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 영화 음질 영~

"뭐라 그랬어?", "무슨 소리야", "뭔데"….

한국영화를 보노라면 귓속말을 많이 하게된다.

대사를 잘 듣지 못해 옆 사람에게 묻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장면을 놓치거나, 김이 빠지기 일쑤다.

화제작 '살인의 추억'. 도입부의 사건현장 조사 장면. 두 사람이 연달아 논두렁에서 미끄러지자 형사 박두만(송강호)이 외친다.

"논두렁에 꿀 발라놨나". 애드리브 처럼 흘리는 소리지만, 극의 재미를 더하는 대사다.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봤지만, 이 대사만 나오면 극장 안은 술렁거렸다.

무슨 말인지 묻는통에….

현재 개봉 중인 '장화, 홍련', '튜브', '역전에 산다' 등도 마찬가지다.

간혹 자막이라도 넣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할 때도 있다.

최근 한국 영화의 품질이 향상됐지만, 가장 낙후된 것이 사운드 분야다.

목소리 연기는 고사하고, 대사 전달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큰 원인은 후반 작업이 짧다는 것이다.

크랭크 업되면 바로 개봉 일자를 잡는 것이 관례. 그나마 대부분 영상 편집에 매달리는 편이다.

'취화선'의 후반작업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영상의 비중은 컸지만, 상대적으로 사운드는 '찬밥' 신세였다"고 토로했다.

또 하나는 동시녹음의 맹점이다.

동시녹음은 현장 사운드를 담는다는 점에서 영화 기술의 발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동시 녹음은 미덕이 아니다.

할리우드에서는 대부분 후시녹음이 기준이다.

그래서 망치소리 요란한 가운데 한 쪽 세트에서는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후반작업에서 더빙하고, 현장음을 덧입히고, 음악을 붙이는 식이다.

그래서 키스 후 입이 떨어지는 소리나, 스푼이 찻잔 밑바닥을 긁는 미세한 소리까지 담아 현장감을 더한다.

그러나 한국영화에서 '동시녹음'은 아직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

서울종합촬영소 녹음팀의 김기탁(33)씨는 "촬영 프레임(화면)안에 마이크가 들어갈 수 없다면 동시녹음의 한계는 너무나 뚜렷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아무리 좋은 마이크라도 멀리서 잡는다면 녹음 상태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동시녹음을 버리고, 후시 녹음에 더빙을 고수한 작품이 있어 화제다.

곧 개봉될 한국형 SF물인 '내추럴 시티'는 100% 후시녹음을 선택했다.

'텃세' 센 동시녹음 관계자들을 설득해 제외시키고, '촬영 따로, 녹음 따로'라는 옛 방식으로 촬영하고 있다.

대신 후반 사운드 보정 작업에 비중을 두었다.

대사 전달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배우들의 대사법에 문제가 있다가 지적도 있다.

미숙한 연기자들이 대사 보다는 몸짓 연기에 비중을 두면서 효과적인 대사를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제작 전반에 걸친 사운드에 대한 인식 결여다.

근래 한국 영화 중에 사운드가 뛰어났던 것이 '구미호'(1944). 이 작품은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일본 영화계의 녹음팀이 참여했다.

제작자인 이하영(38)씨는 "한 장면 촬영에 3, 4번의 녹음이 이뤄졌다"며 "이제 한국 영화도 이같은 치밀한 사운드 작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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