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영화-스릴러 물 폰 부스

알프레드 히치콕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보트만을 배경으로 '구명정'(LifeBoat.1944)을 찍었다.

단조롭기 짝이 없는 배경이지만, 삶에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모습을 서스펜스 넘치게 그렸다.

조엘 슈마허 감독의 '폰 부스'의 배경은 한 평도 안되는 공중전화 박스다.

도시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전화박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얘기가 히치콕이 봤어도 탐을 낼 만큼 기발하고, 스릴 넘친다.

뉴욕의 홍보맨 스투(콜린 패럴). 거짓과 위선으로 똘똘 뭉친 세속적인 인간이다.

우연히 공중전화 박스에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 죽음의 타깃이 된다.

"전화를 끊으면 네 목숨도 끊긴다". 더구나 자신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아내도 애인도, 그의 거짓된 행동도 모두 꿰뚫고 있다.

바로 눈앞에 한 남자가 저격되면서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된다.

오직 살길은 심리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뿐이다.

이 영화의 맛은 정체 불명의 저격수와 완전히 노출된 전화 박스 속의 사나이, 절박한 형편을 이해 못하고 "손들고 나오라"고만 외치는 경찰의 삼각관계다.

양자의 틈바구니에서 주인공의 숨통을 죄어오는 위기감이 영점 사격 타깃처럼 뚜렷하다.

시나리오를 쓴 래리 코헨은 실제 히치콕과의 점심 식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 이후 30년의 시나리오 구상기를 거쳤다.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된 전화 박스가 절체절명의 덫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이 무척 흥미롭다.

30년의 고민 끝 1주일만에 시나리오를 탈고했다.

그리고 12일만에 영화 촬영을 끝냈다.

지난 9.11 테러와 지난해 워싱턴 무차별 저격 사건을 거치며 두 번이나 개봉이 연기되기도 했다.

워싱턴 저격 사건에서는 방송사의 자료화면으로 나가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 덕일까, 지난 4월 미국에서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면서 화제를 모았다.

저예산, 초고속 촬영기록에 또 하나의 기록을 추가한 것이다.

스투 역은 멜 깁슨과 짐 캐리, 윌 스미스에게 먼저 제안됐지만 결국 콜린 패럴이 낙점됐다.

그는 전화박스 안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갖가지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뛰어난 서스펜스를 보여주지만 역시 할리우드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도식적인 권선징악이다.

"앞으로 행동 잘해, 안 그러면 알겠지"라는 저격범의 대사는 영화의 건전성에 집착하는 할리우드의 강박관념처럼 보이기도 한다.

12세 관람가. 81분.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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