교장의 자살 외에도, 그 찻잔 속에 서열, 성차별, 임시직의 신분 불안 등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나이 든 교장의 '수직적이고 남성 위주의 봉건적 가치관'과 젊은 여선생의 '수평적이고 양성 평등의 근대적 가치관'의 충돌이다.

나이 든 교장이 기대고 있는 봉건적 유교 가치 기준에서는 '여자고, 임시직이며, 나이가 적은 사람'이 차 심부름하는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 다수도 "그깟 차 좀 타 주지, 그걸 안 해서 사람을 죽이냐?"라는 정서로 동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 일부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렵게 얻은 교직을 그만두면서까지 진모 선생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선생'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다.

"애들 앞에서 차 심부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라는 울먹임 속에는 선생으로서의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의 절박성이 담겨있다.

진모 선생이 서모 교장의 자살을 예견 못했듯, 서모 교장도 진모 선생의 반발을 예견 못했다.

가치관의 충돌로 인한 반발이 진모 선생의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화되면서 문제가 커졌고,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한 교장은 자살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결국 교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한 여교사의 생트집과 전교조의 무리한 사과 요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치 체계의 충돌이다.

역사는 낡은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이 끊임없이 상호 갈등을 일으키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서모 교장 자살 같은 불행한 사건들이 더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죽음을 감정의 격발 장치로 이용하여 갈등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논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고인을 올바로 기리는 길이다.

죽음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산 자를 모욕함으로써 고인의 명복을 빌려 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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