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진짜 아시아 무술 배우고 싶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에는 내가 여자이고 특히 외국에서 밤 늦게 다니는 것이 무서워 자기 방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합기도를 배우면 호신술도 되고해서 합기도를 선택했다.
우리 집 근처에 그 당시 신라 합기도라는 체육관이 있었다.
리차드라는 외국인이 거기서 연습했기 때문에 나는 소개를 받았고 며칠 후에 합기도 연습을 시작했다.
나는 그때 그냥 리차드 소개 때문에 그 체육관에 가입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곳에 간것이 행운이었다.
그 체육관은 열심히 가르켰고 아마 다른 체육관에서 시작했으면 계속 안 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7년이 되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그 당시 친구들도 없고, 맛있는 식당도 모르고, 어디에서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는지도 몰랐다.
따라서 스트레스도 아주 많았다.
그런데 합기도를 취미생활로 시작한 이후 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향수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합기도 연습하는 시간이 매일 기다려졌다.
나는 호신술, 발차기, 낙법 등을 확실하게 했을 때 정말 행복했다.
실력이 향상되는 동안 나는 열심히 연습을 했으며 외국에서의 나의 어려움은 자연히 사라졌다.
96, 97년 나는 한국말을 못했지만, 나와 매일 조금씩 같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 기뻤다.
같이 연습한 학생들인 노경덕, 정광호, 김성목 등은 나의 동생 같고 관장님은 한국 친 오빠 같았다.
한국 예절 책을 읽었지만, 미국문화의 습관을 바로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관장님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예를 들어, 나는 옛날에 자주 화를 냈다.
그때 관장님은 나의 성격을 알고 있어서 "시이달은 원하는 만큼 완벽하지 못 할 때 자기 실망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는것 같다" 며 이해해 주셨다.
관장님에게 한국말을 하면 그는 나의 발음을 고쳐 주었고, 새로운 단어들도 많이 가르쳐 주셨다.
관장님은 술 마시는 법도 가르쳐주었고, 같이 불교 사원을 방문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물놀이도 처음으로 소개시켜주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관장님께 얘기를 하곤한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친구들도 많고 좋은 일자리도 있고 합기도뿐만 아니라 산악 자전거 그리고 택견 연습까지도 하고있다.
2001년에 나는 합기도 3단이 되었다.
현재 나는 우리 체육관 부사범이 됐다.
나의 마음속에 한국이라면 신라 합기도 체육관을 바로 떠올릴 만큼 합기도는 한국의 아름다운 추억거리다.
시이달( 미국·대구공업대학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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