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안동에서는 아버지를 아부지라 불렀다.
어릴 적 나는 아부지가 무서웠다.
안동 선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부지로부터 여자로서의 예의범절이 바르지 않다고 거의 매일 꾸중을 듣고 혼나며 자랐다.
아부지가 집에 계시면 숨소리조차 죽였고, 아부지가 행여 큰 소리를 낼까 행동 하나 하나에 조심 또 조심을 했다.
어릴 적 일이다.
퇴근 후 아부지가 냉수 한 잔을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냉수를 잔에 받쳐 오면서 나의 행동거지를 주시하고 있는 아부지의 눈길을 의식하고 조신하게 잘 해 보려다가 오히려 더 긴장해서 급기야는 물을 바닥에 쏟기 일쑤였다.
아부지는 그 때 마다 "저런, 물 한 잔도 제대로 못 떠오다니" 하면서 혀를 끌끌 차고, 나는 돌아서서 눈물을 찔끔찔끔 훔치곤 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런 아부지가 손자 손녀들이 당신에게 버릇없이 굴어도 자식 눈치 보느라 소리 한 번 지르지 않는다.
아이들을 따라 다니면서 밥을 떠 먹이는 자식을 보면서도 옛날 같으면 "밥 줄 필요 없다"고 불호령이 날 법도 하지만 끝내 감정을 감춘다.
모처럼 딸네 집에 와서도 사위가 있으면 냉수 한 잔 시키는 것도 못내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다.
그러면서도 가끔 전화로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요즈음 아이들은 아부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조차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우리 아이들만 보더라도 아버지는 친구이자 같이 놀아주는 대상이다.
휴일이면 피곤해서 쉬고 싶어도 아버지는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떠밀리듯 축구공과 농구공을 들고 월드컵 경기장으로, 신천변으로 나선다.
아버지가 집에 있으면 숨을 죽이기는커녕 아이들은 신이 나서 더 야단법석을 떤다.
남편은 아이들을 혼낼 일이 있을 때 직접 꾸짖지 못하고 그 역할을 오히려 나에게 떠맡기고 아이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인 나의 눈치를 보면서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요즈음 세상에 아버지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끼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부지가 사라지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 모양이다.
상주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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