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빚 독촉 폭력 난무 "이혼해 위자료로 빚 갚아라"

카드사, 채권추심회사는 물론 행정기관의 각종 체납금 독촉까지 '폭력'으로 느껴질 만큼 도를 넘어섰다고 해당자들은 주장했다.

원금·이자 등 1천여만원의 카드빚을 졌다는 김모(49·여·경산 삼북동)씨는 추심회사로부터 이혼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했다.

추심회사가 매일 오전 8시부터 밤 9시까지 계속해 전화를 걸어서는 "대학생인 딸을 보증 세우든가 이혼해 위자료를 받아 빚을 갚으라"고 독촉한다는 것. 김씨는 "대화 중 언성이라도 높아지면 협박성 말투로 돌변하기 일쑤여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며 "돈을 못갚은 것은 잘못이지만 법적으로 해결하는 선에서 마쳐야지 밤낮으로 전화를 걸고 가정까지 깨려는 것은 한계를 넘은 것"이라고 했다.

건강보험의 강력한 압류에 대해서는 자체 노조까지 비판하고 나섰다.

전국사회보험노조 전무환 대경본부장(40)은 "선진국에서는 사회보험료의 90%만 걷혀도 완전징수된 것으로 본다"며 "재정 악화의 주범인 병원 부당·허위 청구를 막을 제도적 장치는 마련치 않고 돈 없는 서민 체납료만 마구잡이 징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시각 때문에 노조는 이번 달부터 자체적으로 기금을 조성, 생계형 체납자들의 체납 보험료를 대납해 주는 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반면 건강보험공단 대구본부 관계자는 "체납자 사정이 딱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성실히 보험료를 내는 사람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보료가 체납되면 먼저 독촉장이 나가고 석달치가 체납되면 건보 적용이 중지되며 6개월치가 밀리면 압류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빚 독촉'은 기계화·관료화 조짐까지 드러내, 잘못 부과된 것에 대해서조차 시정은커녕 적반하장격의 마구잡이 독촉이 계속돼 관련자들이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작년 2월 울산에서 대구로 이사 온 박모(40·여·이곡동)씨는 일년 전 전화요금을 냈는데도 최근 압류 예고장이 날아와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했다.

이사하던 달 울산에서 쓴 전화의 요금 납부영수증까지 보관하고 있는데도 압류 예고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 박씨는 "항의 후 KT측이 업무 착오라고 인정한 뒤에도 압류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며 조직이 관료화·기계화된 피해가 시민들에게 돌아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모(40·대구 봉덕동)씨는 직장을 옮기느라 작년 12월 중순 퇴사, 올 1월2일 입사 등 과정을 거치면서 두 회사에서 해당 월의 건강보험료를 완납했는데도 1월분 지역보험료가 또 부과됐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1월1일이 공휴일이어서 2일부터 입사한 것인데도 보험공단은 매월 1일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1월1일 당일 하루라도 직장이 없었다면 지역보험료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것. 이씨는 매월 독촉장이 날아들고 최근에는 인상분까지 덧보태진 독촉장이 위협적인 수준의 내용까지 담겨 배달돼 왔다고 말했다.

김모(34·대구 대명동)씨는 1997년에 폐차시킨 승용차가 그 이듬해 8월 주차위반으로 적발됐다는 내용의 과태료 납부 독촉장을 작년 12월 남구청으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담당 직원은 전산 입력 착오임을 인정했지만 김씨는 이미 체납자로 몰려 봉변당한 뒤였다.

한국소비자연맹 이영옥 대구지회장은 "카드빚을 받기 위해 협박 전화를 하는 것은 분명한 위법행위이니 심할 경우 녹음해 둬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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